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929 vote 0 2023.10.02 (14:00:32)

    하나가 있으면 다섯이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은 하나다. 그 전에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그것이 있다. 봤다는 것은 붙잡았다는 것이다. 시각에 잡히든 청각에 잡히든 붙잡힌 것이다. 반대편에서 그것을 연출하는 것도 붙잡아 연출한다. 총은 총알을 붙잡는다. 활은 화살을 붙잡는다. 


    하나의 존재는 사건의 원인 측과 결과 측에서 두 번 잡힌다. 이쪽에서는 눈동자 하나에 5천만 화소가 잡힌다. 반대편에서도 붙잡는다. 소설의 많은 단어는 한 명의 작가에게 잡히고,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한 명의 지휘자에게 붙잡히고, 두시간 짜리 긴 영화는 한 명의 감독에게 붙잡힌다.


    언제나 하나에서 하나로 건너뛴다. 양이 많다는 것은 의미없다. 0.99999... 하며 소숫점 이하 9를 쓰는 것은 의미없다. 결국 1에 잡힌다. 그냥 1과 파이값은 같다. 3.14159..로 쓰는 것은 십진법을 정하면서 그렇게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파이를 1로 정했으면 그 반대가 되는 것이다. 


    십진법으로는 나누기가 어렵지만 12진법으로 하면 2, 3, 4, 6으로 나눌 수 있어서 쉽다. 그냥 인간이 십진법을 한다. 우주에 일치와 불일치가 있을 뿐이다. 붙잡는 것은 밸런스다. 숫자가 많은 것은 저울의 눈금이 정밀하다는 의미다. 정밀한 눈금은 의미없다. 어차피 지구 중심에 잡힌다.


    인간의 착각 - 저울의 눈금은 매우 정밀하다. 이 얼마나 복잡한가?

    자연의 진실 - 저울은 그저 지구 중심을 보고 있다. 이 얼마나 단순한가?


    우리는 복잡성 뒤에 숨는다. 막연히 세상이 다양하다고 말하면서 전진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 결과가 트럼프 세상이다. 바보들이 권력을 쥔다. 똑똑한 사람이 포기한 자리를 바보가 차지한다. 왜 포기하는가? 지식인이 지레 겁 먹고 작은 변방권력에 안주하려고 하는게 비겁한 것이다. 


    중심으로 쳐들어가면 하버드에 깨진다. 다양성을 부정하면 세계혁명을 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절대성을 강조하면 한 명의 절대강자만 살아남는다. 지식인은 다양성으로 도피한다. 저급한 권력놀음에 눈치싸움 빼고 건조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바라보면 세상은 하나다.


    하나의 우주, 하나의 연출자, 하나의 무대, 하나의 객석, 하나의 인격이 있을 뿐이다. 80억은 하나의 그릇에 담긴다. 지구에 한 명의 인간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스트레스 받지 않고 의연해질 수 있다. 이겨먹으려고 용을 쓸 일이 없다. 우리는 쪽수에 치인다. 


    만 개의 구슬은 하나의 실에 꿰어지고, 만 가닥 실은 하나의 옷감으로 돌아가고, 만 겹의 옷감은 하나의 그릇에 담겨 입체가 되고, 만 개의 물체는 하나의 압력이 걸려 유체가 된다. 하나가 될 때 움직일 수 있다. 둘은 경쟁하고 하나는 완성된다. 둘이면 이겨야 하지만 하나는 살아야 한다.


    지구에는 문명이 있고 문명은 하나이며 하나의 문명은 살아 있다. 38억년 전에 출현한 생명이 지금껏 살아있듯이 2만 년 전에 출현한 문명이 죽지 않았다. 생물은 진화압을 받고 문명은 진보압을 받는다. 생물은 생태적 지위를 찾아가고 인간은 문명적 지위를 찾아 궤도를 타고 간다. 


    어떤 개미는 길을 가고 어떤 개미는 길을 만든다. 어떤 생명은 진화하고 어떤 생명은 진화의 길을 만든다. 어떤 인간은 진보하고 어떤 인간은 진보의 길을 만든다. 길을 만들 때는 반대편을 살핀다. 가지 않을 길을 배척하면 가는 길이 남는다. 가지 않을 길은 가는 길을 만드는 준비다. 


    인간들이 허튼 짓을 하는 이유는 그 길이 가지 않을 길이라는 증명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표지판을 세우는 거다. 만 가지 헛된 길을 가본 다음 하나의 바른 길을 확정한다. 우리가 바보들의 삽질을 질투할 이유가 없다. 그 삽질은 필요한 삽질이다. 인간이 원래 그렇게 설계된 존재다. 


    선원들은 사방의 파도를 감시하고 선장은 하나의 북극성을 바라본다. 바보들은 삽질하게 두고 우리는 우리의 문명적 지위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연히 중심을 차지하면 중심을 조절해야 한다. 우연히 운전석에 앉았으면 핸들을 잡아야 한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sort
공지 닭도리탕 닭볶음탕 논란 종결 2 김동렬 2024-05-27 44384
공지 신라 금관의 비밀 image 7 김동렬 2024-06-12 34595
905 Re.. 권영길 이회창은 어제 토론효과 2프로입니다. 김동렬 2002-11-27 15565
904 최종결과 족집게 예측 (중앙일보 대선주식 최종결과 포함) image 김동렬 2002-12-18 15567
903 이번에도 승자는 유권자다. 김동렬 2006-06-01 15567
902 [문화] 이창동 문광부 장관, 영화제작 공표. 김동렬 2003-06-25 15568
901 칸트의 정언명령 image 김동렬 2017-03-14 15571
900 새 책 소개와 계획 image 7 김동렬 2009-08-12 15573
899 Re..오잉..근데 깨춤이 뭘까.(빔) 오잉 2002-12-11 15577
898 Re..아햏햏? 까웅아빠 2002-11-16 15578
897 선택 image 김동렬 2002-11-30 15587
896 유시민 배제에 신기남 아웃 김동렬 2005-03-10 15588
895 우리의 갈 길은 오직 이 길 뿐 김동렬 2002-10-29 15590
894 자연은 일방통행이다. image 김동렬 2011-08-01 15592
893 Re..반갑습니다. 김동렬 2002-10-19 15594
892 5월 2일 강의주제 김동렬 2009-05-01 15594
891 Re..만약엔 전 정몽준이 단일후보가 된다면 아다리 2002-11-24 15595
890 배짱이가 30마리도 안된단 말이오? 파브르 2002-12-04 15598
889 한나라당 등신들의 머리 속에는 뭐가 들었을까? image 김동렬 2003-07-10 15598
888 노무현의 사람들이 좋다. 김동렬 2002-10-22 15599
887 미에 대한 관점 4 김동렬 2010-08-08 15602
886 김은비 사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9 김동렬 2010-02-05 15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