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잰데. ㅎㅎ
회사에 들어가서 시키니까 포박.
회사를 만들어서 시켰으면 대박.
노가다야 오래전부터 하청업체들이 해온건데...
한쪽사회에서는 큰 돈을 받고 다른쪽 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싼돈을 받는게 요인.
여튼 프로그래밍은 과도하게 전문가의 영역으로 옮겨간 측면이 있고, coding, compiling, testing같은 단계들이 너무 아는 사람들 위주로 (unix)안에서만 이뤄지니까, 그리고, 도제시스템으로 일정량 이상의 노가다 한사람들한테만 전수되는게 문제.
ms .net처럼 제어가 쉽게된 complier를 개발하던지, 아니면, compile자체를 없앤 matlab같은 수준으로 올려서, 누구나 프로그래밍을 하게 하면, 위와같은 문제들 없어짐.
실은, 아이폰 사용자들이 자기가원하는 엡스를 개발할 수준의 개발 tool이 필요함. 앞으로는 그런 개발 tool,쪽에 수요가 갈것임.
당시 저자는 인도의 전문적 아웃소싱회사에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와이프의 생일까지도 비서를 두어 해결한다고 책에 써 놓았더군요
실천하는 사람이 있을줄이야 ㅎㅎ
배경이 똑 같소.
한국은 5년째 레이제라블을 찍었고, 다시 5년 동안 레미제라블 시즌2를 찍어댈 것.
170년 전 프랑스, 배우는 서양인들, 그런데 내용은 우리네 사는 꼴.
대선에서 패배를 맛본 사람들이 힐링을 하기 위해 이 영화를 봤다는 소리는 개소리. 이런 영화보고 힐링인지 머시기인지 될 정도라면 애초에 대선결과에서 스트레스 같은 거 전혀 안받을 사람. 그냥 재미있으니까 봤겠죠. 저는 뮤지컬 영화 안좋아해서 보고 싶은 맘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니까 따라서 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요.
그것도 이유가 되겠으나, 먼저 본 사람들이 꼭 보라고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요.
아침, 눈뜨자마자 후다닥! 아이들 데리고 함께 본 영화, 뭐 아이들이야 안 물어봐서
잘 모르겠지만(별 생각 없이 보았을 수도 있겠으나)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좀 지루함이 있나 싶었는데 그 뒤로 완전 몰입! 영화가 끝났는데도 더 하면
안되나하는 아쉬움이 많이 들었던 영화.
아는 분들께 자연스레이 추천하게 된 영화.(봐라, 마셔라, 들이 부어라, 그렇게는 말하지 않았음... ^^)
그런데 이 분들, 반기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아마 보았으리라 생각하는데 뭐 안 봤다고해도 괜찮고...^^
완전 몰입해서 보았던 영화인지라 또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지요.
영화를 보고 난후, 서점에 가서 레미제라블 책을 여섯권이나 신청해서 가져 다 놓았습니다.(나의 병...^^)
영화를 보고 나서도 뭔가 또 재밌는 일이 있다는거.(자꾸 재밌는 일을 만들어서 죽기 살기로... 요즘...^^)
아이 옆에 나이든 남자 분이 영화를 보았는데('오, 나이드신 분이 이 영화를 보러 오셨네!'하며
모르는 분이었지만 그냥 반가움이 들었음)) 근데 중간에 보니 어라, 보이지 않았음.
(아마 지루해서 보다가 나가신듯)
아내랑 이 영화를 보고,
앞으로 레미제라블 지루하다는 사람이랑은 상종하지 말자고 다짐.
19세기 프랑스를 재현한 리얼리티, 배우들의 가슴 절절한 연기, 인간다운 삶을 위해 투쟁하는 민중.
뭐 하나 뺄 것이 없는데 지루하다니.
ㅋㅋ 아마 레미제라블이 무슨 각종 특수 장치로 무장한, 숨돌릴틈도 없는
추격 액션 헐리우드 울트라 슈퍼 블록버스터 액션 무비인줄 알았는가봐.
일할 때 클래식을 틀어놓고 일을 하면 정서적으로 안정되어서 일이 잘 되는데,
그중에서도 베토벤의 음악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베토벤의 운명을 많이 들어서 그의 음악이 격렬할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그의 음악 중 봄이나 로망스를 들으면, 그의 음악이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희노애락과 전원을 어떻게 그렇게 음표로 잡아 낼 수 있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베토벤도 가슴에는 혁명을 품고 살았습니다.
파리가 1789년 시민혁명으로 첫 공화정이 들어서는 혼란 스러운 상황이 지속될 때
베토벤은 나폴레옹을 주시했고
그를 위한 영웅적인 곡을 쓰고 곡의 이름을 나폴레옹으로 붙이려고 하다가
나폴레옹이 다시 황제정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크게 실망하여
곡이름을 쥬피터로 바꿉니다.
파리도 진정으로 공화정이 들어서기까지 100년이 넘게 헤멨던 것 같습니다.
이런 걸 알고 있었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안타까우면서도 이번에도 또 기다려야 하는 구나하는 서글픔도 들고
영화를 보는 내내 복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참고로 모차르트도 혁명가 였습니다.
루이 16세의 부인 마리 앙뜨와네뜨가 살던 합스부르크 궁전에서 연주회를 갇기도 했던 모차르트는
연주여행을 다니면서 신분의 장벽을 느끼고 극복할 수 없게 되자
오스트리아의 시민이 아닌 세계시민으로 살기위해 단체에 가입합니다.
그 단체 또한 그 당시 빈의 진보적인 단체(이름이 잘 생각 안남) 였습니다.
ㅠㅠ...시간이 안되서 영화를 못 봤음...
대화에 끼어들고 싶어도 예전거랑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몰라서 못 끼어들겠네...
소장 DVD는 레미제라블 10주년 기념 콘서트네요.
그럼 한 2년전정도 그 무렵 본 뮤지컬 영화는 다운받아 봤다는 것인데... 몇년도에 나온 뮤지컬 영화인지는 모르겠다라는...
이번에 나온 레미제라블은 그때와는 어떻게 다른지 점점 더 기대가 되오.
98년도 버전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는 것도 나름 좋을듯.
오프닝 자막에서 26년만에 왕이 다시 돌아왔다에서 100% 감동받고 시작함.
정말, 창피해
져도 좀 당당하게 못 있나!!
최근 김동렬선생이 말씀하신 망조든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현상 즉, 자학 코미디죠. 늙은 수컷 침팬지가 마지막 수단으로 떼쓰기 데굴데굴 엉엉엉 생쇼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나라당의 천막당사 자학 코미디야... 회초리들고 기다리는 친한 넘들이 줄서 있었으니 통하는건데..
이넘들은 친하지도 않은데, 친한척하며 회초리들어달라고 하니 문제...
결국 박근혜의 세상이 되었으며, 우리는 가망없다고 만천하에 알려주고 있는 상황임.
김동렬선생 칼럼 '김지하의 정신병' 중 부분발췌
그리고 결정적인 시기가 왔을 때 젊은 수컷은 늙은 수컷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그동안 괴롭힘을 당하며(늙은 수컷은 지켜주지 못했다.) 젊은 수컷의 힘을 파악한 암컷들은 일제히 태도를 바꾼다. 젊은 수컷 편을 드는 것이다. 이때 늙은 수컷의 대응은?
갑자기 어린이로 퇴행한다. 땅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며 악을 쓴다. 최악의 추태를 부린다. 그 모습은 비참하기 짝이 없다. 대장 침팬지의 체면은 집어던져 버린다. 딱 김지하 짓이다.
그 결과는? 암컷들의 동정을 끌어내기는커녕 도리어 비웃음을 싼다. 정권은 교체된다. 늙은 수컷은 배신자 암컷들을 원망하며 쓸쓸히 물러난다.
중요한 점은 늙은 수컷의 퇴행적인 떼쓰기가 동정심유발 효과를 내기는 커녕 반대로 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 이는 유전자의 명령이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최후의 도박을 감행한다.
암컷 한 두 마리가 동정심에 끌려 잠시 곁을 지켜주지만 그걸로 끝이다. 정권교체기가 되면 무의식적으로 공동체를 위해 자기를 파괴한다. 김지하가 그렇게 하고 있다. 악을 쓰며 데굴데굴 하고 있다.
의미가 있다. 늙은 수컷의 떼쓰기가 일대소동이 되어 정권교체 사실을 정글의 침팬지 무리 모두에게 알리는 효과가 있다. 최후의 도박은 역설적으로 젊은 수컷의 왕좌를 튼튼하게 만들어준다.
“너희들이 도와주면 나는 빼앗긴 왕좌를 되찾을 수 있어. 결정은 너희가 하는 거야.”
울랄라 세션이 나왔던 슈스케3를(2011년) 첫회부터 마지막 결승전까지 다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작년 슈스케4는 별로 재미없었고 가장 재미있었던 시즌은 허각이 우승한 시즌2(2010년) 였는데요.
슈스케3에서 임윤택이 보여준 모습은 한마디로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준우승한 버스커 버스커도
좋았지만 슈스케3는 울랄라 세션 때문에 빛났었다라고 말할수 있을거 같습니다.
임윤택이 보여준 뛰어난 리더십, 강한정신력, 센스있는 음악감각, 패션감각, 통찰력, 뛰어난 언변등은 정말 놀라웠죠.
음악을 하는 그룹에서 팀이란 이런것이다.. 리더의 역할이란 이런것이다 라는걸 보여줬다할까요.
임윤택에게 정말 기적이라는게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픈 마음입니다.
상황에 임하면서 자신과의 전쟁이 더 큰 문제인가 봅니다...
2차대전때 소련군 전사자중 백만명이 전쟁터에서 뒤로 빼다가 죽은 숫자라고 들었는데...,
참 현대전 양상이 한 세대후에도 이럴지... 강제와 자율과 고민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짚어봐야할지...
오호. 축하하오.
올해는 서점가를 정복해야 하겠소.
추카하오. 본좌도 빨리 와꾸잡고 책을 내야겠소.
오 멋진걸
멋진 보이~ ㅋ
축하!
대박 축하!!
오...축하드려요!!!
시사 리트윗 보면서.... ㅋㅋ
양모님 축하하오!
도서관에서 대출 1위가 아니라
서점에서 판매 1위로 가자! ㅎㅎㅎ
박그네가 죽인 거죠.
세상은 좁아도 박그네는 많소.
도처에서 출몰하오.
그만큼 많은 아론들이 죽는 거군요.
마음이 아프다.....
aron곁에 없던건 우리 모두의 죄...
50년일까?
아론 슈와츠의 죽음을 슬퍼해야 하는 까닭 | Bloter.net
2013년 1월 11일, 불과 26세(한국 나이로는 27세)의 나이로 아론 슈와츠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삼촌 마이클 울프가 밝힌 바에 따르면 사인은 자살이다. 슈와츠는 국내에는 오바마가 지난 대선에서 국민과의 대화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유명한 소셜 뉴스 사이트 레딧의 초기 개발자다. 그는 정치 개혁에도 관심이 높아 정보통신기술을 사용해 정부 투명성을 제고하고 시민 참여를 높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데 노력했다.
인터넷 자유의 강력한 옹호자이자 위대한 해커
아론 슈와츠는 크레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라는, 지금은 광범위하게 쓰이는 저작권 디지털 라이선스가 처음 만들어질 때 기술적 부분에서 크게 기여했다. ‘변화를 요구하라’(Demand Progress)란 단체를 설립해 지난해 초 전세계적으로 문제가 됐던 미국의 지적재산권 보호 강화 법안인 온라인 해적행위 방지법안(SOPA), 지적재산권법안(PIPA)에 적극적 반대 활동을 벌였다. 최근까지도 그는 더 자유로운 인터넷, 더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의회 개혁 단체인 루트스크라이커와 온라인 시민 운동 네트워크인 아바즈와 같은 재단에서 활동했다.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유수의 언론들이 보도한 것처럼 신년 벽두부터 인터넷 세계는 그들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 21세기의 가장 위대한 해커 중 한 명을 잃어버렸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행사에 참여한 아론 슈와츠. Fred Benenson의 사진. (CC BY)
개인적 자살? 제도적 타살!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정치적 천재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흔히 천재의 요절에서 생각하기 쉬운 광기나 병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아론은 그가 너무 아론다웠기 때문에 죽었다. 그의 이력에서 보듯, 14세부터 개발자로서 두각을 드러낸 아론은 기술적으로만 해박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민감했고, 실제로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행동했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시대를 앞서가려 하고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그에게 항상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자기 노트북으로 세계 최대의 논문 포털인 제이스토어(JSTOR)의 자료를 불법 유출해 소장했다는 혐의로 아론은 연방법원에 최대 50년 감옥형을 받을 수 있는 중범죄로 기소됐다. 아론은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했으나, 법원의 저작권 보호에 기운 성향을 알고 있기에 자신의 미래에 대해 암울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
물론 현행법에 따르면 아론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도 없다. 그가 한 행동이 가장 바람직한 행동이었는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하지만 법원이 제이스토어가 자신들의 정당한 재산을 “훔쳤다고” 주장했으나 그 자료를 토대로 아무 상업적 활동도 하지 않은 아론을 테러리스트 취급해 최대 50년 감옥형을 기소한 것은 더 회의적이다. 아론의 어머니가 해커뉴스에 쓴 바에 따르면 아론은 이 문제로 지속적으로 우울증에 시달려왔다. 유족들은 이것이 그의 죽음의 결정적 계기였다고 주장한다. 아론의 죽음은 개인적 자살이 아니라 제도적 타살이었다.
로렌스 레식, “아론의 죽음은 아론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아론의 오랜 친구이자 동료이며, 하버드 로스쿨 교수이고, 인터넷 관련 법·정책에 관한 국제적 권위자인 로렌스 레식은 그의 블로그에 아론의 죽음에 대한 장문의 추모글을 썼다. 변호사이자 친구로서 아론이 어떻게 소송에 연루됐는지, 그로 인해 그의 개인적, 사회적 삶이 어떻게 피폐해져갔는 지 지켜본 당사자로서 레식은 ‘아론의 죽음이 아론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라고 썼다. 레식은 아론이 추구한 방법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목적에는 전적으로 동감했다고 했다. 인터넷 산업과 사회 정의를 위해 그토록 무수한 노고를 그렇게 짧은 시간에 열정적으로 다한 젊은이에게, 원고가 ‘훔쳤다고’ 주장한 자료로 아무 상업적 활동도 하지 않은 ‘피고’에게 최대 50년 감옥형을 기소하는 사법 시스템은 부정의하며 수치라고 지적했다.
사실, 레식이 지적한 것처럼 애초부터 상업적 목적으로 대규모 투자 유치를 통해 제작된 할리우드 영화도 아니고 논문은 상업적 동기도, 가치도 그렇게 높지 않다. 대부분의 교수나 연구자들이 중시하는 것은 논문으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명성을 얻는 것이고, 그러려면 해당 논문이 최대한 확산되는 것이 더 이상적이다.
▲Lawrence Lessig and Aaron Swartz (2002) / Rich Gibson / CC BY
나아가 레식은 그런 시스템을 만드는 미국 정치의 로비 문제에 대해서 심각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웹2.0 패러다임을 창시한 오라일리 미디어의 팀 오라일리, 유명 SF 소설 작가인 코리 닥터로우, 하버드 버크만 센터에서 글로벌 보이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에단 쥬커만, 월드와이드웹(WWW)의 창시자 팀 버너스 리도 비슷한 시각에서 각자의 블로그 혹은 트위터를 통해 아론에 대한 추모와 아론을 죽음으로 내몬 현실에 대한 유감을 표명했다.
왜 우리는 아론 슈와츠의 죽음을 슬퍼해야 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아론 슈와츠는 무명이다. 그의 죽음은 자신이 살아왔던, 살아가고자 하는 삶과 많은 부분에서 무관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아론이 싸워왔던 현실은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아론은 새로운 기술이 기존 사회의 이익과 권력에 이바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혜택을 누리지 못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과 기회를 주는 것이라 믿었다. 아론은 사회에 부정의와 부조리가 있을 때 그것을 관망하는 게 아니라 그러한 기술의 발전이 사회의 부정적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이바지하여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그 믿음을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했다.
물론 아론은 복잡한 인물이었다. 아론은 때로는 극단적인 방식을 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기술이 더 발전한 세상이 더 사람이 살만한 세상이 되기 위한 비전과 열정을 갖고 있었고 그것을 위해 헌신했다는 점이 과소평가되서는 안 된다. 각종 법률과 정책을 이용해 어떻게든 신기술을 자유보다는 통제로, 평등한 기회의 확산보다는 불평등한 구조의 지속으로 이끌려는 산업 이해관계자들과 현명하지 못한 정책결정자들 사이에서 아론은 우리가 다음 세대에 대해 희망을 품게 하는 보석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를 죽인 시스템은 사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도, 혁신 경제와 민주 정치를 21세기에 지속해나가는 데 있어서도 큰 도전이고 위협이다. 그것이 우리가 아론 슈와츠의 죽음을 슬퍼해야 하는 이유다. 이젠 더 이상 그는 우리 곁에 없지만, 그의 유지는 잊혀져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에.
존재불안.
구조론게시판 일본과 같은 넘이오.
나를 좀 알아보고 친하게 대해 달라고 자기 소개하고 싶어하오.
늙은 수컷 침팬지 증후군.
맞소.
의사결정권을 상대방에게 넘기는 건데
친한 사이에는 저 수법이 먹힙니다.
안 친한 데 저런 수법 쓰다가는 개망신 당하지요.
근데 같은 기자들끼리 모여 있으면
우리끼리 다 아는 사이인데 하고 어물쩡 넘어가는 일이 많습니다.
그걸 노린 거죠.
왜 안 물어본 이야기를 하겠소?
1) 아무도 안 물어봄
2) 아무도 안 물어보니까 이야기 할 데가 없음
3) 이야기 할 데가 없으니까 답답함
4) 답답한 마음에 시도 때도 없이 자기 얘기를 늘어놓음.
그렇다면 왜 아무도 안 물어볼까?
원래 개인사 따위는 알 바 없고 물을 것도 없소.
사람들도 실제로 궁금해하지도 않고
연인끼리 서로의 개인사를 시시콜콜 묻는 것은, 지금 연인사 1막 1장을 공저하고 있는 중이라 그런 거고
가족끼리 서로의 개인사를 묻는 것은 지금 가족사를 집단창작하고 있으니까 그런 거고
위인전기에서 개인사를 쓰는 것은 집단지성이 어떻게 한 개인의 몸을 빌어 구현되었나를 추적하는 차원에서 쓰는 것에 불과하오.
연예인의 사생활이 기사거리가 되는 것은 사람들이 정말로 그 연예인의 사생활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안주삼아, 그것을 대화의 거리로 삼아 사람들과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때문인 것이고 결국 관심은 그것을 빌미로 서로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데 있지 않겠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론 사이트에서 혹은 다른 사이트에서, 혹은 사람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개인사를 맥락 없이 떠드는 것은, 그것을 보다 큰 공동체의 역사와 연결짓지 못했기 때문이오.
개인사를 떠벌이는 것은
무리에서 퇴출당하게 된 수컷이
마지막으로 결정권을 암컷들에게 넘겨서 최후의 베팅을 하듯이
상대방에게 결정권을 넘겨서 동정심을 구하는 방법인데
친한 사이에는 먹히는 방법입니다.
퇴물 침팬지는 암컷들과 친하니까 먹힐거라고 기대하지만
암컷의 마음은 이미 차갑게 돌아섰습니다.
제가 여기서 잘못했군요 . 조심하겠습니다 .
제목보고 윤창중인 줄 알았소.
그 인간 마음 속에는 '내가 니들 보다 선배야'
'나도 기자했으니, 니네 맘 알어. 적당히 넘어가줘...'
자꾸 엥길려는 윤창중. 구역질나서 이제 그 사람 기사는 클릭 안함.
대변인 시킬 놈이 그리도 없시까
.
꼴통들 대변인은 꼴통 중에서도 최꼴통이라야 한단 말인가!
암튼 잘 골랐다 카이!
간첩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