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의 느낌을 잘 못 살렸다고 보는데
이웃집 사람이 오후 네시만 되면 오는 이유는
무언가를 원하여 얻으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집에 있는 최악을 피하여 피난 온 것입니다.
영화는 경치 좋은 시골로 설정해서 잘 안 맞습니다.
시골에 피할 곳이 많은데 왜 옆집으로 피신을 와?
영화는 망쳤지만 원작은 꽤 멋진 소설입니다.
인간은 욕망동물이 아니라 회피동물입니다.
삼천배를 해라. 108배를 해라. 스님은 루틴을 만들어 줍니다.
무엇인가를 플러스 하라고 시키는 거지요.
기도를 하거나 하면 안정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무언가를 회피하는 것입니다.
묵을 쑤라고 하는 스님도 있는데 묵을 쑬 때는
타지 않게 매우 저어야 하므로 무심한 상태가 되는 거지요.
교회에 가는 것도 무언가를 얻으러 가는게 아니라 사실은 회피행동입니다.
플러스로 가면 기도, 108배, 묵을 쑤라,
일만번 반복해라 하며 자꾸 가지를 치고 숫자가 늘어납니다.
결국 라마교가 되어버리는데 그들은 마니차를 돌립니다.
일련정종의 나무묘호렝게교도 같은 수법을 쓰고
무슬림은 하루 다섯 번 기도를 하고.
그게 임시피난은 되지만 근본치료는 아닙니다.
자기가 무엇을 회피하는지 알고 정면대결을 해야 합니다.
회피를 정면으로 맞서면 결국 자존감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의지할 형님과 대화할 동료와 부려먹을 아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존감의 본질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엘리트의식, 귀족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자존감이 없으면 속물행동을 하게 됩니다.
외제, 명품, 골프, 오마카세, 호캉스, 해외여행 찾는 사람이 자존감이 낮은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상을 주려고 하는 행동입니다.
타인에게 인정을 못받으므로 스스로 인정받는 행동.
차지철을 검색해 보면 이 자가 얼마나 자존감이 낮은지 드러나는데
괴상한 나치제복을 만들고 경호원 노래를 만들고 각종 기행을 합니다.
옷도 깨끗하게 머리도 단정하게 이런데 엄청 집착합니다.
123 사태 때 굥과 추경호가 같이 이발소를 간 것도 그런 행동입니다.
한동훈의 각종 뽕시리즈도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행동입니다.
사람을 사귀고 사람에 의지하고 거느리거나 인류에 기여하는 미션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징크스와 루틴을 지키는 터부 행동도 이 문제를 우회하는 편법이 됩니다.
자존감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망설이며 자기를 공격하는게 문제인데 루틴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음.
자존감이 낮으면 상대방이 내게 말을 걸어주도록 여러가지 기행을 벌임. 한동훈의 셀카행동.
자존감이 높으면 가만있어도 사람들이 말을 걸어서 피곤함. 발명가나 재벌총수나 스티브 잡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