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반장 지역과 노반장차에 대하여....
반장과 노반장은 다른말이다. 반장안에 노반장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우수개 소리로 노반장인줄알고 샀는데 포장지 보니 반장이더라 라고 하는 말도 있다. 노반장이 좀 재미있는게 노반장 대지차를 마셔도 웬만한 고수차보다 좋다. 노반장 대지차와 고수차 2개를 놓고 마시지 않고는 구별이 힘들다. 그이유는 말이 대지차지 비료나 농약을 칠 여건이 안되기 때문이다.그리고 수령도 100년이 넘는다. 노반장은 대만 상인의 마케팅의 결실이다. 일종의 투기가 성공한 것인데 일개 차산이어서 가능했던것 같다. 차품도 나쁘지 않고 독과점해도 정부규제가 없으니 쥐고 흔들기 알맞은 크기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진짜냐 아니냐가 중요하지만, 브랜드라는게 시간이 지나면 차를 파는게 아니고 브랜드를 파는 것이고 소비자는 그 브랜드가 욕구를 얼마나 만족시켜주냐가 중요한 셀링포인트이기 때문에 짝퉁산업이 발전하고 궁국적으로 차산업이 발전해서 파이가 커지는 것이다.
-> 즉 이러한 경우가 거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어떠한 것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거품이 끼게 마련이고, 거품을 또한 무시할 수도 없다. 거품이 끼어야 사람도 모이고 자본도 모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거품이 꺼지고 나면 그 다음은 삭망한 모래벌판이 될 수도 있다. 거품이 끼었다라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대처해야 하는 부분이 생긴다. 그렇다고 거품이 끼었으니 언젠가는 거품이 빠질 것이라 생각하고 무작정 투기로 덤벼 들어서도 곤란하다. 그것에 자신도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품 그 자체를 인위적으로 거둬내기도 어렵다. 거품이 곧 성장을 촉진하기도 하고, 소비를 촉진하기도 하고, 자본을 순환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들은 어쩔 수 없이 시장이 형성되는 곳에서는 생기기 마련이다. 하여 스스로가 주변이나 환경의 판세를 보고 잘 판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초창기에는 거품이 끼기도 하지만 점차로 시장이 안정화 되어가면 건강한 방향으로 흘러 갈 것이라고 생각된다.
노반장엽저는 보통 다른차산에 비해서 모양이 길쭉하다. 여러가지 맛이 있는데 보통 2가지로 나눈다. 단맛과 쓴맛. 어떤 것은 단맛이 많이나고 어떤 것은 좀 쓴맛이 난다. 왜 그런 현상이 나오느냐 하면 한 차산을 놓고 보았을때 돌아가며 동서남북 맛이 틀리다.좀 더 자세히 말하면 일조량과 관계가 있는데 양지와 음지의 차이다. 직접 가서 보면 토양이 딴데보다 좀 더 좋다고 볼 수 있다. 원래 노반장이 비싼 이유는 채엽량이 작아서이다. 전통적으로 1창2기인데 다른데는 1창3기 1창4기까지 채취한다. 같은시간에 채엽량이 작다보니 가격이 높은 것인데 3년전부터 가격이 마구 올라 1창3기, 1창4기를 채엽한다. 그래서 질은 떨어지고 가격은 7배 정도 오른셈이다.1창2기일때는 어린 잎이어서 당연히 단맛이 많이 났는데 지금은 많이 떨어졌다. 맛과 엽저로 판단하면 비교적 정확하다. 그런데 100% 노반장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맛이 비슷한 주위의 반장산에 있는 찻잎을 섞기 때문에 맛으론 구분이 힘들고 그때는 노반장의 특징인 엽저의 모양, 1창2기로 판단해야 한다. 차산에 가서 직접 사도 자신이 손으로 직접 따지 않는 한 믿을 수가 없다.
사실 가격도 몇%냐에 따라 틀리다. 중요한 사실은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100% 짜리는 없다. 이 이야기는 100%고수차가 없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 하는데, 현지에 가보면 바로 이해가 되는데 다원이 아니고 자연림은 수령이 일정하지가 않다. 보통 200년에서 800년 사이의 고수차가 한 산에 있으면, 그 사이사이에 1년에서 70년 정도의 대수차가 또 있다. 그러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 채엽하는 사람들이 고수차만 돌아다니며 따는 것이 아니라 한발한발 앞에 있는 것을 차례로 따서 바구니에 같이 넣는다. 자연스런 인위적 병배다. 만약에 년수별로 채엽을 하면 가격이 대홍포 정도로 올라 갈 것이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없다. 1편을 만든다고 하면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이나, 어느 정도 수량을 생산한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산기슭에 걸음은 커녕 올라가기도 힘든데 행동반경이 넓지도 않을 뿐더러 잎을 따면 빠른 시간내에 가공을 해야지 시간이 지나면, 발효가 진행이 돼서 차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노반장 차엽에서도 같은 등급의 차를 만들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만들려면 만들지 못 만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비용과 경제성이 문제인 것일 뿐이다. 다만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노반장의 종류나 그 양을 따질 때 모두 순수한 노반장이다. 라는 것이 애매하다.라는 것이고, 반면에 노반장의 여린 잎으로 만든 차들도 있다고 본다. 이런 차들이 노반장인가? 하는 것을 검증 하기가 또한 애매할 뿐이라는 것이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으면 현지에서 조차 모차를 속인다고 하는데, 지켜서서 차를 만들지 않으면 아무도 믿을 수 없다.라는 것이 현재 노반장의 속 사정이라고 하니 말이다.노반장 대지차의 수령이 100년이 넘을 수 있는가? 에 대해서는 이 대지차를 어느 기준에 놓고 보는가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밀식 재배의 대지차인가? 아니면 야뱡형에서의 대지차인가? 하는 것일 수 있다고 본다. 하여 정확히는 현장에 가 본게 아니기 때문에 알 수 없지만, 대지차도 100년을 넘을 수 있다. 라고 생각된다.
100년된 대지차는 노반장촌에 가면 볼 수 있다. 이러한 차나무는 야방형 대지차로 보는게 맞을 것이다.
2. 한국차 시장과 소장차 개념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보이차를 소장가치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엄청난 양을 사재기 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일 수 있지만, 반면에 자신이 마실차를 미리 확보해 논다는 차이점이 있다고 보인다. 또한 보이차를 자산의 가치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산의 가치로 생각한다는 부분이 조금은 문제가 있다. 자산의 가치로 생각하기 때문에 부담을 무릎쓴다는 것인데, 결국 그 부담은 아직은 차시장이 작은 국내시장을 압박한다는 것이다. 또한 결과적으로 그 부담이 분산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그 부담을도로 떠안게 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생산되지 않는 보이차를 자산의 가치로 소개하고 홍보하고 팔기도 한다라는 것도 문제중의 하나이다. 아직 국내에서는 큰 자본들이 차에 그리 침투되지는 않았지만 중국은 이미 큰 자본들이 차에 침투에 들어 있다고 알고 있다. 현재 국내는 차시장이 협소하기 때문에 큰 자본이 들어 온다고 해도 소화가 되지를 않는다고 보인다.결국 그 자본은 묶여있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손해를 감안해야 한다. 큰 자본이 투여된다고 하여도 투기자본이 아니라 투자로서 차 자본으로 계속 투여 되어져야 차 차제의 발전도 있다고 보인다. 시장에 맞지 않은 자본이 들어 온다는 것도 부담이 되겠지만, 시장에 자본이 들어와 투기성으로 전락하다는 것도 문제라고 보인다. 그러다 보니 그러한 것을 만회하기 위해 소비자를 압박하거나 속이거나 소비자들을 인질로 잡고 있는 현상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항상 소비자가 갑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차시장은 아직도 차를 만들거나 판매하는 사람들이 갑이다. 공급하는 측면이 있어야 뭔가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겉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고,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 즉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보아야 제대로 보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현재 이렇게 차시장이 협소한 상황에서 차를 공부하고 마시는 사람들이 할 일은 그 매니아적인 성향으로 보아서도 언젠가는 다 독립적인 자기공간을 취하고자 할 것이라고 보인다. 즉 배웠으니 써 먹을 데를 찾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시장이 커지지 않으니 모두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중국이나 운남과는 달리 어쨌든 한국은 한국만의 독특한 차시장이 형성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한국 자체적인 시장의 형성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지금은 차도매에 모두 목을 매고 있지만, 앞으로 시간이 흘러가고 중국과 교류는 국제정세상 더 가까워 질 수 밖에 없고, 모두 각자 가서 구입해 와도 아무 문제가 없게 될 것이다. 그만큼 차시장의 국경이 없어져 간다는 것이고, 차를 접하는 자세들도 어려운 것에서 쉬워질 것이다. 이러한 연유들이 누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차를 구입하는데 지장이 없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예상되는 이유이다. 구태여 지금 기를 힘껏 쓸 필요는 없고, 그 시장의 틀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를 고민해 보는 것에 접근하여 점차로 시장을 키워 나가는 방향과 성장해 가는 방향이 좋다고 생각된다. 어쨌든 차는 지금은 약간은 정체기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성장할 수 밖에 없다고 보인다. 성장에 발 맞춰 가려면 의식적으로 성숙해져야 한다. 언제나 의식적으로 성숙해지지 않으면 도태되는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앞을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차문화가 어떤 식으로 확산 될 것인가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차는 다구와 함께 문화와 함께 같이 가야 가장 이상적인 성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문화들을 같이 견인하고 동반자적인 성장을 해야 문화적으로도 가치가 있고 의미가 생긴다고 보인다. 다른 방향에서 대중화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문화로서의 차의 대한 부분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접한 차문화의 방향이 잘 이어지고 뻗어가야 한다. 무엇보다 차의 대한 환상이 거두어져야 하고, 신비적인 부분들이 사라져야 하고, 방송이나 언론에 노출될 때에도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무엇이나 맨 처음은 약이었고 주술용이었고, 은밀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역사를 지나고 나오면 그것은 그냥 우리의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것들이 된다. 거추장 스러운 것을 다 빼버리고 본 모습만을 가지고 오는 것이다. 차도 그러해야 한다고 보이고, 그럴 때 정말 사람들에게 친근하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보인다. 대중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라는 그동안의 것들은 모두 차를 대중과 괴리시키는 것들이 많았다고 보인다. 차를 이제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차가 본래 자신의 모습을 찾는 다고 보이며, 그럴때 그토록 바라는 대중화나 차시장의 외연이 자연스럽게 확산된다고 생각한다. 중국시장과 한국시장의 차로서는 큰 차이가 없겠으나 한국은 차시장이 이제 만들어져 가고 있다라는 점에서 당분간의 혼란은 어쩔 수 없이 거쳐야 될 과정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차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다면 좀 더 의식적으로 차를 접하는 것이 좋다고 보이며, 좀 더 차를 구속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차의 세부적인 분석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럴 때 차는 신비스러움에서 더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를 접하는 막연한 두려움을 벗겨내야 한다는 의미이다. 소장가치, 자산의 가치상승이란 말이 있는데, 실제로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고, 그런 이야기의 진원지는 대만상인 특히 자사호 팔다 망한 등시해 태극권 사범의 저서에서 비롯됐는데,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면 해당사항이 없고, 1-2건을 사서 될 일이 아니라 ,한 품목을 톤 단위로 사야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 왜 불가능하냐 하면 산지에서 출하되는 보이차 가격이 한국에 오면 8배에서 70배 정도가 된다. 찻집에서 소비자가 마시면 24배에서 210배정도가 된다.(커피에 비하면 정직한 거다.) 물론 중간에 업자들이 이익을 취하는게 아니고, 관리비가 많이 든다. 중국 상품의 문제점이 원가는 싼데 물류비를 비롯한 기타 관리비가 높아 배보다 배꼽이 큰 경우인데, 현지에서 대량생산하면 생각하는 것보단 많이 싸다. 그래서 원래 가격이 높게 수입된 걸 세월이 지나 되팔려면, 일반 소비자가 아닌 업체에 넘겨야 하는데,보이차라는게 후발효식품이어서 보관이 굉장히 중요하고, 잘 발효가 되지 않으면 쓰레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후는 보이차가 발효하는데 적합하지 않다. 광동, 홍콩, 대만 , 말레이시아, 마카오등이 후발효에 아주 이상적이다. 이런 곳은 보관만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가 많다. 노하우도 많고 결과물 자체도 훌륭하다. (건창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런 전문적인 업체의 물건과 한국에서 개인이 집에 보관한 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 시작부터 가격이 8배 차이가 나고, 후발효도 느리고 업체는 중국에서 사오면 많은 상품중에 고를 수 있고, 운좋게 팔린다고 해도 원가 이상은 받을 수는 없다. 아니면 찻집을 해서 파는 수 밖에 없는데 그럴려면 구색을 갖추어야 하니까 또 더 구매를 하게 된다.혹 떼려다 하나 더 붙이는 경우이고 ,차의 특성상 정상적인 매출로 가게 유지가 힘들다. 그래서 그런 환상에서 깨서 차를 안마실 수는 없으니 차를 한 편 사서 10명 정도가 소분하는게 가장 좋을 것 같다. 보이차가 역사가 짧아 저 평가 되서 싼차 중 하나에 속한다. 다른차들 처럼 정상적으로 대접을 받으려면 50-100년정도 지나야 될 것 같다. 보이차는 한국 사람에게는 식생활상 안 맞는 차 인것 같다. 중국인들은 평상시에도 차를 마시지만 식사때도 항상(음식이 기름져서) 차를 마신다. 한국에서는 한국에서 나는 녹차가 제일 잘 맞을 것 같은데, 보이차 열풍이 부는 이유를 생각해보면,초창기여서 마진이 좋으니 너도나도 뛰어들어 수입하고 가격을 낮게 하려고 대량생산해서 재고가 많으니 약장사처럼 지방을 순회하며 다회를 열고 가게를 차리고 하면서, 새로운 차시장을 만드는 것 같다.그러나 오피니언 리더들은 빤짝할지는 모르지만 대중화 하기에는 서구화된 현세대에서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자가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 도산하는 업체들이 늘어나 매니아만 싼 값에 차를 마시는 혜택을 누릴 것 같다. 한국에서 대기업이 참여는 하지 않았지만, 운남에 대규모 다원을 조성한 대기업이 있다. 한국의 시장을 살펴보면 어느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전체매출의 반을 1위 하는 업체가 차지하고 나머지 반을 2위-꼴등이 나누어 가진다. 1위 외에는 전혀 수익이 안 나는 구조이고, 그러다 보니 나머지 업체들은 보이차를 팔기 보다는 투자자를 모집하여 보이차를 대량으로 떠 안기는데 이것도 요즘은 한계가 와서 그 보이차들이 중국 도매가격보다 싼가격으로 각 카페에서 이벤트를 하고 있다. 그럼 그 소장가들은 왜 싼가격에 팔려고 내놓았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데, 아주 간단하다. 시간이 지나면 숙성이 되고 맛이 훨씬 좋아져야 하는데 맛의 변화가 미미한 것을 발견하고 큰일 났다. 이건 안되는거구나 하는 것을 수업료내고 깨달은 거다. 처음 살 때는 잘 몰라서 대량구매하면서 비싼 가격에 사고 지금와서 그 가격에라도 팔아 달라고 하는 것이다. 처음 투자를 권유한 사람은 수백프로의 마진을 한 번에 챙기고 나중에 다시 팔아줘서 수수료 챙기고 생색내고 하는 중인데 조만간 투자자들이 끊겨서 부도날 것 같다. 소장가라고 하는 개념이 중국하고 한국이 다른 큰 점은 중국은 소장가 = 차장사, 한국은 소장가 = 순수소장가를 의미한다. 한국의 소장가라는 말은 상인이 아니라 순수한 소장가를 의미한다.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보이차를 자산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언제까지 순수한 소장가로 남아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보인다. 재산의 일부분으로서 투자를 한 것인데 소장하는 것만으로는 무의미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소장가가 곧 차상인이 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그것을 탓할 수는 없다. 이미 그런것에 대해서는 예상이 가능한 일이고, 그러한 것을 걸고 넘어질 명분은 없기 때문이다. 단지 자신이 사서 실패한 차를 좋은차라 팔지 말고, 자신이 실패한 부분은 자신이 책임을 지기를 바라고, 좋은 차를 제대로 유통시키고, 유통질서가 너무 혼탁해지지 않기를 바래 본다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 자신들에게도 좋고 소비자에게도 좋은 것이고, 그렇게 잘 자리 잡아나가면 차계나 차시장에도 좋은 것이다.
3. 광동의 습창차와 민창차 중국에서 보이차의 개념은 숙차는 마시는 차, 생차는 장차용(30년정도)이다. 광동지역에서는 노차 이외에는 생차를 거의 안마신다. 그래서 판매를 촉진 시키기 위해서 생긴 이유중에 고수차가 등장한 것 아닌가 한다. 그 당시에는 고수차가 원료가 더 저렴했거나 비슷했다. 지금은 대지차에 비해서 비싸기는 하나 유명차산 빼고는 완성품에 비해서 원료는 그렇게 비싸지는 않다. 보이차에 있어서 광동이 얼마나 중요하나 하면 보이차 생산의 대부분 소비를 광동지역에서 한다. 다른성들의 보이차 소비는 아주 적다. 그중에서 거의 보이숙차를 마신다. 광동차는 예전에 습창이 많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우리나라에서 습창차에 대해서 문제가 된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처음부터 광동차는 광동기후에 의해서 자연습으로 발효가 되어 익어가는 것이라는 그런 관점에서 광동차들을 접해야 하는 것인지,습창과는 처음부터 거리가 먼 것이었는지, 아니면 인위적으로 습창을 만들었었는지 궁금증이 생긴다. 우리나라는 광동차는 습창차들이라는 생각들이 있는데, 그래서 차의 기준을 건창기준으로 하여 광동차에서 나는 독특한 향을 조금은 멀리 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차들에서 습창차들이 문제가 된 적이 있는데, 그럼 그런 차들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광동은 천년전부터 숙차를 마셔왔고, 습창차는 그러한 숙차를 만드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광동 특유의 숙차이고 그걸 즐겼던거 같다.(우리나라 홍탁을 생각하면 될것 같기도 하다.) 땅속에 묻어서 숙성 시키다가 땅값이 올라가는 바람에 아파트 위로 올라 갔다고 하는데 일리가 있는 이야기며,습창과 건창의 기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광동에서 처음부터 운남의 대엽종으로 숙차를 만든 것은 아니고, 근처의 소엽종으로 만들다가 가격이 올라 가는 바람에 싼잎을 찾았는데 그것이 운남의 대엽종이었다. 맛도 소엽종보다 좋고 후발효도 잘 되고 그래서 찻잎을 대량으로 광동으로 가져와서 만들게 된 것이다. 습창차는 광동인들이 즐겨 마시는 차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시기에는 좀 거부감이 있다. 광동보이차가 보이차의 기준과 같다라는 말과 같다고 생각되어져서, 만약에 그렇다면 다시 광동차들이 수입이 될 확률이 높은데, 예전에 광동의 습창차들이 문제가 되고, 또한 보이차 노차들이 값이 뛰는 바람에 운남의 생차들이 더 각광을 받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생차들이 쓰고 떫은 맛이 강하여 그 차를 바로 마시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고 보인다. 대체로 숙병을 많이 마셨다. 그런데 부드러운 고수차가 들어오고 나서 바로 마실 수 있는 고수차가 각광을 받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광동지역은 오래전부터 숙차를 주로 마셨다고 하셨는데, 그런 이유가 있는 것일까? 단지 그 자역 사람들의 특성일까? 광동에서 거의 숙차*를 소비한다고 하셨는데, 습창차는 왜 또 만들어 마시는 것일까? 여기서의 전자의 숙차*는 인위적 발효 숙병을 의미하시는 것일 것이고, 전통적으로 숙차를 소비한다.라는 말은 익은차를 선호한다라는 의미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기에 인위적 미생물 발효의 숙병*을 광동에서 거의 소비한다.라는 의미일 것인데 그렇게 숙병*을 소비하면서 과숙한 습창차는 왜 또 만들어 마시는 것일까? 그리고 광동지역은 차가 다른 지역에 비해 잘 익어 간다면서 왜 습창차들을 마시는지, 그들이 만든 습창차들은 광동만의 숙차*개념인지, 아니면 익은차 개념의 숙차인지, 빨리 익어가는 기후에도 불구하고 더 빨리 숙성된 차를 원하는 것인지, 건창으로 익어가는 차와는 다른 맛의 숙차를 원하는 것인지도 궁금하다.그리고 습창차를 만들어 보관하면(다 바로 마시기는 어려울 것이므로...)습창차는 더 빨리 발효가 촉진되는가?도 궁금하고, 그렇게 발효가 촉진된 차들을 보관하면 결과적으로 어떤 차맛이 나는지, 현재 예전에 한국으로 들어온 차들은 건창인지 습창인지도 궁금하다.? 문제가 된 습창차들은 거의 노차들 아닌가 한다. 2000년 이후는 방춘에서 만든 차 이외에는 없는 줄 알고 있다. 운남의 생차들이 각광을 받아도 생산되는 것은 숙차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포도주로 예를 들면 포도주는 오크통에서 10년 숙성돼서 나오는게 정석이다. 그런데 생차처럼 그 해에 나오는게 있다. 보졸레누보인데 포도주도 아닌 것을 매년 요란하게 선전을 한다.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것인데 생차도 그와 비슷한 개념으로 본다. 고수차가 어느 정도 시장에서 자리를 잡으면 큰 회사에서 대량 구매하기 시작할 것인데, 그러면 지금보다 몇 배로 폭등하게 된다. 조그만 영세업체는 재료를 구매 못해 만들지 못할 뿐더러 구할 수 있어도 가격이 너무올라 경제성이 없다. 요즘 재미있는 현상이 모차 값이 너무 올라 신차 값이 05-07년도 차값하고 비슷하다. 숙차 이야기는 작년에 자주가던 차 가게 주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그분의 경험담이지 학계에서 공식 확인된 사항은 아니다. 운남에서 숙차를 생산한 것은 1975년이후의 일이다. 그전에는 숙차를 생산하지 않았다. 광동의 기후는 많이 습하다. 중국은 습해서 건물 1층에 주숙을 하지 않는다. 광동지역은 더 심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1층은 매일 물바다 이다. 기후 특성상 인위적으로 습창을 안해도 자연습창이 되는 지역이다. 과숙한 습창이란 한국사람 기준이지 광동사람 기준에서는 기름진 음식물과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줌냄새 나는 홍탁을 흑산도 목포에서는 아직까지 왜 먹을까? - 왜 먹는지 모르지만 가끔 먹으면 맛있다. 운남에서 숙차를 만든 이유를 알면 쉽게 이해가 된다.보이차를 연도별로 알아보면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것 같다. 보이차를 김치에 비교해서 말하곤 하는데, 김치에는 겉절이가 있고 김장독 김치가 있고 묵은지가 있다. 그리고 각 도마다 각기 다른 원료의 다른 맛의 김치가 있다. 좁은 한반도의 김치가 그 정도인데 광동성은 어떨까? 면적이 남한의 1.7배 인구는 외부 유입인구 포함해서 3배정도중국내에서도 광동성은 거의 딴나라 이다. 광동지역의 습창차는 숙병이 나오기 전부터 만들어 마셨고, 광동지역의 습창차를 본따서 숙병이 만들어지니 그 차를 광동지역에서 역시 많이 마시고 있으며, 습창차 역시 여전히 만들어 마시고 있다. 즉 습창차는 광동지역에서 합법적으로 만들어진 차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습창차는 광동지역 사람들에게는 전통적인 차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습창차를 만들고 싶어서 만든 것이 아니라 기후 때문에 저절로 그렇게 습창차가 만들어 지기도 한다. 하지만 광동지역에서는 민창으로 차를 만들기도 하는데 이것이 인위적으로 의도적으로 습창차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광동지역에서 자연상태로 만들어진 습창차는 그렇다치고, 민창 역시 차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 규제를 받지 않는가? 민창은 습창을 보완해서 만든걸로 알고 있다.사업자 등록증하고 위생허가증정도 있으면 되는 줄로 알고 있다. 광동지역에서 숙차는 한 번에 20kg 발효시켜서 마시는 줄 알고 있다. 그걸 1975년이후에 운남이 수출권이 생겨 대량 생산을 하면서 조금씩 늘려가 지금은 10톤단위로 하고 있다. 집에서 각자 김치를 담가 먹었는데 대형회사에서 소량으로 생산하려니 경제성이 없어 큰 공장을 돌린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이 부분은 한국에서 끊임없이 옥신각신 문제되는 부분이었다. 광동지역에서 그들에게 굳이 문제가 없는 부분이 한국에서는 그동안 계속 문제가 되어 왔었다. 정확하게 무엇이 맞는지 알면, 논란이 될 필요가 없는 부분은 논란이 잠식 되어야 한다고 보인다. 광동지역에서 습창이나 민창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 자세한 자료나 정보가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결국 그 부분이 정확하게 우리에게 인식되면, 이 부분은 소비자의 선택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자기에게 맞으면 구입하면 되는 것이고, 아니면 마는 것이고, 하여 굳이 옥신각신 논쟁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한 가짜차 (즉 상표도용이나, 연도를 속이거나..등등)와는 다른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라는 의미일 것이다. 통털어 습창차라고 한 것은 광동지역에서 1500년 전 부터 마셨던 육보차 역시 산차 형태이나 광동지역에서라면 자연습을 먹을 것이기 때문에 그냥 습창차라고 하였다. 이 차를 본떠서 맹해차장에서 숙병을 만들었다고 하니, 광동지역에 차를 팔기 위해 이 지역의 자연습이 드는 차를 맹해에서는 하나의 기술적인 부분으로 접근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맹해는 광동지역에 차장을 하나 만들면 해결될 일을 왜 굳이 맹해에서 숙병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였을까? 교통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찻잎 때문이었을까? 찻잎 때문이라면 광운공병처럼 찻잎을 가져다가 만들었어도 될을텐데...? 사실 그것의 답은 아주 쉽다. 지금도 그렇지만 숙차 만드는 기술은 국가기밀사항이다(호남성의 복전차도 국가기밀사항이다.). 그 당시 운남은 차를 안 만들고 찻잎만 광동성으로 팔았다. 광동성에서는 대엽종 가지고 광운공병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해외로 수출을 해서 외화를 획득했다. 1975년도에 운남성에서 숙차를 개발한 동기는 운남성 상부에서 숙차를 개발하라고 지시를해서 개발을 하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운남성도 조만간 수출권이 생겨서 찻잎이 아닌 차를 만들어 수출을 해서 외화를 획득할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숙차의 어머니라는 오계영 등이 광동숙차 회사에 위장취업해 숙차 만드는 기술을 빼오게 된다. 2년의 연습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숙차 비슷한 것을 대량생산에 성공한다. 그 후로 광동 및 타 지역으로 찻잎이 나가는 걸 금지 시킨다. 그동안 대엽종으로 광운공병을 만들던 광동은 소엽종으로 광운공병을 만들게 되는데, 보통 80년대 광운공병은 인기가 없다. 소엽종으로 만들어서 대엽종으로 만든 것보다 구감이 약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광동은 보이차 수출을 못하게 된다. 해외에 수출권(진출구)이 1975년 이전에는 운남에 없었다. 광동하고 복건성에 있었는데, 중앙정부에서 문화혁명 말기에 외화획득을 장려하면서 운남도 수출권이 생기게 된다. 찻잎만 팔아서는 마진이 적으니 찻잎 반출을 금지 시키고, 숙차를 만들어 광동에 공급하고 해외에 수출을 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광동은 운남으로 부터 찻잎을 공급을 못 받으니 차를 만들 수 없고, 기존 해외 거래처들은 운남으로 주문을 하게 된다. 보이숙차의 시장 주도권을 운남에게 내주게 된 것이다. 운남에서는 지역의 이권을 즉 어떤 지역이 가지는 가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 이겠다. 광동지역에 공장을 만들면 운남의 역할이나 이미지가 축소될 테니 말이다. 즉 뭔가 어떤 실질적인 것을 원했다.라는 말이다. 운남의 역할이 커지기를 바랬다라는, 인지도와 영향력을 갖고자 했다.라는 것이고, 장기적으로 보아서도 운남에서 차를 직접 만들어 파는 것이 이득 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가 차나무가 자생하고, 찻잎이 거기서 나오는데 차를 만들지 않는다면 자존심이 손상되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운남은 차산지로서 위상을 가지고 싶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이숙차 생산이 광동에서 운남성으로 이전된 것과 같고, 찻잎 생산지의 이점 때문에 숙차의 무대가 광동성에서 운남성으로 옮겨간 것이다. 찻잎이 없으니 차를 못 만들고 못 만드니 수출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운남에서 만든 차들을 광동으로 들여올 수 있는 것이니, 광동에서 보관된 차들이 다른 곳으로 팔려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광동에서 북경이나 대만 등등으로 나갈 수는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다시 우리나라로 수입되어 들어 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재미있는게 요근래에는 광동에서 수출하는게 아니고 역수입을 하고 있다. 중국의 생활수준이 높아져서 차마시는 소비량이 늘고 노차를 찾다보니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과거에 수출했던 보이차들을 수입해서 소비하는 실정이다. 광동에서 다른 곳으로 수출은 가격문제인 것 같다. 신차를 운남에서 살수있는데 돈을 더주고 위험을 감수하고 방촌시장에서 살 필요는 없는 것괴 같다. 참고로 광동이 차시장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소비 기준으로 보면, 중국에서 차를 제일 많이 마시는 지역은 티벳인인데 그들은 3.75kg 소비한다고 한다. 차를 제일 많이 마시는 도시는 광저우인데 2.5kg이라고 한다. 광저우 인구를 1,200만 잡고 계산하면 일년에 3만톤정도 된다. 우리나라는 차 소비율이 연간 80g, 잔으로 치면 평균 7일~10일에 한 잔을 마시는 것이며 세계평균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우리 국민 1인당 녹차 소비량은 연간 104g 수준으로 일본의 867g, 중국의440g이다. 광동과 같은 지역이 보이차 보관에 좋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광동이나 이런데서 많이 보관할거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런 차들이 중국내에서는 수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풀려나가서 다시 우리나라나 다른나라로 수출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차소비가 증가하여 광동인들 자신들 마시기도 빠듯하다고 한다. 광동지역이 보이차 보관하는데는 최상의 조건이나 요근래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여기도 조금씩 기후가 변하고 있다. 광동은 빨래를 널어도 마르지를 않는다. 24시간 날씨가 무더운데 요 근래는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날들이 늘어 났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처럼 음식물에 거의 곰팡이가 슬지 않는데 2년전부터 조금씩 변한게 조금 건조(?)해 졌고 음식물에 곰팡이가 피기 시작한다. 보이차 보관에 곰팡이가 치명적인데 큰일인 것이다. 광동지역이 습해도 곰팡이가 잘 서식하지 않는데, 그러한 이유로 보이차가 습한 날씨로 인해 습을 먹어도 곰팡이는 잘 피지 않았던 이유이고, 그러한 이유로 인해서 광동인들이 습창 보이차를 즐겨 마실 수 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기후가 변하여 곰팡이가 서식해 간다면 보이차 보관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된다. 기후 자체도 습한데 곰팡이 균들이 퍼져 간다면, 보이차 보관시 이제 자연습에 노출되었을 때 그동안처럼 그저 놓아 둘 수만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름대로 보완책을 마련하여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동남 아시아 외에는 보이차가 숙성이 안된다. 운남, 북경, 처오, 한국 다 꽝이다. 보이차를 소개할때 멘트를 잘 보면, 전에는 광동의 습창 어쩌구 저쩌구 안좋은 것처럼 말하다가 요즘은 광동의 건창에서 보관된 보이차라고 소개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인위적 조작이 아나라면 습창은 없다고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한국에서 보관된 차들이나 광동이외의 지역에서 보관된 차들은 차로서 가치가 없다는 것인지, 아니면 어느정도 익어서 가지고 들어와야 된다는 것인지, 아니면 한국에서 보관하여 차가 익어 간다는 것은 아주 불가능하다는 얘기인 것인가? 습창은 거의 없어졌다고 보여지고 민창은 아직도 있는 것 같다. 가치가 없는게 아니고 발효가 더딘거라고 생각한다.10년이면 될게 100년이상 가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광동의 습창차는 자연습이 먹어서 그리 된 것이지만, 민창은 습창을 더 보완한 것인데, 인위적으로 습창을 만들 조건을 조성하여 만드는 방식이다. 습창보다 더 빨리 과숙되게 할 수도 있다, 온도 습도를 더 잘 조절 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이 민창은 자연습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습을 먹인 것이 되기 때문에 자연습창차와는 조금은 다르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4. 운남의 고수차와 병배
차에 관해서 궁금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보시라고 올려 보았습니다. 차에 관해서 토론한 내용들을 정리해 놓은 것을 올린 것입니다. 조금은 스크롤 압박이 있습니다.
맛난 보이차가 다 떨어지면, 꼭 후회하게 되어욤. 아구 좀 더 사둘걸. 벌써 몇배가 올랐네~
그러다보니 살때 좀 과감해지긴해요.
이제 거의 평생먹을만큼 쌓여서, 더 못사고 있삼.
지금 보이차 마시며 읽었어욤.
구룡사 마루에서 마신 보이차.
차 마시며 바라보는 앞마당
사진으로 산사의 가을 풍경을 접하니 어떤 운치가 스물스물 피어나네요.
약간 날씨가 쌀쌀해지고 마음도 고독을 준비할 무렵의 이런 가을엔 따뜻한 느낌을 주는 차한잔이 더할나위 없지요.
더구나 산사에서 차를 마시면 그런 느낌들이 더 전달되는 듯....
ㅋㅋ...자기가 좋아하는 차가 떨어지면 아쉬워서 그런 이유로 차를 많이 사기도 하는 것 같더라구요.
자신이 마시려고 사는 차를 누가 뭐라 그러겠어욤. 인간이 하는 행위는 이해할 행위도 있고 이해가 가지 않는 행위도 있지만, 각각 개개인을 보고 뭔가를 말하기는 어렵고 어떤 전체적인 분위기 속에서 특정하게 돌출되는 부위들이 생겨나는데 그런 부분들을 보고 얘기가 되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마시다 보면 꼭 마시는 것만 마시게 되어서...간혹은 골고루 마셔보려고 하고 있음. 있는 것 중에서.... 그럴 때는 때때로 새로운 차를 접하는 신선한 감도 있는 것 같고.... 구룡사 한 번 가 보려고 했는데... 늘 맘만 먹고 못 가보네요.^^
구룡사 가게 되면, 새말인터체인지 5분거리 오원저수지의 카페 제로포인트에서 커피 한잔 하시오.
건물 내부 자재 구경만으로도 배 부를테요.
'고수차는 도시락 싸가서 따기만 하면된다.가격이 싸다.'라는 것은 이미 역사적인 얘기이다.이미 과거지사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고차수 값이 많이 올랐다.라는 의미라고 보면 된다.그러므로 병배기술 역시 그들이 몰라서 라기 보다는 차산지에 대지차와 관목과 교목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병배된다. 라는 의미이고, 병배 기술을 잘 모른다라는 말의 의미는 소규모 차장 얘기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대규모 차장 역시 병배 기술은 중요했고 비밀이었다. 그 비율을 제대로 내기 위해 많은 실험을 했을 것이다.
음식이라는게 이것 저것 섞어서 맛을 증대 시켜야 좋은 음식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음식도 식재료 그대로를 느끼며 먹어야 하는 음식과, 섞어서 먹어야 더 맛이 나는 음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순수하게 섞이지 않아서 맛있는 차가 있다고 보고, 섞어야 맛이 더 좋아지는 차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병배 기술이 좋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순수하게 만드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병배기술이 없는데, 그리고 그것은 어느정도 시행착오를 겪어야 노하우도 생기고, 좀 더 맛을 제대로 낼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곳의 사정은 그곳의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겠지만, 이곳에서는 그곳에서 왜 그렇게 하는지 특별히 알아보지 않는 이상은 알수가 없기 때문에, 이 모르는 부분들, 정보가 없는 부분들은 모두 신비감에 휩쌓이게 되고, 이런 부분들이 상술이 되고, 때로는 말이 증폭되는 결과들을 낳는다고 생각된다. 아무것도 아니고, 그저 편의상, 혹은 상황이 바껴서, 혹은 그저 수요가 늘고 주문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등등..., 알고 보면 너무나 하찮은 일들 이다. 그러나 상황이 바뀜으로 인해서 수요가 증가하고 고수차 값이 비싸지고 이제 예전과는 입장이 달라져서 고수차 모차값이 폭등하고..등등.., 다 어찌되었든 시장의 변화에 따른 변화라고 생각된다. 시장의 축이 변함에 따라서, 시장의 요구에 따라서 차산지 사정도 조금씩 변해간다는 것이다.
5. 대지차,관목차,교목차
지금은 대지차와 대수차 만이 존재한다. 중국정부에서 용어를 정리해 버렸다. 고수차, 야방차, 야생차는 법으로 금지 시킨 줄 알고 있다. 대지차를 현장에서 직접 보지 않고 엽저 만을 보고 판단이 가능한가? 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더 대화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 통용되는 말들을 보면, 야방차의 경우는 거의 고수차로 대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지차가 만약 100년이 넘으면 고수차라고 하는 것과 (그렇게 파는 것과) 같은 경우라고 생각된다.
대지차의 경우 찻잎의 과도한 채취로 차나무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독성분을 많이 내게 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대지차가 고수차보다 독하고 강하다는 것은 장사하는 사람들이 고수차를 팔기 위해서 하는 멘트이고, 대지차가 고수차보다 쓴맛을 내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대지차에 폴리페놀, 특히 쓴맛을 내는 에스테르형 카데킨의 함량이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수차는 그에 비해서 당류 화합물의 함량이 높아서 마실때 대지차보다 부드러운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찻잎을 과도하게 채취하면 차나무의 성질이 약화되어 차나무가 약해지므로 인해서 차맛이 연해진다. 즉 차의 본래 맛이 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막기 위해 농약을 쳤던 것이고, 그래서 재배차에 농약파동이 났던 것이라고 본다.
운남의 대엽종 차나무는 대부분 교목이고 일부 관목형 교목이 있다. 차나무는 사람이 심는 것도 있지만 자연번식도 아주 많다 . 대지차는 밀식형 재배 차나무와 자연상태에서 자유방임형으로 널찍하게 서로 떨어져 심은 재배 차나무가 있다. 이들은 모두 관목형이지만, 모두 대엽종 교목이기도 하다. 이런 관목 형태 차나무는 원래는 교목이지만 교목처럼 높이 자라지 못하도록 위를 자르고 옆으로 퍼지게 자라게 하는 것이다.
인간이 심은 것은 채취가 용이하기 위해 위로 성장을 못하게 하고, 옆으로 성장하게 하는 관목형이 많고, 그런 관목들이 그냥 방치되어 자란 차나무들은 거의 교목처럼 자라고 있다. 그러므로 관목인데 교목같은 차나무들이 있다. 이런 차나무들도 사람이 올라가서 채취해야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교목 차나무도 있다. 차산에는 대체로 교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흔히 알고 있는 고수차는 대체로 관목이 교목처럼 방치되었던 차나무들이다. 그러므로 예전에는 차나무를 재배해도 밀식 재배는 하지 않았다. 라는 것이다.
그래서 채취가 용이한 이런 관목형 교목 차나무에서 찻잎을 채취하여 고수차라고 한다는 것이고, 대지차는 밀식차를 말하는 것일 텐데, 엄밀히 따지면 자연상태로 차밭을 조성해도 대지차는 대지차이고 관목형이지만, 그 환경 상태가 밀식재배차 보다는 좋다는 것이다. 이런 대지차의 잎들과 함께 어느 정도 세월이 흘러 방임된 관목형교목 차나무 잎들과 병배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목형 교목차나무들이 100년이 넘으면 교목 고수차가 되는 것이고, 100년이 안되면 그냥 관목형 대지차라고 하는 것이다. 그 기준은 차를 만드는 사람들이 가르고 있거나 수령을 판별하는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이 심은지 얼마 안되는 차나무들(대지차 = 관목)과 인간이 심은지 오래된 차나무들(관목형교목)과 또는 자연상태의 교목들이 차산에 혼재되어 있다. 라는 것이다.
1949년(?)이전에 야생차로 만들던 보이차가 공산화 경제체제로 넘어가면서 고수다원의 나무들을 베어버리고 재배 다원으로 조성하게 되지 않았는가? (물론 지금 하개지역의 촌장(?)말에 의하면 화개처럼 넓은 고차수 다원이 존재하게 된 이유가 게을러서 고수차나무를 베어내지 않은 것이 지금의 고수차 다원을 유지케 된 다행스러운 사유) 그 이후로 생산되는 것이 재배차시대의 출발을 여는 인급 차의시대 이다. 힘들게 높은 차나무에 올라가서 찻잎을 딸 이유가 없어져 버렸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 아닐까?
그러다보니 90년대 후반 대만사람들의 권유로 수공에 의한 전통방식의 재배차 제조를 장의선생이 재현할 때도 결코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 당시에 장의선생이 고수차를 만들어서 곤명시장에 가지고 가서 팔려 했으나 고르지 않은 잎 등의 사유로 팔리지 않았다는일화도 있다. 재배차에 있어서의 병배 기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맛의 개념아닐까? 혼자서는 맛이 나지 않으니까 이것저것 섞어서 맛을 내게 된 것이지 않을까?
그에 반해 고수차는 지역별로 독특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으며,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하게 소비자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다고 본다. 옛날 사람들이 몰라서 고수차나 야생차로 안만들었을까? 아니라고 본다. 옛날사람 중에서 호급차 이전의 사람들은 고수차로 만들었다. 라는 것에서 그 이후의 사람들은 당연히 몰라서 못 만들을 것이다. 장의선생이 재현하는데 힘들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다.(전통방식의 제작과 재현이 고수차의 새로운 시작과 거의 비슷하게 출발했으므로) ?
고수차는 그 당시 차의 기준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 당시 까지도 차는 어린잎으로 만든 녹차를 더 선호하는 풍토였다. 지배차의 병배나 고수차의 병배나 같은 개념으로 본다. 대지차도 지역별로 독특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청명 이전의 차는 웬만한 고수차보다 나은 것도 있으며 대지차가 다 쓴 것이 아니고 단맛이 많이 나는 지역도 있다.
병배 기술이 부족해서 고수차가 만들어 진 것은 아니다. 소규모 차창이 대지차로 보이차를 만들기에는 병배기술에 대한 노하우가 없어 고수차를 만들게 됐다고 보는게 타당하다. 대형차창에서 고수차를 안 만들었던 건 아니고 모료가 소량이다 보니 건들기가 쉽지 않았고, 고수차도 병배해서 만들었고, 지금도 병배해서 만든다. 소형 차창만이 순료라는 미명아래 고수차를 만드는 것이다. 순료로서도 맛있지만 병배된 고수차는 더 훌륭하다.
고수차에는 야생형 야생차와 재배형야생차와 과도기형 야생차가 있지 않는가?(약간의 의미차이가 존재 하더라도) 이것은 형질변경 등의 어떤 부분으로 구분한 것이지 사람이 심고 안 심고가 아니다. 더우기 100년된 재배차(대지차)는 없다. 지금 기껏 야방차로서 40-50년들이 발견되는이유가 역사적인 부분과 거의일치 한다고 봐야될 것이다.?
지금은 대지차와 대수차만이 존재한다. 중국정부에서 용어를 정리해 버렸다. 고수차, 야방차, 야생차는 법으로 금지 시킨 줄 알고 있다.위에 말한 것은 과거의 개념이다. 100년 된 대지차는 노반장촌에 가면 볼 수 있다. 이 대지차는 관목화 된 교목이고 몇으로 분류는 관목이다.
원칙을 몰라서 그런 것 같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서로 의사소통하기 편하게 학자들이 정해 놓은 게 있는데 일반인들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육안으로만 확인한다고 정확한 판별이 나는 것도 아니고 인위적인 조치가 가해졌을 경우 형태적인 분류는 하지 않는 것이 학술적으로 원칙이라고 한다.
6.현대 보이차와 미래의 차시장
청병은 30년 정도 되어야 마실만하다. 그리고 실제 노차를 마셔보면 오래된 청병이 숙차 맛을 내지는 않는다. 그냥 노차맛인데 그건 다른 노차(녹차, 오룡차, 철관음등)에서 느끼는 감정하고 비슷한데, 단지 틀린 건 대엽종이어서 대엽종이 주는 구감이 좀더 굵다는것이다. 가격이 작년말부터 상승세로 돌아섰다. 07년도의 상승과는 다른 성숙된 상승이다. 보이차는 저평가 된 차중에 하나이다.제대로 평가될려면 한참 올라야하고 그럴려면 적어도 50년은 걸릴 것이다. 보이차의 근본적인 문제는 학계에서 연구하여 만든차가 아니라 상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차라는 것이다.
보이차는 옛날부터 있던 차임에는 분명하나 변방의 소수민족의 차였는데 홍콩의 차상들이 오룡차를 대신해서 노동자들이 마실 싼차를 찾다 보니 운남의 대엽종이 이에 적합하여 시작한 것이 오늘날에 이른것 같다. 우리나라나 중국도 그렇지만 학계보다는 업계의 입김이 더 세다. 이런 구조가 보이차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며, 뿌리가 없는 차로 만드는 것이다.그렇다 보니 앞뒤가 안 맞는 말들이 정설처럼 돌아 다니고, 시대구분을 할 줄 모르는 말들이 뒤죽박죽 엉켜 있다. 이런 현상들은 중국의 차학과에 진학해 있는 우리나라 학생들과 우리나라의 차학과 학생들이 배출되면 자연히 정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의 교수들은 나서면 바보가 되는 시대이지만 후학들이 많이 나오면 정도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본다.
운남이 전통적으로 차생산지이고 차를 만드는 곳이지만, 현재는 그쪽도 판매와 유통을 하고 있다. 시장은 변하는 것이고, 전통적 관점에서만 현재의 시장을 바라볼 수 만은 없다고 여겨진다. 국내에서도 차가 유행을 타고, 선호하는 지역의 차들도 그렇다고 보이나, 점차로 이것이 고른 분포를 가지고 각자의 취향에 맞게 선택의 폭이 주어져야 한다고 보이고, 시장이 투명해지고 건전한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고 그쪽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보인다.
체계적으로 깊이있게 넓게 포괄적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이 배출되고, 또한 그들이 어떤 발언권들을 얻어가면서 점차로 투명해지고, 시장이 안정될 것이라는 의미라고 보이며, 상인들이 주도하는 차시장을 대학이나 연구, 혹은 그런 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이 주축으로 입김이 더 세어져야 건전해질 확률이 높다라는 의미로 받아 들이게 된다. 즉 체계가 생긴다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이 체계가 생김으로 인해서 메뉴얼 역시 점진적인 완성을 이루어 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 학생들이 졸업하여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지만, 시장에서는 또다른 혹은 조금은 체계를 가진 상인들이 많아진다는 것 역시 동시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체계를 가진 사람들이 차계에 수혈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변화의 양상은 생길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보자면 체계는 틀을 만드는 것인데, 차시장 전체는 늘 변화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차를 제대로 인식하되 현실적인 인식 또한 늘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보인다. 틀은 그럴 때 제 값을 할 수 있다고 보이니 말이다.
그리고 새로운 체계, 혹은 새로운 틀이란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차학과 학생들이 배출되면, 차계나 차시장이나 많은 이들의 인식의 전환에도 일조를 하기를 바래본다. 인식을 바꾸려면 기존의 낡은 틀을 버려야 새로운 것을 받아 들이는 데 용이하다. 자신을 확장시키는 것은 고통과 갈등이 동반하는 것이므로,시장도 그와 같은 원리가 적용될 것이다.
차를 보면 어떤 라인 같은 것이 형성되는 것 같다. 차계 안에서도 그렇고 학계 안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적으로 그리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부분들이 통용되는 곳에서만 또 통용되는 것 같다. 그것을 깨고 서로 넘나들고 차 자료나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는데, 요즘은 그것도 어렵다. 이러한 부분이 서로의 소통을 어렵게 한다. 특별히 관심을 갖거나 시간을 내지 않으면 정보의 이동이나 교류가 어렵다. 이러한 부분들도 정보의 차단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가서 보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같이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럴 장이 잘 형성 안되고, 형성되면 그것이 다시 어떤 라인이나 경계 선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요즘은 스크랩도 어렵고, 복사도 어렵고, 링크만 가져온다해도 별로 들어가지도 않게 되고, 결국 본인들이 올려주는 것이 가장 좋은데, 현실적으로 그것도 잘 안되고 있다. 그렇다고 그런 자료들을 자신이 스스로 공부해서 혹은 경험해서 얻은 것이 아닌데 자기 것인냥 도용하면 안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서로 공유하는 것을 막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차공부 하러 모두 무작정 여행을 떠날 수도 없는 일이다. 먼저, 미리 선점한 정보를 빠르게 정확하게 확산 시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차시장 그 자체에 유리하다. 소비자에게 정보를 많이 주는 것이 단기간에 이익을 보려 하는 것 보다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차를 하루만 혹은 10년만 마시고 안 마실 것이 아니고, 차를 하루만 팔고, 10년만 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은 현대에 나온 보이차들에 대해서는 그 결정 여부가 진행형 이다. 즉 이 말은 현재의 차시장은 아직은 시간이 더 지나야 한다는 말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여 역사적으로 진행되어 왔던 것은 역사적으로 제대로 정리를 하면 되는 부분이고, 현재의 부분들은 현재의 시간을 더 지나가야 한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차시장은 엄밀히 말하면 전통적인 보이차 시장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하여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부분도 이 부분이 될 것이다. 현재의 차시장이 어떻게 갈 것인가? 어디로 가야 제대로 가는 것인가? 이다.
옛날 역사속에 등장하는 전통적인 보이차는 녹차의 개념이고 민국이후가 묶혀먹는 보이차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민국 이후는 운남하고 관계 없다고 본다. 광동의 묶혀서 마시는 보이차 음용방식이 현대의 보이차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 고리들, 어디가 시작점이든지 차는 하나로 통합되어져 역사로 기록되어져야 한다고 보인다. 그리고 그 시발점이나 전환되는 분기점, 보이차 시장의 축의 이동, 그리고 차의 전반적인 모든 상황들이 시대별로 시기별로 정확히 기록되어져야 할 것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학자들의 몫이다.
이 부분이 지금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될 것이다. 역사를 보고 현재를 보고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보고 현재를 살아가고 앞을 보고 가는 것에서, 이러한 부분에서 차가 가는 방향성이 생겨나고, 어디로 가야 맞는 방향이 되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지금은 역사적으로 지나온 과정도 제대로 정리가 잘 안되고 있으므로, 현재를 보면서 역사적인 과정도 제대로 정립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거기에서 우리나라 차시장이 갈 방향성과 설 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보인다.
현재진행형은 바로 정리가 안된다. 고 본다. 적어도 50년은 흘러야 교과서에 등장할 것 같다.
바로 정리가 안 된다고 하여도, 50년 뒤에 정리가 되어 등장한다 하여도 지금 사람들은 살고 있고, 살아갈 것이므로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 그것은 그래도 꾸준히 정립해 나가는 것이라고 보고, 기록을 하는 것이라고 보고, 흔적을 남겨줘야 50년 뒤에라도 제대로 된 정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대만에 차예라는 잡지가 있는데 대만에서도 2000년 초반에 우리가 궁금해 하는 모든 문제들을 잡지에 연재를 했다. 말이 많은 잡지이기는 하지만 2002년부터 착실히 기록을 지금까지 쓰고 있다.
대만에서도 어찌 되었든 차를 제대로 알고자 이해하고자 정리를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러한 노력을 각 나라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