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유의 최종보스가 되는 궁극의 논리는 무엇일까? 그것은 게임이다. 게임에는 전략이 있다. 전략은 상대의 반응여하에 따라 내 행동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게임은 귀납이 아닌 연역이라는 점이 각별하다. 낚시를 해도 내가 먼저 밑밥을 던진다. 게임은 선제대응이다. 먼저 기술을 건다. 인공지능이 기대에 못 미치는 이유는 인간이 질문하고 인공지능이 답한다는 잘못된 전제를 깔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먼저 인간에게 질문해야 한다. 그것이 전략이고, 게임이고, 연역이다. 판을 짜놓고 상대를 끌어들이기다. 우리는 판단에 따라 행위한다고 믿지만, 착각이다. 지렛대가 있어야 행위할 수 있다. 지렛대는 대칭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대칭의 축을 움직이는 형태로 인간은 의사결정할 수 있다. 어떻게 행위할 것인지는 나중 정하고 일단 지렛대를 획득하는게 먼저다. 문제는 지렛대를 상대방에게서 조달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게임이다. 위험하다. 지렛대를 상대방에서 조달한다면 말려들 수 있다. 길들여지는 것이다. 상대방의 의도대로 된다. 어쩔 수 없다. 어느 정도 상대방에게 맞춰주면서 내 의도를 달성하는 수밖에. 이것이 게임의 묘미다. 마지막에 판을 접는 타이밍을 내가 결정하면 이긴다. 도박을 해도 일어서는 순간을 내가 정해야 한다. 인간의 모든 행위의 근본은 지렛대다. 인지부조화라는게 지렛대 현상이다. 여우는 포도를 따 먹을 도구가 없다. 지렛대가 없다. 포도가 익어서 저절로 땅에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므로 그 포도는 덜 익은 신포도가 맞다. 지렛대는 변화 중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법칙이다. 우리는 열역학 1법칙과 2법칙을 알고 있다. 변화 중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1법칙의 닫힌계와 2법칙의 방향성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특정한 변화다. 변하지 않는 것을 지렛대로 삼아 의도하는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 자연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대칭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식은 기분 따라 변하고 행동은 물리적인 에너지가 걸려 있으므로 변하지 않는다. 관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행동에 근거를 두고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인지부조화다. 게임의 법칙 –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상대방의 반응여하에 따라 내 행동을 결정한다. 변하지 않는 것에 근거하여 변화를 일으킨다. 먼저 대칭을 조직하고 코어를 움직여서 의사결정한다. 전략을 가지고 선제대응한다. 먼저 기술을 걸어 주도권을 성립시킨다. 먼저 움직여야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들의 간격을 조여서 기세를 얻을 수 있다. 그것이 사회에서는 권력이 되고 시장에서는 이윤이 된다. 우주의 근본법칙은 게임의 법칙이다. 그것은 행위의 법칙이며 합리성의 법칙이며 효율성의 법칙이며 기세의 법칙이며 플러스알파의 법칙이다. 그것은 변화에 앞서 변화의 판을 짜는 것이다. 그것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변화에는 규칙이 있다. 변화를 일으키는 자궁이 있다. 사건의 원인이 있다.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난다. 변할 수 없는 것과 변할 수 있는 것의 대칭을 통해서 변화를 끌어낸다. 변할 수 없는 것이 사건의 머리가 되고 변할 수 있는 것이 사건의 꼬리가 된다. 좁은 도로에서 큰 차와 작은 차가 맞닥뜨리면 누가 비켜야 하나? 큰 차는 비킬 수 없다. 도로가 좁기 때문이다. 작은 차가 비키거나 아니면 둘이 교착되어 둘 다 움직이지 못하거나다. 자동차와 보행자가 마주치면 누가 비켜야 하나? 느린 것은 비킬 수 없고 빠른 것이 비켜야 한다. 자동차가 빠르므로 자동차가 보행자를 피해야 한다. 보행자 우선의 원칙이다. 젊은이와 노인이 마주치면 젊은이가 피하는게 맞다. 정부과 국민이 충돌하면 정부가 비키는게 맞다. 회사와 노동자가 충돌하면 회사가 비키는게 맞다. 강자와 약자가 마주치면 강자가 비키는게 맞다. 어른과 어린이가 마주치면 어른이 비키는게 맞다. 어린이는 비키고 싶어도 비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변화는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대칭이라는 자궁을 통과한다. 할 수 없는 것은 모순이다. 충돌이다. 방해자다. 모순이야말로 변화를 일으키는 동력이다.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에너지 효율성이다. 산업에서는 이윤이고 사회에서는 그것이 권력이다. 모순은 후건이 전건을 칠 수 없다는 것이다. 권력은 전건이 후건을 친다는 것이다. 시간은 과거로 흐를 수 없으므로 언제나 전건이 후건을 치고, 원인이 결과를 치고, 머리가 꼬리를 치고, 앞서간 것이 뒤따르는 것을 친다. 그 반대는 없다. 자연의 일방향성이다. 그렇다면 이를 어기는 경우는 없는가? 있다. 외부에서 다른 것이 개입할 때다. 큰 넘과 작은 넘이 싸우면 당연히 큰 넘이 이긴다. 그런데 부모가 개입하면 어떨까? 그래서 닫힌계 개념이 적용된다. 외부개입을 배제하고 하나의 사건 안에서는 큰 것이 작은 것을 이긴다. 효율적인 것이 비효율적인 것을 이긴다. 결대로 간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간다. 기는 승을 이기고, 승은 전을 이기고, 전은 결을 이긴다. 여기서 외부개입은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변화의 대전제는 변할 수 없는 것과 변할 수 있는 것의 대칭이다. 이기는 것과 지는 것의 대칭상태다. 곧 게임이다. 변하지 않는 것에 의지해서 변한다. 작은 그릇에 큰 그릇을 담을 수 없다. 외부교란에 의해 정의가 실현되지 않으면 전 국민이 게임의 판에 가담할 때까지 판을 키워서 닫힌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도 외국이 개입하면 실패하지만, 그 경우는 세계대전으로 판을 키워야 한다. 어느 쪽이든 잘 기울어지는 축구장을 만들고 게임에 임한다. 인간은 단순하다. 하니까 되고 되니까 한다. 꼴등에서 시작하여 2등까지는 잘 가다가 갑자기 안 된다. 거기서 닫힌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기업은 2등이고 정치는 1등이다. 기업인이 정치를 못하는 이유다. 기업논리로 정치가 안 된다. 검사의 일방통행 논리로 대통령의 쌍방통행이 안 되는 것이다. 권력은 앞에 가는 자가 뒤에 오는 자를 지배한다. 국민이 먼저 왔기 때문에 국민이 대통령이다. 잘못된 권력, 잘못된 효율, 잘못된 이윤을 비판할 수 있지만,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것이 제 1 원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변화를 포착하여 사유를 시작한다. 변화에는 순서가 있다. 작업 들어가기 전에 사전조치가 필요하다. 이것이 모든 법칙의 법칙, 원리의 원리다. 변화는 먼저 변화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든다. 그것은 변할 수 없는 것과 변할 수 있는 것의 대칭상태 곧 게임상태다. 그리고 이기는 쪽으로 변한다. 먼저 의사결정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어떤 옳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바른 결정을 내리는게 아니라 그런 결정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결정을 내리기 앞서 결정권을 획득하여 결정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에게 결정을 위임하게 되고 그 결과는 의사결정능력의 상실로 이어져서 필연적으로 나빠진다. 부패를 없애기보다 부패를 인식할 수 있는 똑똑한 국민을 양성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부는 깨끗한데 국민이 바보이면 오래가지 못하고 부패가 있어도 국민이 점점 똑똑해지는 나라가 오래간다. 일시적으로 잘하는 것보다 계속 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고정관념 -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옳으면 하고 옳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 게임원리 - 일단 해본다. 되면 하고 안 되면 하지 않는다. 인간이 옳고 그름의 판단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은 인간이 학습된 대로 행동한다는 말이다. 많은 경우 학습되어 있지 않다. 학습된 경우도 있지만 그 경우는 독립된 사건이 아니므로 논의할 필요가 없다. 부하직원이 명령대로 하는 것은 의사결정이 아니다. 의사결정이 필요한 것은 학습되지 않은 경우다. 우주 안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사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의사결정할 수 있는 상태의 건설이다. 그것은 게임이다.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대칭이다. 모든 이야기는 그다음이다. 이 하나의 원리를 기억하라. 인간은 그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존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