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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069 vote 0 2021.08.25 (18:04:29)

    왜 한 살 먹은 강아지는 미친 듯이 뛰어다닐까? 원래 그렇다. 에너지가 넘치기 때문이다. 리트리버는 마의 2년을 넘기면 거짓말같이 얌전해진다. 왜 미운 일곱 살은 끝없이 사고를 칠까? 원래 그렇다. 일곱 살은 내 것을 이해하고 챙기는 나이다. 나도 일곱 살 때는 내 토끼, 내 닭, 내 꼴망태에 집착했던 기억이 있다.


    인간이 사고를 치는 이유는 사고를 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원래 상태가 그러하다. 정이 아니라 동이다. 인간은 활동적인 동물이다. 우리는 잘못 알고 있다. 원래 고요한 상태인데 외부에서 어떤 이물질이 들어와서 문제가 생겼다고 믿는다. 몸에 들어온 이물질을 제거하고 원래의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고 믿는다.


    조선족? 제거해버려. 다문화? 제거해버려? 암환자? 수술해버려. 성소수자? 제거해버려. 탈레반? 제거해버려. 우리는 이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원래 정상인데 어떤 이유로 문제가 발생한게 아니다. 인간은 원래 이상한 동물이다. 자전거는 달리는 상태가 안정된 상태고 팽이는 도는 상태가 안정된 상태다.


    인간은 활동하는 상태가 안정된 상태다. 활동하면 문제는 발생하게 되어 있다. 그 문제가 아니면 다른 문제가 생겨난다. 풍선효과다. 자유, 평등, 정의, 평화, 행복, 해탈, 이성, 이데아 따위 관념어들은 현실을 부정한다. 원래 정상인데 뭔가 문제가 발생했으며 원래대로 돌아가는게 자유, 평등, 정의, 평화, 해탈이다.


    틀렸다. 권력은 원래 존재한다. 동원은 원래 존재한다. 자유, 평등, 정의, 평화, 행복 따위는 동원방식에 불과하다. 말을 타고 있다. 기수가 말을 이기면 평화, 말에게 지면 불화다. 실력이 있으면 자유롭고 실력이 없으면 자유가 없다. 파도를 이기는 서퍼는 파도 위에서 자유롭다. 선수는 플레이할 때가 행복하다.


    불행하다는, 자유롭지 않다는, 평등하지 않다는, 평화롭지 않다는 말은 시합에 지고 있다는 말이다.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실력이 없다는 말이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상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승부가 걸린 상태, 전투가 진행되는 상태, 시합이 벌어지고 있는 상태다. 곧 동원되어 있는 상태다.


    자유와 평등과 평화와 행복과 이성과 천국은 모두 ‘내 패스를 받아라’는 뜻이다. 전투 중에 갑자기 대오를 이탈하여 집에 밥먹으러 가면 안 된다. 동료와 호흡을 맞추어야 한다. 우리는 동원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긴장 타야 한다.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권력에 의하여, 소집에 의하여, 동원에 의하여다.


    물고기는 물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인간은 환경과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는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자연환경, 사회환경, 내면환경이 있다. 자연의 변화와 톱니가 맞물려 있고, 사회의 변화와 톱니가 맞물려 있고, 내면의 변화와 톱니가 맞물려 있으므로 상호작용에 동원된 상태이므로 인간은 불일치 문제를 겪는다.


    권력에 의해 해결된다. 권력은 기세다. 기세는 톱니의 맞물림이다. 우리는 억압에서 자유로, 불행에서 행복으로, 불화에서 평화로, 불의에서 정의로 가는게 아니라 단지 말을 잘 타게 된다. 자유는 없다. 운전을 더 잘하면 그게 자유다. 하는 짓을 더 잘하게 되면 그것이 행복이다. 더 깊이 맞물려 돌아가는게 정의다.


    정의와 불의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 사회와 어색하게 겉도는가 아니면 손발이 척척 맞는지가 있을 뿐이다. 그러한 동원상태를 설명하는 언어가 없기 때문에 결과를 소급하여 쓰는 것이다. 상대가 내 패스를 받지 않으므로 시합에 이겨서 상금으로 소고기 사묵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진짜 할 말은 내 패스를 받아라다.


    우리는 많은 관념어를 쓴다. 필요가 없는 논란이다. 우리는 패스를 주고받기에 실패하고 있다. 티키타카를 못하고 빌드업 축구가 안 되고 있다. 랠리가 길게 이어지지 않고 있다. 겉돌고 있다. 민망하다. 어색하다. 뻘쭘하다. 창피하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방법은 파도를 이기는 능란한 서퍼가 되는 것이다.


    공을 패스하는 사람에게 권력이 있다. 손흥민이 뒷공간으로 침투하여 패스를 받게 하는 것이 동원이다. 내가 패스를 날렸는데 손흥민이 딴짓을 하고 있다면? 저 녀석이 짜장면을 사주지 않아서 화가 난 것인가? 자유 평등 평화 행복 사랑 정의 내세 천국 해탈 이데아 사회주의 이념 기타 등등 온갖 말로 꼬시는 것이다.


    어떤 관념어든 그것은 시합 끝나면 짜장면을 먹자는 말이며 본심은 내 패스를 받아다오다. 패스가 권력이다. 패스를 받아야 패스를 날릴 수 있다. 권력을 받아야 권력을 넘길 수 있다. 사장은 부하에게 권력을 주는 사람이다. 왕은 전쟁에 나가는 장군에게 보검을 하사한다. 주는데 안 받으면? 그게 골때리는 것이다.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민족이 다르고, 계급이 다르고, 학벌이 다르고, 신분이 다르고,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보검을 주지 않고, 줘도 받지 않으니 불화가 있다. 진실은 동원이다. 동원은 팽이가 돌고 자전거가 달리고 아기가 사고를 치고 지랄견이 날뛰는 그것이다. 그 활동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갑자기 문제가 생겼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잠시만 힘을 좀 쓰자. 그만한 보상이 있을 것이다 하고 말하지만 거짓말이다. 원래 인간은 상호작용을 멈추지 못하는 동물이다. 10만 년 전에도 그랬고 10만 년 후에도 그렇다. 우리는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와서 좋은 결과를 얻는게 아니라 싸움에 보다 익숙해지는 것이다.


    싸움이 끝나면 다른 싸움이 기다린다. 70억 인류와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미국은 배로 3개월을 항해해야 닿는 먼 나라였는데 지금은 비행기로 10시간이면 도착한다. 우리는 톱니가 더 긴밀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보다 동원된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권력을 주고받는 상효작용 속에 머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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