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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098 vote 0 2012.03.21 (20:30:23)

 

- 상당부분 예전에 했던 이야기 -

 

필자의 소년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복장이 터졌다’고 할 수 있다. 왜? 답답해서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 말은 많은데 도무지 말이 통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언젠가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 나타날 낌새도 없었다. 그 전에 언어 자체가 이미 죽어 있었다. 깜깜절벽이었다. 더 심각한건 아무러나 상관 없었다는 거다.

 

◎ 말이 통하지 않는다.
◎ 언어가 없다.
◎ 상관없다.

 

예컨대 이런 거다. TV에 나오는 코미디 프로의 한 장면이다. 가는 귀 먹은 두 노인이 대화를 하는데 상대방의 말을 알아먹지 못한다. 그런데 묘하게 대화가 된다. 대화는 되는데 말은 통하지 않는다.

 

말은 통하지 않는데 불만은 없다. 묘하게 죽이 맞고 판이 돌아간다. 그렇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대화를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과 대화하고 있었던 거다. 어쩌면 세상의 모습도 이런 것?

 

최면술사가 거울보고 자신에게 최면을 걸면 깨어나지 못한다. 다들 상대방의 얼굴을 거울삼아 자신에게 최면을 건다. 깨어나지 못한다. 그래도 상관없다. 열 살 소년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이었다.

 

여섯 살 아니면 일곱 살이다. 형들따라 남산 중턱까지 올랐는데 산 너머로 도시가 보였다. ‘형아. 저기가 서울이야?’ ‘아냐. 시내야.’ ‘그럼 서울은 어디 있어?’ ‘저 산 너머 너머 너머 너머 백번, 천번도 넘게 가야 해.’ ‘띠용~!@#$%^&.’

 

‘경주시’라는 도시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냥 ‘시내’로만 알았다. 서울은 까마득히 멀리 있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국가라는 것의 시스템이 돌아간다는 것이 믿어지나? 무섭다.

 

제도나 법률이나 체계가 갖추어져 있고 그들 사이에 손발이 착착 맞아서 세상이 기계처럼 잘도 돌아간다는게 믿어지나? 과연 그런가? 가능한가? 뭔가 이상하다. 불안하다. 그 아스라한 느낌을 잊지 못한다.

 

아홉살이었다. 국어사전 찾기 숙제가 있었다. 집에 와서 선생님이 나눠준 사전을 찾아보는데 ‘좆’은 ‘자지’였고 ‘자지’는 ‘좆’이었다. ‘유방’은 ‘젖’이었고 ‘젖’은 ‘유방’이었다. 이상하다. 이러고도 시스템이 굴러가나?

 

이건 너무 주먹구구식이 아닌가? 장난하나? 족보가 없잖아. 체계가 없잖아. 질서가 없잖아. 시스템이 없잖아. 말도 안돼! 충격을 받았다. 노인의 대화처럼 거울보는 거다. 좆은 자지보고 자지는 좆을 보고.

 

남산 중턱에서 본 시내의 모습에서 세상이 기계처럼 톱니가 맞고 아귀가 맞아서 착착 돌아가는지 의문이었는데, 과연 여기서 이렇게 뽀개지고 있네. 개판이네. 장난하고들 있네. 엉망이네. 한심하네.

 

인간들이, 사회라는 것이 가소롭게 보였다. 커서 국어사전을 바로잡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모든 단어에 걸맞는 족보를 부여하고 체계를 부여하겠다는 거다. 그때 결심하며 흥분했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다 필요없고 원초적으로 인간의 언어가 문제다. 언어가 개판이라서 도무지 의사소통이 안 된다. 말이 안 통한다. 그런데도 이 나라가 그럭저럭 굴러는 간다. 여기에는 트릭이 있다. 까발겨야 한다.

 

하루는 담임선생님이 ‘인생은 요령이다’ 하고 설파했다. ‘너희들은 요령있게 살아야 해. 요령 모르고 살다가는 나처럼 선생질이나 하게 되는거야.’ 그런데 그 선생님 참 요령없다.

 

남에게는 고지식하게 살라고 하고, 자기만 몰래 요령을 피우는게 참된 요령이 아닌가? 요령을 공개적으로 떠들어버리면 그게 어찌 요령인가? 요령부득이지. 어쨌든 나는 요령을 만들었다.

 

과장이 잔소리를 하면 속으로 애국가를 부르는 천하무적 홍대리의 방법을 쓰는 거다. 그것은 모든 문장의 끝에 ‘~라고 한다’를 붙이는 것이었다. 그러자 모든 것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뭐시라?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다고? 말도 안돼! 하지만 ‘거북이가 토끼를 이기는 걸로 한다’고 하면 말이 된다.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게임의 문제다. 게임의 룰에 관한 문제다.

 

거북이와 토끼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처한 입장의 문제다. 거북이와 토끼의 사실은 불변이지만 각자의 입장은 조율될 수 있는 것, 유드리가 있는 것, 융통성이 있는 것이다. 다 이해된다.

 

사실로 보면 두 노인의 대화는 전혀 통하지 않지만, 게임으로 보면 두 노인은 서로 죽이 맞고, 조가 맞고, 포지션이 맞고, 밸런스가 맞다. 시스템이 돌아간다. 뒤뚱뒤뚱 돌아간다. 삐꺾대며 잘도 돈다.

 

언어 바깥으로 나오면 언어가 보인다. 문법 바깥으로 나오면 문법이 보인다. 게임의 룰이 보인다. 판이 돌아가는 구조가 보인다. 말이 안 통하는 두 노인의 대화가 비로소 말이 통하기 시작한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포지션은 통한다. 거울을 보고 최면술을 걸었어도 최면술을 가르쳐준 스승이 신호를 보내면 깨어날 수 있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한 차원 위에서 보면 다 통한다.

 

말의 내용을 보지 말고 말하는 사람의 눈을 보라. 그가 바라보는 곳을 보라. 그곳에 답이 있다. 자신에게 걸린 최면술에서 깨어날 수 있다. 톱니가 맞지 않을때 오히려 작동이 된다.

 

톱니가 꽉 끼었을 때 돌아가지 않던 시스템이 한 발을 뒤로 빼자 비록 울퉁불퉁하나마 그럭저럭 돌아가기는 하는 것이었다. ‘~라고 한다’ 덕분이었다. 뜻은 단어에 없고 포지션에 있다.

 

‘~라고 한다’는 포지션을 보는 것이다. 게임을 보고, 룰을 보고, 관계를 보는 것이다. 구조를 보면 보인다. 무엇이 보이나? 질서가 보인다.

 

진화론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린네의 생물분류법을 배우면서 내가 찾던 족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거다! ‘유레카’를 불렀다. 생물에 족보가 있다면 언어에도 족보가 있을 것이다.

 

국어사전은 이렇게 써야 해. 모든 단어에 종속과목강문계를 부여해야 해. 근데 이건 생물이고 단어들은 무생물이다. 무생물의 족보를 찾은 것이 구조론이다. 생물의 족보는 진화가 만들고 무생물의 족보는 인과율이 만든다.

 

원인과 결과를 합치면 사건이다. 사건을 일으키는 것은 에너지다. 계에 에너지가 투입되어 사건을 유발하여 존재의 족보를 만든 것이 구조론이다. 에너지의 결을 살피면 된다. 그래서 얻은 것이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결이다.

 

종의 기원을 읽었지만 다윈은 진화의 증거를 하나도 대지 못했다. 그의 백마디 말보다 하나의 화석증거가 더 그럴듯하다. 갈라파고스의 핀치 새 이야기는 기실 진화가 아니라 분화다.

 

기본적으로 말이 안 통한다. 언어가 틀렸다. 가다는 있고 오다는 없다. 주다는 있고 받다는 없다. 유에프오는 없다. 미확인이면 ‘닥쳐!’가 맞다. 만져보지 않으면 물체가 아니고 타보지 않으면 비행이 아니다.

 

말을 똑바로 해야 한다. 말은 엄격해야 하며 거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밀다는 있어도 당기다는 없다. 의하여는 있고 위하여는 없다. 비가 온다고 통보하고 오는게 아니다. 바람이 분다고 통보하고 부는게 아니다. 자연은 일방통행이다.

 

비가 온다는건 인간의 관점이다. 자연에는 능동이 있을 뿐 수동은 없다. 수동은 같은 행동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아챈 인간이 편의적으로 만들어놓은 단축키에 불과하다. 자연에 없다. 단축키 쓰지 마라.

 

◎ ‘홍길동이 내가 있는 쪽으로 간다.(길다)’ -> 홍길동이 온다.(짧다)

 

‘온다’는 일종의 단축키다. 간다고 하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방향을 지정해야 한다. 온다고 하면 방향을 생략해도 된다. 단축키를 쓰면서부터 모든게 엉망이 되었다. 과학이 비과학이 되었다.

 

하나의 사건이 하나의 존재라면 수동은 독립적인 사건이 아니다. 내부에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사건으로 성립될 수 없다. 사건을 중심으로 판단해야 하고 에너지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

 

귀신이 없듯이 없는 것은 없다고 해야 한다. 마이너스는 있고 플러스는 없다. 척력은 있고 인력은 없다. 빛은 있고 그림자는 없다. 없는 것을 있다고 하니 세상이 헷갈려서 톱니바퀴가 안 맞게 되고, 노인의 대화가 통하지 않게 되고, 세상이 뒤죽박죽 된 것이다. 바로잡아야 한다.

 

다윈의 생존경쟁, 적자선택 개념은 인과율과 안 맞다. 이건 뭐 1+1=2가 안 되는 거다. 초딩이냐? 산수 못해? 바보냐? 정신차려! 진화는 백퍼센트 유전인자가 만드는 것이다. 다윈은 함부로 단축키를 쓴 것이다.

 

단축키는 예술의 방법일지언정 과학의 방법론은 아니다. 비가 내린다가 맞다. 비가 온다는 틀렸다. 왜냐하면 당신은 350킬로 고공에 떠 있는 우주비행사이기 때문이다. 비는 당신쪽으로 오지 않기 때문이다.

 

핀치새의 부리는 진화가 아니라 분화인데 진화라고 표기를 잘못한 것이다. 족보가 있어야 하고 체계가 있어야 한다. 말이 바로 서야 한다. 언어의 족보는 사건의 인과율에 따라 결정된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철학자나 과학자는 없었다. 그들은 비겁했다. 진실을 똑바로 보지 않았다. 그들은 편하게 단축키를 써버렸다.

 

시트콤 주인공들은 모두 카메라를 보고 앉아 있다. 옆으로 나란히 앉아 대화하는 바보는 없다. 대화는 마주보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 화면에 인물을 모두 담으려 하니 소파가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바보다.

 





 

 0.JPG


http://gujoron.com




[레벨:4]토마스

2012.03.21 (22:59:58)

 

인간의 행동중 참 이해가 안가는 것 중 하나가 귀신은 없는데 왜 귀신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많으냐는 것입니다.  있는 걸 무서워해야지 왜 없는 걸 무서워할까요?

무서워하다보니 없는 귀신을 실제로 있다고 믿는 사람이 생겨나고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2.03.21 (23:10:00)

귀신을 무서워 하는게 아니라

무서워 하는 것의 이름을 귀신이라고 붙인 거지요.

 

귀신을 무서워 하지 않으면

제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게 되는데 이는 인간의 진화에 방해되는 요소입니다.

 

원시인은 무조건 남의 힘을 빌리는게 낫지요.

유전자는 무서울 때 남의 힘을 빌리라고 명령하고 있는데

 

남의 힘을 빌리려면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을 하려고 하니 아뿔싸 주어가 없는 겁니다.

주어가 없다>주어를 대령하라>주어는 귀신으로 하라.

 

실체는 없는데 포지션은 있소.

그 포지션에 무얼 갖다 두든 아무러나 상관이 없소.

 

[레벨:2]호롱

2012.03.22 (09:38:32)

 진화론은 예전에 알게 돼서  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요.

   머리 기른 원숭이인가 새로운 책을 보고  개인적으로,  다시 흥미가 생겼던 것 같네요 .

 

[레벨:6]바라

2012.03.31 (03:14:24)

플러스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마이너스를 알았을때의 충격은 이만저만 하지 않았던 때가 생각나네요.

구조론의 내용을 한편의 영화나 동영상 같은 것으로 알리면 그 또한 굉장한 일이 아닐까요?

대략 동렬님 가끔씩 출석부에 쓰는 그림같은 것에서 느껴지는 그런 이미지들가지고 충분히 해낼 수 있을것이라 생각합니다.

[레벨:8]상동

2012.12.24 (12:05:18)

동렬님의 개인사에 유머가 많네요.

좆이 자지를 본다는 글부터 빵 터졌습니다..

무서운 것의 포지션은 존재한다..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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