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같은 대장은 적보다 무섭다 이명박의 운하집착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음양오행으로 따져서 노무현은 노란색이니 토(土)인데 토생금에 금생수라 했으니 금(金)에 해당하는 이명박은 물로 성공하게 되어 있느니라.” 누가 이딴 귀신씨나락 까먹는 말로 이명박을 세뇌시킨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이명박을 비판할 수도 없다. 실제로 나는 운하비판글 쓰지 않았다. 비판하면 이명박 정신차려서 삽질 중단할텐데 왜 비판해? ‘삽질은 계속되어야 한다. 계속 해봐라. 어디까지 하는지 보자!’ 이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사실이지 그동안 주변사람들에게 무수히 말했다. “이명박은 결국 운하에 빠져 죽을거야! 두고 봐.” 대선 직전에 있었던 이야기다. 어떤 의식있는 사람에게 물으니 자신은 운하뻘짓 찬성 한단다. 왜 찬성하느냐 했더니 이명박이 일 벌여놓고 어떻게 수습할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란다. 그 분이 했던 말 기억난다. “한국사람은 이명박에게 뒤통수 맞아봐야 해. 그래야 정신차려!(옆에 있는 친구를 쥐어박으며) 이 친구도 뒤통수 맞고 정신차려야 되고.” 그 분이 선견지명 있다. 22조라! 숫자 나왔다. 치명적이다. 숫자 나왔다면 곧 죽음이다. 눈알 뒤집어진다. 이성을 잃게 한다. 친한 사람 싸움 붙이는 방법 간단하다. 먹이 던져주고 알아서 나눠먹어라고 하면 바로 칼부림 나고 자멸한다. 중국 고사에도 비슷한 이야기 많더라. 충성스런 세 제후를 이간질시키기 위해 누구만 은상을 내려주었더니 서로 죽이고 난리났다는 따위. 운하가 수면 하에 잠복해 있을 때는 많은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 상상력이 사람을 흥분시켜 득표에 도움되지만 눈에 보이는 떡이 던져졌다면 게임 끝이다. 남의 떡이 커보이는게 사람 심사. 도시와 농촌간에, 지역과 지역간에 22조가 합리적으로 배분된다는 보장이 없다. 균등하게 배분할 자신 없거든 아주 꺼내지를 말아야 한다. 나눠먹기 현찰이 22조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숫자를 불신한다. 22조는 결국 누군가의 아가리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는 경험칙. 장사 한 두번 하나. 이런 미친 짓을 왜 할까? 알 수 없다. 국민연금, 의료보험도 합리적으로 배분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이유로 불신되어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애먹은 판에 22조 잔치판이라. 경제도 어려운데 먹자판 놀자판이 벌어졌다고라고라. ### 이명박과 판박이 인물을 발견했다. 이차대전에서 영국군을 위해 전공을 세워서 전범으로 몰리고도 석방된 사나이. 그의 이름 ‘무다구치 렌야.’ 일본군에게 ‘바보같은 대장은 적보다 무섭다’는 교훈을 던져준 인물. 미얀마 전선에서 보급도 없이 일본군 8만명을 정글로 몰아넣어 대부분 굶어죽고 병들어죽게 한 사나이. 그래놓고 자신은 매일 요정에서 술타령 벌인 사나이. 전황이 불리해지자 제단 차려놓고 기도만 한 사나이. 마지막 죽는 순간에도 자기 잘못 없다고 발뺌하며 장례식에 조문 온 사람들에게 그 변명을 유인물로 돌리라고 유언한 영삼 이상으로 영삼스런 사나이. ‘명박 일본가다’라는 제목의 영화 찍고싶게 하는 사나이. 대충 감상 링크는 - http://blog.naver.com/mig17?Redirect=Log&logNo=150034322733 상세감상 링크는 - http://blog.naver.com/jjy0501?Redirect=Log&logNo=100063347554 하여간 운하좋다. 대찬성이다. 계속해라. 사나이가 한 번 칼을 뽑아놓고 물러서면 안 되지. 22조짜리 불신, 오만가지 시샘과 불화의 근원. 우리가 무다구치 렌야를 보고 일본을 비웃을 때 일본은 이명박 보고 한국을 비웃는다. ∑ |
쥐박이는 국민투표라는 걸 해서 선출된 대통령이란 사실이 심장을 오그라들게 하오.
이런 논리 참 안타깝소.
이명박이 운하에 빠져 죽는것을 기디리는동안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삽질하다가 죽을거요.
그런데 이명박이 운하에 빠져 죽는것을 지켜보자고? 무조건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고?
참으로 해괴하오.
김동렬님과 비슷한 논리를 폈던 양반이 있었는데, 바로 손호철이오.
손호철 이놈, 2007년 대선전에 이런 말을 했드랬소.
'국민들이 (한나라당의 집권으로) 신자유주의의 뜨거운 맛을 봐야, 좌파의 소중함을 알 것이다'
어떻소? 지금 김동렬님의 주장과 슷비슷비하지 않소?
문제는 어느때라도 국민들의 희생을 걸고 장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오.
그게 민주주의에서 상도덕이라는 것이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들의 희생을 걸고 장사하려는 즉, 반민주주의오.
그거 박정희의 논리오. 민주주의와 인권 좀 희생했지만 경제는 좀 했지 않냐? 이거 박정희 지지자들의 논리란 말이오.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희생과 맞바꿀만한 것은 없소.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최대의 가치오.
박정희 지지자들은 경제로 민주주의를 맞바꾸려고 하고 있소. 이게 먹혀서 박정희가 역대 대통령 지지율 1위 아니오.
그런데 박정희를 비판하는 사람들조차 이런 논리를 따라간대서야 말이 되냔 말이오.
손호철의 말대로 국민들이 신자유주의의 뜨거운 맛을 보려면 대부분의 서민들은 지옥을 맛볼 것이오.
근데 그 서민들은 손호철이 지향하는 진보의 디딤돌이오.
즉 손호철의 말인즉슨 자신을 지지하는 지지자들의 발등을 찍어서 그것으로 자양분을 삼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오.
이게 무슨 민주주의오. 미친짓이지. 그러니 진보가 안되는 것이오. 지들은 주뎅이만 나불대면서 지지자들의 피를 자신들의 정치적 자양분으로 삼겠다는 의사를 노골적으로 보이니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것이오. 내가 그 상황에 있더라도 저놈들한테 정내미기 떨어질것 같으오.
실제로 작년 촛불 집회때 일부 진보들이 이런 짓거리를 했었소. 아고라에서 박살나고 물러났지만..........
제발 기본좀 지킵시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오.
국민을 희생해서 뭘 한다는 그 발생 자체가 바로 민주주의에 반하오.
민주주의는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을 희생해서는 안되오.
대운하로 국민들이 뜨거운 맛을 봐야 한다고?
이런 미친 주장은 앞으로 없었으면 하오.
적어도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김동렬님이나 이 싸이트에서는 말이오.
이건 무조건 막아야 하는 것이오. 4대강 하면 100년 200년 아니 그 이상 우리 자손들이 고통을 당할 것이오.
대운하에 대해서는 내 전문 분야고 할 말이 많소만 혹시 기회가 생기면 다음에 하리다.
아무리 싸이트에서 뭐고 떠들어봐야,... 국민들이 마이동풍입니다...
그리고 신문과 방송이 다 어용이기 때문에 ,
한참 더 국민들이 어렵고 고생을 해서 나중이라도 알면 다행이지요.
김동렬님이 어떤 의도로 글을 쓰셨는지 그 속내야 제 속이 아니기에 뭐라 가타부타 말하기는 어렵지만 제가 느낀바를 얘기해 보자면은...
위의 글은 ' 이미 저 글을 읽는 사람들은 대운하를 반대한다.해서는 안된다거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은 뭔가가 부족하다.답답하다...라는 이런 전제를 미리 깔고 쓰여진 글' 이라고 생각해봅니다.
대운하는 당연히 하면 안되지요.
그런데도 이명박은 대운하에서->4대강 정비->4대강 살리기로 계속해서 말만 바꾸어 국민에게 접근하니 일부 국민들이 혼동을 느끼기도 하므로... 이명박의 발상과 계획은 변한것이 없고 말만 바꾸어 퍼트리는데 그 4대강 계획이라는 것에 대해서 확실하게 딱 잘라버릴 만한 그런 국민적 지지가 아직 성립되고 있지 않기에 답답함의 호소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이명박이 대운하=4대강 살리기에 미련을 못버리고 저리고 있는것 아니겠는지요.
이명박은 죽어도 그것을 쥐고 안놓겠지요.자신의 지지자들과의 약속이고 지금현재 그 자신의 근거이므로...
그래서 그 생각과 시도 자체를 저지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한데 그 필요한 대국민적인 모아진 의견의 힘' 4대강 살리기 저지'에 대한 확실한 것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명박은 이리저리 빠져나가기만하고 눈치만보고 있다가 어느순간 기회를 보아서 정말 할 태세입니다.
모르지요...3년내내 이런식으로 임기를 채울지도...자신의 안위만 중요한 사람이니까...
물론 어떤분들은 김동렬님의 글을 읽고 국민들 더 당하고 나서야 정실차릴 것이기 때문에 정말 4대강 정비하라고 내버려 두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문제가 생기겠지요.
다만,대체로 사람은 간혹 의도하는 바는 이쪽이지만 역으로 얘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너무 사랑해서 애증이 되듯이...너무 살리고 싶은데 어쩌지 못해서 차라리 죽어라 라고 하는 것처럼...
우리는 어떤 글이나 말을 그냥 그대로 들어야 하는 것도 있지만 때로는 그 이면을 볼 줄도 알아야 된다는 생각이 드네요.
착하기까지 하면, 미워할 수도 없으니, 더 무섭소.
무능하기까지 하면, 지켜주기까지 해야하니,
이렇게되면 목숨을 걸어도 결과를 알 수 없소.
운명에 맡길 밖에.
싸움과 겨룸은 명백히 다른 것이오.
싸우는 글과 겨루는 글도 달라야 하고, 싸워야할 넘과 겨뤄야할 이는 전혀 다른 묶음이오.
싸울 넘 앞에서 겨루기 짓하는 넘은 적의 편이거나, 전선에 있어서는 안될 상태이거나요.
겨루기만 해도 되는 세상이 오거든 그때 소집하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