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유클리드의 원론이 있었다. 체계적인 사유의 시작이다. 인류 문명의 첫 번째 모노리스가 된다. 생각한다는 것은 연결한다는 것이다. 이게 이렇게 되면 저게 저렇게 된다. 이것과 저것은 연결이다. 보통은 생각하지 않는다. 연결하지 않는다. 소금은 원래 짜다. 설탕은 원래 달다. 원래 그런 것이 성질이다. 원래 성질이 그렇다고 선언하고 인간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 벽을 넘은 사람은 갈릴레이다. 뉴턴은 갈릴레이의 사유를 해설한 사람이다. 아인슈타인이 뉴턴의 오류를 바로잡았다. 갈릴레이는 처음으로 내부를 들여다본 사람이다. 고유한 성질에 막힌 인류가 그 장벽을 넘었다. 인류 문명의 두 번째 모노리스가 된다. 내부에 무엇이 있는가? 힘이 있다. 갈릴레이는 처음으로 힘을 본 사람이다. 소금이 짜고, 설탕이 달고, 불이 뜨거운 것이 궁극적으로는 서로 다른 성질이 아니라 똑같은 힘이다. 똑같은 물리적 이동이다. 배가 아프면 배를 째야 한다. 내부를 봐야 한다. 부적을 쓰고 저주를 퍼붓고 푸닥거리를 하는 것은 외부를 맴도는 것이다. 설사 외부에 원인이 있어도 내부에 받아주는 것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독화살이 외부에서 날아오더라도 내부에서 해독제를 주입하면 해결된다. 인류는 여전히 외부를 바라본다. 외부에서 사람을 동원하여 어떻게 해보려는 수작이다. 이데올로기는 거짓말이고 본질은 동원력이다. 외부에서 더 많은 인원을 동원하면 그중에 의사가 한 사람쯤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로또게임이다. 첫째, 관계를 추적해야 하고, 둘째, 내부로 들어가야 한다. 관계는 대칭으로 파악되고 내부는 비대칭으로 관통된다. 먼저 대칭을 포착하고 다음 비대칭으로 돌파해야 한다. 뉴턴은 내부의 외부를 보았을 뿐 내부의 내부로 들어가지 못했다. 내부에 엔진이 있다. 엔진에서 바퀴로 눈길이 가면 안 되고 실린더를 뜯어야 한다. 내부의 내부가 인류 문명의 세 번째 모노리스다. 존재 내부에는 밸런스를 복원하는 방향전환이 있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메커니즘이 있다. 힘과 운동은 그것을 외부로 전달할 뿐이다. 궁극적으로 우주 안에 방향전환이 있을 뿐 아무것도 없다. 방향을 바꾸려면 먼저 그 방향이 있어야 한다. 방향을 만드는 것은 밸런스다. 밸런스의 활이 방향전환이라는 화살을 쏜다. 그것이 힘이다. 내부에는 구조가 있다. 궁극적으로는 내부에서 물리적 장애물을 하나씩 제거해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그러하다. 어느 분야든 최종적으로는 물리적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그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 그럴 때 위대한 질의 도약은 일어난다. 외부에서 사람을 모아 떠들썩하게 소동을 피우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는게 진보와 보수의 이념몰이다. 사람을 많이 모으는 방법은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다. 기, 승, 전, 마녀사냥이다. 한국 정치는 기, 승, 전, 호남죽이기다. 그것이 가장 많은 인원을 동원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