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소화되는 보리밥이 좋은건 아니지요.
고기는 더 천천히 소화되는뎅.
라면은 아마 기름코팅이 되어 있어서 그렇겠지.
너무 빨리 소화되면 혈중 당도 증가로 피곤해짐.
혈관에 포도당이 너무 많으면 고혈당으로 피가 탁해져서 몸에 해로우므로
인슐린을 분비하여 빨리 그것을 치우려 하고
그 치우는 속도만큼 살이 찌는 것이며
천천히 소화되면 살이 안 찜.
그래서 설탕이 가장 해로우며 고기 먹으면 의외로 살 안찜.
반면 너무 저혈당이 되어도 좋지 않음.
아침에 빈 속으로 등교하면 머리가 나빠져서 공부가 안 됨.
아침을 적게 먹었을 때
오전에 설탕커피 한 두 잔은 나쁘지 않음.
그래서 우동 보다 라면이 든든했나 보오.
ㅎㅎ 그냥 먹은 정도가 아닌데~ 아주아주아주 마아니 먹었는데~ (나말고.)
예전 기억을 떠올리면
국수가 원래 소화가 빠르고 - 가루로 만든 거니까.
밥종류는 소화가 더디고.
위가 소화되어 비워지는데 2시간30분에서 3시간이 걸리는데
과일은 1시간 정도,
그외 음식물은 2시간 반 정도.
국수보다 라면이 소화가 오래 걸리는 것은 기름 때문인 듯.
그래서 인지 식사와 과일을 먹을 때는 과일을 1시간 먼저 먹으면 당분이 채워지나 위는 비워져서 과식을 덜하게 되고,
밥먹고 1시간 뒤에 과일을 먹으면 과일 소화가 잘 안되는 사람에게 편함.
시간차 공격이 좋음. 개인적으로 같이 먹으면 속이 약간 불편했는데 소화가 잘되고 효과봄.
라면 면발은 다들 아시다시피 기름에 튀겨서 보존성을 높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쓰이는 기름이 팜유라고 하는 식물성 기름입니다. 사람들 선입견에 동물성 기름은 사람 몸에 나쁘고 식물성 기름은 몸에 좋다 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게 사실과 많이 다릅니다. 기름에는 포화지방과 불포화지방이 있는데 포화지방이 몸에 나쁩니다.(근데 사실 소량의 포화지방도 (몸에) 필요하기는 함) 팜유는 식물성이기는 하지만 포화지방도가 극히 높은 기름입니다.
(ex: 돼지기름(라아드)의 포화지방도 = 38 vs 팜유의 포화지방도 45)
서론이 너무 길었는데 라면 끓여 먹을 때 면과 스프를 따로따로 끓여서 먹는 걸 추천합니다.
면발을 취향에 따라 꼬들함이 풀릴랄 말락할 때까지(쫄깃함이 살아있을 때까지) 끓인 후 찬 물에 몇 번 헹궈냅니다.
이때 보이는 팜유 기름 찌꺼기를 보게 되면 아마도 다시는 라면 끓일 때 처음부터 합체해서 끓여드실 수 없게 될 겁니다.
그 다음 펄펄 끓고 있는 스프를 물을 쪽 따라낸 면발 위에 부어서 드시면 온도가 적당합니다.
뜨거운 걸 선호하시는 분은 고속도로 휴게소 우동파트에서 하듯이 면발을 뜨거운 스프에 몇 번 씩 담궈서 온도를 높여 드시면 됩니다.
처음에는 팜유의 지방이 없기 때문에 맛이 없다고 느낄 수 있는데 이게 익숙해지면 담백하게 느껴지고 두번다시 과거의 방식으로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없게 됩니다. ^ㅛ^
똑같이 배가 불러도 나쁜 음식은 불순물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몸이 그것을 배출하느라 에너지소모가 많아지오.
영양이 풍부한 질좋은 음식을 자신의 활동량만큼 먹는게 최선인데 현실적으로 어렵소.
몸에 좋은 거만 먹을래영
며칠 전, 친일인명사전을 만져보고 들쳐보았소.
여기에 올려진 이름들.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것이오.
부끄러워하지 않은 만큼, 그들의 죄는 더욱 두터워져 있소.
이자에 이자를 더하고 있는 중이요.
치욕의 죄값을 치러야 할 것이오.
절대로 지워지지 않소.
부끄럽고 또 부끄럽소.
외세기생독재세력 척결은 2차세계대전 승전국들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게 주어진 과제, 한국은 앞서가는 편이오.
길고 힘든 길이지만, 극복하여 모범이 될 만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국가들이 인류의 다음 진보를 이끌 것이오.
이기... 무쉰 팬클럽이오???
ㅎㅎ 내가 철수라면 저기 가서 뇐네 멱살을 잡아 내동댕이 칠 텐데..
철수없는 팬클럽에 파리떼만 득실...
이상하다....왜 철수옆에는 실질적인 것 말고 파리떼들만 들끓는지...?
재단도 만들고 .. 정치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본다고 하는데...
도대체 왜 맨날 파리떼만 모이는거지...?
말로만 듣던 앙꼬 없는 찐빵
웃긴당
뭐하는 놈들이지
헐~
냄새가 나는 곳에 똥파리들이 꼬이는 것은 당연지사.
똥파리 잡는 데는 파리약이 쵝오!
문재인 쪽에는 절대로 이런 일 없다!
왜 그럴까?
기득권이 돈과 권력을 가지고 사탕발림하니까 그거 받아먹으려고 달겨드는 무개념 보수.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 여기 저기 벌때 처럼 달려들고 자기 뜻대로 해주지 않으면 지지를 철회하는 진보들.
과연 차이가 뭘까?
나꼼수가 해낸 의제설정능력과 생산적인 정치 파급력에 자기 입장에서 느껴지는 불편을 쏟아내는 모습들.
전쟁의 맨앞에서 적의 칼끝을 마주하고 있는 선발대에게 그건 그렇게 하는게 아니라며 후방에서 감놔라 배놔라 하면서
적을 이롭게 해서는 안돼지. 억울하면 자기도 선발대를 자청하고 싸워야지.
나꼼수를 50%만 소비하고 그 소비를 견디다 못해 생산에 돌입한 것이 페미니스트들의 담론...
나꼼수의 말들은(말투) 그들안의 유행어였다. 그들식의 말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런 말투가 전파를 타고 사람들에게 번졌고 먹히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소비하기 시작...그들안의 유행어가 바깥으로 확산되었다.
그런데 그들의 말만 소비하고 만다면 낚인거다.
공지영이나 삼국카페 성명서를 내는 이들은 나꼼수의 말투에 낚여서..말투만 소비하다 짜증나서 드디어 생산에 돌입했는데..
그것이 '비키니여인 사진과 나꼼수 사과하라.' 라는 것.
이래서는 뭔가 부족하지 않은가...? 겨우 50% 소비했을 뿐이잖아...?
50% 소비로 나온 것은 절반일 뿐이잖아...
그래서 남은 50%를 마저 소비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꼼수의 말투만 소비한 것이 아니라 나꼼수의 자유로운 정신을 소비하였다.
이렇게 나꼼수를 100%소비한 이들은 소비함과 동시에 생산한다.
이로서 문화를 바꾼다. 방향을 바꾸어 버린 것이다.
이에 대한민국의 정신 문화는 나꼼수 이전과 이후로 얘기되어지곤 한다.
차차로 이리 기록될 것임.
도가니와 비키니 사진을 구분하는 시선이 없으면,
여성의 성을 이 두가지에 한데 담아서 뭉떵거려 버리면 ...헤어나올 수 없다.
동전의 양면이지만 동전도 앞뒤가 있고, 이 둘을 하나로 묶는 것이 있다.
하나로 활동하기에 값어치를 생산해 낸다.
100원 어치 500원 어치..뭔가의 가치로 교환된다.
나꼼수를 소비한 대다수 사람들은 이 양면성을 하나로 소비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 동전의 양면을 하나씩 분리해서는 말이 안된다.
붙어 있는 것을 어찌 떼어낸다는 말인가?
왜 사람들이 나꼼수를 소비하기 시작했는지도 살펴야 한다.
거기에서 온갖 이슈가 생산되어 나오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결국 나꼼수에게 사과하라는 성명서는 나꼼수에 기생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묻어가기가 되어버린 셈인데..이래서는 성명서라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꼼수의 그간의 노력과 행보를 폄하를 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1.나꼼수의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며 이 성명서의 발표는 나꼼수의 그 간의 행보를 폄훼하려 는 목적이 아니다.'
이러면 말이 앞뒤가 안 맞잖아...?
폄하를 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성명서의 전체 내용은 폄하를 하기 위함으로 보여지는 것 같은데...?
난세가 호걸을 낳고......
"45세의 세아이 모친"님. 존경하고 싶네요.
공지영.. 사람이 좀 철이 덜 든 듯
딱 쌔빨간 밑 빠진 사발이오.
새머리당 로고 보는 순간,
1. 낡아 빠진 이빨(빨간색은 웬 미소?)
2. 끊어진 고속도로(고로 낡은당이란 것이 그대로 표출. 에너지나 신선한 맛은 전혀 안 느껴짐)
3. 어째 불안함이...
4. 창의성이란 찾아 볼 수 없네.
5. 느껴진대로 읊어 보았음
ㅋㅋㅋ
성향으로 보면 오히려 잘 맞는 듯...
날샌당에서 대통 나오는 것은 정말 물건너 간듯...
아주 아주 좋게 보아 주자면...
로고가 조선시대 왕후 혼례때 머리장식으로 쓰는 틀 닮았음.
당 로고에 여인의 향기인지..독기인지 새겨 놓았음....이거 여성 비하 발언아니오. 오해 없으시기를... 심플한게 아니라 뭔가 휑함. 미완성 같은 느낌을 줌.
아까 전엔 로고만 후다닥 보고 와서 느낌 썼고
방금 리플을 주루룩 읽은 결과 '오냐 기다렸다'는듯 우후죽순 솟아나는 리플,
술술 마구 마구 터져 나오는 리플들을 어찌 말리리요, 아란도님께서 한 번 말려봐봐요...^^
새머리당 새로고 보는데 이상하게 머리가 파바박 돌아가네요.
지금 또 보니...골반뼈 같기도 해요.
골다공증당...
오! 이럴수가.
한동안 파란색 알레르기가 생겨서
청바지를 입기 싫을 정도가 되었는데 그 지겨운 색깔을 버린건 다행이네요.
길에서 쭈구리한 파란 잠바만 봐도 오버이트가.
많이 처묵처묵하여 만족감에 웃는 모습으로 보임.
새누리당이 새누이당을 거쳐 시누이당으로 진화한다던데. 포케몬인가벼.
영원한 반쪽 지향당 같소이다....不卵당?
파랑색도 빨강색도 팔갱이 빨갱이 만드는 저네들.
선택하는 색마다 이미지 완전 구려.
에누리당이오 이제 에누리도 없오.전녀오크도 에누리도 없고 바꾸네도 에누리도 없고 암튼 이제는 에누리도 없오
똥누리당. 빵터짐.
소실점부터 찾아야 합니다.
구조론은 밸런스를 만물의 소실점으로 봅니다.
즉 입자를 두 개의 미는 힘이 교착되어 밸런스의 평형을 이룬 상태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는 공간의 어떤 위치에 정지해 있는 입자입니다.
그런데 빛은 정지상태가 관측된 적이 없습니다.
제 자리에 가만이 있는 빛은 없다는 거죠.
그렇다면 빛은 움직이는 상태에서만 그 정지해 있는 성질을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정지해 있지 않지만 정지해 있는 것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거죠.
즉 빛과 같은 속도로 빛과 나란히 가면 빛은 공간상의 어떤 위치에 정지해 있는 거지요.
즉 빛과 나란히 달리면서 빛을 손으로 살살 만져보면 빛은 분명 입자라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발이 느린 주제에
빛과 나란히 달릴 수는 없기 때문에 인간의 기준으로는 빛을 입자라고는 말할 수 없는 거죠.
그러므로 빛은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입자가 아닙니다.
빛은 빛과 나란히 달리는 상태에서만 입자 상태로 규정할 수 있는 바로 그것입니다.
왜 빛을 입자라는 감옥에 가두려고 애를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빛은 입자가 아니고 빛입니다.
하여간 입자는 두개의 미는 힘의 교착된 밸런스입니다.
빛은 광속으로 달려야만 두 개의 힘을 교착시킬 수 있습니다.
즉 빛이 광속으로 달릴 때 그 빛을 맞이하는 공간의 상대속도 역시 광속이라는 거죠.
즉 빛이 광속으로 달리면 두개의 미는 힘의 교착에 의한 평형상태가 연출된다는 거죠.
이는 공간 자체에 어떤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지요.
결론적으로 공간에 자체적인 힘이 존재하며
빛이 광속으로 달릴 때 빛의 힘과 공간의 힘은 50 대 50의 평형에 도달한다는 거죠.
그러므로 공간이 가진 에너지량은 광속분의 1이라는 거죠.
이걸 통해서 공간이 가진 힘의 크기를 알아낼 수 있다는 거죠.
공간의 힘이 0이면 빛은 무한대 속도가 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아.
이 땅에 국민이 작심하고 똥을 퍼먹기로 마음에 방향을 확정한 날, 예술은 가려지고 창의는 버려졌소.
외롭고 힘들어도 멀리 돌아 길을 열고, 높이 올라 찬란한 날을 준비해야 하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더 재밌게 만드는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
위 두귀절에 예술의 발전 방향성과 예술이 무엇인지 녹아있는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창조성을 위해선 첨병이 맘껏 활동할 공간을 줘야 하는데 '좌의 떵'인 우가 이러쿵 저러쿵 나서게, 한 순간에 미래를, 창조의 싹을 말어먹는 것 아닌가 합니다.
마침 러시아의 (말 그대로 미술 연극 장르간 통합을 꿰하는?)실험예술단에 대한 어떤 전문가의 글을 보고있었는데 더욱 참담함을 느끼네요...
요기에 가끔 들르는데 여기서 지나간 예술 칼럼을 보게 되었고, 구글로 검색하니 블로그도 있었네요...
정치도 혼자 썩지 않소. 일제 침탈, 군부 독재, 영삼이 야합 독재, 쥐새끼 재벌 독재를 어찌 정치꾼들만으로 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