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정의 밑바닥 폭이 20미터면 환구단 황궁우와 비슷한 크기다.
건립의 목적과 용도가 같다.
시조신에게 제사 지내는 시설이다.
나정은 우물이 아니다.
처음에는 주줏돌도 없이 초가로 지었다가 나중 기와집으로 개축했다.
영국의 스톤헨지를 떠올릴 수 있다.
스톤 헨지는 주변에 우드헨지가 있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 나무로 지었다가 돌로 개축한 것이다.
스톤헨지 주변에 비슷한 시설이 많다.
스톤헨지 최초 건립 연대는 기원전 8천년 경.. 1만년 전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스톤 헨지는 기원전 1500년의 것이다.
6천년 동안 우드헨지로 있다가 3500년 전에 스톤헨지로 갈아탄 것이다.
물론 터키의 괴베클리테페는 1만년 전부터 스톤헨지였다.
결론은 괴베클리테페=스톤헨지=우드헨지=나정=황궁우=환구단의 목적이 같다는 점이다.
디자인도 별로 변하지 않았다.
이와 비슷한 건축은 유럽에 무수히 많다.
나정이라는 말은 우물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물처럼 깊은 구덩이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나정 주변은 지대가 높아서 우물을 파기 적당한 지역이 아니다.
나정 남쪽으로 하천이 있고 신라시대 도로 흔적이 있고
작은 돌다리가 있었던 흔적이 있는데 밭주인이 파묻어버렸다.
학자들이 가운데 구덩이를 기둥자리라고 하는데 그건 사리에 맞지 않다.
단순히 기둥자리라면 흙으로 메우면서 숯을 넣을 이유가 없다.
우물과 비슷한 형태의 신을 모시는 공간이 있었던 것이며
그래서 우물이 아니지만 우물이라고 부른 것이다.
괴베클리 테페든 스톤 헨지든 가운데 무슨 시설이 있다.
원래는 스톤헨지도 지붕을 덮어서 내부가 캄캄했을 것이다.
나정을 우물이 아니라 스톤 헨지와 같은 시설로 보는 이유는
이와 유사한 건축물이 특히 게르만 지역에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스톤헨지도 해자가 있는데 나정도 폭 2미터의 깊이 1.5미터의 해자가 있다.
일본은 무덤 주위에도 해자를 두른다.
해자가 있다는 말은 우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해자는 침입자를 막기 위한 것이다.
일부러 도랑을 파서 해자를 채우도록 물길을 연결해놓았는데
거기에 우물이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우물과 비슷한 구조물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원시인은 움집에 살았는데 바닥을 깊이 팠다.
겨울에 얼어죽지 않으려면 반지하에 살아야 했던 것이다.
나정의 구덩이 두 개는 움집을 흉내낸 것으로 보는게 합리적이다.
조상들은 움집에 살았을테니까.
답은 나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