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214 vote 0 2021.11.23 (15:19:00)

“전두환을 쏘아 죽이겠습니다. 총 한 자루만 구해주십시오.”
광주의 피비린내가 여전히 진동하던 1980년대 초.
까까머리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어느 날 선생님들에게 이렇게 울분을 터뜨렸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이 아스라해져 갈 무렵 저는 경찰서로 끌려갔습니다. “뭐 우리 전두환 각하를 어떻게 해? 이 쌍놈의 새끼가!”
대공 분실 형사들의 주먹이 날라왔고, 발길질이 쏟아졌습니다. 그 매질 아래에서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선생님들이 얼마나 모진 고문을 당했으면 제자가 홧김에 한 말까지…”
그랬습니다.
1982년 군산 제일고등학교 선생님 아홉 분이 ‘오송회 사건’으로 구속됐습니다. 전두환 정권의 폭압과 만행을 한탄하며 막걸리 잔을 기울이시던 선생님들이 반국가단체를 구성했다는 어마어마한 혐의로 '일망타진'됐습니다.
선생님들은 전주의 대공 분실 지하실에 끌려가 한 달 넘게 전기고문, 통닭구이, 물고문 등 각종 고문을 돌아가며 다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제발 살려 달라고 빌던 선생님들이 나중에는 제발 죽여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 폭력 앞에서는 없는 말도 지어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선생님을 고발해야 했고,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밀고해야 했습니다. 야만의 시절이었습니다. 짐승 같은 세월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듬해 재판에서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오송회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아홉 분의 선생님 가운데 여섯 분이 선고유예로 풀려난 것입니다. 그 엄혹한 시절에도 용기있는 부장판사 이보환이 있었던 겁니다.
풀려나지 못한 세 분 선생님들도 항소심에 기대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몇 달 뒤의 항소심 법정은 아비규환이 되었습니다.
‘주범’ 이광웅 7년, 박정석 5년, 전성원 3년으로 형량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선고유예를 받았던 여섯 분이 모두 법정구속된 것입니다. 가족들은 땅을 치며 통곡했고,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 내막은 이십여 년 뒤 박철언의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이라는 책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전두환이 청와대로 대법원장과 대법원 판사들을 불러모아 놓고 호화로운 만찬을 즐기면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사회불안, 정치불안 요소에는 과감히 대처하겠다.” 그리고 ‘오송회 사건’을 예로 들며 “빨갱이를 무죄로 하는 것은 안 된다”고 했답니다. 그 결과 항소심에서 날벼락이 내리친 겁니다.
선생님들은 2008년 재심을 통해 모두 무죄를 선고받고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사건 발생 26년 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날 ‘주범’ 이광웅 선생님은 자리에 없었습니다. 사건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선생님은 병을 얻어 세상을 뜨신 지 오래였습니다.
그런 전두환에 대해 윤석열 후보는 “5.18 빼고 정치는 잘했다”고 발언했습니다. 그리고 조문을 가겠다고 합니다. 그의 '사과'가 '개 사과'였음이 입증됐습니다.
저는 제 페이스북에 <윤석열과 전두환>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5.18을 언급하니, 젊은 시절 전두환 장군이 떠오른다. 30여 년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둘의 모습은 많이 겹쳐 보인다”고 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윤석열이 살아있는 전두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면 전두환이 환생한 거로 보일 겁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합니다. 목숨이라도 걸어야 합니다.
오송회 사건의 이광웅 선생님은 시인이셨습니다. 돌아가신 뒤 금강 하구 언저리에 시비 하나가 세워졌습니다. 생전의 선생님 모습처럼 수줍게 서있습니다. 그 시비에 새겨져 있는 시가 ‘목숨을 걸고’입니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sort
5245 파란불 출석부 image 40 솔숲길 2018-12-17 4568
5244 나는냥 출석부 image 29 universe 2019-12-15 4567
5243 키우는 출석부 image 29 솔숲길 2012-10-24 4567
5242 꼬마야 출석부 image 34 김동렬 2016-05-20 4564
5241 풀 수 없는 문제 출석부 image 15 김동렬 2013-05-12 4563
5240 무모한 출석부 image 17 김동렬 2013-10-19 4561
5239 합체 출석부 image 32 솔숲길 2019-05-06 4560
5238 꼬실리는 출석부 image 26 솔숲길 2014-06-26 4557
5237 함함한 출석부 image 30 솔숲길 2012-06-14 4555
5236 여유로운 출석부 image 30 이산 2020-06-10 4554
5235 황금비 출석부 image 18 아란도 2013-12-11 4554
5234 먹을만한 출석부 image 8 솔숲길 2013-02-02 4554
5233 정월 출석부 image 32 솔숲길 2016-03-06 4552
5232 병병신신년년 출석부 image 31 김동렬 2016-01-01 4551
5231 구름바다 출석부 image 40 솔숲길 2019-01-25 4550
5230 가을이 오려나 출석부 image 28 이산 2021-08-17 4549
5229 토요일 출석부 image 19 김동렬 2013-11-30 4549
5228 흥룡사 벌 출석부 image 13 ahmoo 2012-10-27 4547
5227 아프리카 출석부 image 30 universe 2020-05-30 4546
5226 그럭저럭 출석부 image 30 김동렬 2012-11-19 4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