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며칠 지난 이야기이긴 한데 못 보신 분 있을듯.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1994년 사망)씨와 자주 연락했나.
“할배(최태민씨)는 계속 누군가와 통화했다. 박 대통령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하곤 했다. 한번 하면 엄청나게 오래 한다.”
―그때는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아니고 야인일 때였는데.
“맞다. 자유인인데, 아마 어린이회관을 박근령(박근혜 대통령의 여동생)씨에게 뺏기고 한참 숨죽이고 지낼 때였던 것 같다.”
―1994년에 최태민씨가 죽었다는데.
“모 기사(박 대통령 옛 운전기사로 1998년 사망)가 그러더라고요. 한번은 대통령이 ‘최 회장(최태민씨)이 전화가 안 된다’고 하더라. (모 기사가) 아무 소리 안 하고 있으니까 (박 대통령이) ‘두 달째인지 석 달째인지 연락이 안 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얼마 후 다시 모 기사한테 또 물었다고 하더라. ‘석 달째 최 회장 연락이 안 돼요, 집에 가서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모 기사가) 알아보니 (최 회장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1975년 6월 21일 배재고교 교정에서 열린 한국 구국십자군 창군식에 참석한 영애 박근혜. 사진 맨 왼쪽 안경을 쓴 이가 최태민씨다.
연합
―박 대통령이 최태민씨 죽음을 한동안 몰랐다는 것인가.
“(최씨 일가가) 안 알려줘서 몰랐던 것이다.”
―왜 최태민씨 죽음을 박 대통령에게 알리지 않았던 걸까.
“그러니까 (최순실씨가) 사악하다니까. 최태민씨의 아들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하더라. 아들들도 신문에서 부고 기사를 보고 찾아왔다.”
―큰딸 최순득씨가 비선 실세 중의 실세라는 얘기도 있던데.
“순득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언니이지만 동생 순실이에게 꼼짝 못한다. 동생 순천이는 언니들을 무시하고 상종도 안 한다. (세 자매가) 순영이는 아버지가 다르다고 아예 제낀다. (최씨의) 신랑 정 실장도 마찬가지다. 순실이가 그 정도로 사악하다. 할매는 ‘유연이 엄마(최씨)가 대장이야’라고 말하곤 했다.”
―모친인 임선이(사망)씨도 있었는데 어떻게 최씨가 대장이었는가.
“순실이는 (박 대통령에게 어려운) 이야기를 못하니까 (임씨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세요’라고 전화를 한다. 왜냐하면 할매가 이야기하면 (박 대통령도) 들으니까. 순실이가 보스야(웃음). 순실이가 다 해서 하는 것이다. 할매가 어떻게 하겠느냐. 할매 머리에서 그게 나오느냐? 당연히 순실이가 다하는 거야.”
―박 대통령과 최순득씨가 친한가.
“(박 대통령이) 순득이 집에 몇 번 갔다. (왜?) 침 맞으러 간다고 하더라. (침요?) 순득이가 한의사를 불렀겠지.”
최순실과 장시호
―장시호(최순득씨 딸로 개명 전 장유진)씨도 최씨와 잘 어울렸다고 하는데.
“유진이는 어릴 때 ‘이모 이모’ 하고 순실이와 잘 어울렸다. ‘이모, 유연이(정유라씨) 봐줄 게’라고 말해 (정유라씨를) 데리고 가면 (최씨가 장시호씨에게) 20만원을 준다. 정 실장이 장가왔는데 유진이가 중학생 이상 됐을 때 내가 기억나는 게 하나 있다. 정 실장이 내게 ‘애(유진)가 엇나가 요새 승마를 배우는데 많이 착해졌다’고 하더라. 유진이가 정 실장을 엄청 따랐다. 그래서 정 실장이 데리고 다니면서 말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야. 그 영향이 자기 딸(정유라씨)한테도 미친 것 같아.”
(세계일보가 2014년 11월 정윤회 문건 보도 당시 언급된 중식당을 취재한 결과 장시호씨는 최씨 또는 최씨 일가와 수시로 이곳을 찾았고 최씨와 룸에 들어갔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운전기사로 오랫동안 지켜본 최순실씨는 어떤 사람인지.
“차를 오래 운전하며 봤는데, 쉽게 얘기하면 최태민씨가 (박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려다가 만들지 못하고 죽고, 그 바통을 할매(임선이씨)하고 순실이가 맡았는데, 순실이가 다했다. 순실이는 상스럽지는 않지만, 보스 기질이 있다. 옛날 한명회가 있었다면 지금은 ‘최명회’(최순실+한명회 의미인 듯)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콩나물 대가리 하나부터 그 집(박 대통령) 시장을 봐주는 것까지 다 봤다. 박 대통령은 아무것도 못한다. 그냥 상징적인 사람이다.”
―박 대통령은 최씨 일가의 ‘허수아비’ 비슷한 존재라는 것인가.
“공주라고 보면 된다. 공주는 뭘 모르잖아요? 저 양반(박 대통령)이 참 뭘 모른다. 내가 봤을 때 (박 대통령은) 영혼까지 (최순실씨나 최씨 일가에) 뺏긴 사람이야. 거기서 헤어나올 수가 없다. 상징적인 인물이다.”
―도대체 최씨가 박 대통령의 일상을 어떻게 장악했다는 말인가. 이해가 안 된다.
“(박 대통령 사저의) 경비원부터 전부 이쪽(최씨)에서 보냈다. 옷을 찾아오거나 돈을 (찾아)주는 것도 모두 마찬가지다. 순실이가 시켜서 (박 대통령이 사용하는) 화장품을 사오기도 했다. 저 사람(박 대통령)은 영원한 공주야. 아무것도 (스스로) 못한다.”
―그럼 최씨나 최씨 일가를 어떻게 봐야하나.
“악마라고 보면 된다. 어떻게 보면 (최씨 일가는) 아버지(최태민씨) 때부터 (박 대통령의) 정신과 마음, 영혼까지 다 빼앗은 사람들이다.”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2007년 주한 미국대사관은 최태민씨를 러시아 제국을 멸망에 이르게 한 요승 라스푸틴에 빗대며 박 대통령의 심신(body and soul)을 완전히 지배했으며, 그의 자녀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본국에 보냈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최씨 성격은 어떤가.
“(생전에) 최태민 회장이 ‘다른 딸이나 할매에게 얘기하면 다 듣는데, 순실이는 지 아버지(최태민씨) 말도 안 듣는다’고 하더라. 순실이는 고집이 상당하다. 그건 최 회장이 한 얘기요.”
―최순실씨가 청와대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는 보도가 있던데.
“그러고도(청와대에서 잠을 자고도) 남았을 거야. 과거에도 (박 대통령이) 순실이네로 오면은 그 집에서 같이 잠을 잤지. 같은 방에서 자는지는 잘 모르지만.”
―최씨가 박 대통령이랑 통화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지.
“많이 들었다. 순실이가 많이 (전화)하는 편이었다. 뭐는 어떻고 저떻고 한다. 최씨가 (박 대통령과의) 통화가 끝난 뒤 ‘아직도 지(박 대통령)가 공주인 줄 아나봐’라는 말을 잘 했다.”
―최씨가 자기 입으로 ‘박 대통령은 공주’라고 말했다는 것인가.
“그렇다. 엄마(임씨)하고 있을 때도 하고, 자기 혼자 있을 때도 했다. 혼잣말로 ‘자기(박 대통령)가 아직도 공주인 줄 아나봐.’, 임씨에게도 ‘엄마, 엄마, 자기(박 대통령)가 아직 공주인 줄 아나봐’라고 말하더라. 생각해보니까, (박 대통령이 최씨에게) 이상한 것을 부탁한 모양이더라.”
―최씨와 임씨가 그런 말을 주고받을 때는 어떤 상황인지 기억나나.
“순실이하고 임씨하고 (차를) 타고 가면서 순실이가 (박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끝내고는 ‘엄마, 엄마, 자기 아직 공주인 줄 아나봐’라고 그런 소리를 했던 거다.”
―최씨가 박 대통령에 이렇게 영향을 미치도록 박지만 박근령 남매는 뭘 했는가. 일각에서는 최씨가 박씨 남매의 접근을 막았다는데 사실인가.
“이 사람들은 철저히 그 남매를 배제했다. 자기가 아니고 다른 사람들은 (박 대통령에 대한) 전화이건 접근 자체를 교묘하게 못하게 한다. 오죽하면 근령이도 마찬가지로 집(박 대통령의 삼성동 사저)에 들어오지 못한다. 선거할 때도 못 들어온다. 기사(박 대통령 운전기사)에게 들은 바로는 (최씨가 박 대통령에게) ‘○○○ 과장(박지만씨 측과 교류가 있는 인사)이 나쁘다’고 줄기차게 전화를 했다고 하더라. 박 대통령도 (박지만씨 쪽 사람 중에) 유일하게 그 사람과 통화했는데, 결국 안 하게 되더라. 최씨가 계속 ‘좋은 사람이 아니어서 믿으면 안 된다, 이용한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하더라. 나쁜 이미지를 심어 자기네 이외에는 (박 대통령과) 통화고 뭐고 못하게 했다.”
―1990년 박 대통령 사저에 박지만·근령씨가 찾아갔을 때는 어땠나.
“(그때 일은) 말만 들었다. 이쪽에서 박 대통령이 급하니까 순실이쪽에 연락해 이쪽 사람(최씨쪽 사람)이 태권도 선생부터 해서 몇 명이 갔다고 하더라.”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근령씨가 1990년 8월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보낸 ‘누나를 최태민 목사로부터 구해달라’는 취지의 탄원서.
오마이뉴스 제공
―최씨가 박 대통령 친동생들을 철저하게 박 대통령과 분리시켰다는 얘기인데.
“접촉 자체를 못하게 했다.”
―박지만 남매는 이런 상황을 다 알고 있는가.
“알고 있을 것이다. 박지만씨가 왜 몰랐겠느냐. (최씨가 박 대통령과 그 친동생들의) 접촉을 철저히 못하게 했다.”
최씨가 어떻게 ‘비선 실세’ ‘비선 대통령’이 된 건가. 무슨 ‘안가’ 비슷한 게 있었다는데.
“(박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사무실이 있었다. 순실이가 연구소장으로, 무슨 ‘정치문제연구소’ 소장이었다. 실제 밖에서는 몰라 그렇지, (안가는) 대통령을 만들려고 준비해 놓은 사무실이었다. 사무실은 60평이 넘었다.”
(박 대통령의 의원실 보좌관으로 한때 일했던 양모(43)씨는 최근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최씨가 서울 강남 ‘안가’ 회의를 통해 박 대통령 의정활동에 깊숙이 관여했다고 증언했다.)
― 그 ‘안가’라는 사무실은 어디에 있었나.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다.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당선 때부터) 대통령이 될 때까지 운영했을 것이다. 서울 성수대교에서 건너온 뒤 두번 째 사거리 부근에 있다. 5층이 사무실이고 6층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품이 비치돼 있었다. 이 사무실을 1998년부터 운영했다.”
(특별취재팀이 증언을 바탕으로 현장을 답사한 결과 김씨가 ‘안가’로 지목한 곳은 서울 신사동 S빌딩 588번지 5층에 위치한 ‘한국문화재단’이었다. 박 대통령과 최씨는 2012년 대선 직전 이 사무실을 비웠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안가’로 활용된 것으로 파악된 서울 강남구 신사동 588번지 S빌딩 전경. 이곳은 한국문화재단(전 명덕문화재단) 사무실로 계약돼 있었으나 실제로는 박 대통령의 후원회 사무실과 안가로 쓰였다. 국정농단의 장본인 최순실씨는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박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의정활동을 진두지휘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별취재팀
― 당시 국회의원이던 박 대통령도 사무실에 왔나.
“자주 왔다.”
― 안가, 즉 그 연구소라는 곳에 박 대통령 말고 누가 왔는가.
“안봉근(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 정호성(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이재만(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이춘상(박 의원 보좌관, 2012년 사망) 등이 이곳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연구소 사무실에 6명인가 8명이 앉는 회의 탁자가 있는데, 항상 거기서 커피도 마시고 음식 시키면 먹고 그랬다.”
― 안가와 관련해 기억나는 게 있는가.
“언제 한 번은 ‘과장님, (사무실에) 올라오라’고 하더라. 사무실에 올라가 보니 안봉근을 비롯해 여러 사람이 있었다. 누군가 ‘과장님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할매(임선이씨)하고 우리 소장님(최순실씨)을 데리고 한강으로 같이 들어가면 어떨까요’라고 하더라. 내가 할매하고 순실이하고 항상 태우고 다니는 사람이니, 그들을 죽여줬으면 하는 거였다. (그래서) ‘그럼 나도 죽는데’라고 그랬지. ‘그렇게 하면(해주면) 안 돼요?’라고 해 ‘XX 내가 미쳤나, 그건 못한다’고 말했다.”
― 누가 왜 그런 말을 한 것인가.
“1999년 때부터 걔들이 그랬다. 오죽하면 그 소리를 했겠느냐. 그들은 ‘우리 의원님(박 대통령)이 코드원(code 1)이 되면, 코드원은 (박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다는 거 아니냐, 그럼 (최씨가)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할 것’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지금 순실이가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하지 않느냐.”
― 농담으로 한 말이죠? 그때부터 최씨의 국정농단을 우려했다는 것인가.
“농담이라도 그 소릴 했다니까. 자기들은 농담이었겠지만 어느 정도 진담이 들어 있을 것 아니냐. 그때부터 그런 이야기를 했다. 저 사람들은 순실이의 종이라고 보면 된다.”
― ‘문고리 3인방’이 박 대통령이 아닌 ‘최씨의 종’이란 말이냐.
“그 사람들은 (박) 대통령 사람이 아니다. 순실이의 사람이다. 순실이가 뽑았는데 모두 순실이 사람이다. 그 사람들 모두 순실이하고 정 실장이 뽑았던 사람이야. 그 사람들의 종으로 보면 된다. 이 사람들이 (최씨가) 뭐 시키는데 토를 달면 그날로 그만둬야 된다. 순실이 말을 무조건 들어야 해.”
― 이해를 할 수 없다. 그 사람들은 모두 박 대통령의 보좌관 아닌가. 월급도 받고.
“월급은 거기(박 대통령 측)서 나오더라도 말은 이 사람(최씨) 말을 들어야 돼. 박 대통령은 무슨 이야기를 안 하니까. 자기들이 다 시키고, 연설문도 그렇다. 좋은 건 다 해 자기들이 보고하지. 야들(박 대통령 측근 인사들)은 거기에 일체 간섭을 못해. 그저 순실이가 시켜서 하고. ‘순실이 종’이라고 보면 돼. (심지어) 죽으라면 죽어야 하고. 안 그러면, 반발하면 끝이다.”
― 최씨는 그들에게 어떻게 하는가.
“순실이가 잘지는 않다. 한참 배고플 시간에 나하고 둘이 가다가 떡볶이 파는 데 있으면 둘이 먹고, ‘이것 좀 싸주세요’해 한 4만∼5만원씩 사서 (직원들) 갖다 준다. 느닷없이 ‘가서 회식합시다’라고 해 (사람들을 데리고 가) 지(최씨)가 (돈을) 다 낸다. 축구를 하러 간다든가 하면 그것도 자기가 전부 다 낸다. 서서히 엮이는 것이라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
― 최씨에게 한번 엮이면 벗어날 수 없다는 건가.
“그렇지. 그러니까 밖에서 (문고리 측근들이) 하나의 종으로 보면 되는데, 안(청와대)에 들어가서도 순실이가 그런 전횡을 저질렀을 거야.”
― 최씨가 박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친 게 밝혀졌는데, 박 대통령의 의원 시절에도 연설문을 고쳤나.
“순실이가 백 번 그러고도 남는다. 정호성, 이재만 등이 이것(연설문)을 쓸 때 보면 밤새도록 하는지 다음날 못 나온다. 나중에 나를 보내 데리고 나오라고 한다. 그러면 (연설문을) 정 실장이 보고 그다음에 순실이가 보고 고칠 것 다 고쳤다.”
(전여옥 전 한나라당 의원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의 당대표 시절 연설문 원고가 모처만 거치면 걸레가 돼 돌아왔다. 이번에 보니 그게 다 최순실 작품”이라고 말한 바 있다.)
― 그때도 최씨가 연설문을 다시 고쳤다는 얘기인가.
“그렇죠. 가(박 대통령 측근 인사들)들 말마따나 ‘(박) 의원님 위에 정 실장이고, 정 실장 위에 순실이’야. 순실이가 대장이고 의원님이 꼴등이야. (최씨가) 하라면 하라는 대로.”
― 박관천 전 경정이 말한 ‘권력서열 1위 최순실, 2위 정윤회, 3위 박 대통령’이라는 이야기와 같다.
“맞지. 그때부터 계속 그랬어. 박 대통령이 뭘 모른다니까(웃음). 순실이가 대장, 그다음은 정 실장, 박 의원은 꼴등.”
―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간다.
“이해가 안 가죠? 정 실장이 고치면 순실이가 ‘그건 안돼’ 하고 고쳐서 갖다주면 (박 대통령이) 그거 그대로 갖다가 앵무새로(처럼) 이야기하는 거지.”
― 정씨는 상당한 능력이 있지 않느냐.
“정 실장이 (최씨가) 이렇게 하라고 하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고 하면 저렇게 해야 하고. 아무 실권이 없다. (중략) 차에서 (최씨와 정씨가) 싸워. 싸우면 성질나니까 (정씨가) 중간에 가다 (차에서) 내려버린다. 순실이가 이야기도 막 한다. 그럼 정 실장이 보따리 싸서 나간다. (하지만 정씨는) 한 일주일 있다 다시 온다. 몇 번 그랬다.”
― 정씨와 최씨는 어떻게 만났는가.
“정 실장은 대한항공 보안승무원 출신이었다. 순실이가 아는 미국 교포가 있는데, 이 여자가 소개하기를 ‘정 실장이 이번 비행기를 타니까 먼저 그 사람(정씨)을 보고 맘에 들면 내가 (소개)해줄 게’라고 했다고 한다. (최씨가) ‘맘에 든다’고 말해 이렇게 된 거다(결혼했다).”
― 정씨가 그럼 무슨 역할을 했나.
“정 실장은 아무 실권이 없었다. (박 대통령이) 의원 시절에 저녁 약속이 있으면 여자라 못 가니까 (최씨가) ‘그러면 실장님 보내세요’라고 하면 (정씨가) 대리로 나간다. 그런 식으로 많이 했다.”
― 계속 드러나는 최씨의 국정농단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정씨를) 핫바지로 세워 가지고 무언가 하려고 하다가 안 되거든. (잘) 안 되니까 지(최씨)가 (국정) 전면에 나온 것 같다.”
지난 주 광장에서 느낀 것이
제2의 3.1운동이 아닌가 하는
혹은 3.1운동의 완성이 되는 거 아닐까 하는 기대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