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으면 슬퍼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준비가 되어 있다.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있던 환자가 죽으면 누구든 잘 연기할 수 있다.
중국의 곡쟁이 아줌마 군단은 생수 1.5리터를 마시고 온다.
뽑아낼 만큼 채워서 온다.
갑작스레 사람이 죽었다면 다들 충격을 받고 긴장하고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눈물은 자신의 약점을 들키는 것이며 정글에서 호랭이에게 물려가기 딱 좋은 사태다.
긴장과 스트레스와 임무가 눈물을 빼앗는게 정상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면 당장 내가 뭘 해야되지 하고 허둥대는 것이며
시골이라면 동네 영감과 할멈들이 와서 도와주므로 쉽게 연기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것은 자기 계획을 가지는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쉽게 결혼해서 자기가 주도한 계획이 없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다.
슬픔은 계획이 틀어졌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할 때 일어난다.
그러려면 긴장이 풀려야 한다.
슬퍼한다는 것은 스트레스가 가라앉고 긴장이 풀어졌다는 의미가 된다.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계획한다는게 진짜다.
기쁨과 슬픔의 감정은 그 계획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있는 것이다.
계획이 없으므로 상실도 없는 것이며
때려부수는 행동은 영화의 설정과 맞지 않는 행동이다.
영화의 설정대로라면 화장실에서 세 번 웃고 차분하게 유가족 연기를 하는게 맞다.
눈물이 나지 않아도 눈물이 나는척 하는 것은 쉽다.
손수건 한 장만 준비하면 되잖아.
공연히 주변 사람의 예상과 어긋나는 행동을 해서 마찰을 일으키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증거다.
젊은이의 사랑은 의존이다.
뚜렷한 계획은 없지만 막연한 기대감이 있는 것이다.
아기가 엄마에게 의지하듯이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도 막연한 기대 속에 있다.
보통의 사랑은 계획이다.
계획의 크기만큼이 사랑의 크기다.
머리로 세운 구체적인 계획을 말하는게 아니다.
심리적인 투자를 말하는 것이다.
무엇을 할까 하고 기대할 때의 상상과 흥분이 누적되는 것이다.
그에 따른 관성력이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디로 신혼여행을 가서 무엇을 하는 계획이 아니라
심리적 에너지 투자의 총량을 말하는 것이다.
노인의 상실은 단절이다.
익숙한 것에서 밀려날 때의 당혹감이 슬픔으로 표현된다.
상실은 자연스러움에서 벗어나 계속 당황하게 되는 것이다.
안정감을 잃고 불안정해지는 것이다.
젊은이는 의지하는게 사랑이고
보통은 계획하는 것이 사랑이고
노인은 안정된 것이 사랑이다.
심리적 에너지의 투자에 따른 관성력이다.
무리해서라도, 통일이라도 해야. 남초 여혐을 극복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