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media.daum.net/m/media/culture/newsview/20140409103602525
금팔찌나 휘어볼까나. ㅡ 박정희 ㅡ
몇 년 전에 자위행위하다 죽은 데이비드 캐러다인이 주연이었던 "쿵후"시리즈도 원래는 이소룡이 주인공이 될 예정이었소.
근데 당시 6~70년대 미국 정서가 동양인이 단독주연을 맡을만한 분위기가 아니어서 데이비드 캐러다인이 발차기 좀 배워서 했던 것이었소. 만약 예정대로 이소룡이 했었다면 역대급 작품이 나왔을거요.
이소룡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서 합법적인 미국인이었는데....
몇년 전 그린호넷이라는 영화를 할리우드에서 아마도 이소룡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다
패망했죠,이유는 단순.이소룡의 액션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스토리가 아니라 액션이 뭔지를 모르니
망할 수 밖에.
그냥 느낌인데 쿠엔틴 타란티노 이 후 서양 감독들은 액션이 뭔 지 모르는 듯.
잼있는걸 알아냈소.
싱하형의 저 표정이 왜 나왔는지.
막판에 패배한 오하라가 병을 깨서 찌르는 장면이 있는데 녹색 소주병과 갈색 맥주병이 있소.
당연히 설탕병은 맥주병.. 근데 두 병을 박치기 하니까 설탕병이 넘 많이 깨져버린 거.
그러자 오하라가 녹색 소주병으로 이소룡을 찔러버린거.
이소룡 팔뚝에 상처가 나서 한동안 영화촬영이 지연되었다고.
영화의 엑스트라는 근처에 있는 조폭들을 데려왔는데 조폭 중에 한 넘이 이소룡에게 도전했다고.
단번에 이소룡에게 박살나서 곧 이소룡 추종자가 되었는데 이소룡 부하가 된 조폭들이
이 사건으로 오하라를 죽이려 해서 스태프들이 개고생.
이소룡 영화의 최고봉은 용쟁호투죠.다시봐도 저런 액션 영화를 만든다는 게 쉽지 않죠.
이소룡의 매력을 보여준 특급 영화.
그럼 지금까지 동렬님은 싱하형의 저 표정의 기원을(?) 모르셨단 말입니까? 용쟁호투 안 보셨나요?
전 옛날부터 싱하형 저 표정보고 너무 이소룡을 희화화 하는것 같아 살짝 기분나빴는데..
이소룡.. 절권도의 창시자.
http://ko.wikipedia.org/wiki/%EC%A0%88%EA%B6%8C%EB%8F%84
https://mirror.enha.kr/wiki/%EC%A0%88%EA%B6%8C%EB%8F%84
이소룡은 무술잘하는 그냥 액션배우가 아니라 원래 무도인 이었고 훌륭한 사상가 였습니다.
미국 워싱턴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미국에서 액션배우로 성공하기 위하여 과감히 대학을 중퇴하고 말죠.이소룡의 마지막 작품이자 유작으로 알려진게 '사망유희' 인데 실제 마지막으로 촬영된 작품은 위에나오는
'용쟁호투' 입니다. '사망유희' 는 촬영중간에 계획에 차질이 생겨 촬영을 멈춘 상태였고.. 원래 '사망유희' 는
우리나라에 로케이션을 올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속리산이었나? 아마 그럴겁니다.
이소룡은 '용쟁호투'의 촬영을 다 마치고 영화가 극장에 개봉되기 전에 급사했죠.
이소룡은 자신의 영화중 흥행에도 가장 성공한 영화 '용쟁호투' 가 극장에 개봉되는걸 보지못하고 죽었습니다.
땅이 있던 노인들 지갑은 두둑해지고,
없던 노인은 거지가 되었는데,
있는 노인이래봐야 자식새끼가 다 파먹고
돈많은 외지인들과 어느날 갑자기 한마을에 살게되니
뭥미. 지구가 아니라 기장을 지키게 된 사연.
금품이라봐야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걸로 우호를 다지는게 중요한거. 기장군수가 무소속 3선째인데 기장에서 오랫동안 한의원 하던 양반. 직접 침을 맞아보았는데 개차반. '나 - 아씨 거기 말고 딴데를 찌르라니깐요.
결국 내가 찌르라는데 침맞음. 뭥미. 아무튼 자기동네 사람 중에서도 낯있는 사람 친근한 사람을 뽑은거.
기장군 노인들은 세상이 무섭습니다.
참고로 외지인들이 정착할 수 있는 이유는 부산 재벌이 넘어왔기 때문. 돈으로 이장을 발라버림. 근데 그럴 수록 시골 사람은 마음속 깊이 더 위축. 옆집에 휘향찬란한 전원주택이 번쩍하니깐.
쓰레기들!
찍어준 놈들이나, 뽑힌 놈들이나
이 사람 어디 좀 아픈 것 같소. 트라우마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듯. 같은 예술가라도 그걸 받아들이고 넘어선 이가 있고 그 상처를 계속 핥으면서 곪은 데 또 곪게 하는 사람이 있소. 이 사람은 후자인듯
공산당 인형. 창백한 피부와 무표정한 얼굴에서 죽음이 느껴짐.
천안문의 트라우마가 아닐까?
그 집단 상흔은 한 개인으로 극복하기 힘들것같소.
팀버튼 작품인 크리스마스 악몽의 한 장면을 패러디한 듯. 고인들의 영정사진을 그린 건지.... 얼굴에 이상한 딱지하나 붙여놓고 참... 설레임과 호기심, 매력이 안 느껴짐.
이 정도면 나름대로 기운을 포착한 것이오.
밀어붙이는 고집도 있고.
허영만의 '오 한강'에도 나오듯이
작가가 탄압을 받으면 갑자기 조약돌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모옌의 작품에도 그런 면이 드러나는데
탄샹싱에 백정의 살인에 대한 집요한 탐미주의가 드러나 있죠.
제가 모옌을 비판하는건 한국의 문학가들이 1930년대에
일제히 농촌으로 도망가서 순수문학을 빙자한 도피문학을 했듯이
일종의 도피문학을 하기 때문입니다.
탐미주의로의 도피, 현실을 비판하지 못하므로 과거로 도피.
이 작품은 넓게 보면 그런 계열인데
그래도 눈은 빤히 뜨고 정면으로 보고 있어요.
이건 중국에서 유행하는 경향입니다.
공산주의 비판의 맥락으로 읽어야 합니다.
홍성담의 세월오월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런 식으로 눈 빤히 뜨고 지켜보는 것도 재미가 있습니다.
사찰해서 알아낸 것이 이혼했다는 둥, 금속노조 소속이라는 둥, 취미가 뭐라는 둥...
이런 것만 알아가지고 일베충을 동원해서 저질 마타도어나 일삼는게
딱 이 정부 수준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