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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23.01.06 (17:03:59)

[페북 펌]기독교에서 왜 근본주의가 이단인지를 설명하는 글입니다. 이 문제에 별 관심이 없으시면 넘어가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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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의 그 유명한 노래 “imagine”의 첫 소절은 “Imagine there's no heaven“로 시작합니다. 천국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말이죠.

저는 종교가 수많은 분쟁의 원인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모든 분쟁은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발생합니다. 그렇지만 종교가 분쟁 발생의 가장 중요한 명분인 것은 사실입니다. 종교가 사라진다고 분쟁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현존하는 분쟁들 중 절대 다수는 종교에 그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분쟁을 조장하는 교리를 가진 종교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기독교도 이슬람도 불교도 힌두교도 모두 평화를 이야기하고, 사랑과 자비를 가르칩니다. 그럼에도 종교가 분쟁의 가장 중요한 명분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독교의 예를 생각하면, 종교 다원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그 이유인 것처럼도 보입니다. 기독교는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가르치니까요. 그렇지만 종교 다원주의에 포용적인 종교들도 분쟁의 명분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슬람만 해도 유대교, 기독교와 상당부분 겹치고, 유대교와 기독교의 계시가 그들의 신으로부터 왔다는 사실도 인정합니다만, 그런 사실이 탈레반이나 IS같은 집단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종교 다원주의의 끝판왕쯤 되는 힌두교 역시 상황은 비슷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분쟁의 근본 원인이 종교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에, 종교가 어떤 스탠스를 취하든 분쟁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종교가 본쟁의 가장 중요한 명분으로 이용되고, Imagine 같은 노래까지 등장한 것은 분명 종교 그 자체에 무언가 이용하기 쉬운 약점들이 존재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모든 종교가 그런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은, 모든 종교들이 동일한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저는 그 “약점”이 근본주의(화) 라고 생각합니다. 그 어떤 종교든 종교의 지배력이 강해지면 그 종교만이 진리라고 굳게 믿게 되고, 그 믿음과 어긋나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할 수 없게 됩니다. 나아가 믿음과 어긋나는 것은 진리에 어긋나는 것이니 “바로잡아야” 한다고 믿게 되죠. 결국 자신이 믿는 종교만이 모든 것이고, 그것 이외에는 모두 거짓이어서 타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면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종교 절대주의가 근본주의입니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근본주의를 벗어나는 방법은 종교와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밖에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적당히 세속적이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사는 것이 평화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 되죠. 이런 기준에서 보면 “적당한 타협”이 불기능한 종교는 근본주의의 발호를 막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이른바 아브라함계열 종교들은 그 특성상 자기 종교만이 진리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으니, 근본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적어도 기독교는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그 교리 자체에서 근본주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절대적 도그마도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잘 안 가실 수도 있으니, 다음에 인용하는 “예수의 가르침”을 읽어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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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셨다. 그런데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서 먹기 시작하였다. 바리새파 사람이 이것을 보고 예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굶주렸을 때에, 다윗이 어떻게 했는지를, 너희는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단에 차려 놓은 빵을 먹지 않았느냐? 그것은 오직 제사장들 밖에는, 자기도 그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또 안식일에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안식일을 범해도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책에서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더라면, 너희가 죄 없는 사람들을 정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서,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셨다.그런데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하려고 "안식일에 병을 고쳐도 괜찮습니까?" 하고 예수께 물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 양 한 마리가 있다고 하자. 그것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지면, 그것을 잡아 끌어올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은 괜찮다."

그런 다음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을 내밀어라." 그가 손을 내미니, 다른 손과 같이 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서,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였다.

- 마태복음 12장 1절 ~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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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복음서 기사에서, 예수는 “안식일” 도그마를 정면으로 깨뜨립니다. 안식일에 아무것도 하면 안 된다는 계명은 무려 10계명에 속해 있는 절대적 계명입니다. 유대인들 사이에서 근본주의 경향이 강해지면서, 유대인들은 무려 전쟁 중에서도 안식일에는 전투를 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의 적들은 그걸 노려서 일부러 안식일에 총공세를 펴기도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안식일 계명은 그 정도로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안식일에 예수는 먹을 것을 구하기도 하고, 병든 자를 고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유대인 근본주의자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안식일은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다. 먹을 것을 구하고 사람을 고치는 것이야말로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를 실현하는 것이다”라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얼마나 충격적이었냐면, 당시 유대교 근본주의를 선도하던 바리사이 인들이 예수를 없애야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도그마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듯이, 모든 도그마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그리고 나의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런데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베푼 것이 하나님에게 베푼 것이기 때문에, 결국 기독교의 모든 가르침은 “지금 이 자리에서 약자들을 돌아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찾아야 한다는 것으로 수렴합니다.

사실 제가 인용한 위 복음서에는 지금 개신교가 반드시 들어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더라면, 너희가 죄 없는 사람들을 정죄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구절입니다. 개신교인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지난 십수년간 개신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 절대 다수가 “예배”의 회복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복음서는 기독교의 본질이 예배에 있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예수가 인용한 구약의 구절처럼, 기독교는 예수 이전이든 이후든 일관되게, 신은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저는 예배만을 외치는 것 역시 근본주의나 다름 없다고 생각합니다.

약자를 돌아보고 그들과 함께 하는 방법은 때와 장소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 시절에는 여자가 머리에 천을 뒤집어쓰고 공동체에서 남자와 동등하게 발언권을 갖는 것이 “약자를 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여자에게 발언권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발언권을 주기 위한 타협안으로 바울이 받아들인 “천 뒤집어쓰기” 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오히려 여성에 대한 억압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바울이 그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머리에서 천을 벗겼습니다. 바울의 명시적 요구에 반하는 결정이었지만, 그들은 그것이 바울의 요구를 진정으로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바울의 명령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이유로 절대적 도그마라고 생각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지금 이란에서 벌어지는 히잡 문제가 개신교에서도 발생했을 겁니다.

이렇게 본질적으로, 기독교는 근본주의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가 10계명을 “어긴” 것처럼, 종교개혁가들이 바울의 명령을 “어긴” 것처럼, 기독교는 끊임없이 도그마들을 재점검하고, 그것이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지를 탐구합니다. 이 탐구는 도그마틱스, 기독교 교리학의 기본 주제이자 전제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근본주의가 될 수 없고, 근본주의는 기독교의 도그마에 반하므로, 이단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분쟁의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기독교가 그 명분으로 악용되고 있다면, 그건 기독교가 “빛과 소금”의 본질을 잃은 겁니다.

제가 이런 글을 쓴다고 해서 대한민국 개신교가 변화할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만,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병원 대기시간동안 빈둥대다 간단히 써봤습니다.

페북펌
좋은 글이지만
종교가 권력을 만들고

권력은 원래 부모자식도 못나누는 것입니다.
근본주의는 권력지향이지요.
타인을 심리적으로 지배하려는 것
집단의 결속을 추구하는 행동
이는 동물의 본능입니다.

기독교는 예수와 거의 관계가 없습니다.

인간의 종교적 본능과 가장 가까운 종교가 기독교였다는 거지요.

더 가까운 종교는 유태교.

이슬람교도 같은 뿌리.

종교적 본능을 바탕으로 예수의 전략과 개신교의 전술을 채택하는 것.

[레벨:30]솔숲길

2023.01.06 (18: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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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명단.

김만배가 기자들한테 돈을 줬다던데..

첨부
[레벨:30]솔숲길

2023.01.06 (21:48:27)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23.01.06 (20: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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