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되는 소리이기는 하다.
그런데 진실은 아니다.
독재자는 한국에도 있고 중국에도 있고 독일에도 있었다.
일본도 이탈리아도 군국주의 독재가 지배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것은 본질이 아니다.
변죽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허무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뭐 말 잘못하면 인종주의로 몰리므로 몸을 사리는 것일 수도 있는데
인류의 모든 지식인이 다 몸을 사린다면?
그게 오히려 더 공포가 아닐까?
이스라엘은 만장일치가 없다.
한 명은 반대해야 통과가 된다.
그런데 인류가 일치단결하여 거짓말을 한다면?
오히려 더 큰 재앙이 아닐까?
나도 욕 먹고 싶지 않으니 인종주의로 몰릴 수 있는 부분은 말하지 않겠다.
그런데 말이다.
반이 에이즈에 걸렸다면?
어린이 빼놓고 다 걸렸다는 말이다.
100퍼센트 걸린 것이다.
고립된 오지마을은 사람의 왕래가 없어서 에이즈에 안 걸렸을테니
그 부분을 감안하면 대도시라면 다 걸린 것이다.
왜 그럴까?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우리가 아는 그 가족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독재자 카가메가 폭정을 하는 르완다가 그나마 낫다는 것은?
오히려 중국의 착취가 환영받는 이유는?
물론 중국을 반대하는 사람도 당연히 있지.
지정학적 이유, 좋은 항구의 부재, 교육문제, 착취형 플랜테이션 커피농장도 문제가 있지만
그것은 주변적인 것이다.
내가 비판하는 것은 아프리카가 아니다.
침묵하는 지구촌의 거짓 지식인들이다.
나는 그들이 가짜 지식인이라고 생각한다.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말을 돌려서 한다.
병의 원인을 말하지 않고 증상을 이야기한다.
구조론은 질 입자 힘 운동 량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질이다.
질이 좋지 않다는게 문제다.
더 파헤치면 인종주의 혐의를 받으므로 이 정도만 말하고
질은 결합한다.
가족이 결합해야 한다.
가족이 결합하고 있는가?
가족이 결합하면 전 국민이 에이즈에 걸릴 리가 없다.
예외적인 청정지역도 있을테니 특정지역으로 좁혀서 보면 전원이 걸린 것이다.
아프리카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지식인은 전방위적으로 비겁하다.
약탈, 착취, 부패, 독재, 타락, 범죄 이런 말은 할 말이 없을 때 둘러대려고 하는 말이다.
아프리카만 문제가 아니다.
인도 남미 아프가니스탄 이란 파키스탄도 오십보백보다.
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한국은 왜 되는가?
한국도 사실은 안 된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인 중에 제대로 된 기업가는 없다.
기껏해야 동전세탁소나 하는 정도다.
제조업으로 성공한 한국인 출신 미국 기업인이 있나?
역시 질의 결합에 문제가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와 결합하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
남의 나라여서 안 되는 것이다.
그런 문제가 아프리카는 국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인에게 외국이듯이 아프리카는 옆동네도 사실상 외국이다.
유럽인이 미국에 오면 일주일 안에 미국인이 된다.
한국인은 30년 살아도 미국인이 못 된다.
공화당으로 출마하여 의회에 입성한 한국계 미국 정치인이 욕 먹는 이유다.
차별을 반대한다면서 차별에 앞장서고 있다.
왜 그럴까?
남의 나라이므로 눈치를 보는 것이다.
오히려 극우 공화당 일부 백인 정치인은 인종차별을 반대한다.
백인 극우 공화당 정치인은 인종차별을 안하는데 차별받는 한국인은 차별한다.
한국인은 미국에 백 년 살아도 한국인인 것이다.
그런 일이 아프리카에서는 동네마다 일어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백 년을 살아도 부족이 다르면 외국인이다.
아프리카가 가난한 진짜 이유는 산업이 없기 때문이고
산업이 없는 이유는 산업이 원래 쉽지 않기 때문이며
한국인도 한국에서나 하지 미국에서는 못하는게 산업이며
그것은 역시 산업의 초기단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고
역으로 유태인은 그것을 잘한다.
유태인은 시나고그에 모여 있는 부자노인들이 돈을 빌려주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동향출신끼리 꽌시로 엮고 계모임을 해서 초기자본을 조달한다.
되는 나라는 이유가 있다.
공자의 후손들은 쉽게 하는 것을
다른 나라는 더럽게 못하는 것이며
유태인은 매우 쉽게 하고
기독교는 약간 어렵게 한다.
러시아가 민주화 된지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뭔가 하고 있다는 낌새가 없다.
1억 러시아인이 가즈프롬 하나에 목을 매달고 있다.
스탈린은 조금 해냈는데 푸틴은 왜 못할까?
하여간 원래 쉽지가 않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스탈린은 왜 그렇게 했을까?
하다하다 안 되니까 그쪽으로 몰린 것이다.
처음에는 잘해보려고 했지만 갈수록 태산이다.
인간들이 도무지 말을 들어먹지 않기 때문에
그 길 외에는 길이 없어서 외통으로 몰린 것이다.
같은 한국인 유전자를 가졌는데 북한은 왜 안될까?
되는 구조를 깨버렸기 때문이다.
그게 본질인데 본질을 파괴한 것이다.
한국사람이 미국에서 기업을 못하는 상황과 같은 일이
북한은 마을마다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워낙에 법을 안 지키고 보험을 안 든다고 미국바닥에 소문이 다 나서
종업원들이 사장의 약점을 잡으려고 변호사부터 소개받은 다음에
취직할 정도이니 사업을 못하는게 당연하다.
북한에서는 그런 일이 마을마다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에는 방향이 있고 한번 방향이 잘못되면 계속 잘못되고 만다.
승자총통은 잘 만든 좋은 화기지만 개념이 지원화기다.
조총은 개인화기다.
승자총통은 진흙과 격목으로 가스가 새는 구멍을 빈틈없이 차단하여 강력한 화력을 뽐낸다.
문제는 곡사라는 점이다. 지원화기로는 쓸모가 있는데 애초에 개인화기가 아니다.
문제는 그 방향의 차이가 전쟁의 판도를 가르는데
미국은 현재까지 잘못되어 있다는 점이다.
셔먼전차는 우수한 전차지만 교범이 잘못되어
화염방사기를 달고 토치카를 깨고 기관총진지를 부수며 지원화기로 사용되었다.
미군은 전차를 일종의 공병차 개념으로 이해한 것이다.
문제는 이 실수가 625까지 이어진 것이다.
M16이 AK에 깨진 이유도 같은 원리다.
200미터 넘어가면 유탄을 쏘고 기관총을 쏴야 하는데
잘못된 교범을 바꾸지 못해서 월남전에 베트콩에게 깨진 것이다.
한 번 삽질은 영원한 삽질로 이어진다.
교범을 만든 사람이 글자 한 줄을 잘못 쓰는 바람에 미군은 아직까지 삽질을 계속하고 있다.
물량을 쏟아부으면 되므로 교범이 잘못되어도 고치지 않는다.
정 안되면 원자탄 쏘면 되고.
개인화기가 되어야 병사의 자발적인 창의력이 사용된다.
지원화기라고 규정하는 순간
기관총을 발명해놓고 보불전쟁에 써먹지 못한 프랑스군 꼴 나는 것이다.
좋은 기관총을 만들어놓고 일종의 대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포를 운용하는 방법으로 기관총을 운용하니 될 리가 있나?
민중의 자발적인 창의력을 이용한 사람은 나폴레옹이다.
그러나 프랑스군은 급속하게 관료화 되고 귀족화 되었으며
나폴레옹의 방법은 독일군이 가져간 것이다.
병사들이 돌격하기 전에 대포로 갈겨놓고 시작하듯이
기관총으로 갈겨놓고 이제 육탄으로 공격하자고.
이러고 삽질을 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차대전 끝까지 셔먼전차를 그런 식으로 사용했다.
전차를 이선에 대기시켰다가 방해자가 나타나면 불러서 방해물을 제거하는 용도.
패튼은 제대로 써먹었지만 그래도 미군은 배운게 없었다.
전차의 기동력을 살려서 배후로 돌아 쌈싸먹는 방법은 절대 사용하지 않았다.
왜? 그건 교범에 없다구.
승자총통은 가스를 최대한 활용하는 좋은 무기여서 좋은 지휘관을 만나면 위력을 떨쳤다.
단지 심지가 타는데 시간이 걸려서 즉각 대응하지 못하므로 직사화기로 쓰지 못한다.
이 경우 지휘관이 멍청하면 써먹지 못한다.
일제 사격으로 적의 지휘부를 쓸어버리고 기병돌격을 하는 방식이 왜군에게 먹히지 않았다.
왜군은 다케다신겐에게 워낙 당해봐서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련군은 민중의 창의력을 중요시 했기 때문에
스탈린의 초반삽질에도 불구하고 살아날 수 있었다.
T34가 판터에 깨져도 대응방법을 바로 찾아낸다.
한두 대가 앞에서 깔작거리며 판터를 유인하고
기동력을 살려 우회기동으로 측면을 때리는 것이다.
와일드캣으로 제로센을 잡는 타치위브와 같다.
이런 것은 현장에서의 실전 경험이 즉각 반영되어야 하는 것이다.
보통은 관료주의 때문에 교범을 절대로 안 고치고 망한다.
나폴레옹은 현장경험을 바로 반영했다.
보통은 그렇게 하다가는 병사들이 말을 안 듣기 때문에 절대로 안 한다.
실수라도 해버리면 병사들이 지휘관을 우습게 보기 때문에 무조건 교범대로 하게 하는 것이다.
1차대전의 참호전이 대표적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의 그 많은 군사천재들이 왜 그렇게 허무하게 병사들을 죽게 만들었을까?
그들은 죄다 인간이 아니고 악마인 걸까?
천만에. 그들은 부하를 사랑하고 사람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방향이 잘못되어서 현장의 창의력을 거부한 것이다.
경직된 관료주의 사고 때문이다.
영국군은 어떤 대포에 어떤 포탄을 넣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고폭탄을 쏴야하는 곳에 산탄을 쏴댔으니 될 리가 있나.
소이탄도 참호를 단번에 해치우는데 사용하지 않았다.
왜? 공무원들이었기 때문에.
1차대전은 공무원 대 공무원의 전쟁이었다.
조준포격으로 기관총을 노리고 고폭탄과 소이탄을 쏘고
고지에서 측면을 때리면 참호를 쉽게 깰 수 있다.
솜 전투에서 영국군은 나흘간 엄청나게 많은 포를 쏘았지만
90퍼센트는 사거리가 짧고 산탄이라서 의미가 없었다.
현장에 절대 안 와보는 간부들이 삽질한 것이다.
폭탄이 어디에 떨어지는지 확인해보는 지휘관은 없었다.
딱 한사람 포탄의 낙하지점을 확인한 사람이 있었는데 프랑스군의 페텡이다.
그가 벼락출세 했음은 물론이다.
보어인은 고지에서 원거리 저격으로 참호에 숨은 영국군을 몰살시켰다.
35년 후에 일어난 1차대전에 보어전쟁의 경험을 살린 흔적은 전혀 없다.
그들은 모두 돌대가리였을까? 그렇다.
지도자가 한 번 방향을 잘못 정하면 죄다 돌대가리가 된다.
아프리카가 가난한 이유는 보통은 국가단위로 일어나는 삽질이 부족단위로 일어난 것뿐이다.
스탈린은 전투현장에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이다.
그가 지휘한 전투는 모두 실패했지만 그가 퍼뜨린 인민전쟁의 개념은
소련군에게 엄청난 창의력의 자원이 되어 좋은 무기와 뛰어난 전술이 다수 채택되었다.
스탈린의 중공업정책과 인민전쟁 개념은 방향을 잘 잡은 것이다.
이순신이 한 번 방향을 잘 잡자 부하들도 창의력을 발휘한 것으로 봐야 한다.
소련군은 간부가 숙청되어 대포를 곡사로 쏠 줄 아는 지휘관이 없어서 근거리에서 직사로 쐈다.
대포를 1키로 안까지 끌고 오다가 2키로 지점에서 티거에 잡힌다.
중국의 모택동군도 마찬가지로 곡사포를 운용할 줄 몰랐다.
그건 수학을 배워야 되는뎅? 코사인과 탄젠트를 알아야 한다구. 그 만은 팔로군에 코사인을 아는 사람이 없넹.
인민군도 전차를 운용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냥 지원화기로 사용했다.
보병 뒤를 따라다니다가 국군이 반격하면 산탄을 쏴서 반격지점을 부수는 방식이다.
이런거 간단한 문제인데 한 번 꼬이면 끝까지 해결이 안 된다.
일본군은 패망할 때까지 해군과 육군의 반목을 해결하지 못했다.
방향이 결정한다.
민중의 자발적인 창의력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하는 나라는 흥하고
경직된 교범에 사로잡혀 현장을 외면하는 나라는 망한다.
유태인은 시나고그에 백 명이 모이고 중국인은 꽌시로 20명이 연결되고
일본인은 봉건영주를 모시는 가로들이 모이고
한국인도 유교전통으로 모이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이 민중이다.
흩어져 있으면 민중이 아니다.
모여야 민중인 것이다.
아프리카는 부족이 국가행세를 하므로
부족마다 국경이 그어져서 민중이 아닌 것이다.
민중이 없기 때문에 민중의 자발적인 창의력도 없다.
공산주의는 수만 명도 모이지만 그것은 민중이 아니다.
육체가 모였을 뿐 마음이 모이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모임이라야 진짜다.
전 국민이 에이즈 걸렸다면 가족도 못 믿는 것이다.
가족도 의지할 수 없는 곳에는 민중이 없다.
로마는 패트런과 클라이언트의 점조직으로 흥했고
지금은 마피아가 그 짓을 하고 있다. 장단점이 있다는 말이다.
한국과 일본의 장점은 그대로 단점이기도 하다.
중국 왕이 한국에 있건말건 왕이 앞에서 미사일 쏘아 올리는 문재인
일본에 독도사진으로 신년인사하는 문재인
문재인은 점잖게 웃고 있는데 그게 더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