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의 월드컵을 20대의 중반에 기억하는 필자로선, 2022년의 20년후의 지금은 상당히 새롭다.
우선, 국적간/인종간 이동이 두드러졌다. 냉전 종식후 30년만의 일이고, 한세대가 전성기를 지난 이후, 완벽하게 냉전이 끝난후 태어난 젊은이 (20-30)들의 강철체력을 볼수 있게 되었다. 8년전 월드컵때 터키출신 독일대표가 인종차별 퍼포먼스를 해서 문제가 된적이 있는데, 확실히, 인종간/국적간 차별 방지 교육을 공교육에서 받아온 세대가 전면에 나서게 된거다. 하지만, 인종차별자체는 없어지지는 않는다.
세상은 좀더 많은 축제로 이어져야 한다. 특히 한국-중국-일본은 너무 축제가 없다. 알코올에 의존한다는건 축제의 빈약함을 더 드러낼 뿐이다. 축제자체보다는, 삶에 있어서의 자기완성 욕구가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다. 너무 남을 의식한다는 점.
아시아의 강세: 일본, 호주가 축구를 잘하는 일이 남의일이 아닌게 되었다. 어차피 남미는 서유럽의 대항해 시대의 유산이라는 인식이 강하므로 논외로하고, 특히 인도 관중들이 카타르로 몰려간것. 그리고, 수많은 한자 광고판이 의미하는것은, 냉전 (1990년대)이후 세계의 생산력이 아시아로 옮겨갔음을 의미한다. 호주는 아직도 백호주의지만, 중국의 영향력을 무시할수 없고. 아직 한중일이 으르렁거리지만, 이상태에서 중국까지 축구를 잘하게 된다면, 한중일 슈퍼 리그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2010년대 후반, 미국이 리만사태로 혼란을 겪을때, 중국은 유럽과 일대일로로 협력을 강화했고, 오바마와 영국은 아랍을 더 혼란에 만들어, 유럽을 어렵게 만든게, 2020년대까지의 서구권 국제역학. 매드맨 트럼프와 푸틴의 발광을 우리가 보고 있고, 전두엽 소멸이라는 희대의 대통을 한국은 맞게 된거고.
축제에 대한 이야기에서 다시 시작해보면, 한국에 불어닥쳤던 80년대까지의 무한경쟁. 미국 일본의 자유경쟁체제가 초중고에 90년대까지 밀어닥쳤고, 2000년대 이후로는 대학에까지 와서, 2020년대에는 출산율 직하로 나타난것. 일본도 90년대 버블 정점에까지 나타난 현상. 조절된 경쟁으로 잘 디자인되어야 하는 부분들. 다만, 한국은, 일본과 달리, 갈등의 극단을 치는 경향이 있으므로, 한국여성들의 출산파업은 좀더 시간이 걸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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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과하는게, 90년대 냉전 해소 이후로, 플라자합의 WTO체제를 거치고, 2010년대의 경제의 디지털화와 서버의 발전으로 디지털화된 자산경제는 꾸준히 상승해왔다. S&P의 지속적인 성장이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 바닥 경제의 구조적 퇴행에도 불구하고, 뉴욕, 시카고, 엘에이의 주식 지수는 끝내 상승해 오고, ETF라든가, bitcoin등으로 진화하면서 투자의 형태를 바꿔왔던것.
그도 그럴것이, 한반도 어디에 앉아있어도, 앱만 있고 인터넷만 되면, S&P주식과 신소재 관련 ETF를 국내법령안에서 자유롭게 투자할수 있게 되었다. 부동산에 관심이 있지만, 관리의 여러 문제가 부담이 된다면, 부동산 산업관련 ETF나 주식을 사는것으로 간접투자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월급의 일정부분을 사적 연금으로 준비하고, 투기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투자하고, 자신의 노년을 준비하는 사회로 움직이는, 형태가 되는것. 늙어지는 사회를 추구하는게 아니라, 그동안의 한국사회는 과도한 사교육, 과도한 음주문화, 업무문화, 과도한 의료보험의존, 과도한 타인관심으로 피곤해져왔는데, 삶의 '공공화'를 통해, 불필요한 감정낭비가 사라진다는것. 20년가까이 서구인들과 접촉한 바로는, 서구권이 기본적인 일원론에 기초한, 기독교 신앙에 기초하지만, 한국인의 유전자와 문화DNA는 그와 비슷하고, 아시아 유일의 민주주의가 실현된것이 그 증거.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몇가지 2022년도의 현상을 한국에 맞춰 정리하면,
1) 한중일 인도의 생산력이 2022년도의 세계를 지탱한다. (아시안으로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
2) 기후변화와 지구 자생력에 심각한 문제가 도래했다. 특히 인구폭증. 감당 불가능의 시대로 왔다. (화성보다는 해저개발이 더 이득)
3) 한국도 일본의 90년대 처럼, 부동산 자산에서 금융자산 (공적 사적 연금)으로의 %이전에 진입중이다. (이는, 대부분, EU, US, 일본 이 거쳐간 길). 삶의 공공화를 통한 쓸데없는 감정낭비 줄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