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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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5007 vote 0 2011.06.30 (00:18:02)

 

김기덕, 예술이란 무엇인가?

 

art의 어원적 의미는 ‘잇다’이다. 가까운 말은 arm이다. 팔은 몸과 ‘이어진’ 것이다. 전기 스탠드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관절도 arm이다. 곧 이음새다. army나 armor도 같다. 손에 무기를 드는 것이 잇는, 혹은 이는 것이다. alarm은 all+arm이다. 적이 나타났으니 갑옷을 몸에 이라는 거.

 

art의 원래 의미는 기교, 공예, 장식에 가까운 것이었다. 게르만족과 같은 유목민들에게 장식이라는 것은 구슬을 꿰어 ‘잇는’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소통에 있어서의 완전성을 의미하는 현대의 예술개념은 원래 서구에 없었다.

 

인상주의가 대두되었을 때 잘난 신사들이 반발한 이유는 예술을 기교나 장식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예술은 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 인간을 즐겁게 하는 것, 신사 숙녀의 고상함을 과시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예술은 주가 아니라 종이었던 거.

 

그렇다. 야만한 게르만족들에게 예술은 낯선 것이었다. 교회건축, 왕궁건축을 중심으로 한 장식위주의 서구예술은 사람을 위압하고 겁주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시골촌놈을 뻑 가게 만들겠다는 거. 시골에서 갓 올라온 돈 키호테 눈이 휘둥그래지게 만들겠다는 식이다.

 

반드시 그러한 것만은 아니다. 그리스 예술은 확실히 격조가 있다. 그 시대에는 미를 숭배했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사회에는 미를 숭배하는 문화가 있었다. 신라의 화랑도가 미인을 선발한 것도 그 때문이다. 미를 신의 은총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야만한 로마인들이 그리스를 짓밟고 조각품을 훔쳐와 귀족집의 정원을 장식하면서 복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게 되었다. 로마의 모든 조각품은 그리스 작품의 짝퉁이라는 말이 있다. 매너리즘은 기술주의라는 뜻이다. 르네상스 이후 기교는 늘었으나 예술은 본질에서 몰락했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뭐 없다시피 하다. 의미가 그림 안에 들었을 리 없기 때문이다. 혹 ‘나는 알겠는데? 난 피카소가 좋아.’ 하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거짓이다. 맥락을 알아야 아는 것이다.

 

피카소는 인류사 수 만년 진보의 여정에서 중요한 하나의 고리로 존재하는 것이며, 잃어버린 고리, 아니 잃어버리면 안 되는 소중한 작은 고리다. 그 고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전과 그 후의 나아가는 방향성을 아는 것이다.

 

art는 잇는 것이다. 잇는 것은 고리다. 고리는 작아도 필요한 일을 한다. 2번 타자가 비록 번트나 대고 있을지언정 1루에 나가있는 주자를 3, 4번으로 연결하여 타점을 올리게 하는 역할을 한다.

 

피카소가 예술인 것은 잘 이어주었기 때문이다. 이전시대와 그 이후시대의 연결고리 역학을 잘 해냈다는 것이다. 홈런은 4번타자가 쳐도 2번과 3번이 연결을 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다.

 

그러므로 예술가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연결만 해주면 된다. 징검다리 역할만 해주면 된다. 김기덕 감독은 징검다리 역할로 충분히 제 몫을 했다. 꽃은 제자들이 피워도 된다.

 

외국의 유명 평론가가 극찬하는 고전영화를 봤더니 재미가 하나도 없더라 하는 이야기 많다. 재미 찾아 영화보는 사람과 무슨 대화를 하겠는가? 그 영화에 재미가 없어도 미래와의 연결고리가 있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또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 가야 할지를 모르는 사람과 영화 이야기를 하는 바보는 되지 말아야 한다. 의미는 맥락 안에서 파악되는 것이며 총체적인 흐름 안에서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피카소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림을 잘그렸다니 못그렸다니, 혹은 그림이 좋다니 싫다니 이런 멍청한 소리 하는 바보들은 그 입을 틀어막아 버려야 한다. 중요한 것은 피카소가 우리의 몸에 입혀졌다는 것이다.

 

art는 arm이고 army이며 armor다. 그것은 옛 사람들이 머리로 물건을 이듯이 몸에 이는 것이다. 옛날 그림은 화랑의 벽에 걸려 있었지만 이제는 옷으로, 건물로, 양식으로, 패션으로, 디자인으로 변해서 인간의 몸으로 침투되고 있다. 몸과 이어지고 있다. 몸에 올라붙고 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우리는 이미 피카소를 입고 있다. 피카소의 그림이 왜 입체냐고? 우리의 몸이 입체라서 그렇다. 벽에 걸리는 그림은 평면이다. 벽이 평면이니까 그렇다. 고흐의 그림이 왜 덕지덕지냐고. 우리의 몸에 올려붙이려니까 그렇다. 우리의 몸에 본드로 붙이고 접착제로 붙이다보니 덕지덕지 된 것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보고 현실성이 없다니 하는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는 ‘그럼 그걸 어떻게 우리의 몸에 올려붙일 건데?’ 하고 되물어야 한다. 피카소는 평면의 이미지를 입체로 변형하여 우리의 몸에 상륙시킨 것이다.

 

물론 자전거로 3시간 만에 평양을 다녀올 사람은 없다. 중요한 것은 인간 바깥의 영화를 인간 안으로 끌어들이는 장치다. 우리의 몸에 태우려면 잡아당겨야 한다. 잡아당기면 찢어지고 변형되는 것이다.

 

왜 3시간이냐고? 간단하다. 우리의 몸이 요구하는 시간이 3시간이기 때문이다. 기차도 3시간 넘게 달리면 지루하다. 짜증난다. 우리의 몸이 견디는 시간이 3시간이므로 남북한의 거리는 무조건 3시간이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리얼리티다. 우리가 몸으로 느끼는 남북한의 거리는 3시간이어야 한다.

 

쿠르베의 사실주의는 불완전한 것이다. 옛날에는 그리스 신화를 주로 그렸는데 그 신화들은 나의 바깥에 멀리 있다. 까마득한 옛날의 것이고 나와 상관없다. 진정한 사실은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는 것이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여야 한다. 나를 그리는 것이 사실주의다. 내가 경험한 것, 내가 본 것, 더 나아가서 내게 필요한 것 말이다. 세잔의 정물화는 나와 가까운 것이다. 그 정물은 나의 탁자에 올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림은, 조각은, 예술은 원래 교회나 궁정의 벽에, 혹은 귀족집의 정원에 장식되어 있었다. 저 멀리 있었다. 관객들은 대개 시골촌놈이라서 눈이 휘둥그래져서 감탄사를 연발하며 입을 헤벌리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다였다. 장식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이 수준 낮은 서구의 예술이었다.

 

그러나 동양은 달랐다. 동양에는 옛날부터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발달해서 양주는 ‘천하에 이득이 된다 해도 내 몸의 터럭 하나를 뽑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죽림칠현이야말로 현대 미학을 개척한 선구자다.

 

그들은 인간을 위한 예술을 했다. 예술이 인간을 위한 장식이 아니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예술이 아니라 인격 그 자체를 완성하기 위한 예술을 했고, 이것이 남조문화로 꽃 피워졌다. 인간과 예술이 혼연일체가 된 것이다. 사람과 예술 사이의 경계를 지워버렸다.

 

서구의 인상주의는 원래 일본 판화에서 건너간 것이고 그 일본판화는 선종불교 사상을 담고 있는 것이며, 그 선종불교는 중국의 도교사상과, 인도의 불교사상이 결합된 것이며, 그 도교사상의 미학정신을 제대로 구현한 것이 남조문화다. 이렇게 계통이 있는 것이다.

 

양주>도교>죽림칠현>남조문화>선종불교>우끼요에>인상주의>현대미학으로 족보가 전개된 것이며 죽림칠현의 그 방자하기 짝이 없는 행적에 현대예술의 본령이 들어 있다. 인상주의는 그때 이미 개척된 것이다. 왜냐하면 인상=깨달음이기 때문이다.

 

선종불교의 핵심은 문득 깨닫는 것이며, 그것은 뒷머리를 강타하듯 스쳐 지나가는 번뜩임이며, 그것은 구조의 대칭원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고, 발달한 남조문화는 그것을 그림에 담았고, 일본인들은 그것을 판화로 새겼으며 이것이 도자기 포장지로 되어 서구에 전해져서 현대예술로 발전한 것이며, 그 과정은 교회의 건축이나 왕궁의 건물, 귀족집 정원, 부잣집 거실에 장식되던 것이 인간의 몸으로 옮아오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쿠르베는 사실을 주장했다. 내가 꿈에 본 것을 그리면 그것은 사실일까 아닐까? 꿈에 천사를 보았다면 천사는 사실이 아니지만, 하여간 꿈에 천사인지 뭔지를 본 것은 사실이다. 사실이란 자연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내 몸과 직결되는 것이다.

 

real의 어원은 '일어남'이다. '사실'은 어색한 한자어 표기고 raise와 가깝다. 벌떡 일어서는 것이 리얼이다. 현장에서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며 에너지가 작동하는 것이다. 팔팔하게 살아서 생동하는 것이 리얼이다.

  

쿠르베는 직접 눈으로 본 것을 그렸다. 인간과 연결된다는 말이다. 쿠르베 이전에는 뜬구름 잡는 옛날 전설을 그렸다. 그건 나와 상관없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그림을 가지고 있어도 ‘저 양반 부자구나’ 하는 평가 외에는 없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삶은 어떤가? 요즘에는 남자들도 식스팩이 어떠니 하고 외모를 평가받는 시대가 되었다. 일본의 경우 남자들이 머리모양이 평범하다는 이유로 여자들에게 나쁜 평판을 받게 된다고 한다. 직장만 번듯하면 되는 한국남자들이 그나마 다행. 세상이 바뀌어서 이제는 남자들이 여자들이 원하는 머리모양을 해야하는 시대가 되었다.

 

여성들의 권력이 커져서 꽃미남 어쩌구 하면서 남자들도 옷 고르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 그냥 무난한 옷을 입고 있으면 ‘성의가 없구만’ 하고 여사원들에게 찍힌다. 조직에서 평판이 나빠진다는 거다.

 

예술이 부잣집 정원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으로 옮아붙었기 때문에 리얼리즘이 중요한 것이다. 정원에 세워놓는 장식물이라면 그냥 촌놈이 기죽도록 휘황찬란하게 해놓으면 된다.

 

그러나 내가 입어야 한다면? 너무 무거워도 안되고, 걷기에 불편해도 안 되고 이거 장난이 아닌 거다. 내 몸에 올라붙는 예술이 리얼리즘이다. art라는 말은 유목민들이 모든 예술품을 몸에 걸치고 다녔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오늘날에도 아프리카의 유목민들은 전재산을 목에 걸고 다닌다. 그들은 소떼와 함께 항상 이동하므로 재산을 보석으로 바꾸어 몸에 걸고 다닐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몸에 이어야 예술인 거다.

 

무엇인가? 인상주의는 2차원 평면으로 구축되어 벽에 걸려 있던 예술을 인간의 몸에 올려붙였다. 인간의 몸은 3차원 입체다. 그래서 세잔은 형태를 연구했다. 피카소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것이 리얼리즘이다.

 

리얼이라는 말의 의미를 자연에서 일어난 팩트로 축소시켜 놓으면 쿠르베가 사실주의지만, 인간의 몸에 올려붙이기로 보면 피카소가 더 사실주의다. 쿠르베의 그림은 여전히 벽에 걸리는 그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몸에 올려붙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더 단순화 되어야 한다.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건너뛰어야 한다. 인상주의는 배경을 생략하고 단순화 하는데서 시작되었다. 고흐는 덕지덕지 두터운 물감을 발라버려서 세부묘사를 할수 없게 해놓았다. 더 단순화 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고흐야말로 진정한 인상주의 회화의 완성자라고 볼 수 있다.

 

단순화 하는 것, 함축하는 것, 압축하는 것이 예술이다. 왜 유목민들은 몸에 구슬을 걸고다니는 것일까? 그들은 이리저리 옮겨다니므로 재산을 보석으로 압축해서 몸에 걸고 다녀야 하는 것이다. 압축률이 높을수록 예술이다.

 

가장 압축률이 높은 것은 다이아몬드다. 논 스무마지기가 무명지 손가락 위에 올라붙는다. 김기덕 감독은 남북한의 대결구도를 1억배로 압축하여 지하골방에 밀어넣었다. 최고의 압축률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예술이다.

 

아직도 예술이 벽에 걸려있어야 한다고 믿는 밥통들, 예술이 나와 체화되지 않고 거리를 두고 마주보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 밥통들과는 대화할 수 없다. 관광지에 가서 예술품에 등 돌리고 사진찍는 사람들 만큼이나 한심한. 초딩이냐?

 

인상이란 정신이 번쩍 들도록 뒷통수 한 방 먹이는 거다. 빛과 어둠의 대칭, 원과 근의 대칭, 강과 약의 대칭, 온갖 대칭으로 그것은 가능하다. 대칭을 통하여 상황을 압축할 수 있다. 압축하면 인간에게로 가져올 수 있다. 그것이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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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레벨:22]id: ░담░담

2011.06.30 (01:04:15)

야물딱진 고리요, 김기덕.

[레벨:7]꼬레아

2011.06.30 (21:25:01)

김기덕 감독은

남북한의 대결구도를 1억배로 압축하여 지하골방에 밀어넣었다.

최고의 압축률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예술이다

 

풍산개 대박조짐

프로필 이미지 [레벨:1]나무그리는이

2011.07.01 (06:28:35)

과연 예술이란 무었일까?  인상주의 이후 미술의 경향을 모던이즘으로 명하고 현대는 그 모던이즘의 영향아래 있습니다.  이십세기 이후 미술사의 여러 실험들은 화면에 절대적 이상이 무엇인지를 연구했지요.  그러나 양차대전 이후 그 절대적인 것에 반기들 드는 작가 들이 있었습니다.  이후 파생한 경향들이 플럭서스 그룸에서 요셉보이스와 백남준이 만든 행위예술이 있고 비디오 아트등이 있습니다. 또 설치미술도 파생하구요.  대지예술 팝아트 등등.....  

나는 이것들을 노쇄화라고 생각 합니다.  서양의 합리적 이성의 추구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아직 대안을 찾지 못했으니까요.

예술은 안간을 규정하는 틀 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주와 인간을 바라보는 창문 이지요.  인간이 세상을 관찰하고 파단하는 기준점이 아닐까 생각 해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동물과 인간을 가르는 기준은 예술적 감성 박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풍산개는 못 봐서 잘 모르겠고 몇편의 김기덕감독 영화는 분명 되통수를 후려치는 것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몇 안돼는 작가인것은 확실 한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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