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조국딸 표창장문제로 기득권층의 스펙이 문제가 되던 시기에
에이치딸이 그 스페을 쌓고 있었다는 것은
기득권층은 법 밖에서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닌가?
관성의 발견이야말로
근대과학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소.
모든 것은 어떤 사람이 갈릴레이에게
턱도 없는 시비를 건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지구가 돈다는게 말이나 되냐?
우리가 1초에 400미터를 도는 회전그네를 타고 있다면?
왜 어지럽지 않지? 갈릴레이 너 바보냐?
그 사람은 사실 자기도 모르게 관성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분개한 갈릴레이.
그래 진짜로 1초에 400미터를 돈다면 어쩔래?
내가 아주 빠른 배를 타고 간 적이 있는데
배 안에서는 배가 가는 줄도 몰랐다니까. 갈릴레이의 반격입니다.
설마 그럴 리가 하고 딴지를 걸기 전에
만약 진짜로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머리 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거지요.
기차를 타고 가다보면 맞은편에서 오는 차가 두 배의 속도로 느껴집니다.
와장창창 하고 거친 소음이 나는데 너무 빠른 거에요.
저렇게 빠른 기차가 있었나?
내가 탄 열차의 속도와 상대방 열차의 속도가 합쳐진다는 것을 몰랐던 거지요.
그런 특이한 경험은 일상에서 많이 하는 것.
자동차 안에서 가로수가 뒤로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거나.
버스가 커브를 돌때 기우뚱 한다거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그러나 고개를 갸웃 하고 뭐지 하고 잠시 헷갈려 했던
신기한 경험이 무수히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아직 인류는 관성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관성이 제기하는 문제는 의사결정입니다.
운동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라는 말은
초딩도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설명이기는 하나
그게 초딩을 위한 설명입니다.
초딩의 눈높이에 맞춘 설명.
우선 물체에 작용하는 힘이라는 표현을 할 때
물체가 뭐지?
액체는 물체가 아닌가?
공중에서 낙하하는 물방울은 물체가 아닐까?
여럿으로 된 그룹은 물체가 아닌가?
물체라는 말은 아주 게으런 표현입니다.
비과학적인 레토릭이라는 말씀.
소립자 단위로 쪼개볼 때 물체는 없습니다.
물체라는 말은 피곤하니까 따지지 말고 대충 뭉개고 넘어가자 이런 거지요.
그럼 뭐가 있지? 계가 있습니다.
연결되어 있으면 계라는 말이지요.
계는 연결되어 있고 의사결정은 연결의 중심에서 일어나며
사건이 격발되면 일단 계는 중심을 찾으려고 합니다.
관성에 관한 모든 현상들은 그 중심을 찾으려는 현상입니다.
중심을 찾는데 드는 비용이 질량입니다.
인구 100명의 국가와 인구 만명의 국가가 있다면
각각 투표를 해서 지도자를 뽑되
유권자 숫자가 100 아니면 1만이겠지요.
100표나 만표를 검표해야 지도자가 결정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질량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관측자를 포함시키면 가속도의 법칙입니다.
관성력을 알아보려면 외부에서 때려보면 되는데 어느 정도 세기로 때려야 하는가?
관성력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관측자의 때리는 힘을 포함시킨게 가속도의 법칙
때리는 힘은 관측자의 개입이므로 그 부분을 빼고 보라는게 작용 반작용의 법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