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주의를 버리고
도구주의 관점에 따라 시장원리로 봐야 한다.
물론 권력도 본질이 아니라 사회적 도구다.
권력의 수요와 공급이 있는 것이다.
교회에 가는 이유는 거기에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를 핍박하는 이유는 권력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일종의 전시행정이다.
권력을 눈에 보이게 전시해놔야 아 교회에 권력이 있구나 하고 복종한다.
교회는 가부장의 기득권을 보호한다.
자녀를 부족주의 본능에 빼앗기지 않게 한다.
원래 인간은 열세 살이면 자녀를 버리는 동물이다.
13살이면 자기 몫의 권력을 탐하기 때문이다.
교회에 데려다 놓으면 제압되는 것이다.
엄마가 저축해 놓겠다며 세뱃돈을 빼앗는 것과 같다.
네 몫의 권력은 교회에 저금해 놓았다가 나중 어른되면 이자붙여 쓰도록 하라.
문제는 정치가 권력의 생산공장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점이다.
정치는 권력을 소비하는 백화점이 아니라 생산하는 공장이라야 한다.
교회가 하는 일을 정치가 해야한다는 말이다.
권력을 생산하고 공급하고 저축하고 분배해야 한다.
내게 권력을 달라 반대급부로 마을에 다리를 놔주겠다는 식의 거래는 추악하다.
현물을 주고 권력을 받는 장사꾼 정치가 나라를 망친다.
정치의 다스림은 기득권을 인정하고 진입장벽을 제거하고
신규권력을 등판시키고 권력과 권력을 경쟁시켜 권력의 세대교체를 돕는 일이다.
산업권력 문화권력 미디어권력 가족권력 부족권력 사이에 중재하는 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을 생산하는 주체라는 점이다.
권력을 휘두를게 아니라.
전라도 가서 경상도 욕하고 경상도 가서 전라도 욕하는 식의 정치로
일시적으로 표를 네다바이 할 수 있지만
그게 권력의 소비행동이기 때문에 몰락하는 것이다.
윤석열이든 르펜이든 권력 과소비다.
우리에게 힘이 있는데 약자를 밟아버리자. 즐겁잖아.
권력 소비충동을 자극하여 일시적으로 득표할 수는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권력 자체가 해체된다는 사실을 국민이 알아버리는 것이다.
신뢰가 깨지고 저축이 깨지고
자녀가 교회에 맡겨놓은 권력이 교회해산으로 소멸.
권력은 영향력인데 만인이 만인에게 영향력 상실 고립과 소외.
탈권력이 정당을 죽이는 독약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진보정치란 다분히 가정과 교회가 하는 일을 국가가 대행하는 것이다.
엄마가 주는 용돈을 국가에서 준다.
그게 진보다.
그 과정에서 엄마의 권력이 사라진다.
새로 생성되는 권력이 소멸되는 권력보다 작으면 망한다.
진보가 망하는 이유는 권력의 생산보다 소비가 크기 때문이다.
기득권을 때려부순 만큼 신규권력을 시장에 진입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산업의 생산력이 멸망하기 때문이다.
올드보이를 추방하고 영보이를 채워야 하는데 그걸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이라는 본질을 망각하고
권력을 어떤 이상적인 목적,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이라고 믿으면 망한다.
권력은 추한 것이지만 내가 좋은 세상을 만들어줄 테니 그 추한 권력을 나에게 잠시 위임해다오.
이러면 망한다.
권력이 추하다는 안철수 정치 망한다.
정치가 추하다면서 정치를 하면 안 된다.
똥은 더럽지만 내가 몽땅 갖겠다는 식의 위선은 곤란하다.
사람은 밥으로 살고 사회는 권력으로 산다.
밖으로는 폭넓게 뻗어나가고 내부로는 촘촘하게 관리해야 한다.
우파는 밖으로 뻗어간다며 전쟁하다가 망하고 좌파는 내부로 촘촘하게 한다며 신변잡기주의로 망한다.
우파는 큰 것으로 허풍을 치고 좌파는 작은 것으로 지리멸렬해진다.
모두는 권력을 원한다. 영향력을 원한다. 상호작용을 원한다.
인간들은 서로 긴밀해지려는 것이다.
소년은 권력을 얻어 부모에게서 독립하지만
너무 일찍 독립하면 너무 일찍 꽃을 피우는 식물처럼 크지 못하고 망한다.
이른 권력은 권력의 사이클을 작게 만들어 조로하게 된다.
개인의 권력, 가족의 권력, 부족의 권력을 인정하면서도 국가의 권력으로 대체해야 한다.
그러려면 역시 생산성의 혁신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공급해야 한다.
상호작용의 총량증대를 달성해야 한다.
마크롱의 선전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 알려준다.
좌파는 국가권력을 앞세워 개인권력을 약탈하고
우파는 권력을 과소비하여 마약처럼 국민을 권력중독시킨다.
정답은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고 생산력의 혁신이다.
생산력이 증대하면 권력의 신구교체는 자연스럽고 그럴 때 다스려진다.
생산력이 망하면 교회처럼 계속 사람을 소집하거나
북한처럼 계속 회의를 열거나
조선시대처럼 계속 제사를 지내면서 권력이 작동하는 척 쇼를 해야 한다.
권력이 멸망한 자리를 거짓 권력으로 대체하여 인간의 권력본능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기자들이 기사를 써주니까 좋은 가 보다.
갑자기 찾아온 명성이 버거우면 내려놔라!
명성을 유지하는 것도 흔들림없이 일하는 것도
다 훈련이 되어 있어야하는 것이다.
훈련되도 되어 있지 않고
어느날 갑자기 뜨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
인사검증 기준은 조국이 기준이다.
그 기준은 국힘과 언론이 만들었고 우리는 따르면 된다.
국힘이 조국의 기준을 넘지 못하면 장관은 없다.
특히 총리인준이 안되면 장관임명이 안된다던데
한덕수는 문제가 차고 넘친다.
한덕수를 때려봐라!
박지현이 한덕수를 때리면 기자들이 기사를 안 써주나?
박지현이 조국을 언급해야만 기사를 써준다고 그러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