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면역계가 쓸데없이 과잉반응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열심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는 뜻.
제1원인을 발견했으니 자가면역질환의 정복도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기생충 단백질로 알레르기항원을 찾아내서 거기에 맞는 면역요법을 만들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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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땅콩이나 꽃가루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면서도 쌀이나 건포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이유는 뭘까? 새로운 연구결과에 의하면, 땅콩이나 꽃가루에 '기생충의 단백질과 비슷한 것'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번 연구는 기생충과 알레르기 간의 관련성을 밝힌 것은 물론, 알레르기를 유발할 만한 식품을 가려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알레르기는 IgE(Immunoglobulin E)라는 항체가 땅콩 등의 단백질을 인식하고 이에 결합함으로써 시작된다. 알레르기는 콧물에서 시작하여 심하면 치명적인 아나필락시스 쇼크(anaphylactic shock)를 일으킬 수 있다. 학자들은 오랫동안 '본래 기생충을 방어하기 위해 진화한 면역계가, 기생충이 없어지고 나니 심심해서 다른 분자를 겨냥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즉, 선진국의 경우 위생상태가 너무 양호해서 사람들이 기생충을 만날 일이 거의 없으므로, 면역계가 다른 분자를 실수로 공격하여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기생충가설(위생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런던 위생열대의학대학원의 니콜라스 펀햄 박사(컴퓨터생물학)가 이끄는 연구진은 2,712개의 알레르기항원(allergen: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단백질)과 (31종의 기생충에서 추출한) 70,000개의 기생충 단백질을 비교해 봤다.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단백질의 3D 구조와 시퀀스를 일일이 대조해 본 결과, 2,445개의 기생충 단백질이 알레르기유발 단백질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예컨대, 만손주혈흡충(Schistosoma mansoni)의 단백질은 (재채기를 유발하는) 자작나무 꽃가루 단백질과 아주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밀분석 결과 2,445개의 기생충 단백질 중 절반이 가장 흔한 10가지 알레르기유발 단백질 도메인(EF-hand, Tropomyosin, CAP, Profilin, Lipocalin, Trypsin-like serine protease, Cupin, BetV1, Expansin, Prolamin)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연구진은 206개의 기생충 단백질에서 에피토프 유사 영역(epitopic-like region)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기생충에 대한 항체가 식물성 알레르기항원을 인식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우간다로 날아갔다. 만손주혈흡충증(schistosomiasis)에 감염된 우간다 국민 222명으로부터 혈액을 채취하여 IgE의 면역반응을 확인해본 결과, 여섯 명 중 한 명꼴로 BrtV1(식물계에서 가장 흔한 알레르기유발 단백질)에 반응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는 단백질의 유사성을 토대로 하여 기생충에 대한 항체가 식물성 알레르기항원을 인식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우리의 예측은 적중했다. 기생충에 대한 항체가 식물성 알레르기항원에 반응하는 사례가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연구진은 말했다. 연구진은 이상의 연구결과를 정리하여 10월 29일자 《PLOS Computational Biology》에 발표했다.
"매우 훌륭한 논문이다. 일부 알레르기항원들이 기생충 단백질과 유사하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모든 사실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연구에 사용된 방법은 새로운 알레르기항원을 찾아내는 데도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교의 마리아 야즈단박스 박사(기생충학)는 논평했다.
"이번 연구는 다양한 분야에 응용될 수 있다. 가능한 알레르기항원을 찾아내는 것은 기본이고, 알레르기 환자를 위한 면역요법을 설계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면역요법의 경우, 의사들은 환자를 알레르기항원에 노출시켜 면역계를 감작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어떤 기생충 단백질이 알레르기항원과 유사한지를 알면 꽃가루 대신 그 단백질을 사용할 수 있으므로, 알레르기주사(allergy shot)의 용량을 쉽게 조절하고 안전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펀햄 박사는 말했다.
이번 연구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전문가도 있다. 예일 대학교의 루슬란 메드츠히토프 박사(면역학)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기생충 가설'을 부정하고, "일부 알레르기는 인간을 환경독소로부터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진화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