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밸런스가 있고
인위적으로 밸런스를 흔들면 반드시 청구서가 날아오는 법.
PC정책은 차별을 거부하자는 척 하지만
사실은 황인종에 밀린 백인문명의 위기감의 표현일 뿐.
중국이 여진족에 나라를 바치고 우리는 만주족을 포용한다네 하는 소리.
황인종이 못하는 것을 하는 점에서 백인이 마지막 카드를 쓴 것.
동양을 존중한다며 기괴하게 묘사하는 오리엔탈리즘과 마찬가지로
다름을 존중한다면서 질이 아니라 량으로 승부해버려.
다름을 존중한다면 다름을 다름이라고 말해야 하는 법.
너와 내가 다르지만 다름을 존중한다네 그러므로 너와 나는 같아.
기괴한 레토릭이 만들어지는 것.
차별을 극복하는 방법은 간단해.
흑인이 흑인영화 만들고
게이가 게이영화 만들고
여성이 여성영화 만들면 됨.
백인이 한국인을 조연으로 캐스팅하거나
혹은 주인공을 맡긴다 해도 어느 쪽이든 실패.
그냥 한국인이 만든 영화에 상을 주는게 정치적 올바름.
이소룡이 착한 동양인 하인 역을 맡은게 오리엔탈리즘.
동양인은 비열하다구? 아니야. 동양인은 착해.
이소룡 봐. 백인 주인을 위해 옆차기(사이드 킥)를 하잖아.
그냥 백인이 권총으로 쏴버리면 되는데
우리 착한 백인은 동양인을 위해 앞차기와 뒷차기 시간을 할애한다네.. 이게 오리엔탈리즘.
PC는 일정부분 의미가 있지만 지나치면
그게 60년대 오리엔탈리즘의 변주.
백인 주인을 위해 몸을 바치는 동양인 하인과의 로맨스.. 실패
동양인 하인을 위해 몸을 바치는 백인 주인의 감동적인 드라마.. 실패
어쨌든 자주 노출시켜서
본능적인 거부감을 없애는 정도의 의미는 있음.
로마도 게르만을 끌어들여서 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