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일용할 차별을 필요로 한다. 사회적 압박이 필요하다. 물은 수압이 필요하고 전기는 전압이 필요하다. 철학자들은 엉뚱한 소리를 한다. 소외, 실존, 타자성, 대상화, 정치적 올바름 따위 프랑스 철학의 관념론은 사람을 갈궈야 된다는 말이다. 주먹질을 할 수도 없고 말이다. 권력의 문제, 사회압의 문제다. 집단의 구성원 간의 간격을 좁히는 문제다. 인간은 세력동물이다. 권력적 상황에서 세력화를 요구하는 동물의 호르몬이 인간을 난폭하게 한다. 이때 개인 대 개인의 관계가 아니라 집단 대 개인의 관계로 생각하므로 양심의 가책이 없어진다. 가부장이 난폭해지는 이유는 개인을 집단의 도구로 보기 때문이다. 전시상황과 같다. 앞으로도 반복될 일이므로 기선제압을 해서 집단의 위기를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고 믿는다. 집단이 느슨해져서 큰일이 났다고 믿는다. 사실은 흥분한 것이다. 날뛰는 말은 진정시켜야 한다. 어른이 안아주면 10초 안에 진정되는데 가부장을 안아줄 웃어른이 없는 게 문제다. 소외, 실존, 타자성, 대상화 따위 거창한 말씀 필요 없고 인간을 흥분시키는 트리거를 알아야 한다. 그게 철학자가 해야 할 일이다. 프랑스 철학은 현장과 동떨어진 공염불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다. 만화든 영화든 흥행작은 공통점이 있다. 주인공이 집단과 단절되었다가 다시 연결될 때 관객들은 감격한다. 람보와 록키에서 실베스타 스탤론이 절규하는 이유다. 람보와 록키의 절규는 그게 다섯 살 꼬맹이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엄마를 다시 만났을 때 울면서 하는 행동이다. ‘엄마! 나 무서웠단 말이야. 뿌애앵.’ 소리를 지르고 울음이 터진다. 람보와 록키는 다 큰 어른이 어린아이 행동을 한다. 관객은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유전자에 새겨진 동물의 본능을 어쩌겠는가? 호르몬이 터지면 게임 끝이다. 극장은 미어터지고 돈은 자루에 쓸어 담으면 된다. 인간은 언제라도 집단의 의사결정 중심을 향해 정렬하려고 한다. 사회 안에 지정학적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사회적 지정학이 필요한 것이다. 너무 정렬하기만 하면 왕이 하나뿐이라서 답답해진다. 그 경우 공격은 하는데 방어를 못 한다. 공격은 우두머리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 수비는 지형을 중심으로 흩어져야 산다. 게르만족은 흩어져 있으므로 뭉치게 할 왕이 없어서 로마군에 당했다. 수백 년간 로마에 얻어터진 이유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도 재미가 있다. 영국군은 적지에 있어서 배수진을 친 셈이다. 도버해협을 헤엄쳐 건너 도망칠 수 없다. 영국군은 지휘관을 중심으로 단결하게 된다. 반면 프랑스는 왕권이 약해서 귀족들을 중심으로 흩어져 있었다. 잔다르크가 종교를 이용하여 단번에 해결했다. 영국군이 도버해협이라는 배수진을 쳤다면 잔다르크는 종교라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프랑스군을 묶어버린 것이다. 중국은 너무 뭉쳐서 왕이 하나뿐이다. 공격이 되므로 영토를 크게 넓혔는데 수비를 못해서 열강에 털렸다. 왕의 숫자가 많으면서도 역할분담을 해야한다. 적절히 연결되면서 동시에 단절되어야 한다. 문명은 그리스반도를 나와 이탈리아반도 찍고 이베리아 반도로 옮겨간다. 해양이 연결과 단절의 상반된 역할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도버해협이 짧아서 반도나 마찬가지다. 지정학적 이득을 본다. 왕과 귀족과 기사와 평민과 농노의 봉건 계급구조는 필연이다. 사회 안의 지정학적 구조다. 사회 안에 만들어진 강과 산맥이 봉건 계급제도다. 계급의 고착화가 문제일 뿐 차별이 전혀 없을 수 없다. 물은 수압이 있어야 흐르고 시장은 금리가 있어야 돌아간다. 사회는 어떤 형태이든 압박이 있어야 한다. 산업의 혁신과 미디어의 혁신에 의해 새로운 권력이 등장하여 새로운 차별로 갈아타기를 반복하는 게 역사의 진보다. 옛날에는 양반이 상놈을 갈궜는데 지금은 LGBT나 PC로 차별의 매뉴를 바뀌었다. 본질은 사회압의 증가다. 캣맘, 페미, 비건, 동물단체, 유기농, 신토불이, 성찰, 진정성, 생태, 온난화 등등 온통 난리다. 조폭이나 폭주족도 사회를 긴장시킨다. 인간들이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일까? 사람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외계인, 무한동력, 오파츠, 지구평면설 등 별게 다 나온다. 문제는 이념의 부재다. 사회주의 이념이 날아다닐 때는 이런 잡다한 수단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념이 실종되자 정신적인 허기를 느낀다. 정신적 공백을 채워야 한다. 정 안되면 음모론으로 가보는 것이다. 음모론자에게 왜 그러느냐고 묻는다면 어리석다. 비건에, 페미에, 캣맘에, 사이비종교에 걔네들이 어디 대화가 되더냐? 애초에 어깃장을 놓으려고 어깃장을 놓는 것이다. 자신은 매를 맞지 않고 일방적으로 구타하려면 갑옷이 필요하다. LGBT, PC, 캣맘, 페미, 비건, 유기농, 신토불이, 외계인, 초능력, 오파츠 그게 다 뭐지? 그게 갑옷이다.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귓구멍에 공구리 쳐놨으니 네 말은 필요 없고 내 말을 들어봐. 이런 뻔대전략이다. 남의 말은 절대 안 듣고 일방적으로 내 말만 하겠다는 속셈이다. 이 중에 최강은 보나마나 지구평면설이다. 작정하고 미친놈이 말을 듣겠냐? 사회에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 돈에 의한 질서, 정치에 의한 질서, 종교에 의한 질서, 문화에 의한 질서가 적절히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트럼프 당선으로 미국은 구조적으로 망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영국의 금융이 월가의 금융과 손잡고 미국의 노동을 없앴다. 노동자 파업을 해결하는 방법은? 노동을 없애면 되잖아. 동부는 금융으로 먹고 서부는 엔터테인먼트로 먹고 중부의 노동은 소멸했다. 미국의 구조붕괴다. 허리가 부러졌다. LGBT, PC, 캣맘, 페미는 노동제거 후과다. 노동이 사라지는 속도에 비례해 LGBT와 PC가 그 빈 공간을 메운다. 사회가 돌아가려면 일정한 차별이 필요하다. 차별주의자 차별은 면죄부를 받는다. 새로운 유행, 새로운 음악, 새로운 사조, 새로운 트렌드로 차별한다. 문화와 종교는 자발적 자기차별이므로 비난받지 않는다. '너 개봉한 영화 봤냐? 못 봤구나. 난 봤지. 캬캬캬.' 이런 것은 허용되는 차별이다. 이념차별의 빈자리를 문화차별이 메운다. 하다 하다 할 게 없으니까 이제 사람을 갈군다. 요즘 잘 나가는 미국 음악이 뭔지 모르겠다. 미국이 활력을 잃은 게 문제의 본질이고 트럼프는 증상이다. 대중의 활력이 소동을 낳지 않도록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게 이념이다. 이념은 술집에서 떠드는 에너지를 투표장으로 모은다. 이념의 부재가 현대사회를 이상하게 만든다. 탈근대 부작용이다. 사람을 갈구려고 갈구는데 왜 갈구냐고 묻는 사람은 고지식한 사람이다. 페미든, 비건이든, 동물단체든, 캣맘이든 단지 수법이 먹히니까 선을 넘어 폭주하는 것이다.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먹히면 한다. 세상이 원래 그렇다. 미국처럼 땅이 넓으면 자신에게 맞는 동네로 이사 가면 된다. 텍사스는 친절해야 살고 뉴욕은 불친절해도 상관이 없다. 텍사스 사람은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항상 미소를 짓는다. 반면 성소수자는 흘겨본다. 뉴욕에서는 불친절해도 되지만, 대신 성소수자 험담하면 난리 난다. 여기에 묘한 균형이 있다. 장단점이 있다. 한국은 바닥이 좁아서 이사를 못 가고 문화적 먹이사슬 밑바닥에서 독박을 쓴다. 옛날에는 여성이 독박 썼는데 요즘은 이대남이 비명 지른다. 수요와 공급이 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이념을 막으면 종교로 몰린다. 종교도 한물가면 음모론으로 몰린다. 음모론 비웃으면 캣맘으로 몰린다. 원래 그런다. 폭력으로 하던 것을 입으로 할 뿐 멈추지 않는다. 꼭 안아주면 진정되는데 안아줄 어른이 없다. 공동체가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공리공론을 일삼는 프랑스 철학을 버리고 인간의 동물적 본성을 들여다봐야 한다. 인간은 사회와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여 있기를 원하는 동물이다. 묶으려고 묶는데 왜 묶느냐고 따지면 피곤하다. |
좋은글 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