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는 누구나 시합에 뛰고 싶어 한다. 부상을 당해도 뛰어야 한다. 클린스만의 말이다. 멋지다. 메이저리거는 빈볼을 맞아도 아픈 척하지 않는다. 한국인은 엄살이 심하다. 유럽은 마초문화가 살아 있다. 그들이 보기에 동양인 남자는 여성에 가깝다. 수줍음을 탄다. 패기가 없다. 예전에는 허세가 있었다. 허세가 너무 심해서 탈이었다. 문인이 문학상을 받거나 원고료를 받으면 술자리에서 다 토해내야 한다. 치사하게 그 돈을 집으로 가져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고은 시인의 추태는 그 시절 허세대결에서 나온 것이다. 홍상수 영화에 묘사되는 것들. 문인들이 술자리에 모여 허세대결을 펼치다가 뒷담화 대결로 넘어가고 결국 주먹다짐으로 끝난다. 점차 추해진다. 이건 2천 년대다. 80년대 천상병, 이외수의 낭만적인 허세가 90년대 고은의 추태 허세로 변했고 2천 년대에 홍상수 영화의 주먹질 허세로 변했다. 마이너스의 법칙. 흑인이나 남미에는 아직 허세대마왕이 살아있다. 네이마르는 뒤에 이상한 아저씨들이 우르르 따라다닌다고. 메이저리그도 흑인 선수나 히스패닉계 선수는 패거리를 몰고 다닌다. 김하성의 증언이다. 예전에는 명절증후군이 없었다. 허세 때문이었다. 전은 내가 제일 잘 부친다고. 비켜봐. 설거지는 내가 다 할거야. 이런 분위기였다. 며느리들 간에 경쟁이 붙기 때문이다. 지금은? 경쟁자가 없다. 동서가 없다. 올리버쌤은 근육을 만들고 있다. 텍사스 바닥에서 게이로 오해받지 않으려면 헬창이 되어야 한다. 남자가 비 온다고 우산 쓰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한국은 허세가 사라졌다. 다들 스폰지밥의 징징이가 되고 투덜이 스머프가 되었다. 정치인들도 매우 징징대고 있다. 윤석열은 비 몇 방울 맞았다고 우산을 쓴다. 박근혜는 전여옥이 씌워주기 전에는 우비를 입어도 모자는 쓰지 않고 버텼는데 말이다. 정치인이 우산을 써도 되는가? 쪽 팔리는 줄을 모르고. 박근혜도 그건 아는데. 허세대마왕 시절에는 패거리에 보스가 있었다. 보스를 믿고 대충 살았다. 친구가 네이마르인데 무슨 걱정을 해. 아이를 많이 낳았다. 쪽수의 힘을 믿는다. 허세가 사라지고 인간들이 잘아졌다. 그래서 장점도 있지만 단점은 멸망이다. 인간들은 내시균형의 함정에 빠져버렸다. 이기적인 결정은 공멸의 길이다. 누군가 희생해야 집단이 살 수 있다. 그러려면 허세가 있어야 한다. 허세가 가장 심한 자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고 집단을 구한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동물이다. 지금은 본래에서 많이 멀어졌다. 클린스만의 허세축구에 기대를 걸어보자. |
ㅋㅋㅋ너무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