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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728 vote 0 2011.03.18 (00:03:55)

 

 

일본식 역할분담 전문가주의

 

지난번 글에서 일본식 역할분담, 전문가주의 시스템의 문제점을 이야기했는데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사례를 충분히 들지 못했다고 보고.

 

아랍에는 옛부터 노예재상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포로로 잡은 노예들에게 전문기술을 가르쳐서 재상으로 임명하는 것이다. 맘루크라는 노예군대도 있는데, 아랍 주변지역의 백인 소년을 노예로 잡아 왕의 친위부대를 만들었다.

 

이들은 가족이 없으므로 칼리프 1인에게만 절대 충성할 수 밖에 없었다. 왕을 배반해도 갈 곳이 없다. 십자군 전쟁에서 맘루크의 활약은 널리 알려져 있다. 나중에는 세력이 강해져서 이집트와 인도 등에 맘루크 왕조를 건설하기도 했다.

 

오스만 제국은 특히 궁정노예들이 행정실무를 담당했다. 궁정노예를 재상으로 활용한 사람으로는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켜 동로마 제국을 평정한 술탄 메메드 2세가 유명한데, 그의 아버지 술탄 무라드 2세는 예니체리 군단이라는 특수부대를 만들었다. 예니체리는 맘루크와 달리 오스만 제국 내의 기독교 지역에서 아들 하나씩 바치게 한 다음 이슬람 집안에 양자로 입양시켜 만든 특수부대이다. 메메드 2세는 최강 예니체리 군단을 이끌고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켜 명성을 얻게 된다.

 

중국의 내시도 일종의 궁정노예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자식을 낳을 수 없으므로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만들 수 없다. 그러므로 임금은 내시를 신뢰하게 된다. 물론 후한은 내시들의 세력이 너무 커져서 십상시의 난이 일어난 결과로 몰락하게 되었지만 내시가 별도로 내시왕조를 개창한 일은 없다.

 

명나라때 영락제의 명을 받고 남해원정을 행한 정화도 아랍 출신의 내시였다. 내시가 장군까지 된 것이다. 붕알이 없으니 독자적인 세력을 만들 수 없고 따라서 반란을 일으킬 수도 없으니 믿을만하다 싶었던 것이다.

 

로마의 지식노예도 비슷하다. 로마인들은 지식을 하찮게 여겨서 공부는 노예들에게 시키고 자기네는 전쟁을 도맡았다. 로마가 극도의 실용주의로 나아간 것은 지식을 경시했기 때문이다. 철학은 그리스에서 크게 일어났으나 그리스가 로마에 멸망한 후 철학의 대가 끊어졌다. 로마에 이렇다 할 철학은 없다. 철학을 중시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도리어 로마를 약하게 만들고 말았다.

 

춘추전국시대 중국의 객경이나, 빈객도 노예재상과 유사한 점이 있다. 외국인을 재상으로 임명하면 나라 안에서 세력을 만들지 못하므로 왕 자리를 빼앗길 염려가 없는 것이다. 진왕 정을 도와 천하를 통일한 법가의 대표적인 인물 이사는 초나라 사람으로 역시 객경 출신이다. 진왕 정이 한때 외국에서 벼슬하러 찾아온 빈객을 모두 추방하려 했으나 이사가 간하여 말린 사실은 유명하다.

 

태산불양토양고대(泰山不讓土壤故大) 하해불택세류고심(河海不擇細流故深)
태산은 한 줌의 흙도 버리지 않으므로 크고,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으므로 깊다.

 

이는 이사가 진왕 정의 외국인 추방정책을 반대하여 간한 내용이다. 그 말을 들었기에 진왕 정은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거다. 초나라 도왕을 도았던 위나라 출신의 오자나, 한때 위나라에서 객경 벼슬을 받았던 제나라 출신의 손빈을 비롯하여, 6국의 제상 노릇을 한 소진, 장의 등 전국시대의 유명인물은 대개 객경으로 활약했다. 전국시대에는 순수하게 자기네 나라에서 출세한 인물이 드물 정도이다.

 

맘루크나, 예니체리나, 노예재상이나, 지식노예나, 객경이나, 내시들은 모두 한 가지씩 약점을 가지고 있으며 전문분야의 기술자로 활약했다. 이들은 신분 상의 제약이 있어서, 어느 정도 이상 승진하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대신 그 한계 안에서는 철저히 독립성을 보장받고 자유를 누렸다.

 

조선왕조의 상피제도 이와 유사한 개념이다. 상피제는 벼슬아치들이 자기 출신지에는 부임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이다. 자기 고향에 벼슬아치로 부임하면 지역토호가 되어 왕권에 도전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한 지역에 3년 이상 벼슬을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다니게 했는데 이 또한 그 때문이다.

 

신라의 상수리제도나 고려의 기인제도는 귀족의 자제를 볼모로 잡아두는 제도이고, 일본의 봉건영주들은 2년에 한 번식 도쿄로 잡혀와서 살아야 했다. 왕이 상대의 약점을 쥐고 있으려는 것이다.

 

이런 제도는 한 편으로 고도의 효율과 전문성을 발휘하게 된다. 전문기술자가 사심없이 자기 분야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망가지게 된다. 이런 식의 비합리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이상한 편법에 의존하다가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 꼼수는 반드시 망한다.

 

세력화를 허용해야 한다. 약점을 풀어주어야 한다. 위기에는 국가의 총력을 모아야 한다. 위로는 임금부터 아래로는 노예까지 힘을 합쳐야 한다. 이런 식으로 약점을 쥐고 있으면 위기 때에 단합하지 못한다.

 

조선의 선비들은 마음껏 세력화를 꾀할 수 있었고 이에 때로는 벼슬아치가 왕보다 강한 권력을 휘두르게 되기도 했다. 송시열이 한때 절대권을 행사한 예가 그렇다. 중국 역시 유림들이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유교는 합리주의를 추구하고 실용주의를 반대한다. 세력화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른 길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왕과 궁정노예들은 서로의 약점을 쥐고 있으면서 위기에는 연환계로 엮여서 같이 죽는다. 왕은 실무에 어둡고 내시는 고추가 없다. 이건 좋지 않다. 최고의 리더는 실무에도 밝아야 한다. 한 분야의 실력자는 독립적인 세력화가 가능해야 한다.

 

일본 기업의 CEO들은 무슨 종교의 교주처럼, 혹은 철학자처럼 상징적 존재로 군림하며 실무에 간여하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요즘에는 좀 변했다는 말도 있지만. 왜 리더는 실무에 관여하지 않는가?

 

조선왕조의 양반들은 돈을 더럽게 여겨서 젓가락으로 집어주곤 했다. 기생들에게 내는 돈을 젓가락돈이라 부른 것이다. 엽전을 세어서 주는 것은 째째한 거고 그냥 주머니를 벌리고 필요한 만큼 집어가게 해야 대인배다.

 

조선의 사신들은 중국 연경에 가서 충격을 받곤 했다. 중국의 고관들이 소매 속에 저울을 숨겨 다니며 거리에서 흥정하고 물건값을 깎는가 하면 일일이 저울에 달아서 셈을 치르는 것을 보고 “이런 쌍놈의 자식이 있나?”하고 한심하게 생각한 것이다. 양반 체면에 어찌 엽전을 만진다는 말인가? 더럽게 말이다.

 

왕이 실무에 어두워야 하는 이유는 왕이 살림을 챙기면 노예가 이중장부를 만들기 때문이다. 양반이 모른척 하면 청지기는 봄에 빼돌린 곡식을 가을에 메꾸어 놓는다. 이건 그다지 나쁘지 않다.

 

만약 왕이 일일이 장부를 챙기면 청지기는 매일 1/10씩 일정하게 빼돌려서 장부를 맞춰 놓는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고의로 적자를 만들어 양반을 파산시킨다. 파산하면 양반이 자신을 팔아치우기를 기다렸다가 다른 주인을 찾아 나선다.

 

종은 반드시 주인을 배반하며, 주인을 배반하지 않는 종은 역사적으로 없다. 그러므로 배반하고도 본인이 수습하도록 모른척 하는게 차라리 낫다. 그래서 일본의 CEO들은 상징적인 교주 노릇을 하고, 실무에 개입하지 않으며 실무를 맡은 전문관료가 삥땅한 것을 도로 메꿔놓기를 기다린다.

 

CEO가 실무자의 월권과 비리를 알아채면 실무자의 입장이 곤란해지기 때문에 모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아예 장부 근처에는 얼쩡거리지 않아야 신사다. 대인배다. 그러다가 망한다.

 

최근 일본이 지진을 당하여 간 나오토 총리가 실무를 맡은 도쿄전력을 존중한다면서 간여를 망설이다가 개입시기를 놓친 것이 대표적이다. 뒤늦게 격노하여 ‘철수는 없다. 도쿄전력은 파산을 각오하라’며 목청을 높였지만 우스울 뿐이다. 도쿄전력 간부들은 자기회사 주가에나 신경쓰고 국가문제는 나몰라라 한 것이다. 이거 망하는 공식이다.

 

원자로에 바닷물을 투입하여 훼손하면 회사재산 몇 조원이 날아가는 판이라 무려 30시간이나 결단을 못 내리고 망설인 것이다. 이게 기업 차원의 문제가아니라 국가 차원 문제인데 판단할 재량권이 없었다. 한 마디로 리더가 없었다.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삥땅을 엄격히 단속하면 종업원은 반드시 주인을 함정에 빠뜨린다. 반면 주인이 노예에게 전권을 주면 노예는 주인도 벌고 자신도 버는 윈윈전략을 채택한다. 주인의 살림을 크게 불려서 거기서 자신의 몫을 표나지 않게 빼돌리는 것이다.

 

만약 주인이 낱낱이 감시하면 종은 결코 주인의 살림을 불리지 않는다. 거래액이 커질수록 부패에 연루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구멍가게 관리자가 부패해도 천원짜리지만 백화점 관리자가 부패하면 억 단위다. 그러므로 노예는 결코 가게가 번창하여 자신의 일거리가 늘어나길 원치 않는다. 가게가 번창하려 하면 뒤로 협잡하여 아는 가게로 손님을 빼돌리고 뒷돈을 챙긴다.

 

중국에서 드라마로 인기를 끈 교가대원(거상 치아오쯔융)에 이런 내용이 잘 묘사되어 있다. 종업원들의 부패를 눈감아줘야 하며,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등 뒤에서 칼을 휘두른다. 종업원이 뒤로 외부세력과 결탁하여 주인을 치는 것이다. 물론 치아오쯔융은 종업원의 임금을 올려주고 대우를 개선하며 종업원의 부패를 막아 상업을 크게 일으켰다.

 

무엇인가? 왕과 궁정노예, 왕과 내시, 모른척 하는 양반 뒤로 삥땅하는 청지기처럼 알아서 짜웅하는 시스템, 각자 알아서 해처먹고 입닦는 시스템으로 가면 잠시 흥하지만 종국에는 반드시 망한다. 서로의 약점을 틀어쥐고 있는 시스템이 작은 위기에는 실용적으로 헤쳐가게 하지만, 큰 위기에는 같이 죽게 만든다. 간 나오토와 도쿄전력이 서로 체면차리다가 같이 죽듯이 말이다.

 

큰 위기가 오면 청지기는 달아나고 양반은 실무를 몰라 허둥댄다. 내시는 책임을 지지 않고 도망친다. 내시는 세력이 없다. 세력이 없으므로 부끄러움도 없다. 내시가 도망친다고 누가 욕하겠는가? 고추도 없으니 욕할 것도 없다. 부끄러움을 아는 자에게 권한을 주어야 한다. 세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부끄러움을 안다.

 

명박이 쓰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세력이 없다. 어떤 분야의 대표자가 아니다. 반면 노무현이 중용한 인물은 모두 독자세력이 있었다. 유시민 뒤에 유빠가 있고, 김근태 뒤에도 민통련 등 시민단체 중심으로 세력이 있었고, 정동영 뒤에도 큰 세력이 형성되어 있었고 이해찬도 마찬가지다. 반면 김황식 이 양반은 세력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존재가 없다. 이름도 없다. 신문에 나타나지도 않는다. 정운찬도 교수출신이라 세력이 없다. 그러니 팽해도 부담이 없다. 세력을 가진 박근혜는 절대 기용하지 않는다. 이게 망하는 자들의 공식이다.

 

맘루크도 나중에는 타락했고, 예니체리는 나중 반란을 일으켰다. 19세기에 근대식 군대를 만들려고 한 술탄은 왕보다 권력이 세진 예니체리를 모아놓고 폭탄을 퍼부어 몰살시켰다. 중국 역대 왕조의 몰락은 내시들과 관계가 깊다.

 

조선이 근대화에 실패한 것도 지나친 상피제 때문이다. 정약용은 명신이어서 곡산부사로 치적을 세웠을때 백성들이 길을 막고 더 머물러 달라고 탄원했지만 임금은 승진을 구실로 대궐로 불러들였다. 백성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다는 사실 자체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방에 명신이 나서 백성들의 인기를 받으면 임금은 질투하여 그를 다른 지방으로 옮기고 만다. 조선왕조 내내 반복되었다. 그러므로 지역에서 성공사례가 만들어질 수 없었다.

 

일본은 지역의 토호가 뿌리를 내려 자기 지역을 부강하게 만들고자 노력하였으나 조선은 명신이 지역을 부강하게 만들면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반드시 쫓아내고 말았던 것이다. 서로 약점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것이다.

 

일본기업이 잘 나가다가 최근 주춤하는 것도 이러한 고도의 역할분담과 관련이 있다. 스티브 잡스는 CEO로서 전권을 휘두르지만 일본 기업에는 이런 독재자가 잘 없다. CEO가 실무에 관여하면 점잖지 못하다는 식이다.

 

모택동도 카다피처럼 상징적 지도자로 만족하고 실무에는 개입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나라는 망해갔다. 카다피는 숫제 ‘내게 권력도 없는에 뭘 내놓고 물러나라는 거냐? 뭐가 있어야 내놓지?’ 하고 항변한다. 모택동 역시 배후에서 공작했을 뿐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문화혁명의 진행중에도 유소기 등 실권파들은 사태의 배후가 모택동임을 몰랐다고 한다.

 

서로 상대방의 나사 하나를 빼서 뒤로 슬그머니 감춰놓고 상대가 자신에게 의존하게 하는 꽁수 부리다가 연환계로 엮여서 한꺼번에 망하는게 보통이다. 위기가 오면 리더가 나서서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대중적 지지는 있지만 실권이 없는 모택동과, 실권이 있지만 모택동의 위세에 눌린 유소기가 서로 눈만 꿈벅꿈벅하면서 눈치를 보는 와중에 중국은 파탄이 나고 말았던 것이다.

 

반드시 리더가 실무를 장악하고 확실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 떠오르는 실력자가 세력을 형성하도록 풀어놓아야 한다. 서로의 약점을 잡지 말고 서로의 강점을 살려야 한다. 위기 때는 전문가 집단에 의존하지 말고 국민 모두가 각성하여 들고 일어나야 한다. 실무에 간여하지 않은 바보 임금은 오래전부터 칭송되어 왔지만 환상이다. 바보 이반의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

 

민주당이 기반이 없는 손학규를 대표로 앉힌 것도 그렇다. 손학규를 붕알없는 내시로 보고 수작을 부린 것이다. 지까짓게 붕알도 없는데 무슨 당내세력을 형성할 수 있겠나 하고 약점 잡았다고 믿은 거. 웃긴다. 망하는건 필연.

 

나쁜 임금들은 부하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쓰지 못하도록 나사를 하나씩 빼놓는다. 그것을 슬그머니 빼놓는 것이다. 그것을 슬그머니 빼앗긴 자가 내시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도 불구로 만든다. 대신 자신은 실무를 모르는 것이다. 잘 살펴보면 나쁜 조직에는 반드시 이러한 구조가 있다. 상대의 약점을 틀어쥐고 있으면서 결정적인 시기에 자신을 찾아오게 만드는 것. 손학규? 아쉬우면 날 찾아와. 나 박지원을 찾아오라구. 알겠어? 이런 거. 

http://gujoron.com




[레벨:1]바닐라또

2011.03.19 (20:14:39)

'인터넷 최고의 논객 김동렬' 이라는 이름에 꼭 어울리는 광채나는 글입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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