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장자연님이 폭로한 바, 31악마 중 대표악마 조선 방가의 '신인 연기자 거쳐가는 코스' 원조가 낮통령 박악마였고 밤통령 방가(박악마가 방가를 밤의 대통령이라고 한 것은 마피아와 같은 어둠의 지배자라는 뜻이 아니라, 주성영 대구 밤문화 개념, 곧 섹스 대통령이라는 의미로 한 말이다. 아마 방가가 박악마에게 기술을 전수한듯.)에게로 전해진 가문의 내림이라는 것은 아실 것이고, 아래 유시민이 분석하고 있듯이, 의도적인 지역주의 조장의 죄 하나만으로도 박악마는 일 만번 능지처참을 해도 부족한 쓰레기라 하겠다. 80년대 이후 대한민국사가 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래는 10년도 더 전에 쓴 유시민의 옛글이라 지금 기준으로 보면 곤란하다.
우리 나라에서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일반적인 '지역감정'이 아니라 다른 지역 사람들이 모두 전라도 사람을 싫어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감정'의 수준을 넘어서 일종의 '편집증' 단계에 이른 '질병'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지역 감정' 이라는 말 대신 '전라도 혐오증' 이라는 단어를 써야 제대로 이야기 할 수 있다고 본다. 내가 겪은 대로 말하자면 경상도 사람들의 전라도 혐오감은 '전라도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린 시절'에서부터 형성된다. 주로 서울에 살거나 살다온 가족과 친지들에게서 듣는 좋지 못한 이야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무개 집주인이 전세금을 띠묵었는데 전라도 사람이라 카더만' 이라든가, '아무개네 가게 경리직원이 돈을 빼돌리다가 들켰는데 전라도 어디 여자라 카더라' 는 식의 구체적인 '피해사례'가 화재로 오르면, 사실 여부나 그런 못된 짓을 한 '바로 그 사람'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만 부각된다. 그래도 무슨 구체적인 사건을 근거로 말하면 좀 나은 편이다. 너도나도 맞장구를 치다 보면 '전라도 사람은 배신을 잘하기 때문에 아무리 충성하는 것처럼 보여도 조심해야 한다' 거나 '군부대 철조망이 누구 때문에 생겼나' 하는 따위의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주의 주장까지 거침없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라기 때문에 경상도에는 아무리 입이 심심해도 '해태껌'은 사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곧바로 출발하는 광주고속 버스에 빈자리가 있는데도 30분씩 기다렸다가 (광주고속이 정말 전라도 사람의 회사인지도 모르면서) 다른 회사 차를 타는 젊은이도 드물지 않다. 나는 대구에 사는 동안 이런 아이와 젊은이들을 많이 보았다. 나 역시도 예외가 아니어서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는 전라도 사람들이 '아무래도 좀 그럴 것' 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한 번도 전라도 사람을 만난 적이 없으면서 편견을 가지기로는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88고속도로가 뚫리기 전 대구와 광주는 서로 왕래가 드문 도시였다. 그래서 전라도 사람에 대한 대구 사람들의 '혐오증'은 거의 전적으로 서울 등 객지에 나갔다 온 사람들이 주는 정보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강원 충청, 경기도 등 다른 지역에서도 다르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매우 '한국적인 특수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일정한 사회경제적 환경이 조성되면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생기는 현상이라는 말이다. 나는 대구를 떠난 이후에는 경상도 출신치고는 전라도 사람들을 많이 겪어본 편이다. 대학 기숙사 식당 주방 아주머니들에서 봉천동 고개 꼭대기 달동네 자취방 주인 아주머니, 단골로 다니던 봉천 중앙시장 순대집 아저씨가 그랬고, 신산스러웠던 80년대를 헤쳐 나갔던 동지들 중에도 유난히 그 동네 출신이 많았다. 당원들이 거의 백 퍼센트 전라도 출신이었던 평민당에 들어가 관악을 지구당(신림동) 교육부장으로 일한 기간에 사귄 사람들도 많다. 나는 전라도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들은, 내가 겪은 바로는, 다른 지방 사람들에 비해 싹싹하고 정이 많으며, 기회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재미있게 잘 논다. 물론 어느 지방이나 그렇듯 개중에는 '욕심 많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고 '너그러운' 사람과 '좋은 사람'도 있다. 특별히 어느 한쪽이 많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쪽에 속한 사람이건 하는 일이 대개 '험한 직업'이라는 사실이다. 예컨대 무슨 무슨 부장이나 대의원 등 직함을 가지고 있거나 지구당 사무실에 자주 나타나는 사람들을 보면 공사판 노가다, 포장마차 사장, 중국집 종업원, 복덕방 주인 등이 적지 않고 중고자동차 매매업을 하거나 이른바 '마치꼬바' 사장, 약사 또는 제법 번듯한 점포를 가진 상인쯤 되면 성공한 편에 속한다. 물론 가끔은 부동산을 좀 가졌거나 작은 기업체를 경영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 대학을 나와서 사무직 근로자로 일하거나 의사 등 전문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선거 철에 특별당비 모금 구좌로 후원금을 넣기는 하지만 '김대중 당'의 지구당 사무실에 나타나는 일이 거의 없다. 빈손을 쥐고 서울에 올라와 남들이 꺼려하는 험한 일을 해서 먹고살다 보니 특별히 머리가 좋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부를 제대로 시키지 못해 자녀들 역시 생산직이나 하급 사무직 근로자, 음식점 등 서비스업체 종업원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87년 대선 당시 김대중과 김영삼의 선거유세를 다 가 본 사람은 누구나 느꼈겠지만 '양김'의 지지자들은 행색이 판이하게 다르다. 김대중 유세에 나오는 사람들은 잠바를 걸친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옷차림뿐만 아니라 얼굴이나 손을 보아도 고생하며 사는 흔적이 역력하다. 반면 김영삼 유세장에는, 그가 이직 야당 후보였던 시절에도 말끔하게 넥타이를 매고 바바리를 입은 신사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전라도 사람들이 업신여김을 받는 이유를 찾으려고 '차령 이남은 지세가 배역의 기운이 있으니 그 곳 사람은 중용하지 말라' 고 한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는 전혀 없다. '전라도 혐오증' 의 원인은 딱 하나, 전라도 사람들이 가난하다는 것이다. 돈 없고 '빽' 없고 배운 것 없이 객지에 가서 그 사회의 맨 밑바닥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특정 지역 출신이든 특정한 인종 집단이든 멸시를 받게 되어 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70년대와 80년대의 우리 나라 텔레비전 연속극에서는 목욕탕 때밀이,작부,깡패,도둑놈,식모,사기꾼,노가다,노점상 등은 거의 예외 없이 전라도 사투리를 했다. 시나리오 작가와 프로듀서가 전라도 사람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실제 사회가 그랬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직업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주로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했다면 그 드라마는 '리얼리티가 없다'는 핀잔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며, '높으신 분들'께서 호통을 쳐서 당장 '바로' 잡았을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 셋 가운데 하나가 사는 수도권에서 이런 밑바닥 직업을 거의 다 전라도 사람들이 하는데, 그들이 멸시받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 해야 할 것이다. 서울에 사는 경상도 사람들이 (다른 지역 출신도 마찬가지이지만) 보는 전라도 사람들은 가난하고,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행색이 초라하고, 몇 푼 되지도 않는 돈 가지고 악착같이 다투고, 대낮에도 술먹고 다니고..., 한마디로 말해서 함께 어울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고향에 가서 '그런 전라도 사람' 들에 대한 험담을 주저 없이 한다. 그러나 그들은 고향에 뿌리박고 사는 전라도 사람들이 어떤지는 전혀 모른다.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자기네가 본 전라도 사람들이 왜 그렇게 가난한지를 따져보지도 않는다. 나는 전라도 사람들의 '상대적 빈곤'이 박정희 시대에 진행된 지역적 불균등 발전의 결과라고 본다. 아다시피 80년대까지 대한민국의 공장이라는 공장은 거의 모두 수도권과 경남북에 몰려 있었다. (경남북이 전남북보다 산업 입지가 좋았기 때문이 라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고 보지만 여기서 따지지는 않겠다.) 따라서 경기도와 경남북의 시골 사람들은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살 수가 없는 경우에도 그렇게 멀리 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가까운 지역 공장에서 일하다가 유사시에는 언제든 고향집 에 갈 수 있었고, 서울까지 가는 것은 확실한 일자리가 있는 경우뿐이었다. 다시 내 경험을 가지고 이야기 해 보자. 우리 친척들은 친가와 외가를 막론하고 대부분 대구와 영천, 경주 일대에서 살았는데,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70년대 초반에 나보다 나이가 서너 살 많은 친척형과 누나들은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모두들 대구에서 공장을 다녔다. 누나들은 모두 시집을 가서 지금은 살림만 하지만 형들은 기술 을 배워서 조그만 공장을 차리기도 했고, 그런 누나와 형들의 도움으로 공업 고등 학교나 대학 공부를 한 내 또래 사촌들은 서울이나 수원 등지의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반면 한반도의 곡창 전라도 사람들은 60년대 후반 이후에 진행된 농업의 해체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았고 그 지역에 산업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무작정 서울로 갈 수밖에 없었다. 나이 들어 간 사람들은 몸으로 때우는 궂은 일밖에 할 수가 없었고 기초교육이라도 받은 젊은이들은 공장으로 갔다. 내가 개인적으로 충격 받은 것은 특히 젊은 여성들의 경우였다. 대학 신입생이던 78년 여름부터 나는 구로공단 노동 야학에서 선생노릇을 했는데, '호남선 완행열차를 용산역에서 내려서, 길을 건너지 않고 버스를 타면 구로공단 행이요, 길을 건너서 타면 청량리 588' 이라는 말을 들은 것이 그맘때였다. 야학 학생이 약 40명쯤 되었는데 거의 다 섬유, 봉제, 전자 공장에 다니는 열 일곱에서 스물 사이의 내 또래 전라도 처녀들이었다. 학생들의 신상자료에는 월 평균 급여액 이 나와 있었는데 매주 60시간 정도 일한 대가가 2만 5천원 정도였다. 당시 학교 기숙사에 식비로 내는 돈이 월 2만 1천원, 신림 9동 골목의 2인 1실 하숙비가 월 3만 5천원 이었고, 나는 고2짜리 남자아이에게 매주 여섯 시간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일로 월 6만원을 버는 참이었다. 야학 학생들의 근로시간과 월급 액수는 나에게 적지 않은 정신적 충격을 안겨 주었다. 당신 많은 젊은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노동자들과 어울리면서 비로소, 이른바 명문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누리는 안정된 생활과 높은 지위가 불평등이 라는 사회악에 '오염된 열매' 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별 힘은 없지만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를 끝장내기 위한 싸움에 참여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이때였다. 이야기가 조금 엇길로 나갔지만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분명하다. '서울의 전라도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전라도의 지세' 도 아니고 '전라도 사람의 타고난 근성'도 아닌 박정희 정권의 과격한 농촌 해체 정책과 경상도 위주의 불균등한 산업유치 정책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전라도 혐오증'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특히 경상도 사람에게는 치료하기가 매우 어려운 정신적인 '질병'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물론 다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다) 자기네가 30년 동안 대통령을 배출했다고 자랑하면서도, 그 대통령들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피해를 본 전라도 사람들에 대해서 미안해 하기는 커녕 그들을 싫어하고 업신여긴다. 장기간에 걸쳐 반복해서, 주위의 충고와 권유를 무시하면서,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보통 '저 사람 제정신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다른 지역사람이라면 모를까, 경상도 사람이 스스로 '전라도 혐오증' 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으면서, 또 그것을 노골적으로 내보이기까지 한다면, 이것을 '정신병' 말고 다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 표현이 옳지 않거나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구체적인 예를 몇 가지만 들어보자. 청와대를 포함해서 우리 나라 정계, 군부, 관계, 학계, 재계의 의사결정 구조 꼭대기에는 '부산 복국집'에서 '지역감정이 확 일어나야 한다' 고 말한 전직 법무장관과 내무관료들 같은 경상도 출신 '나으리' 들이 앉아 있다. 이 사람들은 평소에 인사권을 행사할 때 경상도 출신을 우대해 중요한 자리에 기용하면 서도 전라도 사람들은 '출세길' 을 막아 버린다. 그러고는 아주 중요한 직책에 사람을 쓸 때는 '능력에 따른 인사를 하다 보니 경상도 사람이 좀 많게 되었다' 고 주장한다. 김영삼 대통령도 집권 중반기 내각에 전라도 출신이 거의 없는 것을 기자들이 지적하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옳은 말이다! '노른자위 보직을 여럿 거친 사람일수록 업무능력이 뛰어나다' 는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찾으면 전라도 사람이 보일 리가 없다. 원래부터 노른자위 보직은 그 사람들에게 주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대학교에서 재단 이사장과 총장이, 아무리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전라도 출신은 교수로 뽑지 않는다는 것을 교수 인사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면 (지금은 달라 졌기를 바라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대학이 정말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정신병 환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할 때는 전라도 청년이 경상도 청년만큼 수가 많은데, 별을 단 사람을 보면 전라도 사람이 거의 없는 이유 가 '경상도 사람이 유전적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휘업무를 더 잘하기 때문에 별을 많이 달았다'고 누가 말한다면, 이 사람을 제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 언론과 국민들은, 경상도 사람이건 전라도 사람이건, 일본에 사는 우리 동포들이 일본 사람에게서 차별을 당하며 사는 것을 보고 매우 분개한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분개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사는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 차별에 대해서는 별로 분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민족차별 이나 인종 차별은 나쁘지만 같은 민족 안에서 지역 차별을 하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일본사람들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조센징은 더럽다'고 한다. 그런데 식민지 주민 '조센징'이 일본 사람들이 '더럽게' 여기는 일을 하면서 '더럽게' 산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일에 부려먹을 생각이 없었다면 그네들이 조선을 집어삼킬 이유가 없었을 것이니까. 그들은 또 국적을 포기하지 않는 조선인 또는 한국인이 일본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자기네 손으로 오늘날까지 여전히 막아 놓고 있다. '조센징'이 자기네가 '더럽다'고 여기지 않는 일은 할 수 없도록 해 놓고는 그 입으로 '조센징은 더럽다' 고 하는 것이다. 이런 짓을 하는 일본 사람을 제정신이 아니 라고 생각하는 점에서는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런데 경상도 출신의 '나으리'들은 자기네도 똑같은 짓을 하면서 자기가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다른 지역 사람들 역시 정신 나간 짓 그만두라고 충고하는 법이 별로 없다. 모두가 정신이 나간 것일까? 전라도에도 요즘에는 공단이 생기고 있다. 중국경제가 번창하고 서해안 고속도로가 다 뚤리면 더 좋아질 것이라고 하지만 그 정도로는 '전라도 혐오증'이 치유될 수 없다. 달동네에 몰려 사는 '서울 전라도 사람들'이 호화 빌라와 고급 아파트에 사는 '서울 경상도 사람들' 만큼 잘 살게 되어야 비로소 이 질병의 '발병 원인'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문제의 본질을 덮어둔 채 막연히 '우리 모두 지역감정을 청산합시다!' 하고 외치는 분들께 제발 좀 가만히 있어 주시라고 부탁하고 싶다. 그런 개탄보다는 속마음을 열고 소곤소곤 조용하고 끈기 있게 토론하고, 팔도의 시민들이 저마다 다른 지역을 오가면서 그 곳의 실정과 거기 사는 사람들의 심정을 (특히 전라도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상호교류를 지원하는 것이 당장 효과가 눈에 보이지는 않겠지만 문제 해결에 차근차근 다가서는 바른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전라도 혐오증' 이라는 이 '집단적 정신병' 을 그 자체로서는 별로 해롭지 않은 '지역 감정' 수준으로 완화하는 데만도 몇십 년이 걸릴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상 유시민 글)
-------------------------------------------------------------------- 지역주의는 어느 나라에나 다 있다. 그런게 있는 이유는 그런게 있는 것이 통치배들에게 더 편리하기 때문이다. 현행 대통령제로는 결코 지역주의를 풀 수 없다. 총선에서 이기고, 한나라당을 쪼개고, 개헌까지 가야 하며, 양원제를 시도한다든가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나치는 일종의 집단적 정신질환이다. 정신병을 치료하려면 먼저 환자가 자신이 환자임을 인정하게 해야 한다. 정신질환자는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치료의 대상이다. 31명의 악마를 추종하는 딴나라당 세력은 결코 대화상대나 경쟁상대가 될 수 없다. 이 점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신병자와 대화하는 자도 정신병자다.
|
∑
땅덩이 넓은 미국에, 정말 프로그래밍 잘하는 인도인이 있다.
미국인의 삶에 피해가갈까?
아니라고 본다.
능력있는 사람들이 노닐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한다.
그게 인터넷이라면,
그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존중'해야한다.
소규모화된, 한국사회에서는, 그 작은 인터넷공간의 톡톡 튀는 인간형들을
보존해야한다.
과거의 폭력에서, 보호해주고, 그 보호의 댓가를
그들의 '작품'을 통해 얻어내야한다.
이 좁은 사회에서는 '돈'이 많은게 오히려,
손해다.
지속가능한 '동기'가 진짜 재산.
"정신질환자는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치료의 대상이다. 31명의 악마를 추종하는 딴나라당 세력은 결코 대화상대나 경쟁상대가 될 수 없다. 이 점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신병자와 대화하는 자도 정신병자다."
새겨둘 말이오.
나 어렸을적 동네에는 외지인이래봤자 강원도에서 온사람들 뿐이었는데, 동네에 유별나게 성질사나운 아짐이 경상도 출신이라서 경상도사람은 어쩌고~ 이런이야기 하도 들어서, 경상도사람이 차별받는줄 알았다는. 좀 커서 시내로 나와보니 죄다 경상도에서 넘어온 사람들이어서 실상이 그렇치않다는걸 알게되었소. 이런 측면에서는 숫자가 좌우하는 것.
빗나간 얘기지만
나는왜,
정다빈 씨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갖게되는건지..
실례될 말이겠지만
그녀의 남자친구가 자꾸 거슬렸다.
당시에
이 작품 찍고
"사랑을 위해서 내 영혼도 팔 수 있어"
저 글귀는 사실이지 소름돋는 말이었다.
이렇게 귀여운 그녀가
최진실, 장자연들과 함께 떠났다. 별하나를 내 가슴에 남긴채...☆
박악마 시대에 맨정신 가지고 살려면 힘들었겄어...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서로 싫어하는건
그렇다 쳐도,
경기북부, 그중에서 제가 지내고 있는 포천에 사는 사람들이
왜 전라도 혐오증을 갖게 되었는지가 저는 궁금해집니다.
반북반공 콤플렉스가 전라도포비아와 결합한 극악한 케이스 아닐런지
경기북부 또한 전라도 못지 않은 소외지역인데,
왜 전라도 혐오증이 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소외 당한 사람들끼리 서로 싫어하는 그런걸까요?
혐오증은 결핍증에서 온다고 봅니다.
배고픈 동부가 배부른 서부를 질투하다가 만만한 호남을 혐오하는거죠.
중국바람으로 인천 서울 경기남부 충청 전라의 서부가 뜨고
동해안 시대가 저물면서 영남 영동 경기북부가 소외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중국만큼 성장하지 않고는 답이 없는 형편..
지역주의 문제의 원인은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하나하나 다 입증할 수 있는데
그런 분석 해봤자 반드시 반론이 나오기 때문에 말할수록 더 손해입니다.
한가지 분명한건 지금 조선족혐오증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게 완전히 닮은 꼴이라는 거죠.
저도 이 글을 본 기억이 나네요. 그때의 유시민과 지금의 유시민을 같은 사람으로 보아야 할 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저도 그때 유시민의 생각이 참 바르다고 생각했는데, 그 10년간의 유시민의 행태를 보면 과연 그사람도 19년간의 소년청년기를 유신의 심장 대구에서 살아온 사람답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밑바닥 저 밑 무의식의 근거에는 전라도 혐오증이라는 증세가 잠복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사건들을 보게 됩니다.
저도 대학가서 경상도 사람많이 만나고, 제 처가도 경상도지만, 그들 무의식의 바탕에는 전라도혐오증이 지금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라도라고 대놓고 말은 않더라도 민주당을 아주 싫어합니다. 그 이유는 위의 유시민의 글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죠. 지금 20-30대로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들의 그런 전라도, 민주당 폄하소리를 20년간 들어온 사람의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죠. 10년간 대학에서 사회에서 올바른 공부를 했다해도 다시 30대-40대로 오면서 부모님들이 그려놓은 그림처럼 자신도 서서히 그렇게 변해 가는 거죠.
유시민의 민주당에 대한 무시와 공포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민주당 당적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경상도에서 이길 수 없다는 명제. 그거 하나를 깨달은 게 지난 총선에서 대구 수성구 국회의원 낙선이었죠.
차라리 김두관처럼 솔직하게 민주당 당적으로는 지사 못하니, 무소속으로 나왔고, 앞으로도 쭈욱 무소속으로 남을 거다라고 얘기를 하든지. 노무현의 패기와 바보주의를 계승하고 뛰어넘지 못하는 지점에서 유시민의 패배주의는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대구에서 민주당깃발로 아쉬운 패배를 했을 때, 국민들은 유시민의 편이 되어 주었고, 그의 자산은 커졌으나, 그가 국민참여당을 친노의 전면적 동참없이 부분적으로 만들 때 국민들은 유시민이 그 정도 밖에 안 되었나하고 점점 발을 빼게 되었죠. 그가 만약 경기도지사에서 승리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겠으나, 그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경기지사를 헌납했고 그건 그의 하산이 시작되었다는 표시였습니다.
노무현이 지역감정을 깨기 위해 노력했듯이 정치적 아들인 유시민은 가업을 이어야 했는데, 그보다는 그 지역논리에 편승해 민주당죽이기, 전라도 죽이기에 앞장서는 행태를 보여온 것. 이것이 유시민의 업보다 이렇게 보는 거죠.
10년 초심으로 돌아가 동서화합, 진보 대 보수의 정당구조 안착이라는 민주주의 발전을 그가 이루려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가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민노당 등 진보당과의 합당을 주장하기 전에 민주당과의 합당을 진지한 자세로 고민해야 한다. 그게 그가 정치에 처음 발 붙일 때 생각했던 초심이었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더 좋은 세상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딴쥐방가무리들은 섬멸의 대상이쥐. 교육에 열 올리는 모든 부모들이 어문데다가 돈쓰지 말고 이거 먼저 알아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