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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200 vote 0 2023.07.13 (11:47:31)

    고쳐쓴 글입니다.

      

    신에게 제물을 바칠 때는 몸에 상처가 없는 완전한 짐승을 올려야 한다. 부정을 타면 신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번제를 뜻하는 히브리어 올라ola는 올린다는 뜻이다. 제물을 제단에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말 '훌륭'은 한자어 홀륜囫圇에서 나왔다. 온전할 홀囫은 heal과 관련이 있다. 뿌리는 holy다. catholic의 어원이 된다. 파생어는 hail, health, soldier, solid, hale, whole이다. 대개 전체를 의미한다. 뭔가 하나가 빠지면 건강하지 않은 것이며 갖출 것을 갖추어 완전한 것이 건강health한 것이다. 뭔가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이 힐링이다.


    서구사상은 완전성, 보편성, 절대성을 강조할 때가 많다.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이 대표적이다. 히브리인의 전지전능한 유일신 개념과 통한다. 엄격성을 강조하는 점에서 자유로운 그리스 정신과 다르다.


    생각하려면 단서가 필요하다. 사유의 단서는 완전성이다. 근원에 무엇이 있는가? 완전성이 있다.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야 한다. 아기는 완전하다. 처음은 완전했는데 이후 타락했다. 우리가 공간의 최소, 시간의 최초를 사유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완전했던 것이 시간이 흘러 덩어리가 커지면서 이물질이 섞이고 오염되었다.


    태초에 부름이 있었다. 부름에는 응답이 있다. 그것은 process다. 부름과 응답이 일치하면 완전하다. 비로소 갖출 것이 갖추어졌다. 완전한 것은 기능function을 획득한다. 기능이 작동하면 액션action이다. 내부에 액션을 감춘 것이 완전한 것이다. 그것은 강체가 아니라 유체다. 아기를 품은 자궁이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구조는 다섯이다. 다섯이 갖추어져야 완전하다. 부름과 응답이 완전체를 이룬다. 명령과 실행의 프로세스가 작동하고 기능을 획득한다. 에너지가 투입되면 액션이 일어난다. 그것이 존재의 모습이다.


    완전성은 5다. 다섯이 완전한 이유는 잘못되면 다시 시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름과 응답의 일치다. 잘못 불렀으면 다시 불러야 하고 잘못 응답하면 다시 응답해야 한다. 둘이 일치하므로 다섯이 된다.


    모래시계의 구멍을 통과하지 못한 모래는 그곳에 붙잡혀 있다. 화장실에 갔는데 변이 나오지 않으면? 계속 앉아있어야 한다. 그곳에 붙잡혀 있는 것이다. 부름과 응답의 시스템에 붙잡는 장치가 있다.


    칼로 생선을 자르는데 잘리지 않으면? 한 번 더 시도해야 한다. 이때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도마와 칼은 그대로 두고 타격만 다시 한다. 여기서 어디까지 되돌릴 것인가 하는 피드백 문제가 있다.


    1, 준비하고 2, 시작하고 3, 실행하고 4, 진행하고 5, 마감한다.


    에너지를 투입하는 준비, 생선을 붙잡는 시작, 공간을 타격하는 실행, 반복하여 시간을 투입하는 진행이 있다. 부름과 응답의 일치에 실패하여 기능을 달성하지 못하면 몇 번으로 되돌아갈 것인가?


    조절장치가 있다. 원초적으로 잘못되었다면 1번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기서 판단을 잘해야 한다. 괜히 처음으로 되돌려서 비용을 낭비하는 수도 있고 반대로 안 되는 일에 희망고문 당할 수도 있다.


    톱질을 하는데 잘 안되면? 계속 톱질한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한다. 나무는 옹이가 있으면 잘리지 않는다. 그럴 때는 공간의 다른 지점을 골라서 타격해 보는 수도 있다. 장작을 팬다면 다른 장작으로 바꾸는 수도 있고 도끼를 바꾸는 방법도 있다. 준비, 시작, 실행, 진행, 마감의 다섯 단계 중에서 잘못되면 어디까지 되돌리느냐다.


    세상은 유체다. 유체는 내부에 조절장치가 있고 중간 피드백이 있다. 밸런스를 조절하여 부름과 응답을 일치시킨다. 완전한 것은 다섯이다. 주변을 관찰해 보면 세상은 뭐든지 5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상에 5가 아닌 것이 하나라도 있는가? 없다. 부름과 응답의 대칭구조가 아닌 것이 하나라도 있는가? 없다. 놀랍지 않은가?


    세상은 액션이다. 액션은 에너지가 투입된다. 에너지는 들어가는 입구와 나오는 출구가 있고 내부에서 강약이 조절된다. 하나의 사건에서 조절지점이 다섯이므로 완전성은 5다. 사유는 완전성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완전성에 대한 감각을 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진리의 제단에 올릴 제물은 질, 입자, 힘, 운동, 량을 갖추어야 한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먹일 수는 없다. 말이 물 마시는 방법을 모르면 곤란하다. 그것은 가지고 태어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 한계다. 어쩔 수 없다. 통곡의 벽이다. 거기서 좌절하게 된다. 아기가 젖을 먹을 줄 모른다면? 심각하다.


    태초에 방법이 있었다. 방법은 원래 존재한다. 부름과 응답이 갖추어져 있다. 아기는 원래 젖을 먹을 줄 안다. 완전성이 있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가면 말이 알아서 물을 먹는다. 만약 안 되면? 모든 것이 불가능해진다. 태초에 방법이 있었고 그것은 원래 된다.


    리처드 파인만은 말했다. '인류가 절멸의 위기에 처하여 단 하나의 지식만 후손에게 전해줄 수 있다면 그 하나의 지식은 무엇이어야 하겠는가? 그것은 원자론이다.' 그런데 틀렸다. 말이 물을 먹을 줄 모르는데 말을 물가로 끌고 가서 무엇을 어쩌자는 말인가?


    태초에 단위가 있었다. 그것은 물이 아니라 그 물을 먹는 방법이다. 그것은 어떤 존재가 아니라 부름과 응답을 일치시켜 그것을 결정하는 완전성이다. 물이 원자라면 단위는 경로다. 물과 입이 일치해야 물을 마실 수 있다. 경로가 일치해야 원자가 성립된다.


    발견이 발명에 앞선다. 인간은 실을 꿰는 방법을 먼저 발견하고 그다음에 실을 발명했다. 방법이 존재에 앞선다. 돈을 발명하기 전에 교환이라는 방법을 먼저 발견했다. 우주의 근본은 어떤 존재가 아니라 그 존재를 찾아가는 경로다. 경로가 존재에 앞선다.


    우리가 원자로 치는 것은 일종의 교차로다. 교차로에서 교착되면 곤란하다. 로타리를 만들든 신호등을 세우든 대책을 세워야 한다. 부름과 응답을 일치시켜 의사결정을 하는 경로가 먼저 확정되고 원자의 위치는 그다음에 도출된다. 경로가 위치에 앞선다.


    도로가 집에 앞선다. 집을 짓고 보니 도로가 필요해진 것이 아니라 길을 가다 보니 머무를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움직이는 것이 멈춘 것에 앞선다. 움직이는 것은 멈출 수 있지만, 멈춘 것은 움직일 수 없다. 산 것은 죽을 수 있지만, 죽은 것은 살아날 수 없다.


    유가 강에 앞선다. 세상을 유로 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원자는 어떤 위치다. 근본은 위치를 도출하는 경로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의 절대성을 부정했다. 고유한 위치는 부정되었다. 양자역학 시대에 원자론적 사고를 극복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원자가 아기라면 방법은 아기를 낳는 자궁이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부름과 응답의 일치라는 자궁이 먼저 있었다. 어떤 것의 존재에 앞서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그것이 먼저 있었다. 바람이 불기 전에 기압이 먼저 있었다. 그것은 강체가 아니라 유체다.


    태초에 부름과 응답이 있어서 단위를 이루었다. 세상은 원자의 집합이 아니라 단위의 복제다. 명령과 실행이 모여 기능을 만들었다. 에너지가 투입되자 액션이 탄생했다. 갖출 것이 갖추어져 비로소 완전해졌다. 태초에 완전성이 있었다.


    원자는 위치를 지키는 것이다. 그런 것은 없다. 태초에 위치를 만드는 것이 있었다. 부름과 응답이 호응하여 위치를 만든다. 원자는 그다음에 나타났다. 그러므로 원자는 원자가 아니라 중간자다. 결정자가 아니라 전달자다. 심부름꾼이다.


    우주의 근본은 유체다. 유체는 압력이 있을 뿐 위치가 없다. 유체는 움직이고, 움직이면 충돌하고, 충돌하면 흩어지며, 만약 흩어지지 않으면 교착되어 나란해진다. 나란함은 내부에 움직임을 감추고 있다. 나란함을 원자라 명명한 것이다.


    움직이는 것이 교착되어 나란해지면 내부에 밸런스가 만들어진다. 밸런스는 복원력이 있다. 이야기는 거기서 시작된다. 모든 물질적 존재는 둘이 교착된 것이고 그것은 내부에 움직임을 감추고 있으므로 스스로 복원하는 자발성이 있다.


    존재의 자발성은 자연에서 기세가 되고, 시장에서 이윤이 되고, 사회에서 권력이 된다. 우리는 자발성을 디자인하여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말은 스스로 물을 먹고 아기는 스스로 젖을 먹는다. 자발성이 있기 때문에 우주는 완전하다.


    태초에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 있었다. 존재가 아니라 방법이 있었다. 부름에 응답하여 명령을 실행한다. 자극하면 반응한다. 그것이 완전성이다. 완전성이 단위다. 완전하면 기능을 획득하고 거기에 에너지가 투입되면 액션이 일어난다.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충돌하여 나란해진 물질과 그것의 변화다. 변화는 방법을 벗어나지 않으므로 우리는 경로를 추적할 수 있다. 원자는 없고 단위는 있다. 단위는 상수를 이룬다. 궁극적으로 우주에는 다양한 물리상수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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