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거슬리지 않는 푸근함. 너무 익숙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넘겼지만, 이제 이런 풍경을 보기 어려워진 지금 가슴 한켠을 두드리는 힘이 있음을 알게 되오.
작품을 감상하는 주인공인 사람이, 전시된 타인의 공간에 들어설 때 형성되는 긴장이, 어떻게 분산되어 균일한 밀도를 이끌어 내는가가 중요하오. 버려져 있는듯한 장군과, 검문소처럼 우뚝 막아선 항아리와, 시위(侍衛)하듯 서 있는 대숲과, 길을 인도하는듯한 등불이 목적지인 해우소와 한 줄에 꿰어진 채로 각자 역할을 나누어 긴장을 고루 분산시키고 있소. 그렇게 구조론의 물레방아는 바람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는 것이오.
그 결과로 관객은 금제된 타인의 공간 안으로 능숙하게 들어설 수 있소. 일본식 정원이라면 그 공간에 들어가면 편집증 있는 주인아저씨한테 혼난다는 경고를 받게 되는 점이 다르오.
만약 당신이 타인의 내면 안쪽 가장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고 싶다면 그 절차는 어떤 것인가? 반대로 당신이 타자를 당신의 안쪽 깊숙히 초대하고 싶다면 그 응당한 절차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차나 한잔 들고 가게' 하고 무성의하게 요청한다고 해서 들어오는 것은 아니오. '어? 마루에서는 신발 벗어야 되는데' 따위 골칫거리 방해자들이 있는 것이오.
need라는 것은 강을 건너는데 징검다리에 돌 하나가 없어서 못 건너는 상태에서 마침 거북이가 떠올라 그 등을 밟고 건널 수 있게 되는 것이오. 예의 등잔과 항아리와 장군과 대숲은 그 need 역할을 하며 목적지인 해우소로 이끌고 있는 것이오. 작품과 관객 사이에 형성된 긴장의 전선에서 need를 해결하고 있느냐로 작품의 가치가 결정되오.
그렇게 디자인의 세훈이라는 자의 입을 꿰매버리고 있소. 디자인에 디자도 모르는 세훈이가 감히 디자인 타령을.
아~ '똥장군'
너무나 당당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군요
성추행이나 성폭행은 주로 권력관계 안에서 발생합니다... 그런데 만약 법이 개정된다면 웃기는 상황이 무수하게 발생하겠죠..아마도 여성부도 현 상황의 존치를 원할걸요.
선이 굵다라는건 질차원의 이야기인데, 정치를 해도, 영화를 해도, 음악을 해도,
자체에 매몰되지 않고, 새 영역을 개척한다.
원래부터 그랬어. 정치를 잘해서 그리된게 아니고 영화를 잘찍어서 그리된게 아니고 목소리가 좋아서 그리된게 아니지.
그렇게 북을 배려할 이유는 전혀 없소. 나중 집권하고 북한과 대화하기 위한 사전포석으로 미리 장애물을 피해간다는건 정치원리에 맞지 않소.
그건 구조론적으로 '위하여'가 되기 때문이오. 각자가 처한 객관적인 조건 즉 '의하여'를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되오.
나는 뭐 이정희를 비판할 생각이 전혀 없지만(이정희도 민노당 내부에서의 입장이 있으니까 그 점을 배려해서.) 우리가 북을 비판한다고 해서 북이 그걸 빌미로 삼아 대화를 거부할 이유는 없소. 왜냐하면 남은 남대로의 내재적인 입장이 있으니까. 북도 남의 내부적인 입장을 배려할 필요가 있으니까.
내가 이 시점에서 이정희의 입장을 배려하는건 정치공학적인 관점에서이오. 진보신당이 애초에 이정희를까고 자당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 목적으로 장애물을 만들었다고 보기 때문이오. 즉 진보신당은 통합에 있어서 진정성이 없는 것이오.
결론적으로 우리가 공식적인 관계에서 북을 배려할 필요가 있지만, 정치란 것은 송두율이 말했듯이 구조주의 관점에 따라 내재적인 질서가 존중되어야 하니까. 그러한 배려도 객관적인 형세를 드러내고 난 다음의 일이오.
북한의 3대세습은 객관적으로 잘못된 것이고, 북한의 약점이며, 북한이 새로 저지른 일이오. 즉 북한이 스스로 핵장벽에 이어 대화의 장벽을 하나 더 만들었는데, 그 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도 이상하다는 말이오.
지금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통합협상을 하는데, 그런 문제를 명문화 하자며 들고나오는 것도 이상하지만, 이 점에서 이정희의 곤란한 입장을 이해는 하지만, '결코 북한비판은 할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건, 그게 무슨 대단한 원칙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집권을 포기한 것이오. 민노당이 스스로 집권의 장애물을 만드는 것이오.
이정희는 노무현 대통령을 언급하면서 원칙운운하지만 내가 보기엔 민노당 내 일부 꼴통들을 설득할 자신감 부족, 및 협상력 부족이오. 지도자라면 결단할 때는 결단해야 하오.
북한을 배려하는 것도 국민의 승인아래 국민이 하는 것이지 정당이 일방적으로 그걸 정해서 요까지는 되고 요이상은 안되고 하며 선을 긋는다는 것도 터무니없소.(그걸 선을 그어 굳이 명문화 하라는 것도 터무니없고.)
융통성도 필요하지만 미리 융통해버리면 곤란하오. 그 반대이오. 진정으로 융통성을 발휘하는 사람은 미리 조건을 까다롭게 해 놓고 전혀 융통성없이 깐깐하게 하다가(마치 노무현의 원칙처럼) 결정적일 때 한 번 봐주는 것이오.
늘 봐주고, 늘 양보하고, 늘 배려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는 뻘짓이오.
결론적으로 정말 집권의지가 있다면 민노당은 북한을 비판해야 하오. 그 방법이 진보신당이 요구한 유치한 자구표현 명문화일 필요는 없지만, 다른 방법으로라도 한 번은 거쳐가야 할 길이오. 진보신당의 압박에 의해 굴욕적으로 북한을 비판하는 모양새가 될 이유는 없지만, 민노당이 스스로 극복하고 갈 문제라는 말이오.
북한 스스로 정도를 버렸는데 이런 기회가 잘 없소. 진보신당이 민노당에게 잘못 쓴 굴레를 벗을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고 볼 수도 있소.
북한과의 대화는 서로 배짱이 맞아야 되는 거지, 미리 양보하고 배려하고.. 전혀 아니오. 양보할 의지가 있을수록 양보하지 말아야 하고, 배려할 의지가 있을수록 배려하지 말아야 하오.
집권당이 되려면 북한보다 남한 국민을 더 배려하는게 맞소.
어제 옥주현이 1,7위 남았을 때 관중반응보고 나서 본인이 1위임을 직감했음에도 거짓뿌렁 소심 드립칠때 알아봤다.
이건 BMK를 완전히 엿먹이는 행위였음. 평소에는 모르겠으나 이번에는 정말 가식이 레알 소름 돋음.
이제 부터는 1,7위만 남겨놓고 하는 것은 의미없음. 123위 먼저 뽑고, 4567위 뽑는 식이어야 함.
N가수는 S피디 밥.
S피디는 M사장 밥.
M사장은 M박이 밥.
M박이는 S건희 밥.
이소라가 선택한 곡은 주먹이 운다.
국민 평가단의 평가가 곧 있을 수 있소.
역사 평가단의 평가는 받드시 있소.
옥주현. 일등할 줄 알았다.
당연히 어떻하면 대중을 움직이는지 제일 잘 알지.
대중이 속아넘어간 꼴. 안티까지 옥주현에게 드라마를 실어주었구나.
혹시 제목이 이렇게 바뀌는게 아닐까?
"너나 나가수해라~"
가창력 하나 있다고 진짜 가수되나?
철저히 체제순응형 인간으로 가창력 하난 좋고~
뭐가 돈되는 길인지~ 뭐가 살아남는 길인지 가장 잘 아는 자.
철저히 그 길을 걸은 자.
그게 꼭 나쁘다는 것만은 아니지만,
적어도 예술가 가수라면
자기 음악과 색깔로 세상과 맞짱뜰 용기와 행동,역사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
먼저 일어나는 결례를 범했습니다..이해바라옵고..강동지역아지트는 제가 알아보도록 하겠읍니다..
사진으로 찍으니 더욱 멋이나오.
밤 샐 뻔 했소. 좋터이다.
스타일이 마음에 드네요.
예술가들의 대안공간이라..좋네요
우리나라도 점차로 예술가들이 어떤 득립적인 공간들을 오픈 할 수 있다는 것에서 좋아 보입니다.
비싸지는 혹은 깔끔한 인테리어에 밀려나는 것 같아 한편으론 ^^;짠하기도 하지만,
어디서든 뭔가를 시작 할 수 있다는 것..숨쉴 공간을 창출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지요.^^
조만간 경기북부에도 구조론 캠프하나 마련해야지요... ㅎㅎㅎ
필요한건 발상의 전환
'작은 것이 모여서 큰 것이 된다'는 원초적인 착각을 뒤엎지 않으면 안 되오.
진실로 말하면 큰 것이 쪼개져서 작은 것이 드러나는 것이오.
더 정확히 말하면 우주에는 큰 것만 있고 작은 것은 원초적으로 없소.
0,1,2,3,차원은 가상의 존재일 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소.
그럼 0,1,2,3차원은 뭐냐?
그것은 두 존재의 접촉점, 접촉선, 접촉각, 접촉입체이오.
즉 0,1,2,3,차원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어떤 둘이 충돌할때 그 접촉점에서 나타나는 가상의 존재인 것이오.
우주는 0차원 혹은 1차원의 집적에 의해 탄생한 것이 아니라 4차원의 붕괴에 의해 탄생된 것이오.
두 마리 황소가 뿔로 박아서 교착되어 있는 상태를 우리는 입자라고 하고 물질이라고 하는 것이오.
왜 황소가 박았겠소?
좁은 공간 넓게 쓰려고 박은 것이오.
그게 우주의 탄생 원인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