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줄에 기스 나는거 가지고 전전긍긍 하는게 못난 한국인들
그게 불쌍한 자들이 남을 압박하지 못하므로 자기를 압박하는 것.
그 자체로 꽝. 인간실격. 예술가의 사랑방에 초대될 자격 없음.
사치품은 자기 자신을 긴장시키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물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돌아오는 반작용 힘으로 자기를 누르는 기술.
경마장에 가는 인간 심리가 사실은 돈을 따겠다는 탐욕이 아니라
돈을 잃으면 망한다는 걱정으로 자기 자신을 압박하는게 본질.
그래서 얻는게 뭐냐고? 경마장에서 거지될 걱정에 다른 걱정을 안하게 됨.
경마장에 가는 인간 군상들의 후줄근한 옷차림과 퀭한 눈빛이 의미하는 것은.
그들은 이미 다른 것을 걱정하지 않는 즉 초월한 자가 된 것이며
현실문제에 초연한 초인이 된 것, 어느 면에서 득도한 자의 무심한 표정
어제도 10만원(당시 십만원은 큰 돈) 잃고 오늘도 20만원 잃으니
10만원이 돈이냐 나는 돈 따위에 초연한 존재이니라 관셈보살.
인간은 일용할 걱정거리가 필요한 것, 즉 이 걱정으로 저 걱정을 누르려는 것.
진짜 책임져야 할 걱정거리를 은폐하는데 가짜 걱정거리가 필요한 거.
그런 인간의 어리석음과 싸우겠다는 엘리트 의식이 없는게 머슴의식.
소인배는 그래도 되지만 군자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사치품 차고 나는 대우받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콤플렉스
왜 남을 대우해주려고 하지 않고 자신이 대우받으려고 할까?
자신을 사회로부터 받아먹는 약자 포지션, 거지 포지션으로 규정한 것
자신을 미성년자, 열등한 자, 피해자로 규정하는 것. 그 이유는 열등하기 때문.
나는 누구한테 대접받으려는 기대를 가져본 적이 없는데 그 이유는
머저리들에게 대접받는다는 것은 내가 저 머저리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
가급적이면 내가 책임지는 범위를 줄이자는 것. 말귀 알아듣는 사람만 책임져도 내게는 과분.
인류의 다수가 머저리라면 나는 저것들을 책임질 필요가 없는 만큼 자유로운 것.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만 책임져도 나 자신에 대한 압박이 철철 넘쳐버려.
고위관료들이나 공권력을 쥔 관료들의 '정치적 중립'은 낭만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대한민국을 흔들어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자리의 관료들은
정치적중립은 아무런 문제가되지 않고 국가의 운명을 한번 흔들어서
본인들의 위치를 국민에 각인시키고
그다음은 바로 대권으로 직행하는 것이 굥이후 국힘쪽에서 관례로
자리잡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은 무엇인가?
한국은행장의 그동인 발언들이나
감사원장이 유난히 민주당에만 각을 세우는 것은
그들이 모두 자신들을 잠재적인 대권주자로 보기 때문일까?
어차피 관료사회에 '정치적 중립'은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그저 '낭만적인 서사'가 아닌가?
관료사회의 정치적중립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