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를 잘하는 방법을 알려면
방법이 아니라 정의부터 말해야 합니다.
너무 당연한 것 아닌가요?
존재의 좌표를 알면 행동은 자동으로 도출되는 거죠.
모든 방법은 내부의 흐름을 말하는 것이고,
모든 정의는 외부에서 내부의 흐름을 말하는 것인데
정의없이 방법을 말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이게 통할 때도 있지만 그건 정의를 딴 놈이 잘 해줬을 때만 가능
하나를 보고 열을 깨우치는 게 아니라
열을 관통하는 보편에 나의 케이스를 끼워넣는 게 이해입니다.
반면 기존의 이해는 과정의 이해를 강조하는데
안을 보고 밖을 이해하려니 이해가 될 리가 있나
사건의 전개는 밖에서 안인데 거꾸로 하니 이해가 안 돼.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일단 해봐라는 말도 좋지만
과학을 한다면 반드시 보편 원리에 의해 현상을 설명해야 합니다.
제가 구조론과 다른 과학을 구분하는 큰 기준이 바로 이것입니다.
박문호가 훌륭한 것은 맞습니다. 보통 과학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죠.
많은 것을 통섭적으로 이해한 것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새로 찾고 만든 지식은 하나도 없습니다.
한국인은 박문호정도에도 만족하는 것 같은데
세계는 전혀 만족하지 않습니다.
잘해봐야 로컬 지식인이라는 거죠.
이제부터의 한국은 기준을 싹 다 갈아엎어야 합니다.
통섭하지만 의미없는 박문호식 지식이 아니라
지배하여 의미있는 구조론식 지식이 새로운 기준이어야 합니다.
https://v.daum.net/v/20230313152702785
하나부터 열까지 촘스키가 다 틀렸다. 촘스키 말 중에 맞는 말 단 한 개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