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는 궁복(장보고)의 딸이 낳은 장보고의 후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왕건도 그렇지만 부모와 자식이 이름 한 글자를 공유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작제건, 용건, 왕건으로 이어지는 부모 자식간 돌림자 관습에 의해
궁복, 궁예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도 아들 이름이 용개, 보개, 소개(견훤, 능애는 배다른 아들?)
왕건이 나주와 무주를 공략하여 최후의 승자가 되었는데
선각대사비를 참고하면(원래 살아있는 왕은 왕이라고 부르지 않음, 조선시대에도 상감이지 왕이 아님)
나주와 무주를 공략한 것은 궁예였고
궁예의 라이벌 견훤은 원래 장보고의 잔당을 소탕하러 갔다가 눌러앉은 세력인데
장보고 세력이 없었다면 견훤도 쉽게 호남을 먹을 수 없었고
궁예가 나주에 기반을 가질 수도 없었다고 봅니다.
재미있는 것은 나주가 끝까지 견훤에게 저항하고 괴롭혔다는 거.
견훤은 항우처럼 정상적인 싸움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전승장군입니다.
한번 진 것이 안동 고창성 전투인데 지역세력과 신라세력의 이탈 때문이지 전투에서 진 것은 아닙니다.
무적의 견훤에 나주가 끝까지 개겨야 했던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견훤은 왜 호남에 파견되었나?
나주는 왜 견훤에게 끝까지 개겼나?
나주가 아무 연고도 없는 왕건에게 충성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궁예는 왜 신라를 미워하였나?
궁예가 장보고의 후손이라면 모두 설명된다는 거. 실제로 그런 설화도 있고.
친부인 헌안왕이 자신을 죽이려 했으니 신라에 원한을 품을만한 거.
장보고의 딸이 문성왕의 왕비가 되려다가 호족들의 반대로 헌안왕의 첩이 되었다는 설이 있음.
나무위키 궁예 항목을 보면 신라왕족설을 부정하는 의견이 대세인데
이는 궁예가 신라 왕실에 원한을 품을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
그러므로 허위사실이라고 보는 거.
그러나 장보고의 후손이라면 충분히 원한을 품을만 합니다.
할 줄 아는 것은 일본만 바라보는 것이고
할 줄 아는 것은 파괴만 하는 것인가?
도대체 뭘 할 줄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