어떤 사람이 이 그림을 보고 문제를 제기했다. 배사법으로 사슴을 쏘는 위쪽 고구려 무사는 표적과 반대방향으로 말을 달리고 있는데 이 장면이 어색하다는 거다. 더군다나 왼손잡이 무사다. 말과 사슴이 달리는 속도가 최대 시속 70키로인데 합치면 시속 140키로다.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를 생각할 때 반대쪽으로 말을 달려 사슴을 맞힐 수 있겠느냐다. 화살은 추력을 잃는다.
러시아를 평정하고 독일군대를 몰살시킨 몽골족의 배사법은 유명하다. 배사법은 달려오는 적의 오른쪽으로 돌면서 왼쪽으로 쏘는 것이다. 이때 표적의 진행방향이 궁수의 진행방향과 반대되므로 자연히 뒤로 쏘는 형세가 된다.
이는 달아나는 척 하며 적을 유인하여 본대에서 떨어져 나온 적의 분대를 포위 섬멸함으로써 적군을 조금씩 소모시켜 가는 몽골기병 특유의 자연스러운 활쏘기 방법일 뿐 의도적으로 뒤로 쏘는 것이 아니다. 사슴은 적군이 아니다. 추력을 손해보는데 굳이 뒤로 쏠 이유가 없다. 실은 사슴의 오른쪽으로 돌며 왼쪽으로 쏘는 것이다. 문제는 화공이 이 장면을 그릴 수 없다는 점이다. 사슴이 인물의 왼쪽에 있다는게 원초적인 걸림돌이다. 사슴이 인물과 겹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슴이 왼쪽에 있을 때 인물의 등에 가려지므로 오른손잡이 궁수가 활쏘는 모습을 정확히 표현하여 그릴 수 없다. 특히 인물을 그리다보면 얼굴부터 먼저 그리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얼굴없는 무사를 그릴 수는 없지 않은가? 자연히 인물은 왼손잡이가 되고 말은 뒤로 달리게 된다. 김홍도의 활쏘기 그림 역시 왼손잡이 궁수가 등장한다. 자연스럽지 않다. 왜 왼손잡이를 그렸을까?
주인공인 궁수를 얼굴없는 사람으로 만들 수 없으니 편한대로 그린 것이다. 람세스 2세도 왼손잡이로 되어 있다. 이집트 벽화 그림은 인물의 얼굴을 측면으로 그리고 가슴은 정면으로 그린다.
이 역시 자연의 사실과 맞지 않는 어색한 그림이다. 화살이 목 뒤로 가 있는 점을 보면 람세스 2세는 분명 오른손잡이다. 그런데 옷의 장식을 보면 정면이다. 편한대로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상당히 많은 그림들이 왼손잡이 궁수를 그리고 있다. 이는 표적을 왼쪽에 두고 인물을 오른쪽에 배치하기 때문이다. 반구대 암각화도 사냥감의 오른쪽에 인물이 배치된 예가 많다. 군대가 밀집대형을 이루었을 때 왼손잡이가 왼손에 칼을 쥐면 왼쪽의 동료를 찌르게 된다. 그러므로 군대에서 왼손잡이는 환영받지 못했다. 이는 기병의 운용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수의 오른손잡이들이 적군의 오른쪽으로 도는데 왼손잡이가 홀로 역주행을 하면 교통사고를 유발하여 곤란해진다. 기병 중에 왼손잡이 궁수는 거의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보병에는 왼손잡이 궁수가 있을 수 있다.
김홍도의 풍속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개 왼쪽을 보고 있다. 이는 글을 쓸 때 가로쓰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한자도 획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긋는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면 팔꿈치가 옆구리에 부딪혀서 곤란해진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인물들 역시 대개 왼쪽을 바라보고 있다. 왜? 오른손잡이인 인간이 오른손의 대척점인 왼쪽에 표적을 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측통행이 자연스럽고 좌측통행은 부자연스럽다. 육상경기에서 트랙을 왼쪽으로 도는 것과 같다. 표적이 왼쪽에 있을 때 인간은 안심한다. 왼손으로 견제하고 오른손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인들도 올림픽 경기에서 왼쪽으로 돌았다. 방진을 치고 대결하는 팔랑크스식 전투에서도 우익에 주력을 세우고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면서 싸웠다. 서로 상대편의 좌익을 겨냥하여 태극모양을 이루고 제자리에서 뱅뱅 도는 싸움이었다. 경마장의 말들 역시 왼쪽으로 돈다. 군인들의 사열도 왼쪽으로 분열하며 연단의 주빈을 향하여 우로봐를 한다. 암스트롱이 왼발을 먼저 달에 디딘 것은 오른발을 축으로 삼아 몸을 지탱해야 하기 때문이다. 돌발상황이 벌어졌을 때 오른발로 몸을 지탱해야 안전하다. 계단을 내려갈 때 왼발부터 먼저 내딛는 것이 보통이다. 권투선수 역시 사우스포는 반시계방향으로 돌고 오소독스는 시계방향으로 돈다. 이는 왼손 잽으로 상대를 견제하고 오른손 훅으로 받아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때 표적과 시소모양의 대칭구도를 이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구조적 관점이다. 구조는 내재한 메커니즘을 보는 것이다. 그림 안에 질서가 있다. 그 질서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그 질서의 첫 번째 원칙은 에너지의 결이다. 간단히 편한대로 간다는 거다. 대개 그림 바깥에서 주어지는 어떤 의도나 목적에서 답을 찾으려 하지만 실패다. 질서는 시스템 안쪽에 있다. 그것이 결이며 결은 편한대로다. 인간은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 결정하기 편한 것을 결정한다. 왜 히틀러는 침략을 결정했을까? 그것이 가장 쉬운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왜 악당은 나쁜 짓을 일삼을까? 그것이 가장 쉬운 결정이기 때문이다. 차기 총선과 대선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쉬운대로 된다. 무엇이 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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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활쏘기 사진 100장 중에 그런 장면은 하나도 없는 거죠?
초가을에 혜미 읍성에 활쏘아 보는 곳이 있어서 쏘아 보았는데...
가르쳐 주는 할아버지가 왼손은 활을 오른손은 화살을 잡으라고 하시던데...
그것이 더 안정적이던데...
화살을 잡는 손에 지나치게 힘을 주면 안된다고 그러셨고....
제 생각에 그림에 인물들이 왼쪽을 보는 이유는 오른쪽이 방향성을 나타내기에 얼굴은 왼쪽으로 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ㅋㅋ..그렇겠죠...^^;
대개의 오른손잡이들은 왼손으로 파지(把持:꽉 움켜쥠)하여 방향을 좌우하는 축으로 삼고,
오른손은 강한 힘과 정교한 타이밍으로 시위를 당겨 화살을 쏩니다.
오른손 잡이가 왼손으로 활을 쏘는 기본은 없습니다.
이는 총을 쏠때나 총검술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이지요. 왼손은 파지 및 방향잡기, 오른손은 격발과 힘주어 찌르기.
위의 김홍도 그림은 해학과 풍자 목적의 그림으로 보입니다.
왼손으로 시위를 당기며 왼발을 앞세우는 불안정한 자세는 없습니다. ^^
동렬 선생님 말씀처럼 그림에서 얼굴을 보이도록 할 목적이니 왼손잡이로 그려졌을 뿐.
자세가 완전 틀렸군요.
말씀하신대로 그림 설명을 수정했습니다.
근데 풍속화첩은 원래 민중의 생활을 임금에게 보여줄 의도로 그린 겁니다.
임금이 봐야하기 때문에 임금이 보기 좋도록 그린 겁니다.
백성들이 대략 이러고 산다는것만 보여주면 되지
오른손이냐 왼손이냐는 문제가 안 되지요.
람세스 2세의 그림은 일종의 기록입니다.
잘 살펴보면 틀린 데가 한 두곳이 아니에요.
애초에 그건 신경도 안 쓴거죠.
중요한 것은 왼쪽, 오른쪽이 아니라 편한대로, 결대로 간다는 점에서 생각을 합니다.
선생님의 강론들을 읽으며 시종 일관된 말씀들이 계셨으니 어느정도 이해가 됩니다.
전체 강론을 몇차례 읽어야 하겠지만.
아직도 헤메고 있습니다.^^
12월에는 거의 매일 구조 강론을 읽었습니다.
1월부터 3개월 정도는 다른 일이 있어 얼마나 진도가 나갈지 모르지만, 일찌기 구조론을 접하지 못한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동안 배워왔던 얕은 지식들이 선생님 앞에서는 모두 다시 돌아보게 되는군요.
모쪼록 새해에는 구조론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기를 기대합니다.
이런 식으로는 말대가리가 방해해서 활을 쏘기 어려움. 자세가 매우 불편함.
이러다가 몽골군에게 깨지는건 당연. 다만 멀리서 허공에다 쏘는건 가능.
근접전에서는 말을 적군진영의 오른쪽으로 몰면서 말머리의 왼쪽으로 쏘아야 함.
근데 그 장면은 그림으로 나타내기가 불편.
보통 먼 거리에서 허공에 활을 쏴대다가 가까이 접근하면 활은 놔두고 칼로 싸우는게 정석.
근데 몽골군은 가까이 다가와서 칼 안 뽑고 강궁으로 계속 쏴대는게 특기.
근접하여 직사로 쏘아댐. 이건 도무지 대책이 없음.
몽골군의 기병대가 근접직사로 활을 쏘고 흩어져 달아났다가 재집결하여 파상공격하는 전술은 칭기스칸이 부하들의 희생을 최소화 하기위해 개발한 전술로 알고 있습니다.
근접 백병전은 설령 전투에서 승리를 하여도 희생자가 너무 많았기에 부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개발한 전술이 승승장구하게 된 비결이 된 셈인데, 칭기스칸의 깊은 뜻을 알게 된 병사들은 얼마나 용기백배하여 전투에 임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사실 여부야 알 수 없지만 칭기스칸의 그러한 지도력은 그의 인품과 총명함의 결을 따라 대몽골제국을 건설하는 토대가 되었을 것입니다. 학식과 덕망있는 자를 중용하고 법과 질서를 엄히 하였다는 점에서도 오늘날의 위정자들이 본받을 점이 많다고 봅니다.
"김홍도의 풍속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개 왼쪽을 보고 있다. 이는 글을 쓸 때 가로쓰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한자도 획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긋는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면 팔꿈치가 옆구리에 부딪혀서 곤란해진다."
가로쓰기란 위에서 아래로 쓰는 것인데 당시 한자는 대개 위에서 아래로 썼다고 생각됩니다.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그 다음줄은 첫줄의 왼쪽에 쓰죠. 그럼 문장의 진행 방향은 우->좌로 갑니다. 그렇게 되면 팔꿈치가 옆구리에 부딪치게 되지요. 먹물이 소매를 더럽힐 수도 있고...
제가 좀 의문스런 것은, 우->좌 방향이 오른쪽을 우대하는 경향 때문일까 하는 것입니다. 오른쪽은 옳은 것, 왼쪽은 그른 것. 뭐 이런 사사인가... 하는 것이죠. 왜냐하면, 붓으로 글을 쓸 때 우->좌로 쓰면 옷소매가 방금 쓴 먹물에 닿아서 옷을 버릴 수도 있거니 생각되거든요. 이 문제는 오른손으로 붓을 잡고 좌->우 방향으로 쓰면 해결이 되는데도 왜 좌->우로 쓰도록 굳어졌을까 하는 의문이 드네요..
요즘이야 좌->우 방향으로 쓰고있죠. 또한 줄방향은 상->하로 가므로 잉크가 옷을 버릴 일은 없지요.
아라비아 글자도 우->좌로 쓰고, 히브리어도 우->좌로 쓰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현재 입장에서) 왜 이렇게 불편한 방향으로 글을 썼는지 아리송 합니다. 단지 우(옳다. 훌륭하다) 좌(사악하다, 나쁘다...) 라는 사상의 영향일까요?
한자는 거북이 등껍질이나 죽간에 썼는데 가로폭이 좁아서 쓸 공간이 없어요. 그래서 우 좌로 된 것입니다. 아랍어의 경우 양피지 두루마리를 오른쪽으로 펼쳐가며 썼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합니다. 두루마리가 꽤 비싸잖아요. 아낄라고. 죽간 역시 두루마리 형태로 돌돌 말았기 때문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쓸 수 밖에 없지요. 종이가 나오기 전의 일입니다.
좌 - 우, 상 -하 는 무형~유형의 무게중심으로 나뉘어집니다.
좌(무형) ~~~ 우(유형)
상(무형) ~~~ 하(유형)
하나의 場 에 글자하나가 들어가기도 하고, 문장이 들어가기도 하는데
각각 시작하는 입구와 과정, 출구 마침표가 다르죠.
이걸, 훌륭하다- 사악하다의 '우대'관점이 아니라
시작과 끝, 즉 에너지의 흐름으로 파악하려고 해야겠지요.
죄송한데요
저 어릴적 국궁을 좋아하시는 어르신꼐서 국궁은 기본적으로 오른손은 활을 왼손은 화살을 잡고 쏜다고 하시네요
그 이유인즉 국궁은 활의 반동성을 이용하여 화살을 날리기 때문에 -즉 오른손으로 활을 밀어서 사용-활을 밀기에는 오른손이 훨씬 편안해서 그렇게 쏜답니다
제가 쏴보니까 그 말씀이 맞으신 것 같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