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을 버리고 상식으로 판단하면 진실이 보입니다.
당시 한반도에는 구리가 없었으므로 모든 청동제품은 중국 태행산맥에서 온 것입니다.
이들이 만든 군장체제를 국가로 볼 수 있느냐는 논외로 하고
국가로 기록했으면 국가로 받아들이는게 정답입니다.
국가는 승자의 기록이며 기록상 그들이 승자인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날조 프레임을 들이대면 피곤한 거지요.
동시대에 많은 부족국가가 존재했으며 사로, 신라가 살아남은 것입니다.
고구려 이전에도 구려가 있었는데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록을 남겼다면 고구려가 신라에 앞서는 건데
고구려라는 말 자체가 구려중에 높은 구려라는 말입니다.
고구려가 있으면 중구려, 하구려, 소구려, 별구려도 있는 거지요.
이들 구려들은 고구려가 고려로 이름을 바꾸면서 고구려에 흡수되었습니다.
즉 신라는 이전 사로시대의 기록을 보존한 것이며
고구려는 이전 구려시대의 기록을 망실한 것이며
백제는 이전 마한시대의 기록을 부정한 것이며
그 이유는 고구려와 백제는 부여계 이주민이라서 원주민을 부정해야 하는 입장이고
신라는 바로 정복하지 못하고 왕의 사위가 되어 임금이 되었다가
도로 석씨에 권력을 내줬다가 다시 되찾으며 점진적으로 먹었기 때문에
신라 이전 사로시대를 부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역대 신라왕들은 박혁거세 묘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근데 백제는 동명왕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스스로 고구려계 이주민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고구려는 부여 시조묘에 제사를 지냈을지도 모를 일.
누구에게 제사를 지내느냐에 따라 역사의 기록이 결정되는 것.
결론.. 제사 지내는 넘이 이긴다.
삼국초기기록은 신뢰할만 하지만 연대를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는 없고
5세기경에 한자를 배운 최초의 역사기록자들이
500년 전을 헤아려서 대충 짜맞추었을텐데
그리스 역사를 보더라도 글자가 없던 시대는 믿을 수 없는 것이며
왕의 계보는 거의 맞을 것이나
중간에 나라가 쇠퇴해서 기록이 망실된 부분이 상당하고
왕이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기록말살형에 처해지는 것이고
늘일 수는 있어도 줄일 수는 없기 때문에 백년 정도는 늘었다 해도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박혁거세가 서당에 다니지도 않았을텐데 올해가 몇년도인지 어떻게 알아?
삼국사기는 신라 초기를 왕이 아닌 무당의 지배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제사는 지냈다는 거지요.
제사를 받아먹는 누군가가 있었던 것입니다.
소통하러 용산가서
불통만 하면서
기자회견은 왜 하나?
앞으로 소통얘기하면서 집무실 탓하는 리더는
건설사에 돈 주고 싶어서 안달만 리더만 보면 되는가?
세금이 굥 쌈짓돈이어서
천문학적인 세금을 맘데로 써보고 싶어서 용산 갔나?
대통령 말한미다에 세금이 줄줄 세는 것을 보고 싶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