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팔은 도구인가 타자인가.
세포 단위로 보면 타자일 수도 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저맘대로 움직인다.
심장한테 뛰라고 하지 않았는데 이미 뛰고 있다.
인간은 아기 시절부터 역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대신 경험하지 않으면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타인이 통제되지 않는 것은 그것이 타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타인과 나를 통합하는 제3의 관점을 얻으면 타인도 나의 도구가 된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확장되면 협력이 되고 정치가 되는 것이다.
인간이 자기 몸은 잘 통제하면서 타인은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경험의 절대적 양 때문이다. 자기 몸은 가까우니깐 자주 겪어서 아는 것이다.
상대를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인간은 자유를 얻는다.
영상에서 재밌는 것은 어른이 아이를 가르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이가 어른을 통제치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
어른이 까꿍놀이 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웃음놀이 하는 것이다.
아이가 우는 것은 어른을 통제할 수 없어서 그런 거고.
웃어주니깐 통제할 수 있다는 걸 발견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사실 아이는 옆에서 쳐다보는 엄마를 발견했기 때문에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처음엔 저 아저씨 왜 저래? 하다가,
나중엔 내가 웃어주니깐 저 아저씨가 재주를 부리네.
봤어?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