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판결문을 잘쓴게
1. 유시민 말대로 어려운 용어 빼고 쉬운 말로 썼다.
2. 징징거리는 내란세력 어루만지는 내용도 일부 들어 있다.
3. 내란실패는 시민들의 저항 덕분이라고 분명히 못을 박았다.
4. 최종판정은 이익이냐 손실이냐가 저울의 기분임을 밝혔다.
특히 3항과 4항이 중요한데
시민들의 저항을 헌재가 인정한 것은 역사책에 써놔야 할 대목.
이익이냐 손실이냐가 왜 중요하냐면 그래서 한덕수가 복귀했기 때문.
장관이 대선관리 하는 것보다 총리가 대선관리 하는게 이익이 더 크다는게 본질
한덕수는 헌법위반으로 파면되어야 하지만 손익을 따져서 복귀시킨 거라는 말.
이 말의 의미는 국힘들이 주장하는 절차상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는 거.
절차를 따져서 얻는 이익보다 파면을 해서 얻는 이익이 클때 절차 무시해도 됨.
그러나신공 박기 전에 야당에 일부 책임이 있는듯한 표현은
역시 내란세력을 진정시킬 의도가 있다는 것이며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한 것이고 손실보다 이익이 중요한 것.
즉 내란세력을 어루만져주서 진정시키는 이익이
추상같은 심판으로 그들을 궁지에 몰아 발악하게 하는 것보다 크다는 거.
그러므로 최종결론.. 헌재는 정치적 판단을 했고
자기들이 헌정질서 유지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익 중심의 판결을 했고 그 이익은 헌정질서 유지 이익이며
그 이익을 위해 이재명 재판 무죄 날때까지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는 자백인 것.
어쨌든 이익 중심의 판결은 구조론이 중시하는
논리보다 심리, 심리보다 물리.. 결국 물리적 해결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인정
전체적으로 악당을 꾸짖어 단죄하는 판결이 아니고 .. 하긴 형법이 아니니까
내란세력을 설득하여 일터로 돌아가게 하는 판결이었음
고구려는 돌궐과 수나라의 침략을 막느라 한강유역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백제와 고구려는 조상대대로 앙숙이기 때문에 한강유역을 백제에 넘길 수는 없습니다.
백제는 신라를 총알받이로 이용해서 고구려를 막으려고 한강에서 발을 빼고 전라도, 가야, 왜 경영에 치중합니다.
신라는 중국으로 가는 항구가 필요했고 백제는 고구려와 국경을 맞대기 싫어 완충지대를 필요로 했던 거.
원래 백제는 한강유역만 차지하고 있었고 전라도의 침미다례는 가야와 비슷하게 반독립국인데
백제가 호남을 직접 경영하며 국력을 크게 키워 가야 왜와 연결하여 단번에 신라를 압도하려고 했습니다.
고구려가 신라를 뒷치기 할 수 있으므로 한강유역의 신라군은 못 움직인다고 생각한게 오판.
김무력군이 갑자기 남하한 것은 고구려와 밀약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시 지도에 색칠을 그렇게 해서 신라가 땅덩이는 커보이지만 백제가 더 강했습니다.
신라는 서라벌, 상주, 진천 세곳 밖에 근거지가 없고 나머지는 대부분 강원도 촌구석입니다.
대야성을 대가야와 연결하여 백제가 먹었으므로 상주를 묶어놓으면
서라벌과 김무력의 진천이 따로 놀아서 단번에 신라 아웃 가능.
결론.. 보은을 먹은 신라와 합천을 먹은 백제가 서로의 급소를 찌르는 형국인데
지도를 살펴보면 상주가 보은의 배후지인데 합천의 배후지는? 없음. 신라가 지정학적으로 유리했다는 거.
보은이 금강 상류이고 상주는 낙동강 상류인데 상류를 차지한 나라가 유리합니다.
성왕이 고구려와 내통해서 김무력군을 한강에 묶어놓고 보은 삼년산성을 쳐서 상주를 내려다봐야 했는데
관산성 전투를 살펴보면 하류에서 상류를 치기는 존나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신라가 상주-보은을 틀어쥔게 지정학적 알박기 성공.
모르는 사람은 신라 영토가 백제보다 크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지도에 색칠을 그렇게 한 거에요.
신라는 경주, 상주, 진천 도시 세개로 보면 됩니다.
강원도는 말갈인이 말안듣고 한강유역은 국경이라 말안듣고 경남은 가야라서 말안듣고
실제로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지역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결국 외교를 잘해야 한다는 거.
10년 겨울에 웅천성을 공격하였는데 이기지 못하였다.[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백합야전투百合野 戰鬪에서 부여창이 고구려를 격파했다.[일본서기]
삼국사기 기록에 고구려가 웅진(공주)을 공격한 기사가 나오는데
이는 한강유역을 여전히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었다는 의미
백합야전투에서 백제가 고구려를 이겼는데 위치를 김포로 비정하므로
공주까지 내려온 고구려를 백제가 물리치고 한강유역까지 회복했다는거.
만약 백제가 이겼다면 백제가 보은을 차지하고 소백산맥의 교통을 끊어서
한강유역의 신라군이 서라벌과 연결이 끊겨 고립되는 거.
백제가 4만의 대군을 동원했으므로 충분히 가능했음.
지도에 색칠이 그러할 뿐 당시 한강은 여전히 주인이 애매했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