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SNS 시대의 정보의 흐름
SNS 시대가 열렸다. SNS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트위터도 있고, 페이스북도 있고, 블로그도 있다. 트위터는 사실 소셜 네트워크라기보다는 소셜 미디어라고 해야 옳을 것이고, 블로그 소셜 네트워크라고 통칭하기엔 뭔가 부족함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기술적인 차원에서 볼 것인가? 혹은 그것의 기능의 차원에서 볼 것인가에 따라서 그 의미는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일단 SNS의 정체란 본질적으로 '개인이 미디어를 가지게 되었다' 는 것이다. 1인 미디어, 그리고 그 연장선.
이전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블로그는 컨텐츠, 트위터는 미디어, 페이스 북은 커뮤니티 다. 1인 미디어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블로그가 컨텐츠에 속한다는 것이고, 사실 SNS에서 떠돌고 있는 컨텐츠는 꼭 블로그 뿐만 아니라, 뉴스기사나, 칼럼 등이 주를 이룬다. 컨텐츠가 트위터를 통하여 확산되고, 그렇게 확산된 정보중에 일부를 다시 페이스북으로 가져오는 식이다. SNS는 메시지가 가는 경로인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트위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다수가 트위터를 통하여 뉴스와 같은 새로운 정보를 얻는 목적으로 트위터를 이용한다고 한다. 실제로 기성 미디어보다 더 빠르게 뉴스를 전달한 사례도 수 없이 많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느 뉴스 사이트에서 정보를 접하기까지는 너무 많은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정보문화포럼에서는 트위터의 그러한 파급력에 관하여 문제제기가 있었다. 과연 잘못된 정보가, 신뢰성이 없는 정보가 트위터에 올라왔을 경우에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 자정작용은 실제로 가능한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잘못된 정보가 삽시간에 퍼지면,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정보로 인하여 혼란에 빠지고, 어떠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되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 이전에 없던 'SNS' 라는 도구가 생긴만큼 그로 인하여 생겨날 여러가지 문제에 대하여 대비하여야 한다.
2. 신뢰성 없는 정보는 가치가 없는 것일까?
분명 잘못된 정보는 누군가에게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나타날 수가 있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트위터의 광장에서 내 뱉에버리면, 그것이 RT에 RT를 거듭하여 나와는 전혀 관게없는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버릴 수도 있다. 의도적인 거짓말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지난 4월 1일에 트위터에서는 세계적인 영화배우인 성룡이 죽었다는 메시지가 퍼졌다. 결국 만우절 개그로 밝혀졌지만,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차례의 활극이 펼쳐졌을 것이 분명하다. 성룡이 한국인이라면, 역시 기분이 않좋았을지도 모른다. 故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전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중일 때, 트위터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죽었다는 메시지가 널리 퍼진 적도 있었다. 세브란스 병원의 의사가 직접 확인하고, 트위터를 통하여 정보를 바로잡은 사례도 있다.
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열 명이, 혹은 백 명이 작심하고 거짓된 정보를 의도적으로 RT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순간 속아넘어갈 것이다. 순간적으로 혼란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SNS에서 정보의 자정작용으로 다시금 잘못된 정보를 바로 잡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 일까? 임팩트 있는 거짓정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곧바로 임팩트 있는 사실 정보가 있어야지만 가능 하다는 전문가의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SNS에서의 자정작용이 가능하건, 불가능하건간에 그 이전에 명제에 관하여 답을 해야만 할 것이다. 과연 신뢰성이 없는 정보는 가치가 없는 것일까? 거짓정보는 사회악인가? 그로인하여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잘못된 것인가? 우리는 이것에 관하여 생각해야만 한다.
3. 진실은 진실인가?
어떤 사람이 실수로 혹은 고의적으로 거짓정보를 트위터에 흘렸을 때, 그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것은 시간의 문제다. 연역과 귀납의 이야기다. 진실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거짓이 진실이다. 반대로 진실이 진실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갈릴레오 이야기를 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하늘이 돈다고 알고있는데, 갈릴레오가 지구가 돈다고 말했다. 지금 시점에서 본다면 갈릴레오가 옳지만, 당시에는 갈릴레오가 거짓을 말한 셈이 아니던가? 거짓된 사실을 유포한 죄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사실이라도 그때는 거짓인데, 시간이 흘러 진실이 되기도 한다. 어떤 절대자가 판단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도 아니고, 무언가 목격을 했더라도 보는 사람의 포지션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거짓과 진실은 또 다르다. 진실은 오직 시간과 인류의 작용-반작용에 의하여 밝혀지는 것이다.
가까운 사례로 천안함 침몰사건을 들 수가 있을 것이다. 서해상에서 천안함이 침몰되었고, 정부는 천안함과 관련된 많은 정보를 보안상의 이유로 공개를 하지 않아왔다. 그러다가 정부는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에 의하여 침몰되었다고 발표했다. 트위터에서는 정부의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 반응이 있었고, 정부의 발표내용보다도 더 논리적인 천안함 침몰 원인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이럴경우 설령 트위터를 통하여 많은 이들이 말하는 천안함 침몰에 관한 추측이 틀리고, 정부의 발표내용이 진실이라고 할 지라도, 그들이 트위터를 통하여 문제제기하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 그것이 사회를 혼란시키고, 사회적 비용을 소모시킨다고 하더라도 분명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하물며 정부 고위관계자가 북측과 비밀접촉을 하는 과정에서 천안함 사건에 관하여 사과를 구걸했다는 북측의 발표는 천안함 사건에 관함 정부의 발표와 대치되기 때문에 과연 정부가 진실을 말한 것인지,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알 수가 없다. 진실이기까지 그 무엇도 진실이 아니다.
4. 그것이 민주주의다.
SNS에는 진실이 없다. 모든 정보에는 진실의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SNS 뿐만 아니라 TV, 라디오, 신문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소식들에도 진실은 없다. 단지 진실의 가능성만이 있을 뿐. 몇 개의 사실의 조각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매스미디어 조차도 잘못된 사실을 보도하거나, 사실을 왜곡하거나, 조작된 사실을 알리기도 한다. 그리고는 은근슬쩍 발을 빼거나, 마치 그런 보도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 처럼,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도 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 할 수 있다.
SNS에서 우리는 진실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최대한 빨리 확인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정보에서 그런 것처럼... SNS는 그런 가능성들의 공간이다. 공론의 장이고, 사실 그 자체보다는 그것으로 기인한 세계의 변화를 희망한다. 정보 자체의 신뢰도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저마다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모든 것이 저마다 뒤엉켜있는듯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각자가 어떤 말을 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메시지가 역사에 남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것인가? 이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이미지가 다 깨진당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