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상도 조선수군이 왜수군을 압도하는 이유는 말해주지 못하는데,
육지에서 싸운다면, "소승자총통 + 편전"의 조합이 조총을 압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승자총통은 기존의 승자총통에 비해 화약을 적게 사용하는 강점이 있으나
여전히 조총에 비해 이전 세대의 발포 방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일대일로 붙으면 명중률에서 조총이 소승자총통을 압도합니다.(장전시간은 비슷)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순신이 이끌던 조선수군은
거의 백대빵으로 말도 안 되게 이기는데,
이 부분이 설명이 안 됩니다.
병력 | 판옥선 28척 협선 17척 포작선 46척 | 전선 50척 |
피해 | 부상자 1 명 | 전선 26척 침몰 |
옥포해전
병력 | 전선 55척 | 전선 73척 |
피해 | 전사자 3명 부상자 10여 명 | 지휘관 부상 전선 47척 침몰 전선 12척 나포 |
한산도대첩
800~900여 명 [2]판옥선 13척초탐선(협선) 32척 | 병력 규모 불명 전선 133척후방 200척 이상 [3] |
피해 | | |
명량해전
| |
피해 | | 전선 200척 침몰 수천 여명 사상 [4] |
결과 | |
영향 | 임진왜란 종결 |
노량 해전
노량해전을 제외하면 조선수군은 몇명 죽지도 않음.
이는 배의 차이로, 즉 판옥선과 세키부네의 차이로 설명을 해야 합니다.
판옥선은 평저선인데다가 소나무, 참나무 등으로 만들어 무거운 배라
화포나 총통을 발사할 때 흔들림이 적어
실제 명중률은 조선군이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가까이 갔을 때 화포 몇 방이면 삼나무와 전나무로 만든 세키부네는 기동 및 방어 불가능 상태에 빠졌을듯.
영화 한산에서 "바다 위의 성"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게 조선수군의 주된 전술인 건 맞다고 봅니다.
원래 조운선으로 개발된 판옥선의 느려터진 속도로 해볼 수 있는 전술이
바다 위의 성이 맞긴 한 거죠.
게다가 배의 높이 차이도 있어서
판옥선 위에서 세키부네를 내려다보며 총과 활을 쐈을 거라고.
백병전을 묘사한 명랑이나 충파전을 묘사한 한산이나 이건 고증오류의 문제 정도가 아니라
감독이 전쟁의 컨셉 자체를 이해하지 못 했다고 보는 게 맞을듯합니다.
영화 명량
한산도대첩에서도
조선수군이 왜군을 학익진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이 이상하게 나오는데
제 생각에는 실제로는 왜군이 학익진으로 나오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상황이었을 거라고 봅니다.
원거리에서 장군전이나 화포로 빵빵 쏴대어 배를 부수니
안 나올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가만있자니 화포에 배가 다 부서질 판이고
그렇다고 도망가면 주요 거점을 뺏기는 거죠.
그렇다면 왜군도 육지에서 화포로 응사를 하면 안 되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조선과 왜의 화포 사정거리가 같다고 가정하고
사정거리에 걸쳐서 조선이 화포를 발사한다고 하면
조선수군은 왜의 화포 사정거리 바깥에서
왜의 함선을 맞출 수 있습니다.
배는 반드시 바다 위에 정박해야 하니깐.
왜의 화포는 육지에 있고, 조선의 화포는 바다에 있고 서로 사정거리에 딱 걸쳐져 있다면
왜의 전함이 그 중간에 있는 꼴이기 때문.
그렇다고 배 위에서 쏘자니
화포를 쏠만한 왜의 함선 중 규모가 큰 안택선은 숫자도 적을뿐 아니라
배의 내구성도 약해서 포를 쏘기에는 부적합.
게다가 일본은 총통기술이 미약하여 사정거리 300미터 짜리 대통이라는 화포만 가지고 있었다고.
왜의 가장 큰 전함인 대흑주에는 3센치 구경 대포가 3문 있었다고.
하여간 조선수군이 일단 거점을 점령하면
왜군이 재점령하는 건 거의 불가능
이순신은 원균이랑 다르니깐.
영화 한산
왜군은 팀플레이도 잘 안 됐을 거 같은데
해군이 아예 없었다는 썰이 있음.
국힘은 왜 녹음방지법을 발의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