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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364 vote 0 2024.10.18 (13:59:16)

    예술의 목적은 인간을 격동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결과 측이 아닌 원인 측의 사정이라야 한다. 바가바드 기타의 가르침과 같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 도덕적 가치도 중요하지 않다. 다만 현장에서 먹히느냐가 중요하다. 센세이션을 일으켜야 한다.


    틀린 판단 - 예술은 인간을 행복하게 한다.

    바른 이해 - 예술은 무리가 한 방향으로 가게 한다. 


    개인이 아닌 집단에 먹혀야 한다. 개인은 일회성 자기만족으로 끝나지만 집단은 무한히 복제되기 때문이다. 바이럴 마케과 같고 눈덩이 효과와 같다. 갈수록 에너지가 증폭되게 하는 것이 예술이다. 옳고 그름의 판단, 도덕적 판단은 개인의 영역이고 집단은 자정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의 방향성 문제다. 원인과 결과, 긍정과 부정, 자극과 반응, 내부지향과 외부지향, 공격과 방어 중에서 예술은 원인 측, 긍정 측, 자극 측, 내부지향 측, 공격 측을 지향해야 한다. 반대편은 상품이 될지언정 예술이 아니다. 복제본은 권력이 없기 때문이다. 예술과 비예술은 다르다.


    예술의 본질은 원본이 복제본을 지배하는 힘이다. 권력과 같다. 어떤 액션이 현장에서 먹히면 즉시 복제본이 만들어진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권력의 작동과정에 용해된다. 배는 키에 권력이 있고 자동차는 핸들에 권력이 있다. 자체적으로 통제되므로 옳고 그름의 판단은 필요없다.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이 만나는 접점에서 조절장치가 만들어진다. 전기는 전압이 있고 물은 수압이 있다.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의 접점에서 압력이 만들어진다. 압력은 조절되므로 권력이 있다. 익숙한 것은 지루하고 새로운 것은 난해하다. 익숙하면서 새로울 때 인간은 전율한다.


    음악이든 시든 그림이든 영화든 마찬가지다. 반드시 소실점이 있다. 일점이 있다. 범종과 당목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 활과 현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 만남의 순간에 인간은 전율한다. 거기서 압력이 발생하고 권력이 작동한다. 하나가 그것을 하면 모두 그것을 따라하게 되기 때문이다.


    미술이라면 에너지의 안정감, 만남의 긴장감, 흥분시키는 덩어리감이 중요하다. 심플한 대비로 긴장감을 끌어낸다. 복잡하면 산만해진다. 선이 굵으면 덩어리감을 느낀다. 예술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될 뿐 예술의 궁극적 출발점은 물리적으로 규명될 수 있다. 뇌가 반응하는 지점이다.


    왜 음악을 연주할까? 군대가 행진하려면 발이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발을 맞추지 않으면 뒤에 있는 병사의 칼에 앞에 있는 병사가 찔린다. 왜 그림을 그렸을까? 성전에 무리를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한 방향을 바라보게 하려면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 그것이 예술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추론이 철학이다

2024.10.19 (23:43:36)

예수의 철학, 니체의 철학,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공통점이 있는데

남들은 부정해도 너는 무조건 긍정해라는 내용으로 이해되지만

승산이나 실력이 빠져 있습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보면 모든 사람이 채식을 반대해도 나는 채식을 해버릴 거야인데

실력이 없으니깐 가족들이 고기를 강제로 먹였고

그로 인해 손목에 칼을 긋는 자해가 되었습니다


승산은 없는데 무조건 긍정하라는 내용은 찾아보면 많은데

독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긍정하고자 하는 세력이 모이면 승산이 생기는데

그런 흐름은 누군가가 만들어야 하고

그 흐름을 만드는 사람은 승산이 없어도 긍정해야 한다고 이해되는데

그러한 인류의 지도자급이 되는 사람에게만 전달하는 메시지일까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24.10.20 (00:25:17)

표현이나 자구에 매달리면 안 됩니다. 그것은 바보들의 훈고학입니다.

솔직히 이런건 좀 수준낮은 질문임.. 도무지 말귀를 못 알아먹는 초딩 애들에게는 


그냥 시키는대로 해라. 그냥 외어라고 하는 것은 답답해서 하는 말입니다.

그걸 정확하게 설명한다고 해서 알아들을 인간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당연히 승산이 있습니다. 에너지는 방향성이 있습니다.

한 방향으로 계속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단 지금 현재 여기서 이 게임을 이기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하는 작은 게임은 상호작용과정에 용해되는 것이며 


사실 이기고 지고 하는게 없습니다. 이겨도 우주 단위로 이기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여기서 벌어지는 이 게임은 우주 단위로 벌어지는 진짜 게임에 속하는 


작은 하나의 부속품에 불과합니다. 작은 것으로 이겼다 졌다 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원래 이기도록 설계된 게임의 일부일 뿐이며 이기는 과정의 거쳐가는 절차에 불과합니다. 


우주가 작동하는 것은 이겼기 때문입니다. 지면 우주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나뭇잎 하나가 떨어진 것은 진게 아닙니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고 승부를 판단해야 합니다.


한강이 말했듯이 도청에서 진압된 것은 진게 아닙니다. 노무현이 실패했다고 우기는 진중권들이

그런 개소리를 하는 이유는 자기들이 졌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노무현이 이겼다는 사실이 드러날까봐 관뚜껑에 대못을 박아놓는다고 

노무현=실패한 대통령 프레임을 만드는 거지요. 왜 프레임을 동원하겠습니까?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보는 눈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것은 솔직히 대확가 안 되는 그림입니다.

1차전을 져주고 2차전을 잡는 것은 전략이지 진게 아닙니다. 원래 이렇게 가는 그림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추론이 철학이다

2024.10.20 (00:42:37)

예수의 철학을 제가 이해하기로는

개인이 손해를 보면 사회가 득을 보므로

사회가 지속되길 바란다면 너가 손해 보는 사람이 되어라

이렇게 이해가 됩니다


예수가 만약 반대로 얘기했으면 무조건 지는 방향이 됩니다

사회가 손해를 보더라도 너는 반드시 득을 봐라 이러면 사회가 망합니다


이긴다는 게 물리학적으로 에너지 보존으로 생각된다면

막 엄청 이상적인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걸 전제로 할 게 아니라

망하지 않는 사회 지속가능한 사회 정도를 이겼다라고 해석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결과가 아니라 방향을 지목하라는 거 같습니다


문화도 보면 개방의 방향이 있는데 

따지고 보면 지금도 개방되어야 할 것들이 많지만

방향만 보면 그 문제들 점차 해결 될것들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24.10.20 (00:47:21)

어떻게든 범위를 좁혀서 해석하려는 사람은 답이 없습니다. 그건 철학이 아닙니다. 예수를 그 유치한 수준에서 파악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초딩은 아니잖아요.


개인이 손해를 보면 사회가 득을 보므로 사회가 지속되길 바란다면 너가 손해 보는 사람이 되어라.


이건 너무 단세포적인 접근입니다. 어휴! 그런 뜻일 리가 없잖아요. 사회가 지속되길 왜 바랍니까? 사회가 멸망하길 바라는게 맞지요. 천국으로 가야할 판에. 사회는 빨리빨리 정리해버려야지.


예수의 말은 아기가 엄마에게 의지하듯이 인간이 집단에 의지하고 세력에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그걸 이상하게 해석해서 이득이 어떻고 손해가 어떻고 이런 소리 하는 사람은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의 말은 인간의 종교적 본능, 사회적 본성, 세력본능을 건드리는 말로 다들 직관적으로 알아듣습니다. 예수의 말이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세력본능을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은 안전한 사회에 살지만 고대인은 남의 동네 가면 맞아죽습니다. 친척 없고 일가붙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사회입니다. 예수의 말은 혼자 깝치다가 총 맞지 말고 무리에 속하라는 말입니다. 


세력에 의지하는 것은 이익이 됩니다. 당연히 이득을 봅니다. 세력은 신용과 같습니다. 신용이 있으면 당연히 이득이지 무슨 손해가 있습니까? 팀플레이가 되면 당연히 이기지 왜 집니까?


내가 손해보더라도 집단을 위해 희생하라.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피곤해 집니다. 무인도에 혼자 살면 신용이 없습니다. 사회 안에서 신용이 만들어지는 것이며 신용은 무조건 좋은 겁니다.


이익이니 손해니는 바보들이 하는 이야기고 본질은 전기에 전압이 있듯이 물에 수압이 있듯이 예수의 말은 사회압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표현하든 뭐라고 명명하든 상관없고.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긴밀하게 만드는게 본질. 사랑이나 이런 말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는 바보들은 대화에 끼워주면 안 됩니다. 집단을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어 한 방향을 바라보게 하는 것.


사회에 긴장을 불어넣고 압력을 가하여 한 방향으로 정렬시킬 수 있다면 그것을 하는 거지요. 사회의 상호작용이 양의 피드백을 이루게 하는 거. 상호작용할수록 상호작용이 증가하면 그게 답.

프로필 이미지 [레벨:2]추론이 철학이다

2024.10.20 (02:00:12)

생각해 보니 예수의 말은 사람의 세력본능을 건드리는 거 같습니다

예수의 말을 보면 착한 사마리아인이 우리의 이웃이다고 하였는데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손해를 보더라도

우리의 이웃으로서 소속할 수 있으니 득이 되기에 불편하지 않은 거 같습니다

사람들을 먼저 세력에 소속하게 해놓고 

그 세력에 계속 소속하고 싶으면 

이런저런 걸 하도록 유도하는 거 같습니다

예수의 팔복도 이런 식으로 되어 있고

사회압을 형성해서 좋은 행동을 유도하고자 하는 거 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24.10.20 (09:00:23)

구조론은 마이너스입니다.

근본적인 사유의 방향에 문제가 있는듯 합니다.


사랑하라고 하면 내가 '더 사랑했는데?' 이런 꼴통들 반드시 나옵니다.

플러스 사고를 하는 초딩들은 답이 없다는 말이지요.


절에 가도 나는 108배를 했는데? 어쭈구리! 108배 받고 3천배.

3천배 받고 오체투지. 오체투지 받고 소신공양. 


으하하하! 내가 킹왕짱이다. 불에 타죽는거 보다 더한 공덕이 있냐?

부처님 내 몸뚱이 가져갑셔. 공짜로 땡처리 해드립니다. 이런 넘 꼭 나옵니다.


마이너스 사고를 익히지 않으면 쇠 귀에 경 읽기입니다.

근본적인 방향제시의 문제인데 지엽적인 단어에 매몰되면 피곤한 거지요.


초딩 애들 가르치려면 그런 말을 할 수 밖에 없잖아요.

예수가 초딩들 가르치느라고 초딩처럼 말해도 우리는 박사처럼 알아먹어야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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