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read 15011 vote 0 2004.03.28 (17:25:54)

고즈넉한 휴일 오후입니다. 공원을 산책하고 와서 모니터를 켭니다. 목련도 개나리도 진달래도 활짝 피었더군요. 물오른 버들가지를 보니 산으로, 들로, 바다로 달려가고 싶어 미치겠습니다만 이렇게 빈둥대는 걸로 위로를 삼기로 합니다.   

서영석님은 부산으로 출동해서 자리를 비웠고, 편집장님도 녹초가 된 듯 합니다.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아야겠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는 푹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휴일 되시길~

게시판 상단에 연재하고 있는 ‘노무현의 전략’을 인용합니다.(2002년 대선 이전에 써둔 글)

내가 방안사람 40여명의 투숙객들과 동네사람 수백명을 무형의 노끈으로 꽁꽁 묶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해놓고, 나 한 사람만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도록 연극을 펼치는 방법을 쓴다. 주인을 불러 말한다.

“내가 오늘 하루에 700여리나 되는 산길을 가야할 텐데 아침을 더 먹고 갈 것이니 밥 일곱상만 차려다 주시오.”

투숙객들 사이에 쟁론이 생간다. 청년들은 입을 모아 미친 사람이라거니 하고, 담뱃대를 물고 앉은 노인들은 청년들을 책하여 “여보게 말을 함부로 하지 말게. 지금인들 이인(異人)이 없으란 법이 있나. 이런 말세에는 당연히 이인이 날 때지” 한다. [백범일지]

백범이 1896년 2월 하순 대동강 하구 안악군 치하포의 한 객주집에서 왜놈 간첩 육군중위 토전양량(土田讓亮)을 타살하는 장면이다. 객주집 투숙객들이 거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한 끼에 밥 일곱그릇을 먹고 하룻밤에 칠백리를 가는 이인(異人)으로 보이게 연출한다.

 

『 출처.. 디시인사이드』

노무현의 ‘시민혁명’발언이나 ‘민주당 찍으면 한나라당을 돕는다’는 발언이나 원리는 같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의원 193명을 보이지 않는 무형의 끈으로 묶어버린 것이다. 무엇인가?

이인(異人)은 말하자면 초능력자다. 투숙객 40여명이 다 바보가 아닌 이상 백범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요는 어떤 돌발사태를 일으켜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이 경우 사람들은 행동통일을 꾀하게 된다.

투숙객 40여명은 의견을 모을때 까지 일체의 개인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 이런 방법으로 시간을 벌고 상황을 장악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노무현의 문제발언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행동통일을 꾀하게 되었다. 당내의 다양한 소수의견들은 사라진다.

행동통일을 위해서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어중간한 결정을 내리면 반드시 반대자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딴 마음 먹은 의원들이 중구난방으로 발언하여 대오가 흐트러진다.

분열이 일어난다. 이 상황에서 195명을 하나의 의견으로 모으는 방법은? 탄핵 밖에 없다.

박근혜도 추미애도 반대의견을 내놓지 못하게 되었다. 탄핵은 목숨걸고 하는 것이다. 누구는 목숨을 걸었는데 시시한 딴소리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노무현의 전략’을 또 인용하면

이는 민중 속에 녹아 들어가서 체화된 민중의 삶을 살아왔기에 가능한 방법이다. 편견을 가진 지식인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서민 출신의 지도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백범과 노무현에게는 확실히 민중을 다루는 기술이 있다.

이후 백범이 전국적인 인물로 떠오르는 과정에는 수없이 많은 연극적인 요소가 있다. 노무현도 마찬가지다.

지식인이라면 지식인 사이의 토론과 교우관계에서 얻어지는 평판에 의해 전국적인 인물로 부상한다. 곧 인맥 만들기다. 그러나 민중은 평등하다. 설사 뛰어난 지략이 있다손 치더라도 쉽사리 남의 윗자리에 오를 수 없다. 비상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도올 김용옥이 지적한 바 있듯이 노무현은 즉흥적인 자기연출이 뛰어난 사람이다. 노무현에게 편견을 가지고 노무현을 질시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잘못된 예측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 틀린 예측을 깨뜨려 보이므로서 극적인 반전의 효과를 이루어 감동을 주는 장치가 있다.

치하포의 객주집 주인 이화보가 하룻밤에 칠백리를 간다는 백범을 말을 듣고 처음에는 미친 사람으로 알았다가 나중 이인으로 여기게 되는 데는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반전이 있다.

엘리트 지도자는 자신을 키워준 조직의 보호를 받지만, 대중적 인기에 편승하는 서민 지도자는 인기가 떨어지면 한 순간에 날아가는 수가 있다. 언제나 생존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엘리트라면 지식인사회의 평판과 공론에 의해 정해지는 서열에 의지할 수 있다. 이 경우 자신의 지위를 드높일수록 좋다. 그러나 애써 얻은 지위가 한 순간에 날아갈 위험이 있는 민중의 지도자는  상대방의 마음을 온전히 빼앗지 않으면 안된다.

지식인들을 컨트롤 하기는 쉽다. 서열을 내세우고 권위를 내세우면 된다. 옳은 주장을 펼치면 된다. 민중을 컨트롤하기는 어렵다. 말안듣기 때문이다.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인간이 도무지 말을 안듣는다. 남프들처럼 지독스럽게 말을 안듣는다.

제갈량의 칠종칠금과 같다. 중국인과 민족이 다른 남만인들은 애초에 복종할 의사가 없는 것이다. 제갈량은 무력으로 억압해서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을 완전히 빼앗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먹물들은 형세를 살펴 유불리를 판단한다. 그러므로 이익을 제공하여 회유하거나 벌을 내리는 방법으로 지배할 수 있다. 서민대중은 다르다. 그들은 항상 행동통일을 꾀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완전히 행동통일이 될 때까지 복종하지 않는다.

복종하기로 하면 모두가 복종해야 하며 한 사람이라도 복종하지 않으면 대다수가 복종하지 않는다. 반대로 한번 완전히 마음을 빼앗으면 역으로 완전한 행동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여간해서 배반하지 않는다. 배반하려면 모두가 배반해야 하는 것이다.

노무현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제갈량의 7종7금과 같다. 경선으로 한번, 대선으로 한번, 재신임으로 한번, 탄핵으로 한번, 총선으로 한번, 그러고도 두어번의 승부가 더 남아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마음을 빼앗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덧붙이는 글 ..
필자가 이런 글을 쓰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정치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어요. 정치는 본래 어려운 것입니다. 3김식 권위주의가 쉬웠을 뿐이죠. 권위주의를 대체하는 것은 선진정치의 시스템입니다.

시스템이 작동하기 전까지는 고도의 통치술을 구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추미애는 기회주의자가 아닙니다. 단지 바보일 뿐입니다. 조순형은 타고난 악당이 아닙니다. 단지 멍청할 뿐입니다. 보통 때라면 조순형, 추미애도 잘 해낼 수 있었을 겁니다.

지금은 비상한 상황입니다. 정치를 알아야 합니다. ‘정치’ 그 자체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정치는 집단의 의사를 결정하는 절차입니다. 바둑의 포석처럼 반드시 거쳐야할 수순이 있는 거에요. 책략이나 술수가 아니라 법칙입니다.

노무현의 고도의 책략을 구사한 것은 아닙니다. 이 정도는 기본 중에서도 기본입니다. 이 정도의 쉬운 정치도 모른다면 문제가 있지요. 하여간 저는 바보 하고는 친구 안합니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274 국참연, 참정연 다 좋다 김동렬 2005-01-15 13138
1273 "명계남이 옳소" image 김동렬 2005-01-13 13466
1272 한류의 본질은 유교문명의 재발견 image 김동렬 2005-01-12 14233
1271 노무현의 리더십 image 김동렬 2005-01-12 16172
1270 박근혜의 몰락공식 김동렬 2005-01-10 12892
1269 강준만의 잔소리 김동렬 2005-01-07 14647
1268 중도하면 반드시 망한다 image 김동렬 2005-01-05 13911
1267 유시민이 나서야 한다 김동렬 2005-01-05 14131
1266 이계진은 까불지 마라 김동렬 2005-01-04 14471
1265 이부영 천정배는 1회용 소모품이다 image 김동렬 2005-01-03 13624
1264 “인간쓰레기 박근혜” image 김동렬 2004-12-30 20802
1263 이해찬의 미소 image 김동렬 2004-12-28 14243
1262 위기의 우리당 image 김동렬 2004-12-27 14581
1261 보안법, 최후의 승부가 임박했다 image 김동렬 2004-12-23 14202
1260 "뭘하고 있어 싸움을 걸지 않고." image 김동렬 2004-12-22 14450
1259 누가 조선일보의 상투를 자를 것인가? 김동렬 2004-12-21 13051
1258 중앙은 변할 것인가? 김동렬 2004-12-18 13110
1257 홍석현의 출세신공 김동렬 2004-12-17 15784
1256 강의석군의 서울대 법대 진학을 축하하며 김동렬 2004-12-16 15627
1255 박근혜간첩은 안녕하신가? 김동렬 2004-12-15 14421