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떻게 이해못할 수가 있는가?
예컨대 알파벳을 모르는 사람은 영어로 된 문장을 읽을 수 없다.
그건 이해를 못한 것이 아니고 못 읽는 거다.
장님이 국어책을 읽지 못한다고 해서 이해못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인간이 보지 못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양자를 눈으로 본 사람이 있는가? 없다.
인간은 양자의 희미한 흔적만을 볼 수 있을 뿐이며
사람이 지나간 다음 그 발자국만 보고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보지 못한 것이지 이해 못한 것이 아니다.
1차원 개미는 2차원을 이해할 수 없다.
사실은 볼 수가 없다.
구조론으로 보면 무조건 차원이 내려가야 한다.
4차원에서 3차원을 보고 3차원에서 2차원을 보고 2차원에서 1차원을 본다.
인간은 3차원을 보지만 실제로는 2차원을 보고 뇌가 3차원으로 해석한 것이며 이는 꼼수가 들어간 것이다.
인간이 3차원을 보는 것은 사진을 보는 것과 다르다.
주변을 희미하게 처리해서 입체감을 만들어내는 것이며
실제로 인간의 뇌는 3차원을 정확히 보지 못한다.
눈동자의 카메라 렌즈가 3차원이기 때문에 2차원까치만 처리가 가능하다.
즉 인간이 양자역학을 이해한다는 것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배우와 감독이 어떻게 촬영했는지 짐작하는 것이다.
영화 스크린을 보고 촬영장을 상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추측에 불과하다.
그런데 추측은 가능하다.
즉 인간은 양자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지만 상당히 추측할 수 있다.
그러려면 장의 개념을 받아들여야 한다.
즉 필름과 스크린은 다르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아인슈타인처럼 필름이 곧 스크린이라고 믿으면 피곤해지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좋아하는 숨은 변수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양자 말고 그 위에 하나가 더 있으며 양자는 더 높은 차원에서 투사된 그림자다.
우리가 보는 것은 실제 배우가 아니고 빛이 배우를 지나가며 그림자를 만든 것이다.
스크린에 비친 상은 실제 배우가 아니지만 실제 배우의 모습은 맞다.
이런게 이해가 안 되나?
왜 이게 중요한가 하면 다른 모든 문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해가 안 되는 것은 한 차원을 높이면 즉 숨은 변수를 추가하면 풀린다.
그것은 무엇인가? 매개다. 매개는 붙잡는 것이다.
무언가 그것을 붙잡고 있다. 예컨대 인형극을 한다면 사람이 위에서 줄에 매달아 붙잡고 있다.
모든 존재는 붙잡힌 존재이며 우리는 붙잡힌 것을 볼 수 있을 뿐 붙잡는 것을 볼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있다는 사실은 추론하여 알 수 있다.
인형극을 본 사람이 인형이 어떻게 말을 하는지 이해할수 없다고 말하면 난감하다.
정확히 규명할 수 없을 뿐 대략적인 이해는 가능하다.
동료, 카르텔, 패거리, 정당은 하나의 공통뜻을 가지고 있다.
다 뭉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지않는가?
이 단어들 중에 동료라는 말이 에이치한테 신선한지 계속쓰는 것 같은 데
동료는 같은 직종의 파트너들 아닌가?
반대편에 있다고 내 동료가 아닌 것은 아니다.
카르텔이나 패거리도 저쪽에서 신선한 단어인지
남을 공격할 때 특히 민주당 운동권을 공격할 때 종종사용하고 있다.
저 단어들이 다 뭉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가치중립적이지는 않고 부정의 뜻이 더 많다.
저쪽이 잘 쓰는 패거리와 카르텔이 가장 심하는 곳은 언론들과 저쪽 아닌가?
특히 언론은 분리불안이 심한지 우르르 몰려 다니면서
민주당기사에는 안 좋은 말로 융탄폭격을 하는 것 아닌가?
어제도 이재명가는 데 곳마다 엄청나게 몰려다니더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패거리 심하고 잘 뭉쳐있는 것은 민주당이나 국힘이 아니라 언론 아닌가?
기사로 융탄폭격을 할 때 보면 언론이 공산일당처럼 완전히 하나로 보인다.
누가 언론이 뭉치것 만큼 뭉치랴?
정당은 원래 뭉치는 곳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