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원과 방시혁” - 국민이 위대해져야 진짜다 - 가수는 음원의 생산자이고 시청자는 그 음원의 소비자다. 그러나 MBC의 위대한 탄생은 그 인과관계를 바꾸어 버린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시청자가 진정한 가치의 생산자로 기능한다. 또는 그래야만 한다. 시청자가 참된 가치의 생산자로 참여할 때로 한해서 이 쌍방향적 참여방송이 의미가 있다. 시청자는 무엇을 생산하려고 하는가? 단순히 변별하여 1등을 생산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멋진 드라마를 생산하려고 한다. 감동을 생산하려고 한다. 기승전결의 아름다운 완성을 생산하려고 한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아귀가 척척 맞아떨어지도록 동그라미를 완성시키려고 한다. 방송국과 시청자 사이에 에너지 순환의 일 사이클이 완성되도록 끊어진 고리를 이어놓으려 한다. 이게 진짜다. 가수는 노래를 부르고 소비자는 그 음원을 사고 돈을 지출한다. 그걸로 끝이다? 그렇다면 허무한 거다. 방시혁의 가치와 김태원의 가치가 충돌하고 있다. 방시혁은 가수를 상품 생산자로 보고 생산력있는 가수를 선발하려 한다. 그게 방시혁이 주장하는 스타성이다. 그러나 김태원의 멘티들은 상품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생산력이 없다. 노래만 잘 부를 뿐 스타성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가요계는 더 이상 노래가 상품이 아니다. 노래는 상품의 원재료일 뿐이고 거기에 기획사가 주도하는 온갖 조미료가 첨가된다. 춤과 패션과 스캔들이 거기에 버무러져야 한다. 가요산업은 점점 일종의 유통업이 되어가고 있다. 물건이 공장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백화점에서 나오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학자들은 연구실에서 이론을 만들어낼 뿐 그걸로 상품을 생산하지는 못한다. 그 이론을 접목하여 실제로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대기업이다. 김태원은 연구하는 학자를 선택했고 방시혁은 힘있는 재벌기업을 선택했다. 현장에서는 방시혁이 옳다. 왜냐하면 소비자는 떠먹여주는 제품을 원하며, 그것은 가치가 낮더라도 완제품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뛰어난 이론을 생산하지만 그것은 완제품이 아니다. 공장에서 한번 더 가공해야 한다. 말하자면 농부가 좋은 품질의 싱싱한 고구마를 생산해봤자 소비자는 그것을 거절하고 대신 나쁜 품질의 고구마에 설탕치고 잘 구워서 바로 먹을 수 있는 제품을 선호하는 것이다. 좋은 유기농식품 보다는 나쁜 패스트푸드를 원하는 것이다. 유기농식품은 좋지만 아직 조리되지 않았고, 패스트푸드는 나쁘지만 바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태원의 멘티들은 좋은 식품이기는 하지만 바로 먹을 수 없는, 귀찮은 요리 절차를 거쳐야 하는, 미완성 제품이다. 그래서 방시혁은 스타성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소비자는 가요가 아니라 우상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백화점이 실용성 있는 가방을 파는게 아니라 몀품 브랜드를 팔듯이. 그러나 이는 삶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고 부유해지면 달라진다. 명품 브랜드를 소비한다는 것은 사회적인 열등감에 짓눌려 있다는 증거다. 여유가 없는 것이다. 불안해 하며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신경쓰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과 평판에 잡혀서 불쌍하게 사는 것이다. 그것이 어찌 제대로 된 현대인의 삶이겠는가? 이제 마음의 여유를 얻은 소비자들은 패스트푸드를 거부하고 유기농식품을 구입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점점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 잘 가공된 나쁜 것보다 덜 가공된 좋은 것을 먹자는 거다. 그러므로 소비자가 일정부분 생산에 참여한다. 식탁에 가만이 앉아서 요리사가 내오는 음식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들판으로 나가서 싱싱한 나물을 채취하려고 한다. 결론적으로 위대한 탄생은 위대한 가수의 탄생이 아니라 위대한 시청자의 탄생이어야 한다. 그렇다. 이 방송의 진짜 주인공은 시청자여야만 한다. 그래야 이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방송형식의 성공이다. 방시혁이 성공하면 좋은 가수가 탄생하겠지만, 김태원이 성공하면 위대한 시청자가 탄생한다. 어느게 진짜이겠는가? 설사 김태원의 멘티들이 나중 가수로 데뷔하여 시청자의 철저한 외면을 받는다 해도 지금 이 시점에서는 김태원의 승리가 옳다. 이 방송의 주인공은 시청자이기 때문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치인은 정치의 생산자고 유권자는 정치의 소비자다. 정치인은 의사당에서 법률과 예산을 생산하고, 유권자는 세금을 지출하여 그것을 사들인다. 그러나 선거라는 행사는 유권자가 생산하는 시기다. 유권자가 투표라는 행위를 통해서 좋은 정치인을 생산해내는 것이다. 정치인이 정치를 잘 해서 유권자에게 제대로 평가받겠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그 반대여야 한다. 현명한 정치인이라면 반대로 정치인이 소비하고 유권자가 생산하게 해야 한다. 유권자가 정치인을 잘 생산하도록 해야 한다. 유권자가 생산하게 하는 방법은 말을 시키는 것이다. 유권자가 너도나도 한 마디씩 던지게 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를 실천하자 모두들 말이 많아졌다. 그러자 말하는 직업도 생겨서 논객이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세상이 시끌시끌 해졌다. 유권자가 정치의 생산까지 담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바보들이 뿔이 났다. 유권자가 생산자가 되면? 자신이 주인공이 되면? 자기 자신이 검증된다. 옛날에는 정치인만 검증되었는데 이제는 유권자까지 검증된다. 어느 바보가 자신을 검증의 심판대 위에 올려세우려 하겠는가? 인스턴트 식품을 먹으면 그 제품이 검증되었는데, 유기농 식품을 먹기로 하면 그것을 구입하고 요리해야 하는 소비자의 안목이 검증된다. 짜증이 난다. 이 귀찮은 절차를 없애줄 사람으로 이명박을 선택했다. 그리고 망가졌다. 대한민국이 위대해져야 진짜다. 그러려면 훌륭한 정치인이 탄생해야 하는게 아니라 훌륭한 유권자가 탄생해야 한다. 유권자가 훌륭해지려면? 유권자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판단을 요구하는 사람이 정치해야 한다. 그가 누구이겠는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설사 박근혜가 좋은 정치인이라 해도 박근혜 대통령 밑에서 편안하게 잘 사는 한국인은 위대하지 않다는 점이다. 설사 유시민이 정치를 못한다 해도, 유시민 대통령 밑에서 시끌시끌한 한국인은 위대하다는 점이다. 왜? 더 많은 사람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므로. 간단하다.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딱 하나, 왕의 숫자가 결정한다. 북한은 왕이 하나라서 망했다. 민주주의는 일단 여야가 있으므로 의사결정권자가 적어도 둘 이상이다. 의사결정권자의 숫자는 많을수록 좋다. 개화기 일본이 흥한 이유는 일본에 작은 왕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일본을 지배하던 막부는 가만있는데 지방의 작은 봉건영주가 개인적으로 서양과 전쟁을 하기도 했다. 그때 왕창 깨져서 서양의 힘을 알고 개화를 한 것이다. 조선은? 왕이 하나 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미리 연습게임으로 서양과 전쟁을 한번 해보는 예습이 불가능했다. 하나밖에 없는 왕이 죽으면 안 되니까. 그래서 결사적으로 싸웠다. 병인양요, 신미양요에서 서양을 물리쳤다며 의기양양해 했다. 서양의 진짜 실력을 파악하지 못하고 판단미스를 범하게 되었다. 일본은 최근 몰락하고 있다. 그들은 매뉴얼대로 살기로 했다. 되도록 의사결정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총리와 도쿄전력 사장이 서로 결정을 미루고 있다. 한국의 유교주의는 가부장을 중심으로 절대적인 의사결정권을 가진다. 개화기 일본이 의사결정권자가 많아서 흥했듯이, 지금은 일본보다 한국에 더 의사결정권자가 많아졌다. 최고의 정치는? 모든 국민이 의사결정권자가 되는 것이다. 강한 개인으로 우뚝 서는 것이다. 유교의 가부장제도는 한 가족에 한 명의 의사결정권자만 내세우게 하는 결함이 있지만, 유교의 군자 개념은 모든 사람이 의사결정권자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군자라는 말은 의사결정권이 있는 사람을 뜻하기 때문이다. 전 국민이 군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전 국민이 왕의 마음으로 정치를 바라볼 때 최고의 의사결정구조가 세팅되고 그 나라는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박근혜 지지율이 높은 이유는 박근혜가 스트레스를 덜 주는 인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가수가 주인공이고 생산자이며 시청자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있는 소비자이고 관객이라는 입장이다. 노예근성이다. 군자의 마음, 의사결정권자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것이다. 선거가 시작되면 주객이 전도된다. 정치인이 소비자가 되고 유권자가 생산자가 된다. 정치를 바라보는 기준 자체가 180도로 바뀌어 버린다. 말 많은 유시민이야말로 위대한 유권자의 생산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세상이 조용할 때는 말 없는 사람이 이기지만, 세상이 시끄러울 때는 말 많은 사람이 이긴다. 국민 모두가 한 마디씩 하게 만드는 사람이 이긴다. 선거철이 되면 시끄러워진다. 그리고 진실이 드러난다. 우리는 떠먹여 주는대로 쳐먹는 소비자가 아니고, 우리는 함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팀이라는 사실이. 우리의 진정한 지도자는 일 잘하는 좋은 정치인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최고의 팀으로 조련하여 내는 조련사라는 사실이. 누가 대한민국 국민을 조련하고 있는가? 누가 대한민국을 최고의 팀으로 키워내는가? 누가 대한민국 국민을 끝없이 자극하고, 잠에서 깨어나게 하고, 일어나서 앞으로 달려나가게 하는가? 정치 잘 하는 지도자? 천만에! 시장논리로 하면 방시혁이 맞다. 상품성 있는 스타를 발굴할 요량이라면 김태원의 외인구단은 떨어지는게 맞다. 3년후 지금 떨어진 노지훈, 권리세 등이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을지 모른다. 백청강, 손진영, 이태권 등은 조용히 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위대한 탄생의 주인공은 시청자다. 시청자를 위대하게 만들고 있는 사람은 백청강, 손진영, 이태권이다. 국민이 위대해져야 진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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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위대해져야 진짜다
음 김태원의 비유는 별로 와닿지 않네요. 예전에 좋은 음악이라고 하고 좋은 가수라고 하는 친구들은 한류를 못 일으켰죠. 요즘 한류는 상품성에 의한 막강하고 체계적인 훈련 분업화에 의한 음악입니다. 드라마도 마찬가지고요. 과거 국민의 심금만 울리던 그런 드라마나 애절하게 노래잘해서 공감대만 형성하던 가수들이 아니란 이야기죠. 요즘 걸그룹이니 아이돌이니 하는 친구들이 아시아를 넘어서 유럽까지 붐을 일으키려는 조짐은 체계성있는 기획사의 상품성과 분업화에 의한 좋은 시스템에 의한거죠.
요즘 아이돌들 정말 대단합니다. 나날이 멋지고 세련되지고 아시아의 선망의 대상이고 세계적으로 조명받고 있죠.
어느것이 옳다고 그러기는 애매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김태원류에서 머무르길 원하지 않는듯하네요. 전 김태원류의 일부사람의 진성성있는 각성으로 잠시 감동을 주는것보다 유럽식의 기계적이고 어찌보면 틀에박힌 체계적인 다수의 시민의식이 필요한것이라 봅니다.
그런 꼴통스런 마인드를 고집하시려면 이 사이트에 올 이유는 없죠. 우리의 목표는 세계를 뒤집어 엎는 것이고, 일등을 하는 것이며, 세계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 지금 한류는 한낱 상품에 불과합니다. 일본 상품이 좀 팔렸다고 일본이 존경받는 것은 아니며, 그저 장사꾼으로 보여질 뿐이며, 일본이 AV시장에서 목에 힘을 준다고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며, 텔레노벨라가 남미를 휩쓸었다고 쳐주는 것은 아니며, 그것은 비웃음거리에 불과한 것이며, 신경숙 소설이 미국에서 일억부를 팔았다고 해도, 조앤 롤링의 저급한 동화책 장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그것은 진짜배기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뽀로로가 세계 백여국에 팔려봤자 안 알아주는 틈새시장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삼성이나 현대가 세계시장을 제패했다고 해서, 우리가 건희나 몽구를 사람으로 쳐주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박정희가 한때 먼가를 좀 했다고 해서, 백년후 한국 교과서에 박정희가 한국의 대통령으로는 기록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건 상식이하죠. 눈높이를 끌어올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대화가 됩니다. 대화가 되어야 가치가 생산됩니다. 요즘 아이돌? 마이너리그 놀음입니다. 한때 만화방에 무협지가 좀 팔렸다고 해서, 그 무협지 작가가 '나도 작가요' 하고 어디 가서 명합을 내밀 수 있는 것은 아니죠. 한때 한국 고아가 세계 고아수출 1위를 차지하고 그랬죠. 그거 자랑 아니지요. 돈 벌려면 무슨 짓을 못해. 그 무슨 짓거리 자랑 아닙니다. 깨달음이 없는 유럽식의 체계적이고 틀에 박힌 시민의식은 제가 늘 비판하는 거죠. 그게 우리나라 꼴통좌파들의 숭배대상이고. 진정한 깨달음이 없는 로보트식 시민의식은 쓰레기입니다. 유럽은 결코 우리의 모델이 아니며 그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저급한 태도는 이제 그만 버려야 합니다.
모든 개인이 의사결정의 1 단위가 되어야 하는 것이며, 유럽은 절대 이 방향으로 안 갑니다. 그들의 모델은 게르만의 종사제도 전통에 기초한 것이며 본질에서의 봉건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팔리는 가수가 아니라 안목을 갖춘 제대로 된 관객입니다. 한국이 세계로부터 존경받는 유일한 방법은 최고의 의사결정구조를 만들어내는 것 뿐이며, 삼성, 현대가 잘해봤자 히틀러와 스탈린이 쓰다버린 독재모델이기 때문에 전혀 인정을 못받는 것이며 '쟤네들 우리가 과거에 쓰다가 버린거 줏어서 쓰네' 하고 비웃음을 당할 뿐이며, 최고의 의사결정구조를 만들어 내려면 팔리는 가수보다 아닌 것을 추려내는 안목있는 관객이 필요한 것입니다.
꼴통스런 마인드만은 아니지요.
정확히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지요.
하나의 이론으로 세상이 설명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실제로는 복잡다단하게 흘러갑니다.
사람의 행위를 총 주관하는 것이 마음이라고 이론을 세우더라도 실제로는 몸이 마음과 상관없이 저절로 결정하는 경우도 많지요.
사람의 감동을 이끌어내는 것이 진짜배기라고 이론을 세우더라도 그런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지요. 눈을 하늘의 별을 보고 있지만 실제로 발은 개똥밭을 디디고 있는 겁니다.
사람은 감동만을 먹고 살지는 않아요.
밥도 먹고, 상황도 먹고, 감동도 먹고, 생각도 먹고, 친구도 먹고.....
김태원같은 사람도 있고, 방시혁같은 사람도 있고.
김태원을 코웃음치는 사람도 있고, 방시혁을 경멸하는 사람도 있고.
누가 낫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조화의 문제일 뿐이지요.
어떤때는 상품성을 보고 어떤때는 이력과 감동을 보고, 한사람도 시시각각으로 달라지지요.
지금 한류아이돌들을 그저 상품만으로만 보면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 기획되고 마케팅되고 조련되고 셋팅되어서 시장에 나오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그 안에서도 적지않은 재미와 감동을 발견합니다.
제 큰아이는 SS501 팬이고 저는 포미닛을 무척 좋아합니다.^^ 한마디로 어린아이들이 정말 대단하고 멋지지 않습니까?
아이돌들을 주제로도 제 아이들과 저는 항상 대화거리가 많습니다. 늘 그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에너지를 주고 뭔가 꿈 꿀 거리를 제공합니다.
저는 제 아이들에게 너희들도 아빠에게 멋진 아이돌이 되어달라고 말 합니다. 이른 나이지만, 세상을 두려워않고 출사해서 청춘을 바쳐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에 공감하면서 결코 그들의 화려한 포장 된 모습만 보지 말고 그들의 오늘날이 있기까지의 과정에도 주목하라고 얘기합니다.
또한 단순히 춤과 노래,웃음만 파는 것이 아닌...여러 아이돌들을 보면서 그저 다 같아 보이는 아이돌같지만 시장에서의 포지셔닝, 컨셉의 미세한 다양함을 즐기면서 기획사, PD들의 미학적 수준을 재 보기도 하고 해를 거듭할 수록 틀 안에서나마 성장과 변신을 거듭하는 아이돌들의 진지한 노력을 보면서 박수를 치기도 합니다.
이들을 단지 문화산업 내의 상품이라고만 한다면 대중예술과 이들을 통해 감동받기도 하는 많은 이들을 단지 소비자로 격하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단지 상품이라고 하기에는 이들로부터 감동받고 소통하기를 원하는 대중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굳이 이들을 상품이라고 한다면, 진화를 거듭해서 어느덧 문화적 코드? 정도까지 되었다고 할수있지않을까요?
어쩌면 상업성의 이름을 건 정치의 수준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 까 싶습니다.
이들을 상품이라는 고정관념만으로 대한다면 끝없이 소비되다가 어느덧 대중의 권태와 더불어 사라지게 될 것이고 이젠 더 센 자극을 원하는 대중의 욕구에 맞물려 별별 희한한 변태성 아이돌들이 등장 할 것입니다. 일본처럼요...이른바 AV아이돌...
적어도 대중연예도 문화라면 시청자들은 보다 높은 미학적 수준을 요구할 수 있고 요구해야 합니다.
현재까지 어느정도 한류는 대중들에게 보편성과 미학적 기준을 충족시켜주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상업적 욕구가 커지면서 기획사들을 비롯한 생산자들이 감동과 재미의 수준을 낮추어 소위 상업적 대중성을 강화하면서 자기들도 상품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대중도 기만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시청자들은 끊임없이 그들과 소통하며 비판을 아끼지 않는 한편 날선 미학적 감각을 키워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대중들이라면 거국적으로 그들도 생산자의 영역에 포함 될 수 있을 것이고 이번 '위탄'에서처럼 김태원씨와 그 멘티들에게 보내는 시청자들의 성원과 새로운 코드의 생생한 감동이 주는 메시지를 방시혁씨같은 기획자들 역시 잊지말고 새로운 대중문화 컨텐츠로 승화시킬 때, 한류는 더더욱 폭발적인 감동으로 무장하여 세계 팬들을 즐겁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때 일본이 유럽에서 선풍을 일으켰지만 그 본질은 선종불교에서 유래한 일본특유의 젠 스타일이지 일본제품의 완성도가 아닙니다. 상품은 어디까지나 상품에 불과합니다. 한류의 본질은 유교 합리주의 미학이지 춤이나 노래 따위가 아닙니다. 상품과 철학은 엄격히 구분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가치있는 것은 철학이지 상품이 아닙니다. JYJ는 기획사의 로보트 노릇에서 벗어나니까 더 잘나가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제는 껍데기를 벗어냐 합니다. 한류 아이돌 백트럭 갖다줘도 존 레넌의 자유정신 발가락 끝에도 못 따라갑니다. 비틀즈가 판 것은 노래와 춤이 아니라 자유정신입니다.
이렇게 답글을 달아주셔서 영광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본질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에 동의합니다.
JYJ는 이제 아티스트로 성장하고 있다고 봅니다.
김동렬님께서는 엄정하게 구조론적 관점에서 보셨고 저는 단지 애 아빠의 수준에서 봤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이돌들이 저렇게 종횡무진하는 나이에 정말 아무 생각없는 '짐승에 가까운' 상태였거든요. ^^어쨌거나 제 눈에는
아이돌들이 정말 대단하고 기획사들의 열정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질문은 아래 김동렬님의 다른 글에 달았던 질문인데, 아무래도 지금 글이 최근시점인지라, 눈에 잘 뜨일 듯 싶어 이렇게 다시 올립니다. 부디 가르침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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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신 글을 보다보니, '유교적 합리주의', '유교적 리더쉽' 등의 표현을 쓰셨는데, 상명대 중문과 김경일 교수가 오래 전에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을 통해서 언급하기로는 유교는 왕권강화를 위해, 사상통제를 위해 채택 된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역사적으로 한국인의 창의력을 죽이고 합리성을 그르치는 주범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주쯔캉이나 보양 등과 같은 현대 중국의 문화 비평가들 역시 중국문화를 썩다썩어서 발효과정을 거쳐 이젠 정체마저도 불분명해진 악성퇴비와도 같은 '장독문화'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는데, 이의 직접적인 원인을 극도로 세속화 된 실용주의, 간접적인 원인을 그 배후에 있는 유교라고 지목하고 있습니다. 요는 유교의 문자적 가르침은 훌륭하지만, 역시 지배 이데올로기로의 채택 이유가 권력 보위를 위한 실용주의에 근거했고 수직관계를 중시하며 현학적이고 소통에 취약했던 유교의 특성이 중국인들의 양심과 영성발전에 오히려 악영향을 줬다고 주장합니다.
현재 한국사회의 병폐인 출세만능주의, 혈연/학연을 중심으로 한 패거리주의, 대의를 무시하는 가족 챙기기 등도 유교문화의 폐해인 극도의 실용주의 문화의 영향이 아닌가 보여지는데, 김동렬님께서 보시는 유교는 무엇인지요?
국민이 왕의 마음으로 정치를 바라볼 때
최고의 의사결정구조가 세팅되고 그 나라는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방방곡곡에 귀명창이 즐비한 대한민국, 거기서 진짜 아닌 소리꾼이 발붙일 곳은 없을 것입니다.
오래동안 추구해온 이상적 인간, 군자의 마음이 곧 천하의 향방에 대한 의사결정권자를 말한 것이로군요.
군자가 곧 대장부, 모든 시민이 대장부의 뜻을 얻어야 천하가 제자리를 잡아갈 것입니다.
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
此之謂大丈夫.
율리/위대한탄생이 한류아이돌 생산에 목적이 있는게 아닌데..
위대한 유권자의 탄생, 다음 인류의 시작.
관객, 시청자의 승리
http://vimeo.com/7846044
누리꾼, 네티즌, 시청자, 관객, 사람의 승리 !
통일의 꽃 !
정설향 !
- 심장 속에 남는 사람 -
인생의 길에 상봉과 리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어진대도 헤어진대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아~ 그런 사람 나는 못잊어
오랜 세월을 같이 있어도 기억 속에 없는 이 있고
잠깐 만나도 잠깐 만나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좋은 동영상이오. 감상 잘했소.
알았소
위탄과 나가수의 경우 시청자가 개입하여 방향설정이 안되어 있던 것을( 혹은 상업화에 맞추거나 질적으로 조금 미약하던 부분을...) 한 번의 의사결정은 했다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중구난방이던 그동안의 어떤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통해 한번의 질을 끌어올렸다고 보아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눈에 보이는 상품성이 아닌 그 가능성에서 시작하는 질적인 부분의 도약을 의미한다고 생각됩니다.
결국 이 프로그램의 예를 본다면 보이지 않는부분에 시청자가 개입을 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인해서 조금 시끄러워 보여도 내면은 뭔가 꽉찬듯한 풍성함 조밀함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위탄이 질의 가능성의 밀도가 높아졌다면, 나가수는 질과 잘이 부딪히는 가운데 밀도가 높아지는 것이니...
이는 전반적으로 시청자의 안목이 높아진 것이고, 좀 더 높의 가치를 추구했다는 것이 됩니다.
즉 애초부터 흥미로 개입하고 소비로 개입한 것이 아니라, 질적인 가치에서 의미를 추구했던 것과 같으며 생산부분에서 개입한 것과 같은 효과로 보인다고도 생각됩니다.
한류 아이돌이 뭔가 보여지는 완성도에서 대단한 것은 사실이라고 여겨지지만, 그안에 어떤 충만감이나 조밀함은 약했다고 보여집니다. 이제 시청자나 관객 혹은 국민은 그 부분에 과감하게 개입하고 있다고 보이며, 그로인해서 의사결정을 하고 방향성을 잡고 가슴으로부터 어떤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질을 높임으로서 이완으로 보상받는 일 사이클의 완성의 경험을 하는 단계에 와 있다고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러한 경험은 각 방면에 적용될 것이고 퍼져 갈 것이고, 최종적으로는 정치에도 적용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만은...^^;
딱선생님/
사이비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흔히 쓰는 수법은 '이게 다 저 넘 때문이다. 한 넘만 패' 하는 환원주의 수법입니다. 이거 현장에서 먹히죠. 단순하니까. 유교만 때리면 된다는 환원주의도 분명 문제입니다.
유교에 대해서는 제가 예전부터 많이 썼는데, 잘못된 유교는 물론 비판되어야 하죠. 제가 퇴계를 예전에 많이 비판했다는 사실 아실 분은 아실거고. 퇴계를 죽여야 나라가 산다고 썼을 겁니다. 반면 율곡은 다르죠. 이거 뭐 다 말하면 이야기 길어지고 피곤한 거고.
유교보다 도교가 더 실용주의입니다. 중국의 모든 악은 도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일본의 모든 악은 신도에서 나오는 것이고. (일본 신도는 아라비안나이트처럼 확실한 결론을 안 내리고 밑도 끝도 없이 흘러가며 얼버무리는 경향이 있음) 그리고 중국의 아이디어는 기본적으로 도교이므로 중국은 도교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홍콩영화의 허풍도 그 뿌리가 도교입니다.
서양만 해도 저는 기독교가 서양을 망쳤다고 봅니다. 물론 서구의 철학자 중에도 기독교의 병폐를 지적하는 사람이 많죠. 이와 비슷합니다. 기독교 철학의 장점에 대해서도 제가 여러번 말했습니다.
다 이야기 하자면 길어지고, 무수히 썼으니 제 옛글을 검색해서 보시면 될테고. 동양문화의 모든 단점이 도교와 유교에 있지만 동시에 그 장점도 유교와 도교에서 찾아야 합니다.
유교의 군자개념이나 공론을 지향하는 합리주의나 이런건 매우 좋은 것이며 서구가 결코 따라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교의 병폐라고 말해지는 것 중의 상당수는 봉건적 병폐입니다. 유교밖에 없으니까 유교가 문제로 되는 거죠.
예컨대 구한말 친일파 중에 이씨가 많습니다. 이완용부터 친일파죠. 왜 이씨집안은 친일을 할까요? 그건 이씨가문이 친일가문이라서 그런게 아니고 왕이 이씨다 보니까 왕족들이 힘이 있고 그 힘센 넘들이 이등박문한테 홀려서 그런거에요. 이완용이 이씨니까 이씨가 문제다? 이건 아닌 거죠.
서양의 모든 병폐는 기독교 때문이고 동양의 모든 병폐는 유교 때문이고.. 이건 아니죠. 무조건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탓을 하면 된다? 이건 아닙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유교의 병폐가 기독교의 병폐보다는 훨씬 약하다는 것이며, 동양철학이 서구를 압도하고 세계사를 주도한다면 그 핵심 아이디어는 유교와 도교에서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불교도 있지만 선종불교는 도교영향을 받은 겁니다.
유교의 단점만 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 말에 주목해야 할까요? 하수들은 단점에 물들까 두려워 하고 고수들은 장점을 빼먹으려 혈안이 되어 있죠.
인류문명의 궁극적 귀결점은 철저한 개인주의입니다. 개인주의 하면 서양으로 알려져 있지만 천만에요. 철학으로 보면 게르만 유목민은 절대 집단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서양의 개인주의는 철학이 아니라 현대성입니다. 즉 서구철학은 집단주의이며 단지 서구 현대문명이 개인주의일 뿐입니다.
현대문명과 상관없이, 철학으로서의 진정한 개인주의는 유교와 도교와 불교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며, 서구는 게르만 종사제도 전통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가장 반 개인주의적이지요. 불교의 깨달음, 유교의 군자개념, 도교의 자유정신은 철저한 개인주의에 기초하며, 이는 중국이 일찍부터 농경사회였던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물론 유교에도 대가족제도 등 집단주의가 있지만 이는 유교철학이 아니라 봉건사회의 일반적 특징일 뿐입니다. 서양도 옛날에는 더했어요.
그렇네요...
이런게 배우는 것이라는 직감이 호ㅏㄱ 들면서 머리 속 한켠이 짜릿해 집니다.
최소한 저에게는 김동렬님이 아이돌이십니다. - 스승님~! 하고 덤벼들면 놀래서 도망가실 듯 싶어서...^^
저술하신 책들과 이곳에 있는 글들을 우선 열심히 보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많이 배우고 깨달아서 제 아이들에게, 아내에게 가르치고 힘 닿는대로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도 도움을 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삭제했습니다...
그의 이 자신만만한 포즈는 그것이 오랜 궁리 끝에 나온 것인지 한 순간 충동에 의한 것인지와 관계없이, 참 멋집니다. 분명히 연습 많이 했을 겁니다. 포장술의 대가라고 할까요. TV를 통해 그를 볼 때마다 저는 '저이야말로 구조론의 체화가 아닌가' 생각하곤 합니다. 그가 대상에 대해 충분한 주의를 기울인 상황을 전제로, 그는 항상 상황의 핵심을 낚아챕니다. 결코 박식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방송가에 횡행하는 여러 우문들을 맞아 때와 장소에 알맞은 현답들을 불쑥불쑥 내놓습니다. 아무리 오래 묵은 이무기였다지만 그의 상승세는 아직도 절정을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손진영을보니 자신을 통제하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김태권의 바람의 노래를 듣다보니 노래가사와 김태권과 오버랩되면서 살짝 어떤 뭉클함이 몰려왔습니다.
시청자의 듣는 귀가 위대하다. 라는 것과 가능성의 발견이란, 그 것을 발견해 낸다는 것의 김태원과
모든 개인들에게서 가능성을 끌어내고, 결국 스스로 통제와 절제할 때만이 아름다운 미를 분출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위대한 드라마의 시작은 작은 씨앗하나 발견하는 그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와우~
이 글을 이제야 읽었네요.
한참 바쁠때 빼먹고...
정말 많이 배우고 시원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로서
아이의 행복과 미래에 무엇보다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부모로서
'아이돌'의 성공이 그들 인생의 롤모델이 되는 것은 그리 반갑지 않은 일입니다.
아무리 가능성이 있다한들 인생과 예술에 대한 스스로의 다양한 탐색과 넉넉한 낭비의 시간없이
잘 조련된 훈련을 받게 한다는 건 마땅치 않은 일입니다.
돈잘버니까, 편하게 살고 싶으니까, 집안 살려야 하니까
'사당오락'으로 잠안자고 죽어라고 공부해서 판검사 의사 되는게 인생의 승리자가 되는
그런 배고픈 시절의 비참함과 무엇이 다릅니까?
그런 거 안되도 되는 것처럼, 아이돌처럼 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아이가 SM이나 JYP 오디션을 보고 싶다길래
혼자 연습해서 도전해 보는 건 말리지 않겠지만
그런데 들어가는거보다
차라리 홍대앞에서 인디밴드한다고 싸돌아다니는 걸 인정하겠다고 했습니다.
성공 안해도 된다고.
고생스러워도 정말 인생에서 찾고 싶은 걸 찾아서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소녀시대'가 되서 수만명의 오빠 아저씨팬이 있은들 뭐할것이며
돈방석에 앉은들 뭐할 것인가.
바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아니며
세상과 소통한다기 보다 소비시장을 확장신키는 것은 연예기획사의 시스템일뿐.
남들이 만들어 놓은 틀안에서 죽어라고 인내하고 노력해서 거기에 걸맞는
상품이 되는게 그렇게 존경받을 일도 아니고.
세상하고 담쌓고 세상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오로지 출세욕에 고시방안에서 죽어라고 법조문쪼가리 줄줄줄 외워서
판검사 되는게 그렇게 존경받을 수 있는 멋진 삶도 아니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행복하게 살길 바라지만
그 하고 싶은 일의 수준이 높았으면 좋겠다고.
직업의 귀천이 아니라, 자신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굶어죽을까봐, 혹은 남들한테 엄친아 엄친딸 소리 듣고 싶어서
전전긍긍 아둥바둥 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런 모델이 되는 건 세상과의 소통도 뭣도 아니라고.
아무리 멋져보여도 고리짝 '모던타임즈'의 찰리채플린 수준과 다를 바 없다고.
오늘도 프랑스에서의 한국 아이돌의 한류열풍에 대한 프로가 나오네요.
저 역시 기분 좋습니다.
이 정도만이라도 어디냐..
프랑스에서 이런 인정을 받다니!
드디어 이런 시절이 왔구나!
저 역시 그런 기분 어쩔수 없는 과거의 열등감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나마라도 먹힐 수 있는 연애기획시스템을 만들어 낸건 좋습니다.
'나가수'나 '위탄' 보면서도
우리 가요의 자산이 쌓여있음을 느끼고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건
이제 우리도 굶어죽지 않을 만큼 살만해졌구나.
이제 거지 아니구나.
하는 정도의 만족입니다.
새로운 차원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거죠.
진짜 위대한 탄생을 해야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