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보다 '모르는 것이 있다'가 맞다는 말씀은
'모른다'는 그냥 의사결정 회피이고,
'모르는 것이 있다'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고, 의사결정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한편, 생각을 잘하는 사람은 먼저 집단에서 대표성을 가졌는가에서 두드러진다고 봅니다.
정확하게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죠. 대개는 생각을 하는 소수의 사람과 생각을 하지 않는 다수로 나뉘더군요.
대표성없으면 누구나 칭얼대는 아이가 되고, 대표성이 있으면 강한 엄마가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사유는 근대의 산물입니다.
옛날에는 생각 따위를 아주 안했어요.
소설이나 문학 같은건 있지도 않았지요.
시골 농부가 하루에 몇 단어를 쓰겠습니까?
600단어면 인생이 편합니다.
동사는 대화입니다.
대화는 사유가 아닙니다.
문장이 대화체로 가면 생각을 안해요.
동사를 명사화 하거나 뭐뭐 같다고 말하는 현상은
사유를 필요로 하는 근대의 산물입니다.
옛날 식으로 말하는게 좋은게 아닙니다.
옛날에 없던 학교라는게 이런걸 다 만들어낸 거지요.
질문에 대해 동사로 대답하는 것은 그냥 '반응' 혹은 '묘사'일 뿐이며, 현상을 일반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시군요.
그것은 이해했습니다. 동사체가 옛날 방식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네요.
사실 반박을 좀 해보려고 했으나, 반박거리를 정리하다보니 오히려 반박은 안되고,
제가 최초에 제시했던 의사결정 회피만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어려우며,
다만,
"~인 것 같다, ~처럼 보인다, ~하겠네요(이건 동사)" 등 모호한 어법은 대화(communication)의 사이에서
'명사 + 인 것 같다'의 형식으로
1) 가정(supposition)
It is roughly equivalent to ~ looks like, ~ seems like, ~ appears that or ~ think(s) that. [인터넷 검색]
2) 관계에서의 매너의 일환 : 단정 짓지 않음으로써 상대가 빠져나갈 틈을 만들어 줌.
3) 의사결정 회피
등으로 나누어 보고, 이것은 근대에 이르러 생긴 문법의 진화 측면에서 보는게 타당하며,
이미 관계에서 대화의 양식과 내용이 연역되며, 표현은 결과라고 본다면, 표현을 탓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지네요.
진보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진보의 근거로 과거를 내세워서 실제로는 퇴보를 하는 현상은 많습니다.
공자의 주나라 찬양
마르크스의 원시 사회주의
룻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
노자의 문명반대
기독교의 복음주의
회교의 은행이자 반대
그 외에도 많은데 우리나라의 진보꼴통들도
진보를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퇴행을 하고 있습니다.
진보를 해야겠는데 모델을 내놔봐라고 하니
내놓을 모델은 없고 편한대로 과거의 것을 끌어대면
그게 진보를 의도한 퇴행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같다거나 동사를 명사화 하는 현상은 학교교육의 부산물입니다.
사유와 대화는 다른 것이며 대화체에서 사유체로 발전해야 합니다.
그 진보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변종으로 봐야겠지요.
대화체에 집착하면 절대 사유를 못합니다.
진보라는 것도 결국은 정치적 진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요즘 고민인 부분이 "이상적 국가란 무엇인가?"입니다.
과거로 회귀하는 가짜 진보들은 내놓을 것이 없으니 막연한 "모두가 행복했던(사실은 행복해 보이던) 세상"을 꿈꾸는 것으로 압축되거든요. 요순시대니, 사회주의니 하는 것들은 다 같은 맥락이라고 보고요.
결국 모델이라는 것은 자연에 있는 진화의 모델을 차용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현재까지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정신과 신체 모델'이 가장 쉽고 정확하게 생각할 수 있는 모델입니다.
양당체제는 마치 두뇌의 좌우뇌가 나뉘어 있는 것과 같다고 보이며,
그 중간에 원초적 기능을 좌우하는 원시뇌인 파충류 뇌가 있는 등,
뇌의 의사결정 과정을 연구하고 복제하면 그게 곧 국가의 운영원리가 된다고 보거든요.
아직까지는 뇌의 의사결정 구조가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지만,
결국 궁극의 해답은 거기에서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상적 국가는 그것을 바탕으로한 발전하고 진화하는 모델이어야 한다고 보고요.
또한 신체의 각 기관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각자의 위치에서 제 기능을 다하듯
인간 사회의 개인들도 마찬가지로 중앙 통제를 받지만 각자의 위치와 기능을 다하여
결국 국가라는 하나의 인격이 상승하여 진화 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그네는 확실히 뇌가 이상한 여자가 틀림없음..
그네의 저말은 한낱 자신을 지지해준 노인네들의 동점심을 유발하여 사건을 어영부영 덮으려는 술책에 불과한
거짓말 이라는건 인간이라면 다 압니다.
또한 무슨 일이 있을때마다 저런 종교계인사 불러다놓고 뭔가 그럴듯하게 나라걱정씩이나 하는듯한 모습을 보여주는거 정말 지겹습니다.
기사에서 그네가 한 말이 거짓말이라는 증거 한가지..(증거는 너무나 많지만)
1979년 10월26일 박정희가 사망한 후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김계원이 새벽 1시20분경에 청와대로 들어와서 그네에게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얘기해줘서 알게됨.
이때 박근혜의 첫마디가 매우 충격적임..
.
.
.
.
"전방은요?"
더이상 말이 안 나오지 않습니까?
위에 적은 사실은
http://www.podbbang.com/ch/7456
고상만의 수사반장- 박근혜와 전두환(하)
14분경에서 확인할 수 있음.
그런데 이 여자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고 끄덕끄덕하는 미친 사람들 많음.
까뮈님의 즉각적인 리트윗이 의미 심장하지 않습니까?
더도말고 미.친.년. 이라는
잠시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귀싸대기 맞을 말만 골라서 하니 이건 정신이 바로 박힌 년이 아니지요.
육해공 어디 안전한 곳이 없다. 어디 다니지고 그냥 집에만 있으란 말인가?
이런식으로 사람들의 상호작용을 막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03시대로 회귀다.
경비를 아끼는 비정규직양산은 기업의 제무제표의 비용을 절감할지 몰라도 사회적비용을 증가시킨다.
그러니까 기업은 적은 비용으로 숙련공으로 진입할 수 있는 젊은이의 기회를 차단하여
젊은이의 자아실현을 막을 뿐만 아니라 일에 대한 만족을 낮추어서 일의 질을 떨어뜨린다.
나도 IMF 후의 싸늘한 분위기로 무급알바에서 인턴사원 촉탁사원 다시 인턴사원하다가 정규직이 되기까지 2~3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비정규직으로 입사하는 직원들을 2~3년동안 가르쳤다.
나는 사람의 태도를 탓하고 싶지 않다. 그런 태도를 만드는 제도를 탓하고 싶다.
적은 비용으로 고퀄리티의 일을 해내라는 것,
적은 비용으로 책임은 과장해서 임원만큼 지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
또 이 비정규직은 사내에서 신분의 차이를 만들어서 본의아니게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
이래저래 비정규직은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고 있는데,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은 대한민국 전체의 제무제표가 아니라
자기기업의 제무제표만 보고
대한민국전체의 제무제표를 보는 사람은 지금 아무도 없으니,
개인이 스스로 안전과 치안를 담당해야하는가?
그럼,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아이구 시장님~
2호선이라, 박원순에게 똥물 좀 튀겠네요.
닭의 아이큐는 16 언저리에서 왔다갔다 한다죠. 사고력의 기준선이라고..
닭그네는 자신이 한말을 끝나자 마자 잊어버리는 닭입니다.
닭은 모가지를 비트는 것이 상책.그래야 새벽이 온다고..
그런데, 이종인 대표측의 대언론플레이가 좀 미숙한 것 같습니다. (요새 바빠서 뉴스를 잘 살펴 보지는 못했지만.)
본인 입에서 실패라는 소리가 나오면 안되었는데. 그 실패라는 것이 뜻이 광범위 하지요.
해경이 지속적으로 이종인 대표를 위협했었군요.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159209&s_no=159209&page=1
해경의 노골적인 비협조, 방해, 위협에 잠수부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어렵고
경비 또한 이종인 대표가 감당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결국 민심은 이종인에게 화살이 가는 것이 아닌 왜 1번을 못하나냐로 귀결이 되지요.
팩트TV의 18분짜리 인터뷰 동영상을 한 번 보셨으면 합니다.
괜한 음모론으로 번질까봐 소설을 쓰지는 못하겠지만 뭔가 말을 아끼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http://youtu.be/sLOkv3rm5OY
대통령보고 부지런하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학생이나 직원, 교사보고는 부지런하다 성실하다 라는 평가적인 말을 사용한다.
사장보고 부지런하다고 말하면 욕이 될 수도 있다. 똑똑한 리더는 부지런하지 않다.
적당히 게으르면서 똑똑하게 일머리 알고, 외부에서 에너지를 조달하면 그뿐이다.
부지런은 과학의 언어도 아니고 가치의 언어도 아니다. 이데올로기의 언어일 뿐이다.
결국 부지런은 칭찬도 아닌 리모콘식으로 조정하는 말에 불과하며, 그것이 칭찬이라 할찌라도
상급자 보고 '부지런하시네요', 예수보고 '사랑이 많으시네요'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 존엄의 드높은 이상을 가진 자는 상대방을 칭찬하거나 비난할 거리를 찾지 않는다.
상대방 역시 인류호의 팀원으로 어우러져, 함께 야만과 퇴행을 헤치고
인류 진보의 바운더리를 넓힐 뿐이다.
같아요는 잘못된게 아니오.
뭐든 동사를 명사로 만드는 현상이 있는데 이걸 인정해야 사람이 말을 잘 합니다.
동사가 문법적으로 맞지만 동사로 표현하면 사유가 발달을 하지 않습니다.
의견제시를 요구하면 아무도 의견제시를 하지 않습니다.
회의에서 아무도 발언하지 않는 것은 사회자 잘못입니다.
모든 사람이 발언하도록 유도할 수 있어요.
선진국은 아마 사회자 기능도 발달되어 있을 거.
모른다 보다는 모르는 것이 있다가 맞습니다.
이 차이가 생각을 잘 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의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