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영구적으로 한반도를 지배할 것을 생각되어
친일을 했다는 친일파들.
한국이 독립될 줄 몰라서 친일을 했다는
미래를 내다볼 줄 모르는 미래인식.
친일파들은 한국이 독립되어서 하루도 편안하지 않는가?
지금도 일본지배를 꿈꾸어서 일본극우에 동조하고 있나?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은 놀랍다고 선언된다.
과연 놀라운가?
놀랍기는 개뿔.
놀랍다고 강요하므로 놀라는 척 해야 한다.
안 놀라면 혼날 것 같은 분위기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물질이 입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단 한 번도 물질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입자가 뭔데?
예컨대 시간이 과거로 무한하다고 믿는 사람,
우주의 크기가 무한하다고 믿는 사람
원자가 쪼개지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
귀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
이런 사람은 생각이라는 것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다.
그것은 생텍쥐뻬리가 어린왕자에서 양은 상자 속에 있다고 둘러대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질문에 대한 대답을 회피하는 기술일 뿐
입자가 뭔데?
구조론으로 입자는 의사결정 중심이다.
변화의 시작점이다.
잠자는 사자의 옆을 지나가면 사자는 반응하지 않는다.
어디까지 건드려야 반응할까?
사자가 반응하게 하는 한도가 있다.
그것은 하나의 점이며 점이 입자의 위치다.
입자라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는 방식에 불과한 것이다.
예컨대 마우스로 모니터의 아이콘을 건드리면 반응한다.
근데 실제로는 뭐가 반응하지?
아이콘이 반응하는 것은 프로그래머의 수작이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저질러 놓은 그림이다.
모니터의 아이콘이 반응하는 것과 실제 프로그램의 작동은 별개다.
무슨 이야기인가?
입자가 정당화 되려면 우리가 모르는 양파껍질 하나가 더 필요하다.
아이콘을 건드렸더니 반응을 했어요.
그건 배후의 프로그램이 동작했다는 말이다.
즉 입자설은 프로그램설인 것이며 만약 물질이 입자라면
그 입자를 스크린에 투영하는 프로그램이 별도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며
물질이 입자라면 입자는 물질이 아니라 부속품이라는 설이 되는 것이며
그럼 물질은 뭐지?
반면 파동은 좀 간단하다.
파동은 입자 위의 프로그램이 필요없다.
파동은 그 자체가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물질이 파동이라면 우리는 마우스의 커서로 아이콘을 건드린게 아니라
직접 프로그램을 건드린 것이다.
파동은 여러가지 성질이 있다.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입자는 조또 성질이 없다. 답답하다.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이 전부다.
이게 전부라고? 양파 껍질을 다 깠다고?
우주의 비밀이 다 드러났다고?
그럼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 온 거지?
파동설은 그나마 한 숨을 돌리게 되는 것이며
왜냐하면 뒤에 매질이 있기 때문에 아직도 양파껍질 하나가 남은 것이며
입자설은 이제 양파를 다 까서 우주의 비밀이 드러나버린 것이다.
그럼 프로그램은 어디에 있지?
우주의 비밀이 다 드러났는데 왜 설명을 못하니?
우주의 비밀이 다 드러났는데 왜 외계인을 고문해서 상상초를 만들지 못하니?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입자설을 믿는 사람은 한 번도 생각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거.
하느님이 왈 빛이 있으라. 우주가 탄생되었다. 끝.
이 얼마나 편리한가? 뭣하러 생각을 해? 하느님을 붙잡아서 고문하면 다 털어놓을건데.
입자설은 창조설, 윤회설과 동일한 떠넘기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말씀.
지구 밑에는 거대 코끼리 네 마리가 받치고 있다네.
코끼리 밑에는 거북이 있고 거북이 밑에는 코브라가 있지. 이런 개소리.
우리가 보는 것은 스크린이고 배후의 영사기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게 진실.
입자 - 입자가 스크린이다. 거의 다 왔다. 영사기만 찾으면 된다.
파동 - 우리가 보는 것은 영상이고 별도로 매질 역할을 하는 스크린이 있다. 아직 단계가 많이 남았다.
파동이 장기라면 입자는 바둑이다.
장기는 복잡하지만 단순하고 바둑은 단순하지만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