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정치인과 크다 말 정치인의 차이는 거대한 이슈에 대한 선점능력과 이슈몰이 능력이다.
이걸 잘 하는 대표적 인물은 뭐 말할 것도 없이, 김대중, 김영삼 이런 분들이었다.
의제를 던지는 건 선거를 유리하게 끌고가기 위함인데, 그게 옳은 일이냐 그른 일이냐의 문제는 나중 문제고 어떻게 써먹고 어떻게 먹힐 것인가의 문제다.
대표적으로 잘 쓰인 건 노무현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 이다. 이 공약 하나로 이회창의 본거지라고 생각한 충청권에서 57%의 압승을 거두며 대선을 성공적으로 승리했다. 아마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없었다면 충청에서 5:5 박빙 정도로 끝나거나 백중열세로 대선에 졌을 수도 있다.
이재명을 대선에서 분루를 삼키게 한 건 여러가지 이슈들이 있겠지만 국짐에서 기를 쓰고 써먹은 건 대장동이다. 이건 별 어려운 설명할 것도 없었다. '대장동 비리 = 이재명' 이렇게만 묻지마 외치면 되었다. 아주 쉬웠다. 아니라는 걸 해명하는 건 아주 힘든 문제인데 이슈몰이는 쉽다. 가령 김건희 = 쥴리 이런 이슈처럼. 이재명은 사력을 다해 대장동 해명에 승부수를 던졌지만 결국 한계가 있었다.
대장동이 저쪽에서 치고나온 이슈라면 이번 김포공항 이전은 이재명이 스스로 꺼내든 뜬금포로 많이 아쉽다. 큰 이슈의 기본은 누군가에게 큰 떡고물을 안겨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행정수도 이전은 세종시라는 선물을 충청권에 던져주는 승부수다. 그럼 김포공항 이전은?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냥 삽질이다.
김포에 있는 공항을 인천으로 이전시킨다. ... 이건 인천에 공항이 없을때는 아주 큰 선물이다. 하지만 지금은 삽질이다. 강서에도 도움이 안되고 서울, 인천 모두 도움이 안된다. 떡고물을 주는 공약이 아니라 뭔가를 없애는, 무언가를 빼앗은 황당한 공약이다.
뉴욕공항, LA공항, 런던공항, 상해공항, 도쿄공항 등 세계적인 대도시에 공항 없는 곳 있나? 그냥 공항이 아니라 국제공항들이 다 있다. 국제공항이 있느냐 없느냐는 그 도시의 상징적 위상이다. 물론 서울이 아니라도 성남, 의정부, 부천, 고양시, 구리시 같은 곳에 있어도 이름은 서울공항이 되는 것이다. 왜 영종도 공항이 아니라 인천공항이겠는가?
김포공항이전이 좋은지 나쁜지는 잘 모르겠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상대방에서 그 공약을 꼬투리 잡아서 이슈화하고 사악하게 이용해먹기 딱 좋은 악수인 것이다. 벌써 난리다. 민주당에 유리한 제주를 자극하는데 써먹고 있고, 서울, 인천 경기의 싸움에 크게 활용하고 있다. 즉 상대방이 기다린 떡밥을 보기좋게 던져준 꼴이다. 언론 좋아하고, 국짐 좋아하고...
물론 이걸 되치기하여 민주당에 유리하게 써먹는다면 그건 좋은 떡밥이었겠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늘 얘기하지만 막 던지는 이슈는 지는 사람이 하는 짓이고 특히 선거 임박해서 꺼내는 건 좋지 않다. 설명이나 반격의 여지도 없고 공격당하기만 딱 좋은 이슈다.
늘 그렇지만 이재명이 이슈몰이 게임에 상당히 약한 느낌이다. 악수라고 생각한 이슈를 되받아쳐서 여론을 가져와야 한다. 노무현 예를 들어보자.
1. 질문자 : 청문회 스타 라는 것 말고 딱히 다른 업적이나 그런에 없어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요?
노무현 : 네 맞습니다. (구구절절 변명보다 이 겸손한 한마디로 질문자의 의도를 일축시킴)
2. 이인제 : 노무현 장인이 빨갱이다.
노무현 : 그렇다고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이냐? (선거공방의 희대의 명언이 됨)
3. 선거 떨어지고 지역감정 때문에 지지자들이 분노할 때 : 농부가 밭을 탓할 수 없습니다.
이재명이 솔직 화끈한 성격인지는 모르겠지만 노무현에게 선거의 화법을 좀 배우면 좋을 것 같다.
자기 지지자는 모르겠지만 성남시장이 아닌 경기지사, 대선후보, 거물정치인으로 위상이 달라졌는데 여전히 까칠한 싸움닭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쉽다.
심지어 이회창도 이런 재치가 있었다.
부인이 '하늘이 두 쪽 나도 우리 남편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오만하고 욕먹을 권위적 말실수를 부인이 한건데 이회창은 유세에서 이렇게 써먹었다.
'제 집사람이 한 말을 좀 인용해서 한마디 하겠습니다. 하늘이 두 쪽나도 정치보복은 절대 안할 겁니다'
이재명은 위기를 기회로 넘기는 업어치기 능력과 위기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융통성이 부족해 보인다.
김부선 이슈, 형수 이슈, 조폭 이슈, 대장동 이슈, 김혜경 법카 이슈 모두 속수무책처럼 별 소득없는 정면돌파만 했다.
따지고 보면 수천억이 오간 대장도 이슈를 제외하면 모두 하찮은 개인적 문제다. 하지만 사람 하나 이미지 버려놓기에는 기자나 상대진영에서 딱 좋아할 이슈들이다. 윤석열의 쥴리 이슈, 김건희 신분세탁 이유, 쩍벌 이슈, 술꾼이슈, 도리도리이슈, 배신자이슈, 장모이슈, 군면제이슈, 박근혜특검 이슈 등 훨씬 더 불리한 이슈폭탄이 많았음에도 결국 대통령이 된 건 위기방어능력, 빠져나가기 능력이 더 여우처럼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재명의 사적 이슈에 비하면 훨씬 큰 건들이다.
쥴리 이슈는 영부인의 품위에 관련된 말초적 이슈고, 신분세탁이나 장모이슈는 중범죄다. 박근혜 특검은 지지자 분열에 딱 좋고 술꾼, 도리도리는 본인의 자질과 관련된다.
왜 이런 넋두리를 하느냐면 너무 쉽게 이길만한 게임에서 계속 지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 같아서 답답해서 그런다. 지는 게임을 뒤집고 이기는 묘미가 있어야지 뻔히 이길 게임인데 삽질을 통해 진다면 이건 ... 그냥 한숨만 나온다.
하단에 동영상 귀한 영상이네요.
한국 언론은 반성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