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문명의 토대는 수학이다. 그런데 수학은 어느 나라에나 다 있다. 마야문명이나 잉카문명에도 고도로 발달된 수학이 있었다. 그러나 큰 의미는 없다. 왜? 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체계가 없으면 몸통이 진화하지 않는다. 어떤 구체적인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데만 집중하게 된다. 주로 건물을 짓는다거나 일식과 월식을 계산하는데 쓰인다. 그 경우 자질구레한 테크닉만 늘어난다. 그때그때 단발성 문제해결에 집착할 뿐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는 진보하지 않는다. 실용주의 덫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실용주의 극복해야 한다. 실용주의는 학문을 도구화 하는 것이다. 쓰임새가 발견되는 즉 학문은 죽는다. 쓸모있는 수학이 아니라 수학하기 위한 수학이 진짜다. 진정한 수학은 0의 도입, 유클리드 원론, 피타고라스의 정리 이 세가지의 통합에 의해 개척되었다. ◎ 0의 발견, 유클리드 원론, 피타고라스 정리 중요한건 체계(體系)다. 체(體)는 몸통이고 계(系)는 잇는 것이다. 몸통에 팔다리가 연결되듯이 퍼즐을 하나씩 붙여가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순위가 있어야 한다. 어느 것이 어깨고 팔꿈치고 손목이냐다. 몸통에 팔을 이을 때는 어깨를 먼저 붙이고, 그 다음에 팔꿈치, 손목, 손가락 순으로 붙여가야 한다. 그 순서를 아는 것이 체계다. 그 체계는 0, 원론, 증명 이 세가지에 의해서 가능해졌다. 0은 인도에서 발견되었다. 0이 동쪽으로 왔다면 동양에서 근대문명이 일어났을 것인데, 서쪽으로 가는 바람에 서세동점이 일어났다. 0은 진법이고 진법은 덩어리다. 모형이다. 모형적 사고가 가능해졌다. 모형적 사고란 한건주의식 문제해결이 아니라 어떤 원형을 만들어놓고 그때그때 필요한걸 조달해서 쓰는 것이다. 목수가 그때그대 필요한 연장을 만들어 쓰는 것이 아니라 연장통을 가지고 다니는 것과 같다. 당장 필요하지 않은 연장까지 챙겨다니는 것이 모형적 사고다. 소스를 확보해두고 필요한 것을 빼서 쓰는 것이다. 이것이 마이너스적 사고다. 필요한걸 그때그때 만들어 쓰는 것이 플러스적 사고다. 홈페이지를 제작하더라도 사전에 이미지나 아이콘을 대량으로 만들어놓고 거기서 필요한 소스를 가져다 쓰는 방법과 반대로 그때그때 필요한걸 즉흥적으로 만들어 쓰는 방법이 있다. 만들어 쓰는게 당장은 빠르지만 장기적으로 비효율적이다. 왜? 호환성이 없기 때문이다. 동네마다 저울이 다르고, 계산법이 다르고, 도량형이 다른 것과 같다. 곤란해지고 만다. 널리 통하지 않는다. 진법을 발견함으로써 도량형이 통일되고 호환성을 얻어서 연장통을 들고 다니게 된 셈이다. 왜 이문제가 중요하냐 하면 단축키 때문이다. 사실 수학의 세계에는 여러 가지 편법이 존재한다. 동양에서는 산대로 계산을 하는데 종이도 없고 연필도 없이 신통방통하게 방정식을 계산한다. 그런데 단지 그들만 알고 외부인은 모른다. 그 계산이 맞는지 틀리는지 알 수 없다. 그 외에도 여러 문명권에서 독특한 산법을 발달시켰다. 기발한 산법들은 체계가 없으므로 학문의 발달을 방해한다. 어떻든 계산은 하는데 그 문제에만 써먹을 뿐 다른 분야에는 응용이 안 되는 것이다. 몸통은 없이 팔다리만 있는 것과 같아서 연결이 안 된다. 성과가 축적되지 않는다. 수학이 보편성을 잃고 기술자만의 특별한 테크닉이 되어버린다. 주산과 같다. 계산은 잘 하는데 모르는 사람이 확인할 수 없다. 유클리드의 원론은 기하를 출범시켰다. 원래 수학은 대수고 대수는 하부구조다. 구조론으로 말하면 입력, 저장, 제어, 연산, 출력 중에서 연산과 출력이 대수다. 하부구조는 연장통 없이 그때그때 조달하는 것이다. 수학은 계산을 하는 것인데 그 계산되는 공간은 관찰하지 않고 셈만 한다면 열매는 셀 수 있으나 그 열매를 생산하는 과일나무는 계량할 수 없다. 가을에 열매가 열리면 대수로 셈하여 몇 개인지 알 수 있지만 기하가 되면 그 나무의 크기를 측정해서 열매가 열리기 전에 몇 박스의 과일이 생산될지 파악한다. 결과가 아닌 원인에 대응하는 것이며 하부구조가 아닌 상부구조에 대응하는 것이다. 기하가 몸통이고 대수는 팔다리다. 기하가 일어나자 비로소 학문적 성과의 축적이 가능해졌다. 유클리드의 기하는 많은 수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엉터리였다. 그의 점과 선과 면에 대한 정의는 엉터리여서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내용은 엉터리지만 포지션이 있었기 때문에 수학의 발전에 기여한 것이다. 피타고라스의 증명은 99.9와 100퍼센트의 차이를 알게 했다. 사람들은 99.9프로를 50프로로 생각해버린다. 100프로 맞는게 아니면 틀릴 수도 있고, 그렇다면 맞고 틀리고 간에 선택지는 반반이다. 경마장에 가는 사람들은 확률이 몇 퍼센트건 50프로로 착각해 버리는 수가 있다. 따거나 아니면 잃거나다. 많은 오류가 여기서 일어난다. 피타고라스는 정수와 정수의 비라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중요한건 절대성이다. 이에 인류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소피스트 제논에 의해 깨졌다. 제논의 유명한 ‘발이 빠른 아킬레스는 한 걸음 앞서 출발한 거북이를 이길 수 없다’는 궤변이다. 피타고라스의 정수론적 세계관은 플러스의 세계관이다. 제논의 궤변은 무한대 개념의 제시다. 무한대 개념은 19세기에 확립되었다. 2천년간 수학자들의 제논의 궤변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했다. 제논의 궤변을 해결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번짓수를 잘못짚었다. 중요한건 세계관이다. 이는 천동설과 지동설의 차이와 같다. 세상을 플러스로 볼것인가 마이너스로 볼것인가이다. 피타고라스는 대장간 옆을 지나다가 우연히 화음을 발견했다. 오늘따라 듣기좋은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조사해 보니 화음의 비결은 길이에 있었다. 두 쇠막대기 중 하나는 다른 쇠막대기의 2/3였다. 1의 길이와 그 2/3의 길이를 가진 두 쇠막대기를 교대로 두드리면 듣기 좋은 소리가 난다. 이를 전개한 것이 도레미파솔라시도다. 무엇인가? 황금률이다. 피타고라스는 절대적인 그 무언가를 추구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이상주의는 절대성에 대한 신앙이다. 피타고라스는 완전성을 추구했고 거기에 도달했다고 믿었지만 제논은 손쉽게 이를 격파해 버렸다. 어쨌거나 피타고라스는 완전성 개념을 제시했다. 완전하다는 것, 그것은 세상이 만만하다는 것이다. 자신감을 얻는 것이다. 그것은 출발점을 찾은 것이다. 물론 실제로 피타고라스가 찾았다고 믿은 완전성은 거짓이었다. 정수의 세계는 복소수의 세계 중 극히 일부다. 중요한건 피타고라스가 증명을 통해서 완전성 개념을 제시했고 약간 누더기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체계가 섰다는 점이다. 대략 부실한 가짜지만 몸통이 확보되었고 팔다리만 이어가면 된다. 이는 천동설과 같다. 옛날 사람들은 천재지변을 두려워 했다. 갑자기 지구가 뒤집어질지도 모른다. 지진이라도 일어나면 모두 놀라게 된다. 그러나 천동설에 의해 별들이 일정한 질서에 의해 운행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러한 두려움은 사라졌다. 중요한 점은 천동설이 가짜라는 거다. 가짜라도 상당히 도움이 된다. 천동설을 갑자기 해가 사라져 버리거나 달이 도망쳐 버리거나 하늘이 무너져 버리거나 하는 걱정을 덜게 된다. 실제로 옛사람들은 하늘의 기둥을 받치고 있는 헤라클레스가 잠시 똥싸러 가는 사이에 행여나 하늘이 무너지지 않을까 많은 걱정을 했던 것이다. 큰 비가 내리면 바다가 넘쳐서 지구가 물에 잠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천동설은 자연에 일정한 질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엉터리지만 상당히 보탬이 되었다. 인류는 0으로 호환성을 얻었고, 원론으로 상부구조를 얻었으며, 증명으로 완전성을 얻었다. 이로써 몸통을 세워 체계를 꾸렸다. 인류는 자신감을 가지고 진일보했다. 근대를 열어젖혔다. 그러나 틀렸다. 방향이 틀렸다. 현대수학은 미적분학이다. 이는 마이너스로 가는 것이다. 제논의 주장처럼 1/2로 가는 것이다. 초딩은 셈을 배울 때 하나, 둘, 셋으로 배우지만 틀렸다. 1/2, 1/4, 1/8씩으로 배워야 한다. 분수가 모든 수의 출발점이다. 덧셈은 사기다. 실제로 수학자들의 계산은 거의 분수를 쓴다. 태음력으로도 대강 날자를 알 수 있고, 천동설로도 대강 맞춰 살 수는 있다. 눈금이 안 맞는 저울로도 대량 계량할 수 있고, 덤을 줄 수도 있고, 깎아줄 수도 있다. 이들은 단축키로 기능한다. 인간을 편리하게 한다. 유드리가 있어서 좋다. 단 진보하지 못한다. 자궁이 없기 때문이다. 자궁이 있어야 진짜다. 세상은 마이너스고 플러스는 없다. 피타고라스는 완전성 개념을 제시했지만 찾지 못했다. 피타고라스의 증명은 완전성을 찾아가는 하나의 단서일 뿐 완전성 그 자체는 아니다. 완전성은 무엇인가? 세상은 마이너스로 간다. 쪼개지는 것이다. 쪼개지기 이전의 원형이 완전성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원론은 점의 정의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점>선>면>입체로 올라간다. 그 다음은? 모른다. 잘못이다. 점은 정의할 수 없다. 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에 점은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다. 그것은 밀도다. 밀도야말로 완전하다. 밀도가 피타고라스가 찾던 진짜다. 밀도가 쪼개지면 입체가 되고 입체가 쪼개지면 각이 되고 각이 쪼개지면 선이 되고 선이 쪼개지면 점이 된다. 마이너스로만 전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밀도만이 정의될 수 있으며 나머지는 정의될 수 없다. 명제는 전제와 진술로 구성된다. 반드시 전제가 있어야 한다. 점의 전제는 선이다. 선의 전제는 각이다. 각의 전제는 입체다. 입체의 전제는 밀도다. 그러므로 점을 정의하려면 선을 먼저 정의해야 하고 선을 정의하려면 각을 정의해야 하고 그 전에 입체를 먼저 정의해야 한다. 입체를 정의하려면 밀도를 먼저 정의해야 한다. 점은 선이 시작되고 끝나는 지점이다. 선과 선이 만나서 교차되면 끝난다. 선은 각이 시작되고 끝나는 선이다. 각은 입체가 시작되고 끝나는 각이다. 입체는 밀도가 시작되고 끝나는 입체다. 밀도는? 복제다. 에너지가 어떤 두 대상을 통과할 때 등방성의 원리에 따라 둘은 균일해지며 그 원리에 따라 복제되는 것이다. 빛이 밀도가 다른 물질을 통과할 때 굴절되듯이 밀도가 균일할 때 모형을 복제한다. 하나의 에너지가 어떤 둘을 차례로 통과했다면 그 둘은 동일한 질서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결이다. 물방울이 에너지에 의해 둘로 나눠지듯이 어떤 것이 복제될 때 그것이 입체다. 계에 밀도가 걸렸을 때 두 입체가 마주치는 접점은 두 입체에 대한 정보를 동시에 가진다. 1안에 2 있다. 밀도는 간단히 1에 2가 들어간 것이며 다시 1과 1로 쪼개져 나오는 것이다. 곧 복제다. 그것은 만유의 자궁이자 출발점이다. 복제되는 것이 완전하다. 자궁에서 아기가 나오듯이 동일한 것이 하나 더 나오는게 밀도다. 결론적으로 피타고라스가 완전성 개념을 제시했으며 제논이 이를 뒤엎었지만 사람들은 긴가민가 하고 있었다. 불완전성이 폭로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틀렸다. 피타고라스의 정수론은 불완전했다. 완전성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완전성은 마이너스에 의해 확보된다. 세상은 마이너스로 간다. 플러스는 우주 안에 없다. 그것은 천동설처럼 반대편에서 본 것이다. 마이너스와 플러스는 한 세트다. 상부구조를 보면 마이너스고 하부구조를 보면 플러스다. 사과를 둘로 쪼개면 1/2 조각 2개가 된다. 앞을 보면 1/2고 뒤를 보면 2다. 앞은 마이너스고 뒤는 플러스다. 둘은 한 세트며 앞을 보는게 정답이다. 뒤를 보는 것은 단축키를 쓰는 것과 같아서 호환이 안 된다. 번거러워도 앞을 봐야 한다. 근대수학은 미적분학이고 이는 마이너스다. 세상을 마이너스로 보는 세계관을 얻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원형이 되는 완전성을 얻어야 한다. 완전성에 도달해야 한다. 피타고라스는 쇠막대기를 때려보고 화음을 포착해서 완전성을 얻었다. 무엇인가? 반응하는 것이다. 통하는 것이 완전하다. 진정한 것은 낳음이다. 낳는 것이 완전하다. 그것은 밀도다. 거기서 마이너스 될 뿐 플러스는 없다. 가다는 있고 오다는 없다. 주다는 있고 받다는 없다. 척력은 있고 인력은 없다. 왜 마이너스인가? 마이너스는 한 방향이다. 그러나 플러스는 양방향이다. 퍼즐을 맞추더라도 한쪽 귀퉁이부터 맞추어야 한다. 바둑을 두어도 변에서 중앙으로 가야 한다. 중앙부터 두면 양쪽을 신경써야 한다. 싸움을 해도 벽을 등지고 한 방향으로 쳐부수어야 한다. 싸움의 기본은 포위다. 포위한 쪽은 등 뒤를 걱정할 필요없이 가운데만 공격하면 된다. 한 방향만 때리는 것이다. 반면 포위당한 쪽은 등 뒤까지 신경써야 한다. 포위당한 새누리당은 민주당 때리다가 진보당 때리다가 청와대 때리다가 정신이 없다. 그러나 포위한 우리쪽은 MB심판 하나만 하면 된다. 마이너스는 항상 한 방향으로 가지만 플러스는 두 방향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노로 방향을 잡으면 좌현과 우현에 노가 있으므로 둘을 동시에 조정해야 한다. 키로 방향을 잡으면 한 꺼번에 두 방향을 동시에 통제한다. 노는 플러스다. 키는 마이너스다. 노는 배에 힘을 플러스하지만 키는 배가 가진 자체의 추진력을 이용한다. 마이너스를 행하는 것이다. 모든 문제는 마이너스에 의해 풀린다. 완전성의 세계관, 마이너스의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 총을 쏘고 난 다음 20개 들이 탄창에서 몇 발이 비었는지를 확인해 보면 정확한 값을 알 수 있다. 마이너스는 정확하다. 플러스는 표적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몇 발은 잃어먹고 몇 발은 오발되고 몇 발은 엉뚱한 넘이 남의 표적지에 쏴서 잘못 표시된다. 실제로 사격장에서는 20발을 쐈는데 21발을 명중하는 일도 있다. 플러스는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마이너스가 완전성이고 몸통이고 실마리다. 비로소 체계가 선다. 팔다리를 이어나가면 문제가 해결된다.
이기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마이너스 방향으로 길을 잡아야 합니다. 그것은 먼저 완전성에 도달한 다음 이를 전개해 가는 방법입니다. 일단 탱크에 가득 채워놓고 조금씩 빼서 쓰는 방법입니다. 몸통부터 확보하고 팔다리를 연결하는 방법입니다. 최고의 팀을 만들고 이를 복제하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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