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 기업은 성장지상주의 라는 딜레마에 빠져있다고 생각됨.
성장을 하지 못하면 망하는 것이니...
1대에서 이룬 성장을 2대에서 확장 시키고 3대에서 다시 마구잡이 거둬들이는 수법으로 성장을 유지시켜야 하는 것.
성장을 시키지 못하면 실력이 없다고 할 것이고,
3대에 가서는 어찌 되었든 세포분열하듯이 기업이 분열을 하게 되는데...이들이 다시 혈연으로 뭉쳐져 있는 것이고, 결국 쪼개져서 각자의 길을 가면서 성장을 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대기업이란 틀 아래서 갈라져서 다시 대기업이란 틀 안에서 하나로 움직이고 있다라는 것. 결국 분리가 분리가 아니라는 거...
그러다보니 성장에 목을 메는 것. 대 기업이 성장을 유지하려면 그 옆에 있는 잔챙이 회사들은 양분을 빼앗겨 다 고사된다.
대기업이 3대를 거쳐서 분리되면 그 회사 자체적으로 성장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몰아주기를 하기 때문에 분리된 회사가 금방 성장하고 다시 주변을 장악하게 되는 것.
스스로 성장을 멈추지도 못하고, 무조건 성장해야 하는 기업의 생리...
이 역시도 성장 그 자체에 목적을 두기 때문에 불만족 상황이 계속해서 연출되고 있는 것.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식탐과 다를 바 없는 상황.
기업이 이러한 성장만을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서 있는 것도 산업주의를 뒷받침하는 자본과 과학과의 결합에 의한 것이고 보면,
기업의 변화에 철학과 미학적 관점은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들은 성장을 하지 않으면 죽은 것과 같고 존재의 의미가 없어져 죽으나 사나 그것에 매달려야 함.
그 딜레마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둘 다 연식이 비슷한가?란 생각이 들었음. 임재범이 나치 복장 퍼포먼스도 좀 쌩뚱맞아 보이고 , 할려면 나치마크에 쥐대가리 하나 그려넣던가...진중권이 알러지 반응 보이는 것도 다 연식들의 한계를 보는 거 같고..자기 연식을 뛰어넘는 건 어려운 일인듯....임재범이 어느 선을 넘어가면 언론은 제동걸 것. 다 자신들이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놀아야 물어뜯지 않을 것. 자본주의의 범위.자본이 허락하는 범위. 임재범은 아마 알고 있을 것. 개인적으로 옛386시대인들은 에너지 없다고 봄. 새로운 시대를 열..
진중권의 나열식 미학은 별로니 임재범의 반나찌 퍼포먼스 비판은 논거로 적절하진 않지요.
허나, 임재범의 반나치 퍼포먼스 속에서 오히려 불편함을 느꼈을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면 임재범의 카리스마와 나찌복장이 주는 강렬함이 반나찌를 시사하기 보다는 임재범=히틀러가 연상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임재범이 자신의 카리스마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나찌복장을 입은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임재범의 이번 퍼포먼스는 단순한 무대 아이디어에 그칠 뿐, 새로운 음악적 지평이나 창의적인 연상을 일으키지도 않네요.
전체적인 예술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 대중음악을 대중음악의 테두리 안에서만 보기 때문에 그런 시각이 생겨난다고 생각되네요.
퍼포먼스가 다른 것에 영향을 주든 안주든, 새로운 장을 열든 안 열든...
현재 임재범이 새롭게 발견되었다.라는 것이 중요하고,
임재범이 오버했는지 안했는지는 직접가서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고,
단 임재범이 의도했는지 안했는지에 대해.. 결과를 어느 정도 짐작 했을 것이니 의도했다고 얘기하는 것에서..
가수들이(예전에 마이클 잭슨도 그런 퍼포먼스를 했었고..) 간혹 그렇게 집중 혹은 이슈가 될만한 무대의상과 퍼포먼스를 하는 것은 그 자체의 집중의 효과를 노리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네요.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전체주의 미학을 차용했다고 하는 것이 웃기다는 것이지요.
거기에 무슨 전체주의가 있을까요? 집단으로 모인 팬들의 대한 어떤 쑈킹 현상을 노린 것이라면 몰라도...
마이클 잭슨이 흰티에 빨간완장차고 노래한 것도 전체주의 미학일까요...?
나치를 상징해서 비판 한 것이 아니고, 전체주의 그 자체의 효과를 노렸다고 비판한 것 같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현상은 사회 곳곳에 나타나고,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고, 그 자체가 별로 특이할 만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특히 쑈는 그런 효과를 극대화 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뭔가를 보여주겠다.라는 것도 있을 테고, 뭔가를 보여 주기를 바라는 팬들의 마음도 있는 것이니...그런 퍼포먼스를 기획하게 되는 것일텐데... 그러다보면 물론 다양한 것이 나올 수도 있지만, 임재범의 이미지를 생각하다 보니 그런 효과의 극대화를 꾀했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런데 전체주의를 극대화 하는 그런 류의 퍼포먼스 밖에 못하느냐? 전체주의 미학을 차용하는 것은 취향이 몰취향이어서 그렇다.라고 비판을 하는 것이니 결국 임재범이나 그 기획자들이 수준이 떨어진다. 그것에 열광하는 대중들 역시 뭐 도매급으로 같이 넘기는 것이구요....뭐 이런 비판을 하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어떤 것이든 전체주의 속성을 내 보이면 무조건 비판하는 방식...늘 해왔던 방식대로....
꼴통들은 오직 임재범을 때리는 방식으로만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예술.
'묻어가기' 혹은 '찔러보기'구랴. 묻어가는 것 외에 달리 할 수있는 것이 없다는 자백성 글질이오.
일단 상승하는 임재범에 글하나 묻혀 흔적 남겨두기, 그냥 1등이라고라도 쓰고 싶었으나, 미학을 남에 눈으로 배운 탓에 눈 빌려준 남이 OK하기 전까지는 찔러보는 것이오. 달리 뭘 해야할 지 모르지 싶소.
이런 류에 맞수는 명박쥐가 딱이오. 쥐들하고 붙으면 말이 되는 소리를 하긴 하오. 그런데 똑 거기까지요.
전체주의 미학이라 함은 사람을 홀리게 하는데 있다. 말 그대로 홀릭이다.
정신을 빼놓고 좀비가 되는 것처럼 대중을 대중예술로 홀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떠한 계획된 이벤트에 대중은 압도되고 황홀지경에 빠지게 하고 중앙에 집중하게 하고, 지지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일단은 미를 대표적인 것으로 내세워서 그것을 이용한다.
군복 등을 멋지게 장식하고 카리스마를 돋보이게 하는 것도 그런 효과다.
비단 이것은 파시즘에서만 이용된 것이 아니고 공산주의 에서도 마찬가지다. 군무가 대표적인 것이다.
그리고 6.25 당시 군복 비교에서 북한의 군복이 남한의 군복보다 미적인 면에서는 더 멋있었다.
이것 역시 홀리는 것이다. 군복을 멋지게 디자인 하는 것 역시 홀리게 하기 위함이고 권위를 주기 위함이다.
이 역시 단체로 있을 때 아름다움을 극대화 하기 위함이다.
히틀러 당시 군복 다자인에 신경을 썼던 것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치의 히틀러가 사용했던 대중동원 방식과 정치와 공연예술의 대중동원 방식은 얼추 비슷하다.
대중동원 그 자체가 성공이 열쇠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즘 방송에서 뜨고 나면 바로 콘서트를 여는 경우들이 많은데 그것은 대중동원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다.
공연예술에서 기획,제작,연출, 주인공의 카리스마, 대중 동원 능력, 그리고 절정에 치닫는 클라이막스를 기획하는 것 등에서 보자면 하나의 공연은 그 자체의 서론과 본론의 클라이막스와 결말이 있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는 드라마다.
그리고 클라이막스의 가장 키 포인트는 주인공의 카리스마 작렬이다.
공연에서 보여줄 거리는 주인공 이외에 모든 장치들이나 게스트들로 이루어지지만 뭔가 아쉬운 점이 남는데 주인공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렬한 인상을 줘야 하는데, 거기에 행위예술을 더하여 주인공을 극적으로 부상시키고 그럼으로 인해서 모여든 관중을 일시에 제압해 버리는 것이다.
무대 장악력이 절정을 이룬 것이다. 특히 락은 무대장악력이 필수라고 보여진다. 락커가 무대를 장악하지 못하면 맥이 빠진다. 그 공연은 실패가 된다. 김빠진 맥주... 거기에서 오는 관중의 불만과 스트레스는 상대적으로 더 극에 달하게 됨으로 잘못하면 역효과를 부르기 때문에 철저한 기획이 필요한 것이고 락커의 카리스마는 절대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무대를 장악하므로 인해서 관중을 홀릴 수 있다. 아니 기꺼이 홀려주는 것이다. 거기에 100% 충전되어 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히틀러는 이러한 집단주의의 속성과 대중예술의 속성과 사람들이 경외시하는 미를 접목시켜 환상적인 이벤트들로 대중들을 현혹시킨 것이다. 즉 철저하게 대중과 대중예술, 미를 권력과 체체유지를 위해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추구하는 파시즘을 완성시켜 가려고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중예술을 권력과 체체에 이용하는 사례는 모든 독재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대형 공연예술들은 그런 형태를 띠고 있다.
왜 그럴까? 역시 무대에서 무대를 장악하여 관중을 압도하지 못하면 이미 그 공연예술은 실패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수많은 관중이 밀집해 있는 곳의 열기는 대단하다.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이다.
그렇게 밀도가 급 상승해 있는 상태에서 무대를 장악하지 못한 가수가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하면..얼마나 비참할 것인가? 그 안에서 가수는 주인공이자 절대적이다. 왜 모두 그 가수를 보고 자발적으로 왔기 때문이다.
어떤 기대감이 급 상승해 있으므로 그것을 충족시켜주어야 한다. 그것은 처음부터 그런 엄청난 기대를 갖고 오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 공간안에서 바로 성립되는 밀도차 때문에 그렇다고 보인다. 순간에 결정되어 버린 것이다. 순간적으로 열기로 인하여 기대치가 올라가 버린 것이다. 그럼으로 그 이상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래야 만족하게 된다.
진중권의 비판의 핵심은 나치의상을 입고 행위예술을 했다는 것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런 어떤 집단주의적 대중예술을 의도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에 대해서 비판을 한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임재범의 공연은 전후사정을 가지고 추측해보면 그러한 법칙을 아주 철저하게 지켰다는 결론이 나온다. 즉 대형 공연예술이 갖는 어떤 성공의 요인들을 아주 착실하게 이행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게 하면 성공한다.라는 어떤 법칙, 히틀러 역시 사용했던 그런 법칙..그러면 대중이 홀리게 된다라는 어떤 법칙....
임재범이 나가수에서 북을 등장시키고 여가수의 목소리가 구슬프게 베이스를 깔고 임재범이 거기에 카리스마적인 목소리로 강타한다. 역시 이것도 대중을 홀리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여기에 임재범이 없다면 다 필요없어지는 것이다. 임재범이 있기에 그런 공연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가수들이 공연할 때 다양한 장비들과 기구들과 퍼포먼스를 개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카리스마로 엄청난 관중을 압도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양한 악기나 오케스트라나 퍼포먼스를 추가하여 극대화 시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주 요인은 주인공이 얼마나 카리스마를 발산하는가에 공연의 성패는 결정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주인공이 있기에 그에 맞춰서 다른 다양한 부수적인 것들이 준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을 얼마나 부각시킬 수 있는가에 공연은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안에서 주인공은 절대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효과를 극대화 시키고 공연은 희열감을 주고 마무리하게 된다.
콘서트장에서 울고불고 난리치는 사람들이 그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이미 대형 공연이나 쑈 자체가 목적인 공연에서는 이러한 효과 없이는 공연을 끝내기 어렵다. 왜 그것을 원하여서 자발적으로 모여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모든 대형공연은 이렇게 이루어진다고 보인다.
그런데 이것을 전체주의와 연관시키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히틀러 역시 이러한 것의 속성을 알고 이용한 것이다. 히틀러에 의해 만들어 졌다기 보다는 인간안에 내재되어 있는 집단주의적 발현인 그것이 대중의 속성으로도 나타나기 때문에 그 속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히틀러도 이용했고, 공연예술도 이용한다. 그리고 인류 역사 이래 그러한 속성을 이용한 사례는 너무나 많다.
그러나 가장 극단으로 치닫고 어떤 경고성을 보내 우려를 짙게 만든 것이 히틀러다. 역사의 사례로서 깊이 각인되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인간의 속성을 잘못 사용하고, 미를 잘못 사용하고, 권력으로부터 조장된 예술을 유통시키기고, 이러한 행위 자체는 인간사회에서 충분히 감시되어져야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인간의 집단주의 속성은 없애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의 공연예술은 이런 집단주의의 발산에 대한 통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어디선가는 발산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꾹꾹 눌러 담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히틀러가 공연예술을 극대화하여 국가와 권력과 체체를 유지하는 사이비 공연예술을 유포시켰지만, 이것은 히틀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히틀러가 효과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잘못 악용된 사례이다.
대중공연예술이 좀 더 제대로 자라잡기 위해서는 그러한 인간의 속성과 공연예술이 갖는 속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보인다. 이러한 집단주의적 속성이 사회 곳곳에 침투한다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중음악이나 예술에 있어서는 대중이고, 국가에 있어서는 국민이고, 정치에 있어서는 이런 대중이 유권자이고, 넷상에서는 네티즌이 되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서 조금씩 어떤 입장들이 취하는 것은 달라지기도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군중속에 파 묻힐 때 나타나는 집단적인 심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탄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거기에 분명히 자신의 판단이 있고 또한 집단적인 판단도 있다. 개인의 판단과 집단의 판단이 맞을 때도 있고, 어긋날 때도 있지만, 거기서 분명히 개인은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럼으로 인해서 다시 판단 할 수 있다. 전체주의 집단주의 이러한 것에 개인이 늘상 홀리거나 거기에 매몰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대중의 시대이다. 그 흐름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된다.
그럼으로 전체주의 미학이 설령 있다하더라도 이름이 그렇게 붙은 것이지 전체주의에서 처음부터 나온 현상이 아니라 원래부터 있는 현상을 전체주의가 그런 부분을 부각시켜 극대화 사용했기 때문에 전체주의 미학이라는 말보다는 다른 말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된다. 전체주의 미학이라 하면 그것을 사용하면 안되는 것이라는 인식을 주기 때문이다. 많은 공연예술들이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전체주의 미학이라는 말로 사용되면 그것 역시 하나의 족쇄가 된다고 생각된다. 집단주의 미학하면 역시 공산주의 이런 문구들을 떠올리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집단 미학이라는 말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생각됨...전체주의 미학하면 상징하는 것들이 있어서 이해는 되기가 쉽지만, 어떤 적용에 있어서 그 범위를 한정시키고 제한하여 막아버리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예술에 있어서는 어느정도 역행이라고 생각된다.
...일단은 이곳에 일어나는 생각을 올려봅니다. 나중에 다시 정리 할 수 있으면 하구요. 쓰다보니 조금 길어졌네요.
말도 예술이오.
요즘 정치인보다도 연예인중에서 멋진 사람을 많이 보는것 같소. TV예능프로라면 좀 우습게 봤었는데.... 그게 아닌 듯.. 김태원씨 참 멋지고.... 임재범의 비상도 아름답고....요즘은 연예계에서 그나마 낙을 찾는다오.
똑똑 두드리고 안녕 하고 인사하고픈 것이 인지상정. 내 속의 신과 그대 안의 신의 만남이지. 교육은 만남이야.
좋소. 좋소. 매우 좋소.
도사 김태원
김태원이 고수인 이유는 그의 말 속에 대칭구조가 있기 때문이오.
"긴장하는 사람은 지고, 설레는 사람은 이긴다."
"3등은 괜찮다. 3류는 안 된다."
"'여기까지' 라는 말은 없습니다. 항상 '지금부터' 입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대칭구조를 알고 있다는 것이 이미 고수라는 얘기. 김태원이 쏟아낸 명언 대부분이 그런 대칭을 가지고 있소. 김태원이 어법이나, 명언을 따로 공부했을리는 만무하지만, 감각적으로 아는게요. 고수들의 언어, 혹은 명언에는 대칭인 경우가 많소. 애니메이션 쿵푸팬더에서 거북이 선사가 했던 말처럼...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mystery, but today is gift."
요즘 SBS 드라마도 자세히 보면 저런얘기들 가끔 나옵니다. 시티홀, 대물, 시티헌터.....
아이러니하게도, KBS, MBC, 그리고 SBS 중 가장 그래도 볼만한 뉴스가 SBS가 된지는 꽤 됩니다. MBC와 KBS가 너무 많이 무너져 버려서 상대적으로 SBS가 볼 만합니다. ㅎ.
SBS는 2008년 촛불 이후로 진보쪽에 아부하려고 이쪽으로 많이 왔고
동시에 조중동과 정부에 다소 거리를 둠.
반면 노무현 정권 당시 비교적 공정했던 KBS와 연합은 이명박 정권 들어서 완전히 망가짐...
기사보다가 같이 보게 된 비슷한 느낌의 기사. 부조리도 꽤나 생명력 있네.
http://media.daum.net/economic/cluster_list.html?clusterid=369081&newsid=20110630102628596&clusternewsid=20110630102628596
일감 몰아주기라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