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은 모든 문제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 이 말을 제멋대로 오해하여 ‘이 돌멩이를 황금으로 바꿔봐.’ 하는 식으로 나오는 사람과는 대화할 필요없다. 이건 말이 안 통하는 경우다. 구조론은 새로운 체계의 언어다. 기존의 언어가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을 구조론이 해결한다. 무슨 뜻인가? 세상의 모든 문제는 결국 언어의 문제, 소통의 문제라는 거다. 이 점을 바로 이해해야 한다. 언어가 뭔가? 사람과 사람의 생각을 연결하는 것이 언어다. 한 사람의 생각에 다른 사람의 생각을 보태서 더 큰 생각을 만들어간다. 그렇게 큰 생각의 나무가 자란다. 계속 자라면 언젠가는 세상의 모든 영역을 커버한다. 그렇다면 답은 찾아진 것이다. 길만 찾으면 그 길로 계속 가면 된다.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길만 찾아주면 된다. 그 길로 목적지까지 가는건 각자의 몫이다. 지도와 같다. 지도는 평면 위의 서로 다른 두 지점을 연결한다. 지도만 있으면 계속 연결하여 어떻게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수 있다. 지도와 나침반만 쥐어주면 문제는 해결된 것이다. 답은 찾아진 것이다. 그 지도를 가지고 부산을 가든, 해남을 가든, 삼천포로 빠지든 그건 각자가 알아서 할 문제다. ◎ 문제 -≫ 답 -≫ 실행 긴 지렛대와 받침점이 있으면 지구를 들 수 있다. ‘당장 지구를 들어봐’ 하고 다그치는 사람과는 대화할 필요없다. 지구를 들 수 있는 원리만 설명해주면 된다. 실제로 드는건 각자 알아서 할 몫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거다. 정확한 지도만 있으면 된다. ‘당장 나를 부산까지 데려다 줘.’ 하고 떼를 쓴다면 곤란하다. 설사 전지전능한 힘이 있어서 돌멩이를 황금으로 바꾸고, 사람을 곧 부산에 데려다 주고, 지구를 들어준들 의미없다. 그래서 뭐하려고?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공연히 금값 폭락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우리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인간이 좌절하는 것은 가다가 중간에 막혀서 그동안의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곳에는 길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 안 간다. 길이 있는줄 알고 가다가 중간에 길이 막히니까 화가 나는 것이다. 그동안의 노력이 헛수고로 되었기 때문에 짜증이 나는 것이다. 이게 풀어야 할 문제다. 구조론이 문제를 해결한다. 개가 답답한 것은 자신이 들판에서 본 멋진 풍경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거다. 그러나 사람은 언어가 있다. 말할 수 있다. 속이 시원하다. 답답증을 풀어주는게 중요하다. 1+1=2다. ‘나는 2가 싫걸랑요. 1+1=3으로 만들어 주세요.’ 하고 무리하게 떼를 쓰는 녀석과는 더 이상 대화할 필요가 없다. 그건 무리다. 문제해결은 순리다. 뉴턴은 실제로 많은 문제를 해결했다. 뉴턴 이전의 봉건시대와는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뉴턴이 혼자 해결한 것이 아니고 뉴턴 이후 여러 사람이 지혜를 합쳐서 해결한 것이다. 뉴턴은 길을 열었을 뿐이다. 세 가지다. 첫째는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 발견, 둘째는 뉴턴의 힘의 법칙 발견, 셋째는 금속활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걸로 팀플레이가 이루어졌다는 거다. 그냥 혼자 어떤 사실을 안다는 것은 의미없다. 지구가 도느냐 태양이 도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다. 지구가 돌든 태양이 돌든 도는 넘이 피곤한 거다. 내 알 바 아니다. 중요한건 팀플레이다. 지식이 한 개인의 머리 속에 머무르지 않고 집단지능 형태로 전염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갖추어져야 할 몇가지 기초적인 소스가 있고 그것을 확보하자 근대가 일어났다. 르네상스와 뉴턴과 금속활자가 그것을 가능케 했다. 혼자서 안 되던 것이 팀으로는 되었다. 마찬가지다. 구조론은 팀플레이를 가능케 한다. 여러 가지 개별적 지식을 하나의 체계 아래 통합해 낸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무엇인가? 체계다. 체계(體系)는 몸통에 팔다리를 연결하듯이 줄줄이 이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왜 잇지 못할까? 좌표를 찍어주지 않아서 그렇다. 다음 지도는 좌표를 알려주지 않는다. 주소를 알아야 내비를 찍는데, 만약 주소도 없다면 어떻게 하지? 답이 없다. 못 간다. 결론은 좌표체계가 있어야 하고 주소체계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게 언어다. 언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언어가 없다. 그래서 구조론을 만든 것이다. 좌표를 찍어주고 주소를 찍어주면 각자 알아서 찾아와야 한다. 답은 이미 제시된 것이다. 물론 공중으로 못 가고 땅속으로도 못 간다. 그러나 합리주의라는 관점에서 생각하자. 갈 수 있는 곳을 주소를 몰라서 못간다는건 말이 안 된다. 이건 참으로 답답한 거다. 갈 수 없는 곳을 못 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과거로도 못 가고 미래로도 건너뛰지 못한다. 구조론은 갈 수 있는 길을 가게 해준다. 필자의 글을 읽고 반감을 느낄 사람 많다. 문제에 답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답이 있으면 곧 그 길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부담스러운 거다. 그 사람들은 세상의 문제에 답이 없기를 원한다. ‘인생은 거듭 회의하며 불안한 가운데 희미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는 철학을 가진 자들 있다. 그들은 공연히 이맛살을 찌푸리고 우거지상을 한다. ‘이게 철학자의 표정이지’ 하는 식이다. ‘철학이 뭐냐구? 답은 없어. 철학이 뭐냐고 묻는 것. 그게 바로 철학이야.’ 이런 자들은 자격이 없다. 구조론은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 그리고 답을 제시하는 자에게 발언권이 있다. 물론 아직 완벽한 지도는 제작되지 않았다. 좌표만 찍어주면 자동으로 찾아가는 시스템은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소스는 주어졌다. 나침반이 발명되었고 지도제작법이 발견된 것이다. 좌표체계도 만들어졌다. 각자 알아서 자기 인생의 지도를 만들면 된다. 문제해결의 우선순위와 접근경로를 판단하는 방법은 구조론이 제시한다. 그것이 나침반과 좌표의 역할을 한다. 구조론은 분명한 답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대의 등을 떠민다. 실천하라고. 환자가 의사를 찾아왔는데 어디가 아픈지 대답하지 못한다. 특히 정신과라면 그게 심하다.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답을 못하는 경우는 대개 문제가 불분명한 경우다. 예컨대 소립자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는 답을 모르는게 아니라 실은 문제를 모른다. 최근 힉스입자를 발견했다는 보도가 있지만 이건 답을 못찾은게 아니라 실은 문제를 못 찾은 거다. 일단 뭔가를 물리적으로 포착해야 그 넘의 위치와 방향과 속도와 질량을 알아내든가 말든가 하는 것이다. 자신의 목적지가 부산인지 울산인지 마산인지 분명히 말해야 확실한 좌표를 찍어주는 거다. 구조론은 명확히 확정된 문제에 확실한 답을 제시한다. 실행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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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1600년대 프랑스 한 수학자 데카르트가 수학사에 큰 획을 긋는 기막힌 것을 발명합니다.
"좌표 평면"
예전엔 하나의 선에 데이터를 나타냈는데.
데카르트가 두개의 교차하는 수직선과 원점을 찍은 후 부터,
직선 곡선 도형을 좌표평면에 구현 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때부터 기하학의 법칙은 방정식을 이용한 계산으로 증명할 수 있게 되었 다는군요.
과거에는 도형을 연구하는 학문인 기하학과 방정식을 연구하는 대수학이 별개의 학문이었는데.
좌표평면에서 두 학문이 서로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하여 강력한 문제 해결책을 만들어 시너지 효과가 일어났다더군요.
구조론도 이와 같은 역할을 하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