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전에 징비록이 KBS 대하드마로 만들어져서 유성룡을 띄우는 드라마가 있었다.
아마도 유성룡후손이나 종중에서 적극적으로 유성룡 홍보지원을 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후손은 돈을 벌면 가문의 뼈대를 새로 세우는 작업을 많이 하던데
혹시 그런 것의 일환은 아니었을까 상상해본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까지 조선과 일본은 근 80여년간 외교가 단절되었다가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일본의 세력으로 떠오르면서
선조가 단장 황윤길(서인), 부단장 김성일(유성룡 동문수학 친구, 동인, 둘다 퇴계 이황 제자),
부단장 허성(동인)을 외교사절로 일본에 보내서 일본 사정을 알아보라고 한다.
임진왜란 전후로 조선과 일본은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양국의 국민성이나 정치세력 등을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고 그 기세로 명나라를 칠 목적으로 한반도를 침입하면서 임진왜란은 시작되었다.
일본은 전쟁을 일찍 끝날 목적이었지만 남해바다에서 이순신이 일본군의 보급을 끓으면서
식량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전쟁은 지루하게 이어지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나서 전쟁이 끝난다.
이 임진왜란 중에서 유성룡은 단장 황윤길과 허성이 왜란이 일어날 것이므로 대비하라고 하지만
동문수학 친구 부단장 김성일의 왜란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자신도 반신반의하면서
선조한테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유성룡의 '우리가 남이가'가 정신에 따라 친구의견의 따르지만 경상도쪽을 제외하고
조선은 왜란에 대비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기록에는 이순신발탁한 사람이 유성룡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순신은 군인으로 한양 정계에 머무르는 사람이 아니라 국경지대를 돌아다니며
전쟁을 했던 실전군인이기 때문에
유성룡과 이순신의 연결고리는 이순신의형 이요신이 유성룡과 친구여서
유성룡 천거로 전라좌수사로 임명된 것 같다.
나중에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할 때에도 유성룡은 찬성한 것(전장에서 뛴 군인한명만 백의종군 반대)을 보면
유성룡은 이순신임명 신의한수가 아니라 지인찬스로 임명되었는 데 이순신이 뛰어난 케이스인 것 같다.
그리고 이순신과 선조가 직접대면한 것도 기록에 거의 보이지 않기때문에 선조도 이순신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유성룡은 임진왜란 후에 고향 안동에서 징비록을 써서
미래에 또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침입에 대비한다고 했는 데
전쟁을 경험하여 뇌가 쪼그라든 조선의 기득권이 바뀌지 않는 이상
전쟁대비는 안 되는 것이다.
유성룡 친구 김성일이 부단장으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유일하게 왜란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오판을 했지만
왜란이 일어나면서 김성일이 사형에 처해질 수 도 있었는 데 왜 죽지 않았을까?
그리고 위의 사실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 유성룡이 징비록을 썼을 때
미래의 침임대비보다는 자산의 변명이 아니었을까를 상상해본다.
유성룡의 이 징비록이 일본으로 흘러들어가 조선의 지형과 상황을 유출하게 되어 버렸으니
임진왜란 후 이백년 후에 일본이 다시 조선으로 쳐 들어 왔을 때 이 책이 길잡이 되었을지 어떻게 알까?
실제 숙종은 이 징비록이 일본으로 흘러들어가 조선의 상황이 일본에 유출되는 것을 매우 걱정했다.
안철수는 박정희 시대를 살고 있나? 물 아껴 써라, 전기 아껴써라 하면서 국민을 길들이려 하는 태도.
90년대 캐나다는 상가에서 남아도는 전기로 퇴근할 때 불 켜고 퇴근하는데 우리나라는 정부로부터 아껴쓰라는 말만 강요받았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석유고갈' '물 부족' '전기부족' 이라는 거짓말에 선동당하는 국민들이 있다는 거다. 덧붙여 수백년은 문제 없을 쓰레기 처리문제로 뭐 큰일이나 난 것처럼 거짓말하는 환경 단체들도 문제.
인류는 물걱정, 쓰레기 걱정, 전기걱정, 석유걱정 같은 쓸데없는 걱정할 시간이 없다. 그 시간에 다른 중요한 문제 해결하는데 쏟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