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주관식 문제는 이슈의 맥락이나 원인을 추정하는 것이고
객관식 문제는 이슈의 결과를 추정하는 것.
그런데 생성형 인공지능은 주관식 문제를 객관식 문제를 반복적으로 푸는 방식으로 작동.
모든 단어를 객관식으로 하나하나 찍어가며 생성하는 것.
이 방법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나,
문제는 반드시 맥락을 사용자가 넣어줘야 한다는 것.
요 근래 프롬프트 엔지니어니, chatGPT 사용법이니 하는게 바로 이것 때문에 나오는 말인데
인공지능이 어떤 맥락에 따라 출력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
인공지능에 맥락을 알려줘야 할 사람이 필요해.
현재의 인공지능은 맥락을 다루질 못 하는 한국의 엘리트와 같습니다.
그들은 맥락이 전제된 객관식 시험, 즉 수능에 최적화 된 인간이기 때문.
오히려 밑바닥에서 상승하는 인간들이 맥락을 잘 다루는데,
맥락을 다루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
한국의 엘리트가 이 꼬라지가 된 것은
국제 무대에서 한국이 후진국이었기 때문
맥락은 선진국이 만드는 것이고
후진국은 그 맥락을 따라갈 뿐이니깐
맥락을 다룬다는 것은 맥락을 만드는 것을 의미
맥락을 만든다는 것은 타인의 맥락을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
그때 나타나는 현상이 선제적으로 질문하기.
왜 질문이냐면, 인공지능이 문제를 출제하는 측이 되므로.
답을 맞추는 게 아니라.
그게 넥스트 표준.
학문은 어느 날 갑자기 심령이 찾아와서
감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거의 어깨에서 세상을 바라보라는 것은
이천년 역사동안 한줄로 엮어져 오는 학문을 바탕으로
연구를 시작하고 연구자의 과학적 발견 또는
사람들 사이에서 깨달은 인지혁명을 첨가하는 것이다.
서구와 미국에서 왜 그렇게
국가도서관을 만들어서 논문을 관리하고 학문을 관리하여
과거의 지식 위에 현재의 지식을 발견하여 토대를 쌓으려고 하는가?
왜 그렇게 말 많고 탈 많은 미국으로
21세기인 현재까지도 세계의 천재들이 이주하여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내는가?
미국사회가 심령으로 움직여서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